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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2015년 올해의 전시

다양한 주제와 의미로
성황을 이룬 전시회들

by예술의전당

한 해가 벌써 저물어간다. 올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1년 동안 국내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가운데 화제가 됐거나 인상 깊었던 전시들을 되짚어보면서 나름대로 성적을 매기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광복 70주년, 역사를 담은 전시회

다양한 주제와 의미로 성황을 이룬 전

이쾌대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광복과 분단 70주년인 2015년은 우리 현대사에서 각별한 의미를 띠는 해였다. 그 역사적 의미를 예술적으로 풀어보는 기획전이 풍성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아쉽게도 크게 눈에 띄는 전시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나마 거론할 만한 것이 이쾌대(1913~1965)의 대규모 회고전이다.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7.22~11.1)라는 타이틀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 전시는 한국 근대미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천재 화가 이쾌대를 조명하는 보기 드문 기회였다. 해방기 우리 민족이 처한 현실과 예술가의 사명을 붓으로 끌어안았던 그는 월북화가라는 낙인이 찍혀 1988년 해금 조치가 취해지기 전까지 역사의 그늘에 묻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이번 전시에는 이쾌대의 대표작 유화 60여 점과 드로잉 350점, 아카이브를 망라해 그의 진면목을 가늠할 수 있었다. 1913년 경북 칠곡에서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난 이쾌대는 일제 강점기, 해방기, 한국전쟁기를 거치면서 민족의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푸른 두루마기를 입고 모자를 쓴 <자화상>(1949)은 자의식 강한 민족주의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카이브 자료들은 대부분 처음 공개되는 것들로 그의 탐구 정신과 예술적 성취과정을 볼 수 있었다. 특히 포로수용소에서 동료 화가에게 그림 수업을 해주며 만든 인체 데생 교본은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고난을 겪은 천재 화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짠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시민과 함께하는 광복 70년 위대한 흐름, ‘소란스러운, 뜨거운, 넘치는’> (7.28~10.11)이라는 전시도 열렸다. 이 전시는 광복을 완결된 역사적 사건이 아닌 70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 중인 사건으로 간주하고 해방 이후 현재까지의 한국 현대사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였다. 한국 현대미술의 다양한 흐름을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세대의 작가 110명이 참여한 전시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250여 점의 작품이 출품돼 광복 후 변화한 시대의 환경, 다양하고 불안정한 동시대의 역사를 담아냈다. 줄여서 ‘소.뜨.넘’이라 불린 희한한 제목처럼 넘치는 작품 때문에 산만하다는 평을 들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분단 70년 주제전: 북한 프로젝트> (7.21~9.27)가 열렸다. 미술관 측은 국내외 작가들의 북한에 대한 예술적 상상력과 외국인 컬렉터가 수집한 북한의 시각예술 작품을 한자리에서 보여준다고 했지만 주제가 흐트러지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이에 비해 아트선재센터가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 DMZ 접경 지역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진행한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2015>는 올해로 네 번째를 맞아 완성도 높은 전시를 선보였다. <동송세월同送歲月>이라는 제목으로 DMZ 남방한계선 약 10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강원도 철원군 동송에서 열린 전시로 미술가, 건축가, 시인, 문화기획자 등 49명의 작가가 장소적 정체성을 활용한 회화와 사진, 영상, 조각, 설치, 퍼포먼스, 글쓰기 등을 선보였다. 전쟁을 책으로만 접한 이들에게 분단의 의미가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보는 흥미로운 전시였다. 열흘간의 현장 전시에 이어 8월 29일부터 11월 29일까지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선보여 접근성의 한계를 극복했다.

개인의 역사로 기록된 100여 년의 시간

올해는 화가 전혁림(1915~2010)과 조각가 김종영(1915~ 1982)의 탄생 100년을 기념하는 전시도 열렸다. 전혁림 화백은 아흔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향 통영의 향토적 이미지를 오방색을 기조로 한 동양적 우주관으로 담아냈다. 그의 대작들을 소장하고 있는 경기도 용인의 이영미술관은 <백 년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통영 앞바다’ 등 색면 추상작품과 목기 등의 기물에 그린 전 화백의 작품 300여 점을 선보였다. 평창동 김종영미술관과 서울대학교 미술관, 창원의 경남도립미술관에서는 <우성 김종영 탄생 100주년 기념-불각의 아름다움>을 열어 최소한의 표현으로 자연을 닮은 추상 조각을 구현했던 작가의 예술세계를 소개했다. 학고재 갤러리에서는 기교를 드러내지 않았던 공통점에 초점을 맞춰 <추사 김정희와 우성 김종영: 불계공졸과 불각의 시공>을 마련하기도 했다.

다시, 돌아본 주제들

단색화가 국내외적으로 주목받으면서 국내의 메이저 갤러리들은 그동안 저평가되거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고 단색화 작가에 대한 재조명 작업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었다. 윤형근(PKM갤러리), 이동엽(학고재 갤러리), 권영우(국제갤러리) 개인전이 잇따라 열렸다.

 

예술계에서 자취를 감췄던 ‘페미니즘’이라는 화두가 다시 등장한 것도 올해 전시 현장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동아시아 페미니즘: 판타시아>(9.15~11.8)가, 코리아나미술관에서 <댄싱마마>(10.8~12.5)가 연이어 열려 페미니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댄싱마마>는 현대무용가 안은미의 작품으로 전국에서 만난 할머니들의 즉흥적인 몸짓을 무용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두 전시는 여성 작가들에게 중요한 표현 도구이자 소재인 ‘몸’을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면서 남성 중심의 담론 하에서 여성의 정체성 부재와 억압, 섹슈얼리티에 대한 다층적 관점을 보여줬다.

 

개인전으로는 한국 현대 미술가들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지평을 확장하기 위해 매년 열리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2015>과 <현대차 시리즈 2015: 안규철-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가 지속적인 관심을 끌었다. 김기라, 나현, 오인환, 하태범 등 네 명의 작가가 참여해 작가별로 나뉜 전시 공간에서 최근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에서 <사각지대 찾기>라는 제목으로 지배문화가 허용하지 않는 문화적 사각지대를 빗대어 보여준 오인환 작가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안규철은 삶과 예술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동시대 미술의 대안전 가능성을 일관되게 추구해온 작가다. 현대차의 후원으로 풍족해진 제작비로 작가는 넘쳐나는 이미지와 메시지 속에서도 부재하는 것들의 빈자리에 대한 의미를 짚어보고 잃어버린 것들을 향한 여정이 될 수 있는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현대미술의 영역이 확장되는 추세를 반영하듯 건축전도 꾸준히 열렸다. 금호미술관의 <OUT OF THE BOX: 재료의 건축, 건축의 재료>(9.13~12.13)는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건축가 여섯 팀이 각자 다른 건축 재료를 사용해 자신들의 건축 철학을 보여준다. 대나무와 천, 스틸, 비닐, 종이, 유리벽돌을 사용해 실제 건축에서 시도하기 힘든 아이디어를 펼쳐 보인 신선한 기회였다. 작품들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아키토피아의 실험>(6.30~2016.1.3)이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건축의 사회적 실험들을 소개했다. ‘아키토피아’란 건축Architecture과 유토피아Utopia를 합성한 단어로, 전시에서는 세운상가, 파주 출판도시와 헤이리 아트밸리, 아파트 단지 등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아키토피아의 욕망이 투사된 장소들을 재탐색했다.

 

고미술 관련 전시로는 삼성미술관 리움의 <세밀가귀細密可貴-한국미술의 품격>과 간송미술관의 DDP전이 화제를 모았다. <세밀가귀>전은 한국미술의 세밀함과 정교함을 화두로 고대 가야부터 조선 시대까지 국보 21점과 보물 26점 등 모두 140여 점을 엄선해 선보인 전시로 전 세계에 흩어진 대한민국 대표 국보와 보물을 총망라해 보여줬다. 기원전 5세기 청동거울부터 19세기 청화백자까지 2,300여 년에 걸친 고미술 문화재를 망라했으며 특히 세계에 17점밖에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희귀한 고려 나전 8점과 백제의 금동대향로를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였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 시대를 마무리하고 지난해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의 개관과 함께 시작한 간송미술문화재단의 릴레이 기획전시가 계속됐다. 내년 3월 26일까지 계속되는 다섯 번째 전시는 <화훼영모-자연을 품다>라는 제목으로 꽃과 풀, 짐승 등에 그린 이의 마음과 가치관, 철학을 담은 그림들을 소개하고 있다. 간송미술관에 서너 시간씩 줄을 서 기다려야 했던 불편함은 없어졌지만 현대적 공간에 설치된 밋밋한 전시장의 특성상 전통의 품격을 느낄 수 없어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이 많다.

관람객의 마음을 다독여준 블록버스터 전시

다양한 주제와 의미로 성황을 이룬 전

마크 로스코 '채플'

블록버스터 전시 중에서 단연 돋보인 것은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마크 로스코>(3.23~6.28)다. 말년의 스티브 잡스가 ‘복잡한 사고의 단순한 표현’이라며 극찬했다는 마크 로스코 특유의 색면 추상화들을 오리지널로 직접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다. 워싱턴내셔널갤러리가 소장한 로스코의 작품 50점이 해외에 반출된 것은 처음이었다. ‘위로와 치유를 위한 프로젝트’라는 구호를 내건 전시에서는 특히 미국 휴스턴에 있는 마크 로스코 채플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시장에 옮겨 ‘영혼의 휴식을 주는 예술세계’를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작품 자체의 감동과 함께 셀러브리티를 동원한 전시 해설 등 마케팅 측면에서 돋보였던 이 전시는 문화계 파워 인물들이 뽑은 올해의 미술 전시 중 1위에 올랐다.

다양한 주제와 의미로 성황을 이룬 전

'페르난도 보테로'

<마크 로스코>에 이어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페르난도 보테로>(7.10~10.4)도 예술 애호가들의 발길을 모았다. 풍만한 형태, 인체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콜롬비아 출신의 살아 있는 거장 보테로의 작품은 지난 2009년 첫 전시 때 20만 명의 관람객 수를 기록했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 이번 전시는 그가 작가로서 주목받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에 제작한 작품부터 유럽과 뉴욕을 거쳐 라틴미술의 거장으로 불리기까지 비교적 최근의 작품을 망라해 거장의 예술세계를 주제별로 비교 감상할 수 있었다.

 

대림미술관에서 열린 비틀스 멤버인 폴 매카트니의 부인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록>은 사진전으로서는 역대 최고인 20만 관람객을 넘어서며 흥행에도 성공했다는 평을 들었다. 이어서 올해 연말까지 열리는 <헨릭 빕스코브-패션과 예술, 경계를 허무는 아티스트>전도 멀티 크리에이터의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사고의 지평을 열어주는 신선한 전시로 화제 몰이를 하고 있다.

 

글 함혜리 (서울신문 문화부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미술관의 탄생」 저자)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5년 12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