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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한국 대표 공연장의 마티네, 그리고 마티네의 미래

by예술의전당

한국 대표 공연장의 마티네, 그리고

프랑스어 ‘마티네(matinée)’는 ‘아침-오전’을 뜻하는 ‘마탱(matin)’에서 기원했다. 서구 공연계에서는 주간이나 정오가 지난 시간에 열리는 음악이나 연극, 무용 공연을 의미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저녁 메인 공연과 대비되는 ‘아침이나 낮에 행해지는 공연’을 포괄해 마티네로 통칭한다. 프랑스에서는 저녁에 열리는 캐주얼한 회합이나 이벤트를 의미하는 ‘수아레(Soiree)’를 공연명으로 확장하기도 한다.

 

마티네가 공연으로 번성하기 시작한 곳은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이하 메트)다. 1931년 토요일 마티네가 개시됐고, 1950년대부터 NBC 방송국이 전국 라디오 송출로 라이브 실황을 중계하면서, 주중 야간 시간이 아니더라도 최고급 공연을 미국민 모두가 누릴 수 있었다. 세트가 이미 갖춰진 오페라와 발레 전막 구조에서는 가수진이나 주·조역 무용수만 바뀌면 1일 2회 공연이 무대 노동자들의 협조하에 얼마든지 가능하다. 메트가 2018-2019시즌에 들어가면서 노사가 합의한 최대 쟁점이 일요일 마티네의 신규 론칭과 월요일 저녁 공연 폐지다. 장시간 관람이 요구되는 오페라에서는 월요일 저녁보다 일요일 아침에 얻는 극장 수입이 더 크고, 그 과실을 나누자는 피터 갤브 메트 행정감독의 판단을 예술인조합과 무대노동자 노조가 존중했다.

 

프로덕션과 레퍼토리 시스템으로 공연물을 연중 회전시키는 오페라하우스에서도 마티네는 효자 포맷이다. 런던 코벤트가든로열오페라는 영국 예술위원회의 후원을 받아 학교 마티네(Schools’ Matinees)를 운영 중이다. 이 제도를 통해 영국 전역에서 시즌 단위로 약 1만 명의 학생 관객이 오페라와 발레를 관람한다. 7.5파운드(한화 약 1만 8천 원)를 지불하면 학생은 누구나 코벤트가든의 최상위 좌석 등급에서부터 관람할 수 있고, 지방에서 런던까지 이동하는 비용은 국가가 부담한다. 영국 예술위원회는 마티네를 미래 관객 확장의 도구로 바라보고, 공연 단체는 향후 주역으로 성장할 신인을 기용하면서 단체 역량을 강화한다.

 

국내에서 마티네를 본격적으로 성업시킨 곳은 예술의전당이다. 김용배 전 예술의전당 사장은 재임 시절인 2004년 가을 <목요일의 브런치-11시 콘서트>를 신설해 연주에 작품 해설을 곁들인 격의없는 상품을 선보였다. 김 전 사장은 취임 업무 보고를 받은 직후,오전 시간대에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 비는 것에 주목했다. 직원의 협조가 이어진다면 예술의전당 인근의 주민 관객부터 공연장에 불러 모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11시 콘서트>가 성공하자 시장은 빠르게 반응했다. 공연을 기다리는 동안 로비에서 빵과 커피를 즐기고, 공연이 끝나면 지인들과 브런치를 즐기는 패턴이 당시 유행한 ‘웰빙’ 트렌드와 결부되면서 마티네는 전국으로 확산했다. 예술의전당에서 데뷔한 해설자와 출연자가 장소를 달리해서 지방 마티네에 서는 것이 일반화됐고, 해설자의 겹치기 출연도 있었다.

 

아침에는 잠이 덜 깨거나 발성에 문제가 있다는 예술가들도 생활 습관을 바꾸면서 일자리가 늘어났다. 국립창극단은 2011년부터 <정오의 판소리>를 기획 중이다. 명동예술극장은 한때 점심시간을 활용해 로비에서 낭독공연을 열었다. 장르를 불문하고 마티네는 관객 교육과 개발의 뜻을 쉽게 투영할 구조로 여겨진다. 다만 매일 클래스 시간으로 오전 루틴이 정해져 있고, 웜업부터 연습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발레는 ‘브런치 상품화’가 쉽지 않다.

 

영국에서는 대표적 공연 소외계층인 육아 여성을 위한 공연을 마티네에 접목한다. 런던의 대표 실내악 공간 위그모어홀은 기존의 <BBC 월요일 런치 타임 콘서트>, 일요일 오후 <가곡 시리즈> 이외에 한 살 미만 영아를 대상으로 하는 <포 크라잉 아웃 라우드(For Crying Out Loud)!>, 1~3세 또는 3~5세 유아에 특화된 <어린이 실내악 농장(Chamber Tots: On the Farm)>, 5세 이상 어린이를 위한 <도전 실내악(Chamber Challenge)> 등의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2018년 12월에 내한해 신영증권홀에서 <힐러리 한, 베이비 콘서트>를 연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이 제시한 육아 여성과 아동을 위한 대안적 공연도 결국 마티네 형태로 수렴될 것이다.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일본 공연계는 은퇴 이후 관객 세대를 세분화해서 여가를 보내는 장으로 마티네를 선용한다. 오르간이 갖춰진 도쿄 오페라시티나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홀은 정오를 전후해 무료로 <비주얼 오르간 콘서트>와 <1달러 콘서트>를 열어 경제 여건이 취약한 노년층을 공연장까지 끌어들인다. 버블 시대에 한창 인기를 끈 마리코 센주와 이쿠코 가와이처럼 어느덧 중년에 접어든 유명 연주자들과 이들을 성원하던 팬들이 함께 나이가 들어 마티네를 통해 자연스레 다시 만난다. 일본은 관객 세대를 억지로 뒤섞는 시도보다 노년층을 세분화해서 그에 맞는 조합으로 정규물과 마티네를 구획한다. 단순한 관객 개발을 넘어 마티네를 공연 소외 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의 도구로 폭넓게 인식할 때다.

공연장 별 마티네의 특징

한국 대표 공연장의 마티네, 그리고

'11시 콘서트' 해설자 김상진

예술의전당

 

예술의전당 마티네는 매월 둘째 목요일의 <11시 콘서트>와 매월 셋째 토요일(3~12월)의 <토요콘서트>로 병행 운영된다. <11시 콘서트>는 주중에 열리는 관계로 공연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거리의 여성관객이 주 타깃층이다. 비올리스트 김상진이 해설을 맡고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 등이 참여한다. 여자경·이병욱 등 국내에서 입지를 다진 중견들과 지중배·윤현진 등 해외에서 실력을 쌓은 인재들을 만나는 기회다. 매월 주제가 바뀌는 구성으로, 시리즈를 연간 구매하는 관객을 위한 할인 혜택은 없다. 2004년 시작한 아침 공연의 목표를 그대로 따른다.

 

2019년 예술의전당 <토요콘서트>는 10회 공연 중 8차례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 정치용이 지휘한다. KBS교향악단,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뿐 아니라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코리아쿱오케스트라로 악단이 바뀌어도 정치용이 책임을 맡아 완성도를 끌고 간다. 지휘자 최수열이 지난해 롯데콘서트홀 <고전두시>에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외에 KBS교향악단,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를 이끈 방식과 유사하다. <토요콘서트>의 예술적 성과에 따라 일요일 오후 2시 마티네 시간대를 정기연주회 시간으로 활용하는 일본 오케스트라의 운영 방식이 생활 패턴의 변화와 함께 국내에도 뿌리 내릴지, 기성 오케스트라 관객의 유입 추이를 지켜볼 만하다.

한국 대표 공연장의 마티네, 그리고

'L 토요 콘서트' 사회자 강석우

롯데콘서트홀

 

롯데콘서트홀은 과거 세분화했던 마티네 명칭을 올해는 <L 토요 콘서트>로 통일했고 매월 토요일 11시 30분부터 인터미션 없이 80분간 진행한다. 예술의전당과 비교해 롯데콘서트홀이 가진 지리적 이점은 지하철역(2·8호선) 출구에서 바로 연결되는 접근성이다. 1989년 개관한 시부야의 분카무라(文化村)가 도큐백화점과 지하철역에 직결된다는 장점을 주말 기획 공연의 관객 유입으로 극대화한 모델과 동일한 환경이다. 쇼핑 도중 오전·오후 사이의 여유를 <L 토요 콘서트>로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콘텐츠 구성에 그대로 녹아 있다. 장기의 말이 이동하듯이 회차가 거듭되면 다음 여정지로 이동하는 게임의 원리를 차용해 콘서트 주제를 <부루마불 클래식>으로 명명했다. 크레디아를 주관사로 박지민·한지호 등 소속 아티스트가 출연진에 대거 포함됐고, CBS 라디오 진행자 강석우가 사회자로 나선다.

한국 대표 공연장의 마티네, 그리고

'마티네 콘서트' 사회자 김석훈

성남아트센터

 

성남 구도심과 분당·용인·화성이 분리 개발되면서 성남아트센터 인근에도 개별 지역을 대표하는 공연장이 생겼지만, 성남아트센터의 마티네 기조는 꾸준하다. 올해 마티네도 <마티네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관현악과 작곡가 탐구를 이어간다. 과거 CBS 라디오를 진행한 배우 김석훈이 사회를 맡고, 차이콥스키를 주제로 2019년 3월부터 연말까지 다양한 악단과 연주단체가 시리즈에 참여한다. 김봄소리·서선영·양인모 등 이미 국내 기성 악단의 정기 연주회로 검증이 완료된 출연자들이 협연진을 이룬 게 특색이다. 서진·차웅 등 신진 지휘자가 이끄는 본격적인 관현악을 감상한다는 점에서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의 한 꼭지 못지않은 수준이 기대된다.

 

글 한정호 에투알클래식앤컨설팅 대표

사진 성남아트센터, 롯데콘서트홀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9년 2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