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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천재들의 고유한 언어

by예술의전당

<이반 피셔 & 부다페스트페스티벌오케스트라> 6.25(화) 콘서트홀

<미하일 플레트네프 피아노 리사이틀> 6.27(목) 콘서트홀

ⓒAkos Stiller, Ivan Fischer

천재들의 고유한 언어는 생경하지만 매력적이다. 피셔가 추구하는 극한의 디테일을 통한 확장된 정밀함, 조성진의 절제되고 우아한 매력, 작곡가를 압도하는 위엄으로 작품의 생경한 매력을 설파하는 음악의 ‘차르Tsar, 황제’ 플레트네프의 공연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거대한 기쁨의 순간일 것이다

확장된 실내악단, 극한의 디테일

ⓒThe Budapest Festival Orchestra (www.bfz.hu), 부다페스트페스티벌오케스트라

지금은 이반 피셔와 부다페스트페스티벌오케스트라(이하 BFO)의 이름이 수많은 악단 중에서도 손꼽을 만한 하나의 고유명사로 인식되지만, BFO가 탄생하던 1983년에는 이 오케스트라가 오늘날의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오케스트라의 이름 중 ‘페스티벌’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악단의 시작은 상설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파트타임 연주자로 구성된 이벤트성 오케스트라였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이후 헝가리의 수많은 음악가가 외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하던 청년 지휘자 이반 피셔와 피아니스트 졸탄 코치슈는 헝가리 고유의 색채와 개성을 지닌 오케스트라를 만들고자 의기투합했다. 그것이 이들의 시작이었고, 9년 후 상설 오케스트라로 당당히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유능한 음악가들로 구성된 덕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오케스트라의 역량이 급격하게 높아진 데는 수많은 명지휘자를 길러낸 조련사 한스 스바로프스키 문하에서 지휘의 정수를 익힌 이반 피셔의 역할이 컸다. 그는 스승으로부터 현대 오케스트라 지휘의 정수를 흡수하는 동시에 그 대척점에 위치하고 있는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의 조교로 들어가 첼로와 고음악 해석에 대한 감각을 배우며 음악적 지평을 넓혀갔다. 이러한 성과는 1990년대 중반 메이저 레이블인 ‘필립스’와의 계약으로 이어졌다.

 

승승장구하던 피셔와 BFO는 달라진 음악 환경에 적응하고 좀 더 자율적인 음악적 행보를 펼쳐나가기 위해 네덜란드 레이블인 ‘채널 클래식’과의 협업을 시작했다. 음반 발매 시 상품성이나 완결성을 위해 레이블의 의견을 따라야 했던 필립스 시대와 달리 온전히 지휘자와 연주자의 자율적인 의사에 의해 레퍼토리가 결정됐으며, 이후 오케스트라의 매력은 극히 배가됐다. 오늘날 공연과 동반한 음반 또는 음원의 출시는 오케스트라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러한 여러 기회들이 맞물려 오늘날 BFO의 위상이 결정됐다고 볼 수 있다.

 

이반 피셔와 BFO의 가장 큰 음악적 특징은 음표와 악기단위로 음향을 잘게 조각내 모든 악상기호와 세부악기가 눈앞에서 펼쳐지게 만드는 정교하고 투명한 표현력이다. 피셔와 BFO는 이러한 본인들의 정체성을 ‘확장된 실내악단’이라는 표현으로 정의하는데, 상당부분 동의할 수 있는 표현이다. 이러한 극한에 가까운 디테일의 추구는 사실상 시간의 예술이라 불리는 오케스트라의 영역에서 매우 단기간인 30여 년 만에 BFO의 위상을 세계 최상급으로 키워냈다.

우아하게 빛날 조성진의 색채

ⓒHarald Hoffmann / DG, Cho SeongJin

이처럼 찬란한 역사를 써 내려가는 피셔와 BFO가 드디어 3년 만에 한국에 온다. 이들은 이번 공연에서 자신들이 지난 2009년 부다페스트예술궁(Palace of Arts Budapest)에서 녹음한 경험이 있는 브람스 교향곡 1번을 들려줄 예정이다. 현재까지 피셔와 BFO는 브람스 교향곡 3번을 제외한 1·2·4번을 출반했다. 특히 1번은 이들이 출시한 다양한 레퍼토리 중 내가 최상의 연주로 손꼽는 곡이다. 위에서 언급한 ‘확장된 디테일’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으며 그 극한의 디테일과 섬세함, 음표의 미묘한 뉘앙스까지 살아 있는 생동감 넘치는 음반이다. 아마도 스피커가 아닌 현장에서 이들이 만들어 내는 음향을 만나게 되면 공간을 채우는 투명한 음표들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연주하는 메인 레퍼토리보다도 더욱 기대되는 것은 현재 음악계의 가장 뜨거운 연주자 조성진의 협연이다. 이번 협연 레퍼토리는 조성진이 공식적으로 녹음한 적 없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이다. 아마도 최근 야니크 네제-세갱이 이끄는 유럽체임버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모차르트 협주곡의 맥락과 마찬가지로 단정하고 우아한 가운데 기저가 단단한 조성진만의 깊이를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수채화 같은 디테일을 지닌 BFO의 팔레트 위에 조성진의 색채가 더욱 빛날 무대를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떨려온다.

파격적 언어, 음악의 차르 미하일 플레트네프

ⓒMat Hennek / DG, Mikhail Pletnev

“연주자는 스스로 양심에 꺼림칙한 곳이 없어야 합니다. ‘미켈란젤리나 호로비츠가 있는데, 내가 무대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면 무대에 서지 않는 게 좋습니다. 청중이 연주자에게 신뢰감을 갖지 못하고 경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결과 그 연주자의 예술에 대한 경의마저도 무위로 만들어 버립니다. 자신이 없으면 설득력 없는 연주가 되고, 연주자가 헤매면 청중도 헤매기 시작하죠. 연습 때는 자신을 의심하고 과소평가하는 일이 있어도 되지만, 무대에서는 아주 강한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유명세에 비해 여전히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전해 주는 연주자가 있는 반면 본인의 음악적 본령으로부터 꽤 오래 떠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묵직한 존재감을 변함없이 과시하는 연주자들이 있다. 1978년 6회 차이콥스키콩쿠르 우승을 계기로 세계 음악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미하일 플레트네프는 그 꾸준하고 파격적인 행보를 뒤로한 채 돌연 2007년 피아노라는 악기에 대한 한계를 절감하고 러시안내셔널오케스트라(이하 RNO)와 남긴 베토벤 피아노 협주 곡 전곡 녹음을 끝으로 지휘자 활동에만 전념하기로 마음먹는다.

 

1990년에 창단한 RNO는 당대 최상급의 기량을 갖춘 러시아 연주자들이 모인 단체였다. 러시아 예술의 총아이자 그 엘리트 집단을 이끌 수 있는 최고 예술가로 지목된 플레트네프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 당대 최고의 천재 예술가였다. 이전까지 지휘자와 피아니스트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활동을 하던 그가 ‘모던피아노의 음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며 피아니스트를 은퇴한다는 소식은 플레트네프의 피아니즘을 추종하던 많은 팬들에게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나 역시 플레트네프를 2005년 처음으로 대면한 이후 그의 해석에 대한 파격, 그 안에 담긴 거인과도 같은 위엄, 행간을 휘감는 부드러운 온기와 톤, 유려한 이음매에 완전히 빠져들었던 그의 추종자였다. 당시 첫 타건부터 주변의 공기가 정화되는 것 같은 순정한 톤, 전반부 프로그램이었던 베토벤 소나타 7번과 8번을 마치 여덟 개의 악장을 한 번에 연주하는 것처럼 완전히 이어서 연주하는 그를 보며 일견 글렌 굴드를 처음으로 들었을 때 혹은 파질 사이의 파괴적이고 기행적인 연주를 목격했을 때와 비슷한 특이함을 감지할 수 있었다.

 

다만 그는 그들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플레트네프의 연주에는 무엇보다 거역할 수 없는 위엄이 있었고, 그 배경에는 지금까지 접해 본 연주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최상의 테크닉이 그 기저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 각 음을 분명하고 명확하게 연주하는 것)을 설정하는 구간, 프레이즈, 음표의 활용이 기존의 스테레오 타입과 달랐으나 완벽한 기교와 음악성으로 인해 마치 ‘원래 그 작품은 그렇게 해석해야 한다’고 설파하는 듯한 그의 설득력에 압도됐다.

 

피아니스트 잠정 은퇴 선언 이후 일곱 해가 지난 2014년에 내한해 슈베르트와 쇼팽, 바흐로 자신의 건재함을 알린 플레트네프가 자신의 장점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레퍼토리인 베토벤과 리스트로 한국을 찾는다. 전반부에 연주되는 론도 Op.51-1과 23번 ‘열정’은 모두 음반으로 발매했던 레퍼토리이며, 후반부에 연주되는 리스트의 10개 소품들 중 ‘시적이고 종교적인 선율’ 모음곡은 처음으로 연주하는 레퍼토리다. 스케일과 해석의 확장성 측면에서 플레트네프의 개성과 장점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탁월한 선곡이기에 벌써부터 기대되는 무대다.

 

글 노태헌 음악칼럼니스트

사진 빈체로, 마스트미디어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9년 6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