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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자화상으로 되돌아보는
근대미술 100년

by예술의전당

3·1독립운동·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서화미술특별전

<자화상 自畵像 - 나를 보다>展

3.1(금) - 4.21(일) 서울 서예 박물관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자화상 自畵像 - 나를 보다>전은 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전시다. 1910년 한일병탄 후 주권을 잃은 한국 국민은 일제강점의 굴레 속에서 치욕적인 삶을 살게 된다. 일제의 내선일체 요구에 따라 식민지 국민이 된 힘없는 백성들의 삶은 철저히 ‘황국신민화’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나라를 빼앗겼으니 조국의 말과 언어도 사용하지 못했고, 모든 일은 일제의 명령에 따라 이뤄져야 했다.

 

학교 교육 역시 일제에 의해 철저한 황국신민화의 일환으로 이뤄졌고, 모든 문화행사도 같은 맥락으로 이용됐다. 이러한 현상은 미술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 시대 미술의 전통은 끊어지고, 일본에 의해 수입된 서구 미술과 일본 미술의 영향을 받아야 했다. 모든 학교의 미술 교사는 일본인들로 채워졌고, 한국 화단의 많은 부분을 일본인 화가들이 차지했다.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일제의 무단통치가 문화통치로 변한 후에도 일제는 <조선미술전람회>를 창설해 한국 화단의 일본화 경향에 더욱 속도를 냈다.

<자화상 - 나를 보다> 전시의 의미

자화상으로 되돌아보는 근대미술 100

이번 <자화상 - 나를 보다>전은 일제강점기에서 해방공간에 이르는 시기에 한국에서 일어났던 미술 행위를 다각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으로 보여 주려는 행사다. 기본적으로 일제강점기에 창설된 서화협회나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한 미술 활동을 살펴보고, 일본 유학을 다녀온 화가들의 활동 모습을 추적한다. 또한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물들의 서화 작품과 일제에 협력한 친일 인사들의 작품을 비교하기도 한다. 한편으론 해방 이후 남과 북의 경계에서 사상적으로 고뇌하며 경계인으로 살아야 했던 불우한 미술가들의 작품도 드러내 당시 한국의 복잡한 시대 상황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애국지사와 친일 인사들의 유묵

자화상으로 되돌아보는 근대미술 100

이번 전시의 가장 큰 축은 독립을 위해 애쓴 애국지사들의 유묵을 중심으로 보여주면서 일제에 협력한 친일 인사들의 서화를 대비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3.1운동에 참여한 분들이나 임시정부에 관여한 인물들의 서화, 그리고 국내에서 소문 없이 독립운동에 관여한 인사들의 대표적 서화 작품이 많이 전시됐다. 또한 이들과 정반대 축인 일본제국주의의 선두에 섰던 일본 정치인들과 그에 부역한 친일파 인사들의 글씨도 많이 출품돼 마치 당시 역사적 현장을 보는 듯한 묘한 대조를 이룬다.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가장 보기 좋은 자리에 걸린 네 점의 글씨는 이번 전시의 성격을 대변하는 명장면이다. 왼편에는 안중근 의사의 글씨와 이준 열사의 글씨가 나란히 걸려 있다.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의 상징인 두 인물의 반듯한 글씨는 보는 이를 뭉클하게 한다. 특히 1910년 뤼순(旅順)감옥에서 쓴 안중근 의사의 상징적인 글씨,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느라 마음을 쓰고 속을 태운다 (國家安危 勞心焦思)’라는 문구는 진한 감동을 준다. 이 두 글씨 바로 옆에는 조선총독을 지낸 원흉 이토 히로부미의 글씨와 매국노 이완용의 글씨가 나란히 걸려 있다. 애국지사 두 분의 글씨가 힘 있는 필치로 반듯하게 쓰인 반면 총독과 매국노의 글씨는 기교로 가득 차 실제 인물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하다.

 

일제에 항거한 인물들의 서화로는 손병희·한용운·오세창·김구·신익희·조소앙 등의 글씨가 눈에 띄며, 이회영·한형석 등의 그림도 볼 만하다. 그중에 한용운 스님의 필적이 가장 인상적이다. 스님은 종이에 먹을 묻힌 손바닥을 찍어 그림처럼 만들어 놓았는데, 이 유묵은 안중근 의사의 손바닥 인장처럼 보는 이를 감동하게 하는 울림이 있다. 또한 6형제 모두가 독립운동가 집안으로 유명한 이회영의 난초 그림은 그의 성격처럼 굳은 기상을 품고 있다. 잎은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칼같이 강한 듯한 느낌이 든다. 이 밖에 손병희가 쓴 미친 듯이 활달한 초서는 그의 품성을 보여주는 듯하고, 김구 특유의 떨리는 ‘총알체’ 글씨는 조국 독립에 몸을 바친 한 인생을 생각하게 하여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독립에 힘쓴 인물들의 글씨 사이사이에 친일 인사들의 유묵이 자리 잡고 있다. 당대에는 권력을 가지고 떵떵거리고 살았지만, 이곳에서는 눈치 보는 처지다. 그들 모두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지만 일제에 협조해 부역한 삶을 산 까닭에 그들의 유묵 또한 현대에 와서는 매우 초라한 모습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예로부터 ‘글씨는 곧 사람의 인품이다(書如其人)’라고 한 것이 옳은 말임을 절실하게 느끼게 한다. 이완용이 비록 글씨를 매우 잘 썼으나 매 국노의 글씨일 뿐이고, 최린은 당대 최고의 멋쟁이라 불렸지만 그의 난초 그림과 글씨는 그저 재주 있는 친일파의 유묵일 뿐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화가들의 그림

이번 전시의 또 다른 관점 중 하나는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살았던 일본인 화가들의 그림을 전시에 포함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한국 화단에는 적지 않은 일본인 서화가들이 활동했다. 이들은 조선미술전람회에 참여하거나 한국의 중등학교의 미술 교사로 일했는데, 한국인 화가들과도 많은 소통을 하며 한국 화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특히 이들 중 일부는 한국의 풍속을 사랑해 한국을 소재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 이들의 존재를 보여주는 것은 당시 한국화단의 실체를 그대로 드러내 보자는 의도다.

 

일본인 화가의 작품으로는 가타야마 단(堅山坦)의 조선미전 출품작인 <구(丘)>라는 작품이 눈에 띈다. 새참을 전해 주고 돌아오는 한국 여인을 그린 것인데, 김기창의 유명한 작품인 <가을>과 유사성이 있어 관심이 가는 작품이다. 또 도쿠다 교쿠류(德田玉龍)는 금강산에 푹 빠져 평생 금강산 사진을 찍고 이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린 화가다. 그는 금강산을 그리기 위해 금강산에 있는 굴에 3년간 살며 그림만 그릴 정도로 금강산에 미친 화가였다. 우노 이쓰운(宇野逸雲)도 눈길을 끈다. 청각장애인인 그는 한국을 좋아해 오래도록 조선미전에서 활동한 친한파 화가였다. 이들의 그림은 한국 화가들과의 친연성 문제로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월북한 화가들의 작품 발굴

그 힘들었던 암흑의 일제강점기가 지나고 해방이 되자 한국 미술계는 또다시 좌우의 이념 공방으로 혼란을 겪는다. 이전에는 반일과 친일의 경계에서 힘겨워했던 미술인들이 이제는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경계에서 방황하게 된다. 이런 혼란은 결국 남북 분단으로 많은 화가가 북쪽을 택해 남쪽 미술사에서 사라지게 되는 희대의 비운을 낳는다. 이제 대부분 해금돼 자유롭게 됐지만, 꽤 오랜 기간 ‘월북 화가’라는 이유로 김용준·정종여·이석호·정현웅·이쾌대 등 뛰어난 화가들을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됐던 적이 있다. 이처럼 오랜 분단의 여파로 망실된 이들의 작품이 적지 않아 그동안은 전시에서 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다행히 이번 전시에 월북 화가들의 꽤 많은 작품이 발굴돼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은 축복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괄목할 만한 작가는 김용준이다. 그의 작품을 종종 만나 볼 수는 있었지만, 이번에 출품된 작품은 거의 새로 발굴된 것들이다. 특히 매화 그림이나 화조 그림은 수준이 매우 높아 한국 미술사에 새로 자리매김해야 할 작품이다. 이 외에 이석호의 금강산 그림과 추사체를 본받은 글씨도 전에 익숙하게 보던 것이 아니고, 금강산을 그린 낯선 화가 임신의 작품도 신선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많은 서양화 작품이 월북한 이후에 그려진 탓에 우리의 미감과 달라 감동의 폭이 작은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이번 전시에 150여 점의 많은 작품이 출품됐지만, 그동안의 100년을 되돌아보기에는 매우 부족하다. 더욱이 일제강점기 35년이 있었고, 해방공간 5년 이후 다시 남북 분단의 세월을 근 70년이나 보냈다. 그 사이 이 땅의 미술은 그 본질이 많이 달라졌다. 특히 남과 북의 미술은 접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달라졌다. 앞으로도 더욱 많은 전시가 이루어져 남과 북의 미술적 간극이 많이 사라지기를 기대해 본다.

 

글 황정수 근대미술연구가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9년 4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