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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리카르도 무티 & 시카고 심포니

‘밀리언 달러 마에스트로’ 무티가 온다. 시카고 심포니를 이끌고!

by예술의전당

1.28(목), 1.29(금) 오후 8시 콘서트홀 

‘밀리언 달러 마에스트로’ 무티가 온

리카르도 무티 RICCARDO MUTI

시카고 심포니는 미국의 여타 오케스트라보다 유독 거물급 음악감독이 많다. 라파엘 쿠벨릭, 프리츠 라이너, 장 마르티농, 게오르그 솔티, 다니엘 바렌보임 그리고 리카르도 무티로 이어지는 계보는 화려하기 그지없다. 수석 객원지휘자로 활동한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와 클라우디오 아바도, 그리고 행정 업무의 과중함에 부담을 느껴 수석지휘자의 직함으로 활동한 베르나르트 하이팅크까지 포함한다면, 그들의 존재 자체가 20세기와 이 시대 지휘자들의 당당한 역사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시카고 심포니의 수장을 맡고 있는 리카르도 무티는 근래 미국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의 연봉 순위 1, 2위를 달리고 있다. 미국 「LA 타임스」가 2011년 기준으로 미국 악단의 지휘자 연봉 상위권을 꼽은 결과 무티가 217만 달러로 1위를 기록했다. 오케스트라 컨설턴트 드류 맥머너스가 2012/13년 시즌을 기준으로 정리한 자료에 의하면 250만 달러의 연봉으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그는 2011년 상금이 100만 달러에 달하는 비르기트 닐슨 상Birgit Nilsson Prize을 받기도 했다.

 

2013년 시카고 심포니는 처음으로 내한공연을 가진 바 있으나 무티와 함께하지는 못했다. 무티가 악성 독감에 걸려 부득이하게 지휘자가 로린 마젤로 교체되었고 곡목 또한 변경되어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이번에는 명품 악단을 구동시키는 ‘밀리언 달러 마에스트로’ 무티와 함께 오게되어 그 기대가 크다. 뭐니 뭐니 해도 오케스트라의 해외 순회공연은 상임지휘자 혹은 음악감독과 함께해야 제대로가 아니던가. 어쩌면 이번 공연이 시카고 심포니의 ‘진정한’ 첫 내한공연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최고의 지휘자에 욕심을 내는 시카고

시카고 심포니가 지닌 예술적 자부심의 근원을 알려면 무티가 음악감독을 맡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창설자는 뉴욕 필하모닉의 지휘봉을 잡기도 했던 지휘자 시어도어 토머스로 알려져 있다. 1880년대 말 그는 사업가 친구를 만나 시카고의 오케스트라 지휘자직을 제안받았다. 비록 교향악단의 첫 항해가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토머스는 많은 성과를 이룩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전용 홀의 건립이다. 2,522석의 오케스트라 홀은 1904년 12월 14일에 개관하여 오늘날까지 악단의 둥지가되고 있다.

 

현재 오케스트라 홀을 포함하는 시카고 심포니 센터는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되어 있다. 큐빅 스타일에 피아노 건반을 연상하게 하는 격자 장식이 추가되어 있으며 무엇보다도 르네상스식의 2층이 가장 두드러진다. 건물 파사드 2층은 세 개의 아치형 창문이 연속으로 나있고 작은 박공pediment이 달린 신고전주의 창문이 양옆 끝에 배치되어 대칭 구조를 형성한다. 가장자리의 창문 위에는 창립자의 이름을 딴 ‘시어도어 토머스 오케스트라홀’이라 적힌 현판이 있고 그 위에 더 크게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바그너 등 다섯 명의 작곡가 이름이 마치 ‘5대 천왕’처럼 새겨져 있다. 내부는 심포니 홀이라기보다는 오페라 극장과 더욱 비슷하다. 무대가 아치 지붕을 경계로 객석과 분할되어 깊게 들어가 있고, 2층 객석에는 후원자들이 앉기 좋은 극장식 발코니가 있다. 이 오묘한 절충식 건물은 가장 미국적인 오케스트라라는 평가를 받는 시카고 심포니 또한 유럽의 오랜 전통에 뿌리박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입증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토머스의 후임자로 프리데릭 스톡이 37년이나 악단의 수장을 지킨 이후 음악감독은 자주 교체되었다. 벨기에 출신의 지휘자 데지레 데파우는 4년, 아르투르 로진스키는 1년, 라파엘 쿠벨릭은 3년밖에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그 사이 시카고 심포니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에게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는데, 최고의 지휘자를 교섭하려는 그들의 노력은 이미 이때부터 시작된 듯 보인다. 푸르트벵글러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자를 넘어서 거의 신이나 성인으로 추앙받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의 나치 전력 문제로 논란이 커져만 갔고, 결국 객원지휘조차 허용되지 못하는 불운한 결과를 초래했다.

 

쿠벨릭의 후임자는 토스카니니, 조지 셀과 함께 독재형 마에스트로 삼인방으로 거론되는 프리츠 라이너였다. 라이너는 시카고에서 ‘해고 대마왕’으로 악명을 떨쳐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물론 악단의 연주력과 명성 또한 탁월하게 높아졌기 때문에 9년 동안 음악감독의 자리를 지켰다. 건강상의 문제만 아니었더라도 그는 더 오랫동안 시카고에 머무를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RCA의 리빙스테레오 시리즈로 출반된 음반들, 예를 들어 R.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영웅의 생애」는 베스트셀러 자리에서 내려올 줄 몰랐다.

 

라이너 이후 악단은 다시 방황의 수렁에 빠진 듯했다. 장 마르티농은 라이너를 대신하기에는 다소 힘에 부치는 느낌이었고 경영진과 언론의 비판을 감당할 수 없었다. 오케스트라의 매니저와 의장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영입하려 부단히 노력했으나 결국 게오르그 솔티가 악단의 수장을 맡게 된다. 솔티와 시카고 심포니의 관계는 카라얀과 베를린 필, 조지 셀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처럼 일종의 ‘일심동체’가 되었다. 솔티가 시카고 심포니와 함께 데카Decca에 남긴 음반의 양은 실로 방대하며 그중 말러 교향곡 8번 녹음은 지금도 그 왕좌를 지키고 있다. 악단의 명성은 높아져만 갔고 미국 내에 가히 적수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솔티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기악으로 노래를 구현하는 칸타빌레에 있어서는 큰 정성을 쏟지 않았는데, 그런 점에서 그는 객원지휘자 줄리니와 완전히 대척점에 있었다. 빠른 반응과 정확성에 집착한 나머지, 음악을 군대식 ‘차렷’ 자세화 했다는 불평도 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짱짱한’ 금관을 내세워 개성적인 사운드를 구축한 솔티의 공은 폄하할 수 없다. 시카고 심포니에서 총 53년 동안이나 수석 트럼펫 자리를 지켜 전설이 된 아돌프 허세스의 명성 또한 이때 최고 전성기를 구가했다.

 

시카고의 경영진은 솔티 이후 바렌보임을 음악감독으로 데려왔다. 그는 젊은 시절 시카고 심포니와 함께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을 녹음하여 독일-오스트리아 음악에 대한 출중한 능력을 입증한 바 있다. 파리 오케스트라를 성공적으로 이끈 능력을 솔티가 높이 평가한 점도 크게 작용했다. 안타깝게도 바렌보임의 시카고 시절은 전임자의 시대만큼 빛나 보이지 않았다. 물론 브람스 교향곡 전집 녹음에서 솔티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현의 표현력을 강화하고 푸르트벵글러가 작곡한 교향곡 2번이라는 희귀 레퍼토리를 녹음한 공로는 인정해야 한다. 76세라는 고령에도 아돌프 허세스가 바렌보임의 바통 아래 말러 교향곡 5번의 도입 팡파르를 힘차게 취주한 영상물도 나름 수준급의 연주를 들려준다. 그러나 그의 노력이 늘 청중의 환호를 이끈 것은 아니었다. 예술적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유럽 악단의 시스템을 동경한 바렌보임은 결국 2006년을 기점으로 악단을 떠났다.

이탈리아적인, 너무나 이탈리아적인

‘밀리언 달러 마에스트로’ 무티가 온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CHICAGO SYMPHONY ORCHESTRA

바렌보임 이후 하이팅크가 수석지휘자로 4년간 활동했고, 2010년부터는 무티가 정식 음악감독으로 부임하게 된다. 늘 박력 있는 비팅으로 멋진 폼을 구사하는 이탈리안 마초 지휘자는 2020년까지 음악감독직을 수행하는 계약에 서명했다. 무티가 1941년생이니 2020년이면 거의 여든의 나이가 되는 것이다. 그의 나이를 감안할 때 이번 내한공연은 무티와 시카고 심포니의 조합을 관찰할 최적의 시기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2016년은 시카고 심포니가 첫 음악회를 연 지 125주년을 맞는 해로 그들 스스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해이다.

 

무티는 오늘날 민주적인 지휘자들 가운데 유독 과거의 향수를 많이 자극한다. 지휘봉을 칼처럼 휘두르는 이른바 전쟁 사령관 스타일의 마에스트로다. 절도 있는 비팅을 통해 음의 시작과 끝을 위압적으로 컨트롤한다. 그가 지휘하듯 극장을 쥐락펴락하려 했는지는 몰라도 라 스칼라 오페라에서 오케스트라와 극장 측과의 불화로 사임한 전력도 있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적당히 아교로 이어 붙이는 식의 타협보다는 차라리 적을 만드는 것이 직성에 풀릴지도 모른다. 또한 그는 가장 이탈리아적인 감성을 소유한 지휘자이기도 하다. 나폴리 태생에서 비롯된 음악적 감성은 오페라에 생기를 북돋우며, 토스카니니에게서 세례를 받은 듯한 당당한 리듬은 좀처럼 늘어지지 않는다. 고급스러운 연미복으로 유명한 무티의 무대 의상은 이탈리안 멋쟁이의 품격을 보여준다.

 

이번 공연은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이 으레 그렇듯 협주곡이 일절 없다. 첫날은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과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이라는 육중한 교향악 두 곡으로 꽉 채워진다. “프로그램만 보아도 배부르다”는 표현을 이런 때 쓸 수 있다. 이튿날은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1번 ‘고전’, 힌데미트의 ‘현과 관을 위한 협주음악’,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의 다채로운 구성이다. ‘고전’은 무티가 시카고 심포니의 다른 공연에서도 첫 곡으로 선택할 만큼 자신이 장기로 삼는 곡이다. 힌데미트의 작품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유형의 쇼피스showpiece이며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은 박력과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작품이다. 이번 공연을 통해 시카고가 왜 그토록 ‘비싼 지휘자’를 음악감독으로 데려왔는지 현장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글 김문경 (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빈체로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6년 1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