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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

시간을 넘어 살아 숨 쉬는
셰익스피어

by예술의전당

시간을 넘어 살아 숨 쉬는 셰익스피어

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최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매주 수요일에 있는 ‘총리의 질의응답Prime Minister’s Questions’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명들을 인용하여 답변한 것이 화제가 됐다. 그는 ‘헛소동Muchado about nothing’,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 ‘헛수고Love’s Labour’s Lost’, ‘실수 연발The Comedy of Errors’등을 빌어 야당인 노동당의 그림자 내각 개편에 대해 빈정댔다. 셰익스피어의 나라에서 이처럼 그를 인용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이는 문화강국으로서의 영국을 세계에 각인시킨 런던 올림픽개막식의 주제를 <템페스트>에서 빌려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부지불식간에 셰익스피어의 표현을 접하게 되는 일도 흔하다. 런던을 방문한 관광객들은 누구나 교통카드인 ‘오이스터 카드’를 구입할 것이다. 하지만 이 오이스터(굴)라는 독특한 이름이 셰익스피어의 희극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에 나오는 문구 ‘The world is your oyster’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와 동시대를 산 극작가 벤 존슨은 그를 “한 시대에 그치지 않는, 시대를 초월한 작가”라 칭송했다. 이것이 단지 수사학적 표현이 아니었음을 400년에 걸친 시간이 증명해주고 있는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시대뿐 아니라 공간을 초월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들은 1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고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그는 낯설지 않다. <햄릿>을 무대 위에서 보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햄릿이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며 고뇌한 것을 알고 있다. 맥락까지는 모르지만 그가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라고 한탄한 사실도 알고 있다. 혹은 영화 <스타트렉 6: 미지의 세계Star Trek VI: The Undiscovered Country>에서 셰익스피어가 자기 별 출신이라고 주장하던 외계족, 클링온 족에 의해 ‘미지의 세계’가 햄릿의 이 유명한 독백 중에 나오는 대사라는 것을 얼핏 들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나치 정권 때 독일에서는 셰익스피어가 영국인보다는 독일인에 가깝다는 주장이 있었다.) 올리비아 핫세의 줄리엣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로미오를 만났을 수도, 무한도전을 통해 <한여름 밤의 꿈>을 접했을 수도 있다.

시간을 넘어 살아 숨 쉬는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 생가

두려워하지 마라, 이 섬이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할지라도

이렇듯 세상에 가장 널리 알려진 작가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작가에 대해 우리가 아는 바는 많지 않다. 셰익스피어는 1564년 런던에서 16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 부유한 장갑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셰익스피어가 태어나고 오래지 않아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는 것을 미루어볼 때, 그는 당시 관습대로 십대 중반쯤 교육을 중단했을 것이다. 열여덟 살의 그는 혼전임신을 한 스물여섯 살의 앤 해서웨이와 결혼하고 곧 세 아이의 아빠가 된다. 이후 그의 행방이 묘연하다. 학자들이 ‘잃어버린 시간The Lost Years’이라고 일컫는 7년 동안, 셰익스피어는 가족을 뒤로하고 고향을 떠났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셰익스피어의 자취를 찾았을 때 그는 이미 이십대 후반의 성공한 배우이자 극작가로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대학 교육의 혜택을 받은 이들이 극작가로 활동하던 이 시대, 셰익스피어가 어떤 방식을 통해 자신의 희곡에 드러난 방대한 지식과 외국어를 익혔는지에 대해 알 길이 전혀 없다. 그의 실재에 대한 다양한 음모론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간을 넘어 살아 숨 쉬는 셰익스피어

1708년 너새니얼 커즌 경이 그린 셰익스피어의 부인 앤 헤서웨이

이 미스터리한 인물의 작품 중 서른여덟 편의 희곡, 두 편의 장시, 154편의 소네트가 오늘날까지 살아남았고, 이들은 모든 형태의 문화예술에 전방위적인 영향을 끼쳐왔다. 셰익스피어의 서거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구성된 컨소시엄, ‘셰익스피어 400 (http://www.shakespeare400.org/)’에 연극 단체인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뿐 아니라 대영도서관, 로열 오페라 하우스,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영국 영화협회 등 모든 주요 문화기관들이 참여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템페스트> 중 칼리번의 대사 ‘두려워하지 마라, 이 섬이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할지라도’처럼 올해 영국에서는 1년 내내 다양한 장르와 형태의 공연과 행사들, 즉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할 예정이다.

 

400주년 축하의 중심에는 무엇보다도 글로브 극장과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가 서 있다. 글로브 극장은 먼저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이던 2014년에 시작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마무리 짓는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에서 <햄릿>을 공연하겠다는 야심 찬 프로젝트 ‘글로브 투 글로브: 햄릿Globe to Globe: Hamlet’이 바로 그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생일이자 기일인 4월 23일, 202개의 국가에서 공연을 마치고 런던 글로브 극장에서 마지막 공연을 올린다.

 

또한 현존하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서른일곱 개를 각각 작품의 실제 배경이 되는 장소에서 10분 안팎의 영화로 만든다. <햄릿>은 덴마크의 엘시노어에서,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는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촬영하는 식이다. 이 단편영화들은 템스 강변을 따라 설치될 37개의 스크린에서 이틀 동안 상영된다. 나아가 ‘READ not DEAD’란 기획을 통해 무대에서 접하기 힘든 셰익스피어의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에 생명을 부여한다. 공연 당일 아침에 배우들에게 대본을 주고, 그들은 당일 오후 대본을 참고하며 관객들 앞에서 공연하는 방식이다.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SC는 ‘Dream2016’이라는 타이틀 아래 좀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한다. 열여덟 명의 전문 배우들과 극장 스태프가 <한여름 밤의 꿈>으로 영국 전역을 투어하는데, 열네 개의 아마추어 극단들과 총 580명의 아이들이 지역마다 조연으로 합류하게 된다. 모든 아마추어 극단들은 투어가 끝나는 6월,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의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에서 공연하게 된다.

시간을 넘어 살아 숨 쉬는 셰익스피어

‘글로브 투 글로브:햄릿’ 프로젝트

시간을 넘어 살아 숨 쉬는 셰익스피어

런던 글로브 극장

시간을 넘어 살아 숨 쉬는 셰익스피어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의 시계탑

무대 위에서 되살아날 셰익스피어

연극계만큼 이 축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기관은 음악계다. 운율과 박자, 어세語勢 등을 통해 언어의 음악성을 자유자재로 다뤘던 셰익스피어만큼 많은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준 작가도 없는데, 그의 작품에 기반을 둔 오페라만 해도 거의 400개에 달한다. 여기에 발레음악, 부수 음악(연극에 붙여진 음악), 교향시, 서곡 등 장르를 넓히면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다.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쇼스타코비치의 영화음악 ‘햄릿’, 드보르자크의 <오텔로> 서곡, 시벨리우스의 ‘템페스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맥베스’ 등 셰익스피어에 영감을 받은 음악들로 이뤄진 공연을 2016년 상반기 내내 연주할 계획이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역시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부터 베를리오즈의 <로미오와 줄리엣> 등 다양한 공연을 기획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드라마 <다운튼 애비>의 작가 줄리언 펠로스는 셰익스피어를 이해하려면 비싼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가 빈축을 샀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오늘날 셰익스피어는 이처럼 어렵고 지루하며, 엘리트만이 이해할 수 있다는 오해와 편견에 쌓여 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 시대 연극은 가장 대중적인 오락이었으며, 셰익스피어는 어디까지나 대중을 대상으로, 대중을 위한 연극을 만들었다. 그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직접 무대 위에서 배우의 입을 통해 그의 말을 들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만나기에 올해보다 적절한 때는 없어 보인다.

 

*예술의전당은 올해 11월 <페리클레스>와 <햄릿>을 뮤지컬화한 <라 비다>를 선보인다.

 

글 황정원 (영국 통신원)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6년 2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