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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모더니티의 인상
피카소에서 프란시스 베이컨까지

by예술의전당

11.27(금) - 2016.3.1(화) 한가람미술관 5, 6전시실

모더니티의 인상 피카소에서 프란시스

프란시스 베이컨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 삼면화, 1981 © The Estate of Francis Bacon. All rights reserved. DACS 2015.

예술작품은 한 시대의 이념을 표상하거나, 시대의 무의식적인 심연을 드러낸다. 지난 세기는 기술매체를 통해 혁명적인 혁신을 이룬 시대다. 과학과 기술에 대한 찬양은 레제Férnand Leger의 작품에서도 자주 묘사된다. 한편으로는 1, 2차 세계대전으로 인간성 상실을 경험하기도 한 시대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과학주의와 실증주의에 반대하면서, 한계 상황에 놓인 인간 실존의 문제를 제기한다. 사르트르와의 우정과 작품 비평으로 유명한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독특한 인체 양식은 그러한 실존주의 미학을 완벽히 구현하고 있다.

 

한편, 베이컨Francis Bacon은 인간 실존의 문제에 선행하는 근본적인 존재의 심연, 무의식적인 층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처럼 모더니티는 한두 가지의 대립적인 규정으로 결코 설명될 수 없는 다양성을 내포하며, 낙관주의자들의 유토피아적인 견해와 야만성 위에 불안정하게 구축된 물질문명이라는 비판적인 견해 사이에서 진동한다. 이러한 모더니티의 삶에서 인간은 양가적이고 역설적인 모순을 체감하는 존재다. 만일 무엇을 긍정하는 동시에 부정하는 이율배반의 역설을 함축한 것을 모순이라 하면, 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삶을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세계로 투사하는 예술가는 실현 불가능한 것을 실현시키는 행위자며, 시대를 횡단하는 모험심에 찬 항해사였다.

모더니스트의 추상충동

빛을 진리로 삼은 인상주의자들은 사물의 표면을 무수한 색면으로 분할한다. 13세기의 신학자이자 빛의 형이상학자인 그로스테스트Grosseteste는 이렇게 말한다. “물질은 형식을 채우며, 형식은 그 자체가 빛이고, 물질에 차원을 가져오는 것이다.” 인상주의 시대가 열리면서 빛은 가장 근본적인 실체가 되고, 형태는 오히려 색채를 통해서 드러난다. 뚜렷한 윤곽선은 보색의 중첩으로 모호해지고, 사물의 형태는 자연스럽게 왜곡되거나 상실되어 간다. 그 표면들은 다만 다양한 색면으로 증식, 확장된다.

 

세잔Paul Cézanne은 세계에 대한 감각적인 인상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내재한 본질적인 형태를 발견한다. 퐁티에 의하면 ‘세계- 내 -존재’인 지각 주체는 공통의 ‘살chair’로써 세계와 질료적인material 상관관계를 맺는다. 살의 몸, 즉 신체는 더 이상 정신의 도구가 아니며, 말하자면 우리는 ‘신체를 살아가는 존재’일 뿐, 뫼비우스의 띠처럼 타자와의 상호-귀속적인 관계에서 자신의 신체를 내주는 ‘체화’를 통해 세계를 경험한다. 그리고 신체는 외부세계를 향해 언제나 수동적으로 열려 있고, 외부 자극에 의한 신체의 변화를 의식하는 자기가 곧 정신이다. 다시 말해 신체의 경험은 사유에 선행한다. 이런 관점에서, 세잔의회화는 신체의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추상적인 관념에 도달한 것이다. 그리고 세잔이 추구하던 진정한 리얼리티는 기존의 리얼리티에 이르는 방법을 폐기하면서 가능해진, 비재현적인 감각적 경험의 리얼리티이다.

모더니티의 인상 피카소에서 프란시스

파블로 피카소 '여인의 흉상(도라 마르)', 1941 © 2015 - Succession Pablo Picasso - SACK (Korea)


큐비스트들은 인상주의와 세잔을 재해석한다. 청색시대 이후, 피카소Pablo Picasso의 큐비즘 회화는 점차 사물의 표면을 기하학적으로 해체하여 화면에 펼쳐놓았다. 사실 시각은 2차원적이며, 우리가 3차원의 공간지각을 할 수 있는 것은 축적된 경험과 기억 때문이다. 즉, 감각이 받아들인 파편적인 표상을 종합해내는 인식이 개입된 결과이다. 피카소의 탁월함은 감각적 표상에서 그러한 인식적 요소를 제거하고, 사물의 표면을 마치 ‘패치워크’처럼 구성했다는 점이다. 사실 세잔이 이미 선취하고 있지만, 색면을 누더기처럼 깁는 패치워크는 원초적인 감각을 매개하는 시공간의 가변성과 그 결과로서 드러난 이질적인 것, 유사한 것들이 하나의 직물 위에 존재한다. 몬드리안Piet Mondrian은 회화에서 3차원의 환영적 공간을 완전히 제거하고, 평면적인 수평과 수직의 기하학적인 그리드로 세계를 상징화한다. 그림을 가로지르는 선線들은 사물이 구체적인 형태를 보이기 이전, 세계의 매트릭스이며, 교차된 선은 화면에 리듬감을 부여한다. 칸딘스키의 추상화에서는 좀더 자유로우면서도 절제된 음악적인 리듬감이 발생한다면, 몬드리안의 기계적인 그리드는 그를 옵아트Op Art의 선구자로 불리게도 한다. 옵아트는 ‘옵티컬 아트Optical Art’의 줄임말로 문자 그대로 시각적 미술을 의미한다. 옵아트는 모든 재현적 요소를 제거했다는 점에서 시각적 추상이라고도 한다. 옵아트는 시각을 위한 미술임에도 불구하고 시각의 특성을 거스르는 착시를 발생시킨다. 눈은 생리구조상 원근법과 동일한 일점소실점을 가진다. 사실상 눈이 외부 대상을 지각하는 메커니즘을 밖으로 펼쳐놓은 것이 원근법이다. 더구나 원근법은 자연적인 시각의 결함을 수학적이고 기하학적인 구조로 매끄럽게 체계화했는데, 옵아트는 그러한 원근법적 공간을 비틀어 버린다. 대표적인 옵아티스트인 바자넬리Victor Vasarely의 작품은 반反원근법적 구성에 따라 형태를 배열하고, 끊임없이 진동하는 물결moiré 효과처럼 휘어진 공간처럼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베네수엘라의 대표적인 옵아티스트이자 키네틱아티스트인 헤수스 소토Jesús Rafael Soto가 1950년 고향을 떠나 파리에 도착했을 무렵, 바자넬리가 이끄는 옵아트가 태동하고 있었다. “나는 추상을 성취하기 위해서,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현실을 코드화하기 위해 사유했다. (중략) 나에게 큐비즘은 평면들을 배열하는 구성의 실험장이었고, 열대의 빛을 번역하기 위한 도구였다.” 소토는 바자넬리는 물론, 인상주의, 큐비즘, 몬드리안, 말레비치, 칸딘스키, 모홀리 나기 등에게 영향을 받았다. 소토의 대표적인 키네틱 작품인 <통과가능Penetrables>(1969)은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움직이는 조각이며, 이번에 내한하는 <진동Vibración>(1963), <붉은 중앙의 테스Tes con centro rojo>(1973)와 같은 평면적인 키네틱 작품들은 이질적인 질료들의 혼합매체 시리즈 연작이다. 이 작품들은 원근법적 지각을 해체하며, 작품과 관객 사이의 주관적인 거리와 각도에 따라서 화면의 텍스처가 시시각각 변화한다. 화면의 대기에서 어른거리고 진동하는 모호한 환영들은 작품의 물질적 형태를 빗물질화 시킨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사물의 물성을 넘어서 사물의 정신을 표현하는 것이며, 모더니스트의 내재된 추상충동이다.

감각적인 것의 형상

모더니티의 인상 피카소에서 프란시스

페르낭 레제 '곡예사와 음악가들', 1945

무엇을 그릴 것인가? 화가들은 시각적으로 재현 가능한 대상을 모델로 선택할 수 있지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비지각적인 것’을 화면에 구현하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지금’, ‘여기’에 현전하지만, 의식적인 지각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으로써, 벤야민의 언급처럼 “시각적인 무의식의 지대”에 있는 것이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형상들figures>은 신체에 대한 연구로부터 비롯되었다. <신체연구, 앵그르를 따라서>(1982),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1983) 등은 앵그르의 인체도상을 재해석한 작품들이다. 베이컨은 인체의 시각적인 외형을 재현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재현으로 매개되지 않는 심연에서 터져 나오는 감각적인 것의 형상을 그리고자 했다. 예를 들어, <미셸 레리스의 초상>(1976)과 <자화상> 같은 얼굴 형상에서 극명하게 드러낸다. 짐멜에 따르면 얼굴은 “움직임 속에서 정서가 지속적인 특성을 나타내며 침전되는 장소”다. 한 사람의 인상과 표정은 어떻게 다른가? 양자의 관계는 예술작품이 갖는 고정된 외형적 형태와 그것에 내재하고 있는 ‘정서’이자 ‘정신’의 관계와 유사하다. 더불어 표정은 인상에 주어진 ‘운동성’ 그 자체이고, 그것은 시공간의 변화에 따른 존재의 유동성이다.

 

베이컨의 형상들은 보통 혼자이더라도 중첩되어 있거나, ‘만지는 몸과 만져지는 몸의 중첩’되어 두 형상이 짝을 이룬다. 그 형상들은 서로 유사하게 중첩될지라도, 근본적으로 비재현적이고 비관계적이다. 들뢰즈에 따르면 그것은 낯선 감각들이 서로를 끌어안는 것이며, 형상들 사이의 ‘공명’이다. 그리고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1891)와 같은 삼면화Triptych에서 그러한 형상들의 공명은 ‘리듬’으로 전환된다. 전통적으로 중세 종교화에서 사용된 삼면화는 움직이는 회화다. 실제로 화면은 고정되어 있고, 서로 분절되어 있지만, 영화의 흐름이 쇼트와 쇼트로 이어지는 것처럼, 삼면화에는 그러한 리듬이 살아 있다. 그리고 쇼트들의 결합으로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삼면화는 분리된 통일성 자체다. 즉, 삼면화는 세 부분으로 분리되어 있고, 그 안에 형상들은 고립되어 있지만 격리된 것이 아니다. 3박자의 리듬으로 분배된 순환적인 구성으로 연속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공통된 ‘빛과 색채’라는 엄연한 사실이 존재한다. 그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리듬은 서로 다른 층위의 형상을 주파하면서 진동한다. 감각과 리듬의 관계, 시간의 추이에 따라 형상을 변화시키는 감각과 그 흐름을 주도하는 리듬 간의 관계, 그러한 극도의 변화무쌍하고 비논리적인 흐름을 들뢰즈는 감각의 논리라 정의한다. 들뢰즈는 베이컨뿐만 아니라 인상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색채 감각을 이어받은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에게서도 이러한 요소들을 발견한다. 장 뒤뷔페Jean Dubffet, 웰림 드 쿠닝Willem de Kooning, 잭슨 폴록Jackson Pollock등이다. 추상표현주의자들은 격렬한 감정과 감각적 수단을 이용하여 비재현적인 선들과 감각적인 색채로 화면을 채웠고, 얼룩, 비의미적인 돌발흔적으로 회화의 ‘영도zero degree’를 제시한다. 그것은 개념과 재현이 개입하기 이전, 지각 이전의 감각, 즉 감성적인 것의 영역이다.

 

더 나아가 팝아티스트들은 시대를 부유하는 환영적인 이미지인 ‘시뮬라크르simulacre’를 제작한다. 그 이미지는 유사하며 강박적으로 반복되는데, 유사성과 상사성相似性을 구분한 푸코의 사유를 빌리면 상사성은 원본 없는 이미지들 간의 닮음이다. 본래 유사성과 상사성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재현의 관계로 맺어진 원본과 복제 사이의 유사성과 원본 없이 비재현적인 복제와 복제 사이의 닮음을 상사성으로 구분한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이 파격적이며 전략적으로 사용한 실크스크린 작품인 <메릴린 먼로>(1967) 연작들은 반복되는 이미지들 간의 무한한 상사성을 드러내며, 기술매체의 발달과 대중적인 소비문화가 지배하는 시대의 이미지 범람, 잉여, 편재성을 보여주고 있다.

나가며

라우센 버그Robert Raushenberg의 <도시질서, ROCI-베네수엘라>(1985)는 3차원의 콜라주이며 컴바인 페인팅이다. 라우센 버그의 ‘ROCI: Rauchenberg’s Overseas Culture Interchange 프로그램’은 그가 여행한 여러 나라에서 보고 경험한 것을 사진이나비디오로 기록하고, 그의 예술가적인 상상력과 그림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그가 이 프로젝트를 실행한 이유는 예술이 가진 잠재력이 세계평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강한 신념 때문이었다. “예술을 통한 일대일 접촉은 강력한 평화적 힘을 함축한다. (중략) 나는 모든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축하하고, 이해하며, 공유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ROCI가 이러한 ‘보기’를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라우센 버그생전에 ROCI에 한국은 포함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 열리는 ‘베네수엘라와의 수교 5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는 예술을 통해서 국제적인 교류와 소통을 증진하려는 그의 목표가 다른 방식으로 실현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글 이지현 (홍익대학교 강사)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5년 11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