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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영혼을 울리는 별들의 전쟁

by예술의전당

가을의 끝자락인 11월은 유독 해외 오케스트라의 내한이 많은 달이기도 하다. 90년대만 하더라도 유럽 오케스트라들의 아시아 투어 일정에서 한국이 제외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문화 관련 칼럼이나 기사에는 일본의 넘쳐나는 해외 오케스트라 공연들을 부러워하는 대목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때와 비교해보면 요즘 한국은 다채로운 공연들로 풍성하다. 그중 11월이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이름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연이어 있기 때문이다. 산타체칠리아오케스트라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수장인 안토니오 파파노와 마리스 얀손스. 이름만으로 전석 매진을 기록시키는 스타 피아니스트 조성진, 다닐 트리포노프, 예프게니 키신의 협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강력한 연주, 산타체칠리아오케스트라

영혼을 울리는 별들의 전쟁

Antonio Pappano © Musacchio Ianniello

산타체칠리아오케스트라는 정명훈 지휘자가 음악감독을 맡았던 곳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정명훈 지휘자와 함께 두 차례의 내한을 가진 바 있는데, 2005년부터 13년 동안 음악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는 안토니오 파파노와 함께 내한하는 것은 처음이다. 파파노는 한국 클래식 팬들에게는 첼리스트 장한나의 협주곡 음반을 함께 작업한 지휘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활동은 그간 한국에 잘 전해지지 않았다. 연간 200회에 달하는 산타체칠리아오케스트라의 공연이 거의 유럽에 집중되어 있는데다 파파노의 객원 활동도 유럽과 미국으로 쏠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내한공연을 통해 우리는 안토니오 파파노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그동안 파파노가 산타체칠리아오케스트라와 함께 이루어온 업적은 상상 이상의 괄목할 만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베를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전 상임지휘자였던 클라우디오 아바도(1933~2014)는 자신의 고향 이탈리아의 오케스트라들이 무너져가고 있다고 한탄했었다. 한때 유럽 음악계의 중심이었던 이탈리아의 오케스트라들은, 20세기에 오페라 반주로서의 기능에 치우친 나머지 관현악적인 연주력과 호흡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아바도조차도 인정했던 오케스트라가 바로 산타체칠리아오케스트라였다. 올해로 110주년이 된 산타체칠리아오케스트라는 교향곡 연주에 혼신을 다하는 오케스트라이기도 하다. 레스피기의 ‘로마의 분수’와 ‘로마의 소나무’를 초연한 악단으로, 그들과 함께한 지휘자들의 면면만 봐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말러, 드뷔시, 생상스, 스트라빈스키, 시벨리우스, 힌데미트, 토스카니니, 푸르트벵글러, 카라얀, 무티, 게르기예프, 틸레만까지 그 이름은 셀 수 없을 정도다. 영국의 저명 음악지인 「클래식 FM 매거진」은 세계 10대 오케스트라에 산타체칠리아오케스트라를 선정하기도 했다.

 

‘그라모폰 올해의 아티스트상’, ‘로열 필하모닉 소사이어티 뮤직 어워드’, ‘브루노 발터상’ 등 수많은 상과 함께 대영제국의 기사 작위까지 수여받은 안토니오 파파노는 이미 뛰어났던 산타체칠리아오케스트라의 역량을 한껏 끌어올린 지휘자로도 평가받고 있다. 오페라 지휘에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지만 그 스스로도 본인은 오페라보다 관현악곡에 관심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산타체칠리아오케스트라와의 거대한 시너지 효과를 쉽게 가늠해볼 수 있다. 이번 내한에서 그들이 보여줄 베토벤 교향곡 2번과 5번,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은 이탈리아 어느 오케스트라하고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가장 강력한 연주가 되지 않을까 한다.

마리스 얀손스, 탁월한 선곡과 포용력

영혼을 울리는 별들의 전쟁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 © Musacchio Ianniello

마에스트로 마리스 얀손스는 2003년부터 긴 시간 동안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이하 BRSO)과 함께 호흡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음악적 성과를 탁월하게 이루어왔다.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준 얀손스에 대한 BRSO의 무한 신뢰는 최근 2023/2024 시즌까지 계약을 연장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매 연주마다 세기에 남을 예술적 업적을 이루어내는 얀손스의 능력은 그가 스승으로 모셨던 거장들의 면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43년에 라트비아에서 지휘자 아르비드 얀손스의 아들로 태어난 마리스 얀손스는 유럽 각지에서 서로 다른 스타일의 대가들에게 배움을 얻었다. 레닌그라드 음악원에 입학하여 지휘와 피아노를 배운 얀손스는 러시아의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1969년에는 서유럽으로 넘어가 한스 스바로프스키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게 지휘를 배웠다. 당대 최고의 교육자였던 스바로프스키를 통해 체계적인 기초를 쌓았고, 카라얀에게서는 실재적인 리허설 테크닉을 쌓았다. 그 후 레닌그라드로 다시 돌아가 당시 상임지휘자였던 예프게니 므라빈스키의 조수로 일하며 정신을 음악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에 대한 집요함과 열정을 배웠다. 그렇게 여러 거장들에게서 얻은 다양한 경험은 그로 하여금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포용력을 갖춘 지휘자로 성장하게 하였다.

영혼을 울리는 별들의 전쟁

Mariss Jansons © Meisel(BR)

마리스 얀손스와 BRSO는 2년에 한 번씩은 꼭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그리고 매번 감탄이 나오는 프로그램 선정은 이틀에 걸친 공연 중 어떤 공연을 선택할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한다. 첫째 날인 11월 29일(목)에는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7번과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통해 관현악의 진수를 보여준다. 얀손스는 러시아에서 공부한 만큼 동유럽 음악에 대한 이해가 높고 매번 놀라운 연주를 선사한다. 둘째 날인 11월 30일(금)에는 2016년 내한 때 연주했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에 이어 같은 작곡가의 ‘영웅의 생애’를 연주한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독일 뮌헨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뮌헨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BRSO에게 의미가 깊은 작곡가이다. 매 내한 때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음악을 선택하는 건 BRSO만의 강점을 보여주겠다는 강력한 의지라고도 볼 수 있다.

키신, 트리포노프, 조성진 -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별들의 전쟁

영혼을 울리는 별들의 전쟁

예프게니 키신 © Broede EMI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만큼이나 기대를 모으는 것이 있다면, 바로 협연자들일 것이다. 전석 매진을 몰고 다니는 최고의 피아니스트 세 명이 같은 시기에 몰려 있다는 건 우리에게 너무나 큰 행운이다. 천재 피아니스트에서 거장의 반열에 오른 예프게니 키신은 BRSO와 함께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할 예정이다. 이미 리스트를 수없이 협연했겠지만 키신에게 리스트는 특별한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화려한 테크닉과 감각적인 연주를 통해 키신의 리스트는 늘 호평을 받아왔다. 젊은 시절의 리스트 연주와 비교해 어떻게 달라졌을지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영혼을 울리는 별들의 전쟁

다닐 심킨 © Dario Acosta

영혼을 울리는 별들의 전쟁

조성진 © Harald Hoffman

산타체칠리아오케스트라는 이틀에 걸친 공연에서 두 명의 피아니스트와 함께한다. 제14회 차이콥스키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며 세계에서 가장 바쁜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할 예정이다. 러시아인의 기질을 그대로 보여주는 폭발적인 감정과 서정성은 트리포노프의 라흐마니노프를 기대하게 만든다. 2015년 쇼팽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하며 한국 최고의 클래식 스타로 활동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한다. 균형감과 탄탄함을 무기로 내실 있는 연주를 해온 조성진에게 베토벤은 단단한 보석과도 같은 존재다. 이번 연주를 통해 강하게 반짝일 그의 연주를 기대해본다.

 

독일의 대표적인 철학자 헤겔은 음은 표현이고 외관이며, 외관은 즉시 사라진다고 했다. 귀로 포착되는 순간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시작된 인상은 내면화되고 영혼을 울린다. 위대한 음악가라는 타이틀은 그런 과정을 유연하고 성공적으로 전달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칭호가 아닐까 한다. 너무나 완벽하게 위대한 업적을 실현하고 있는 음악가들의 향연이 11월에 집중되어 있다. 당신의 시간을 기꺼이 투자해보아도 좋지 않을까.

 

글 안두현 지휘자, 음악해설가, ‘클래식에 미치다’ 운영자

사진 크레디아, 빈체로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8년 11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