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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재미·의미·음미의 3박자

by예술의전당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극장>展

6.8(토)-9.8(일)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전시장 곳곳에서 즐거운 비명이 터져 나온다. ‘여기가 미술관이야, 극장이야, 놀이공원이야?’ 지난 2016년 최다 관객동원 전시로 기록을 세운 아동문학가 겸 화가 앤서니 브라운이 지난 6월 8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막을 올린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극장> 전시로 다시 돌아왔다. ‘재미’가 넘치고 ‘의미’도 있으며 감동을 곱씹어 ‘음미’까지 할 수 있는 전시다.

ⓒKEI LIAO

전시장에 들어서면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극장>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작가의 대표작 그림책 표지를 포스터처럼 제작해 건 작품들이 관객을 맞는다. 관객은 마치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오늘 볼 영화를 고르는 기분’으로 이들을 하나하나 감상하며 들어선다. 중요한 것은 실제 전시 구성도 그렇다는 사실이다. 전시장 도입부에 마치 놀이공원에서 볼 법한 광장이 조성돼 있는데 그 한가운데 브라운의 대표 캐릭터인 꼬마 침팬지 ‘윌리’가 반갑게 손짓한다.

 

이곳을 중심으로 각각의 전시장들이 일곱 갈래의 방사형으로 나뉜다. 어른들은 관성적으로 혹은 큐레이터의 기획 의도대로 맨 오른쪽 전시부터 차례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반면 아이들은 제 마음 내키는 쪽으로 무작정 달려가고 이곳저곳 쉴 새 없이 들락거리며 보는 것 또한 이 전시만의 특징이다. 책 한 권 속 그림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지며 전시를 이룬다. 작가가 자신의 상상력을 붓끝에서 어떻게 펼쳐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생생한 원화 200여 점과 영상 작품이 눈과 귀를 잡아끌고 몸을 움직이게 만든다. 책 내용을 기반으로 나 자신, 가족, 친구, 흥미로운 세상 등으로 주제를 나눠 감상해 보기를 추천한다.

윌리와 함께 거니는 환상 속 세계

ⓒKEI LIAO

앤서니 브라운은 윌리에 대해 “걱정 많고 약한 듯하지만 결국 자신만의 길을 찾아내는 캐릭터”라고 설명하며 “어쩌면 그렇게 살고 있다고 믿고 싶은 내 자화상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관람객도 윌리 앞에서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겁쟁이 윌리」(1984)는 소심하고 마음 약한 주인공을 통해 아이들이 일상에서 흔히 느끼는 무력감과 열등감, 소외와 두려움을 대변한다.

 

이 작품은 스토리 외에 실험적인 화면구성과 독창적인 편집 디자인의 시도가 돋보였다. 글이 그림을 방해하지 않도록 한쪽으로 몰아두기도 했고, 윌리가 역기를 들어올리는 장면은 시간이 지날수록 근육이 커지는 주인공의 모습들을 연속 필름처럼 나란히 배치하기도 했다.

 

세모·네모·동그라미의 패턴이 선명한 조끼에 초록색 바지, 줄무늬 양말을 신은 윌리는 ‘스스로를 믿으면 무엇이든 이루어집니다’라는 말과 함께 당당하게 다시 태어난다. 「꿈꾸는 윌리」(1997)의 꿈속에서 윌리는 포근한 분홍 소파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기도 하는데, 이때 보이는 하늘은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하늘과 똑 닮았다. 작가 자신도 “윌리가 헤매고 다닌 낯선 풍경은 달리의 <기억의 지속>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허수아비와 사자, 양철로봇 등의 등장인물을 모조리 침팬지 캐릭터로 바꿔 놓은 작품 뒤 큰 산에는 ‘할리우드’ 대신 ‘윌리우드(Willywood)’라 적혀 있다.

 

전시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함께 앙리 루소, 르네 마그리트 등에게서 영감을 받은 「윌리의 신기한 모험」(2014)으로 이어진다. 특히 어린이 관람객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윌리가 토끼굴로 떨어지는 장면에 등장하는 신기한 책꽂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책장 속에 하늘이 펼쳐지고, 커피를 따르는 주전자와 뻗어 나온 손이 있으며, 비밀의 열쇠와 신비의 알약, 홍학·고슴도치·고양이·토끼가 모두 등장하니 한참을 그림 앞에 서 있곤 한다. 감동으로 벅찬 관람객들을 위해 전시장 한쪽에 왕좌에 앉은 윌리의 장면과 똑같은 촬영세트가 마련됐다. 보라색 망토를 두르고 빛나는 왕관도 쓸 수 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

ⓒKEI LIAO

앤서니 브라운의 「거울 속으로」(1976)는 그가 처음 출판한 그림책으로, 체코 시인 미로슬라프 홀루프의 시 ‘문’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문 뒤에 있을지도 모를 다양한 것을 상상하는 시에서 앤서니 브라운은 거울에서 자신의 뒷모습을 보게 된 주인공 토비를 탄생시켰다. 토비는 사람이지만 그의 스웨터는 꼬마 침팬지 윌리의 것과 똑같다. 무슨 비밀이라도 찾아낸 것 같아 보는 사람이 괜히 즐거워진다. 이 작품에서부터 이미 작가는 조르주 데 키리코, 마그리트와 달리 등 초현실주의 대가들의 화풍을 그림 속에 담으며 해박한 미술사적 지식을 보여줬다. 섬세한 스케치, 붓질의 움직임, 덧칠의 흔적 등 원화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징들도 반갑다. 작품들 사이사이에 거울을 설치하거나 렌티큘러(Lenticular, 각도에 따라 다른 형태로 보이는 입체 이미지 기법)등을 더해 관람객이 마치 책 속 주인공처럼 놀아볼 수 있게 조성됐다.

 

나 자신을 탐색했다면 이제 ‘가족’을 생각해 볼 차례다. 앤서니 브라운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즐긴다. 「고릴라」(1983)는 늘 바빠 놀아주지 못하는 아빠 때문에 속상한 주인공 한나의 이야기다. 아빠가 사준 작은 고릴라 인형이 커다란 진짜 고릴라가 되어 아빠 코트를 입고 한나와 함께 동물원과 극장에 놀러간다. 전시장에는 그림책 속 한나의 방과 똑같은 방이 꾸며져 있는데, 아이들의 꿈을 한층 더 키우는 데 손색이 없다. 철부지 아빠가 등장하는 「돼지책」과 「아기가 된 아빠」도 익살맞지만 「우리 아빠가 최고야」가 특히 인기다. 이들 그림책을 내용으로 한 대형 벽화 작품 앞은 가족사진 촬영의 명소로 꼽힌다.

 

나와 가족을 넘어 ‘친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들은 「특별한 손님」을 비롯해 「커스티는 다 알아」와 「기묘한 몽상」 등으로 이어진다. 이 책들에서 앤서니 브라운은 다른 작가들이 쓴 글에 화가로만 참여했다. 그는 세세한 이야기 설명에 치중하지 않는 대신 한 장면 속에 분위기부터 암시까지 특출 나게 다 담아냈다. 무심코 지나칠 법한 한 장면이지만 정원을 가로지르는 긴 호스의 끄트머리가 뱀 얼굴이라든가, 과학실 곳곳에 붙여 놓은 그림에 명작 패러디를 더하고 나비 날개를 단 생쥐를 그려 넣는 등의 기발함은 “역시 앤서니 브라운이야”라며 무릎을 치게 만든다.

ⓒKEI LIAO

앤서니 브라운은 2001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워크숍을 주관하며 고전 명작이 어린이의 언어능력 발달과 창의적 글쓰기에 훌륭한 자극을 제공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이에 대한 오마주를 시도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 조개껍데기 위에 올라선 고릴라의 머리 위로 샤워기가 보이고 윌리는 샤워 커튼을 쳐 주느라 분주하다.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에서는 그림 안쪽에 걸린 작은 거울을 통해 작품 속 두 인물의 뒷모습이 보이는데, 앤서니 브라운은 이 자리에 거울 대신 텔레비전을 놓아 현재 시점으로 패러디했다.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에서는 원작의 건초더미 대신 커다란 빵들이 등장하고, 허리 숙인 여인들은 이삭 대신 붓질로 밀밭을 그리고 있다. 진지하게 보던 이마저도 웃음 짓게 만드는 작품들은 전통과 명화가 결코 우리에게서 먼 것은 아니라는 사실, 각자의 관점에서 자기 방식대로 감상하면 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전시장에는 수백 점의 작품 외에도 여러 가지 체험장이 있어 지칠틈이 없다. 「숲 속으로」의 숲 그림을 벽화로 조성한 뒤 무채색 배경에서 한껏 돋보이는 무지개색 새들을 매달아 꿈같은 장면을 연출했다. 커다란 킹콩이 공중에 떠 있기도 하고, 토끼굴 같은 작은 구멍을 통해 벽을 넘나들 수도 있다. 마술 연필을 쥔 꼬마곰을 주인공으로 한 「마술 연필」의 3D 미디어아트 등 곳곳에 영상작품을 상영하고 있어 꼼꼼하게 다 살펴보려면 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전시의 감동을 몇 배로 더할 ‘꿀팁’ 몇 가지를 전하자면, 전시장 안에 마련된 앤서니 브라운의 모든 그림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을 먼저 방문하는 것도 좋다. 미처 보지 못한 그림책을 먼저 읽고 관람하러 들어가는 것이 이상적이나, 전시를 돌아본 다음 책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 ‘리틀 스토리텔러’, 전시에 맞춰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을 원작으로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신작 「리틀 프리다」의 쇼케이스와 미술체험 프로그램 ‘리틀 프리다 아틀리에’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은 어린이가 더 잘 본다. 어른과 아이 모두가 행복한 전시다.

 

글 조상인 서울경제신문 문화레저부 차장, 사진 아트센터이다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9년 7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