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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세상의 모든 굴레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꿈꾸다

by예술의전당

니키 드 생팔(1930~2002)은 ‘나나Nana’ 시리즈로 잘 알려진 프랑스 출신의 누보 레알리즘nouveau réalisme 1) 작가다. 남성성의 배척 혹은 여성성에 관한 한 과격할 만큼의 시점이 녹아있다는 평가에 따라 페미니즘 예술가로 분류되기도 하나, 생팔은 자신의 작업을 동일한 영역에서 이해해주길 바란 적이 없다는 점에서 특정한 구분은 무의미하다.

증오와 연민의 돌파구 ‘예술’

세상의 모든 굴레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이탈리아 카팔비오에 위치한 니키 드 생팔의 '타로공원' 전경

생팔이 보여주려 한 것은 바로 작가 자신이었다.2) 다시 말해 생팔의 작품은 교조주의敎條主義(비합리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고집하는 사상)적 측면에서 예술을 추구하거나 미술사적 이즘ism(주의, 설)을 위한 작업이었다기 보단 비극적 삶과 혼을 담은 것이었고, 그 삶과 혼은 사랑, 환희, 절망, 슬픔, 증오, 분노, 애정과 같이 스스로 경험한 실제성 및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정신세계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비극의 요체는 아버지로부터의 성폭행이었다.3) 삶을 지탱해온 무언가가 되레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 되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체할 어떤 것을 찾는다. 종교에 의지하거나 자연에 의탁하는 삶이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생팔도 그랬다. 울타리가 되어줄 것이라 믿었던 아버지에 의한 폭력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으며, 증오와 연민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그때 자연스럽게 선택한 것이 예술이었다.4)

 

예술계에 발을 담근 생팔은 자신을 그린 자화상 등을 통해 마음 속 응어리를 거침없이 토해냈다. 컬러와 흑백으로 두 얼굴을 그린 드로잉 (1960)에서처럼 ‘내가 정상이 아닙니까? 미쳤습니까?’라고 써놓는 방식으로 당시 겪던 번민을 직접적으로 내뱉었고, 소위 ‘사격회화’라 불리는 ‘슈팅페인팅shooting painting’, 다양한 여성의 모습들을 도발적 혹은 하나의 메타포로 형상화했다. 또한 1960년대 초기부터 제작된 아상블라주assemblage(프랑스어로 집적, 집합 등을 의미) 연작은 그 자체로 파격적이었지만, 1961년 누보 레알리즘의 회원이 되며 본격적으로 예술계에 이름을 올린 이후 생팔 작품의 특징으로 자리하게 된다. 1962년 작 <대성당>이나 <괴물의 마음>(1962), <붉은 마녀>(1963) 등도 동일한 계열이다. 이 작품들은 목판에 철망, 페인트, 석고 등의 다양한 오브제를 뒤섞어 놓은 것으로, 생팔 그림을 관통하는 내면의 자아가 분노와 위안, 슬픔과 기쁨, 폭력과 평화 같은 양가적 특성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생팔이 마녀나 뱀5) 등을 곧잘 화면에 등장시킨 것만으로도 당시 어떤 감정으로 작업했을지 충분히 읽힌다.

건강한 생명력, ‘나나’와 <타로공원>

세상의 모든 굴레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샘의 나나' Niki de Saint Phalle, Nana Fontaine Type 1971/1992 ⓒ 2018 Niki Charitable Art Foundation / ADAGP, Paris - SACK, Seoul

증오와 분노, 좌절과 희망이 번갈아가며 들어선 삶 자체만으로도 생팔은 주목받는 예술가였다. 하지만 격정적이면서 굴곡 심했던 삶의 모든 것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였다는 사실이야말로 미술사적 가치가 있다. 실제로 스물네 살 즈음 예술계에 입문한 생팔은 거칠 것 없는 작품을 선보여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거부하지 않을 만큼 배짱이 있었고, 남성 중심의 예술계에서 거장들과 어울리며 자신의 세계를 당당히 확장했다.6)

 

이 중 ‘사격회화’ 시리즈는 거칠고 낯선 작품에 호의적이지 못한 일부 비평가들의 비판과 화제성을 동시에 지녔다. 작품 <스웨덴 TV 프로그램을 위한 사격회화>(1961)의 조형성에서 보이듯, 자신이 개발한 총에 물감을 채워 인형을 향해 발사하는(하게 하는) 이 작품은 어쩌면 부권 父 權 에 대한 저항처럼 비춰지지만 사실상 예술적 전통과의 결별, 고정관념의 타파를 의미하고 있다는 게 더욱 중요하다. 특히 무언가를 향해 쏜다는 것은 자유로운 해방을 위한 날갯짓이기에 그녀 내적으로도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생팔을 말하며 ‘사격회화’의 혁신성을 빼놓을 순 없지만, 생팔의 명성을 드높인 건 단연 <나나>7) 연작이다. <물구나무를 선 나나>(1965)를 포함해 누워 있는 만삭의 임산부를 묘사한 <혼> (1966)8) 등 각양각색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나나’ 시리즈는 동시대 생팔 이미지를 대리하는 작품이라 해도 무방하다.

 

여성의 대상화를 거부했던 생팔답게 이 작품들엔 미를 판단하는 기준인 눈, 코, 입이 없다. 구체적 성별조차 확인 불가능하다. 다소 풍만하며 유쾌한 동세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화려한 컬러로 인해 기존 1960년대 초반 ‘사격회화’에 등장하던 오브제들9)과는 다른 느낌을 심어준다. 그야말로 절망보다는 기쁨을, 구속 보다는 해방을, 비련 대신 환희가 배어 있다. 이 가운데 ‘나나’에 입혀 진 화려한 다색 화법polychromy은 1960년대 중후반을 넘어 1970년대의 긍정적으로 바뀐 생팔의 삶을 반영한다.10)

세상의 모든 굴레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해골'(2002) Niki de Saint Phalle, La Cabeza, 2000 © 2018 Niki Charitable Art Foundation / ADAGP, Paris – SACK, Seoul

‘나나’의 모습을 통해 건강하고 활기찬 여성의 생명력을 드러내고, 자신을 얽어매려는 사회의 모든 굴레로부터의 자유를 꿈꿨던11) 생팔은 ‘나나’가 발표된 후 치솟는 인기를 실감했다. 도발적인 발언을 이어갔던 생팔도 그 인기에 머뭇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나나>를 계기로 자신의 인생을 통틀어 최대의 걸작이랄 수 있는 예술 공원에 도전할 수 있었고, 그 결과물이 바로 빛과 생명의 환희가 꿈틀거리는 공간인 <타로공원>12)이다. 1988년 개장한 <타로공원>은 가우디의 <구엘공원>에서 영감을 받아 구상되었으며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카팔비오에 조성되었다. 파리 퐁피두센터 인근 스트라빈스키 분수(장 팅겔리와 공동 작업했다)와 더불어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20여 년의 공사기간동안 정성을 다한 끝에 완성된 이 공원은 고양이와 닭 같은 형상을 비롯 해 <별>, <은둔자>, <예언자>, <황제>, <정의> 등 모두 22개의 타로카드 이미지에서 빌려온 조각으로 채워져 있다. 생팔은 <퀸>이라는 작품 내부에 거주하며 2002년 작고하기 전까지 수없이 많은 거울과 유리, 도기 등을 이용해 작은 난간에서부터 계단, 공간내외부에 이르는 방대한 공간을 타일 모자이크로 장식했다. 어찌나 섬세한 상상력으로 다듬었는지, 현재의 <타로공원> 역시 매우 동화적이며 환상적인 여운이 물씬하다.

세상의 모든 굴레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옆 조각분수공원의 스트라빈스키 분수

프랑스 현대미술과 니키 드 생팔

14~16세기의 이탈리아가 그러했듯 프랑스는 20세기 이전까지 전 세계 예술의 중심이었다. 루브르, 오르세, 퐁피두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번 가본 이는 없으며, 인류 최고의 회화라 일컬어지는 라스코동굴벽화를 비롯하여 고대-근대에 이르는 걸작들을 남겨놓고 있어 프랑스 미술은 가히 보기 드물게 다양하고 풍성한 역사 아래 배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미술을 말하며 예술의 보고인 프랑스를 간과할 순 없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프랑스는 미국과 영국의 역동성을 따르지 못하는 느낌을 심어준다. 적어도 컨템퍼러리아트에서만큼은 더딘 인상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세히 보면 현대미술사에 한 확을 그은 걸출한 예술가들이 눈에 띈다. 미술과 개념을 논할 때 결코 빠지지 않는 마르셀 뒤샹도 프랑스의 혁명적 작가이며, 오늘 본지면을 통해 소개한 니키 드 생팔도 그 중 한 명이다.

 

다만 흥미로운 건 생팔 예술의 경우 어느 특정 국가로 한정지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경향이 감지된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1930년 태어나 2002년 사망할 때까지 생팔의 활동 무대는 파리, 뉴욕, 샌프란시스코, 이탈리아 등으로 영역이 넓었다. 덕분에 생팔은 자연스럽게 미국과 유럽미술을 익힐 수 있었고, 그 중에서도 누보 레알리즘과 네오다다Neo Dada, 그리고 그 여러 미술 분야를 옹립시킨 ‘아상블라주’와 ‘레디메이드Ready-made, ‘콤바인페인 팅Combine painting’ 등의 기법은 생팔 예술의 미학적 뿌리이자 일명 ‘유럽판 네오다다이스트’로써의 명맥을 유지하는 기초가 될 수 있었다. 허나 생팔의 작업에서 직간접적으로 연관되는 예술흐름과 작가는 그 외에도 많다. 즉, 멕시코문명이나 토템, 누보 레알리즘 작가들을 포함해,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같은 네오 다다이스트들, 잭슨 폴록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작가들, 1971년 결혼했다가 이혼했으나 영원한 예술적 동반자로 남은 스위스의 조각가 장 팅겔리13) 등과 교류하며 예술적 지평을 넓힌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14) 그렇지만 니키 드 생팔의 작품은 현대미술의 자양분이 된 다양한 결과 조우해 익힌 미적 알고리즘 중에서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걸맞게 골라내어 새롭게 조합한 결과라는 게 핵심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조합은 독창성으로 빛을 발했으며 독창성은 다시 프랑스를 위시한 유럽뿐만아니라 오늘날처럼 우리나라에서도 그녀의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가 되고 있다.

1) 누보 레알리즘은 1960년대 초 파리를 중심으로 일어난 전위적 미술운동으로 우리식 표현으로는 ‘신사실주의’로 번역된다. 당시 유럽과 미국 화단을 지배하고 있던 추상미술의 현실도피성에 회의를 품고, 예술과 현실의 장벽을 허물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수용하려한 미술경향을 말한다. 프랑스의 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에 의해 창안되었으며, 장 팅겔리, 이브 클라인, 아르망 등과 함께 1960년 4월 이탈리아 밀라노 아폴리네르 화랑에서 제1차 선언을 발표하며 자신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누보 레알리즘 작가들은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기 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상당수 차용해 작품을 만들었다. 생팔에게도 쓰다 버린 폐품이나 일용품 등, 다양한 사물을 한데 모아 미술작품을 제작하는 ‘아상블라주’는 적절한 기법이었다. 물론 네오다다의 영향을 받았기에 ‘레디메이드’ 역시 낯선 미술언어가 아니었다.

 

2) 출생 시기나 가정환경, 신경증적 증세, 작품의 출발점 등을 고려할 때 생팔은 쿠사마 야요이(1929~)와 닮아 있다. 여성으로서의 사적인 삶을 작업의 동기로 삼았으며, 고통과 아픔을 공감 가능한 환희로 일궈냈다는 점에서 그렇다.

 

3) 생팔은 1930년 프랑스 뇌이쉬르센에서 태어났다. 가정은 상류층에 속했으며 부모는 자식들에게 전통적이며 엄격한 규범을 가르쳤다. 하지만 생팔은 열한 살 되던 1942년 외도를 일삼던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생팔의 엄마 역시 차갑고 냉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생팔은 엄마에 대한 애증, 정서적 불안까지 갖게 되었다. 세 살까지 조부모 밑에서 자란 경험도 원망과 그리움을 낳는 배경이었다. 이런 감정을 보여주는 작품 가운데 하나가 <잡아먹는 어머니>(1970)이다.

 

4)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생팔에게 예술은 하나의 구원이었다. 억압을 피해 들어선 심리적 도피처였다. 무언가에 홀리듯 그림의 세계로 젖어들었지만, 유년시절의 악몽은 생팔 자신을 구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예술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5) 본래 생팔에게 ‘뱀’은 아픈 기억과 공포의 경험을 대리하는 상징이었다. 1960~1961년에 작업한 <종이뱀>이나 <녹색 괴물>(1963)과 같은 작품도 같은 선상에 놓인다. 실제로 생팔은 사촌의 장난으로 뱀을 보고 놀란 그해 여름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하지만 1974년에 그린 <뱀나무>와 1979년의 <뱀나무>, <교차하는 뱀 안락의자>(1980) 등의 작품에 나타난 뱀은 사랑의 대상이자 생명력으로써의 상징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생팔이 그 긴 시간동안 예술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해 왔음을 보여준다. 참고로 서구에서 뱀은 남근의 기호로도 통한다.

 

6) 이들 중엔 생팔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등장하는 연인 장 팅겔리를 비롯해 다다이스트였던 마르셀 뒤샹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동료 회원이었던 이브 클라인 및 알렉산더 콜더와 같은 유명한 예술가들과도 어울렸다.

 

7) ‘나나’는 창녀 또는 남성을 유혹하는 요부인 뱀프vamp와 유사한 비속어이다. 생팔은 비속어를 고의적으로 차용해 되레 인종우월주의를 비판하고 신성하며 아름다운 여성성을 재환기시켰다. 이 중 생팔의 작품에 자주 출현하는 ‘블랙 나나Black Nana’는 인종주의에 대한 강한 은유이다.

 

8) 이 작품은 길이가 무려 28미터, 너비는 6미터에 이를 만큼 거대했고, 사람들은 그 자궁속으로 들어가는 구조였다.

 

9) 예를 들어 1965년 프랑스 SOiSY에서 진행된 ‘사격회화’에서 생팔은 사지가 절단되고 이리저리 찢긴 인형 위에 총을 쏘는 작품을 선보인다. <거대 사격-스톡홀름 정경>(1961) 또한 여성적 역할만을 강요당하는 창녀를 표현한 것으로, 남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대상으로써의 육체를 우회하지 않고 있다. 이 당시부터 ‘나나’의 전신이랄 수 있는 육중한 몸뚱이의 조각이 등장한다.

 

10) 이 시기 조각은 유희적이면서도 강렬하다. 한번 보면 잊을 수 없을 만큼 개성도 갖췄다. 대표적인 작품이 예루살렘에 놓인 <골렘>(1972)이다. 빈민가 놀이터에 설치한 10미터 높이의 이 미끄럼틀은 세 개의 붉은 혓바닥을 하고 있으며, 흙으로 빚어진 태초의 인간을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성스러움을 조형화하고 있다.

 

11) 실제로 여성을 주제로 한 생팔의 모든 작품은 순종적이거나 대상화되는 식의 전형적인 여성의 이미지와 크게 다르다.

 

12) <타로공원>(1994)이라는 제목의 석판화 작품에서도 유추 가능하지만 생팔에게 <타로공원>(이탈리아어로 Giardin del Tarocchi, 프랑스어로는 Le Jardin des Tarots)은 하나의 유토피아였다. 삶의 모든 상처를 치유하고 난 뒤의 완전한 안착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생팔은 공원조성에 열정을 다했고, 작가 개인의 역량으로써는 가장 극대화되었다고 할 만큼 규모나 개성 면에서 보기 드문 공원으로 완성시켰다.

 

13) 스위스 태생의 작가 장 팅겔리는 기계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유명한 조각가이다. 2016년 6월 스위스 바젤 ‘장 팅겔리 뮤지엄’에서는 팅겔리의 작품을 선보이면서 동시에 그의 예술적 동반자였던 니키 드 생팔의 작품을 함께 전시해 둘의 관계성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14) 생팔의 다층적 경험은 자신의 작업이 탈장르화 하는데 크게 일조했다. 그 결과가 바로 연극 및 영화를 포함한 보석디자인, 무대디자인, 출판에 이르기까지의 ‘제약 없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글 : 홍경한 미술평론가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8년 6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