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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피카소가 시기하고,
앤디 워홀이 사랑한 거장

by예술의전당

베르나르 뷔페 <나는 광대다 : 천재의 캔버스>展

6.8(토)-9.15(일) 한가람미술관

 

이번 베르나르 뷔페 전시는 작가의 사후 20주년 기념 한국에서의 첫 대규모 회고전이다. 혼돈의 시대에 태어나 일찍이 천재로 인정받은 화가였던 베르나르 뷔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인상주의의 모네 혹은 큐비즘의 피카소와 같이 특정 미술사조로 설명할 수 있는 작가가 아니다.

나는 영감을 믿지 않는다. 단지 그릴 뿐이다. - 베르나르 뷔페

1958년 아르크성에서의 베르나르와 아나벨 뷔페 ⓒ Bernard 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19

그러나 이미 50여 년 전 우리나라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 작품이 소개될 정도로 뷔페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전설적 화가였다. 또한 추상회화를 지향하는 시대의 흐름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유지하며, 그 어떤 혹평과 비난에도 굴하지 않은 진정한 예술가였다. 어린 나이에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뷔페는 “모든 것이 파괴되고 공포 속에서 살았다. 그 시절에는 먹을 것과 그릴 것만 찾아다녀야 했다”라고 말하며 삭막하고 쓸쓸한 풍 경, 메마른 사람들 그리고 좌절의 초상을 그려냈다.

 

황량했지만 자유로웠던 세상에서 자신에게 허락된 최소한의 색상과 스스로 창작해 낸 방법으로 그려낸 캔버스는 많은 이들의 외롭고 지친 감성을 대변해 주며 공감을 자아냈다. 그 결과 1948년 10대 청년이었던 뷔페는 프랑스의 비평가들이 수여하는 비평가상(Prix des Critiques)을 받으며 프랑스 화단에 혜성처럼 나타나 모두를 열광하게 했다. 1958년 20대였던 뷔페의 명성은 이미 절정에 이르렀다. 그해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지성과 감성의 문인 프랑수아즈 사강 등과 함께 「뉴욕타임스」에서 뽑은 ‘프랑스의 가장 뛰어난 젊은 재능 5인’으로 선정됐다. 그뿐만 아니라 70대였던 거장 피카소의 ‘대항마’로 불린 유일한 화가인 30대 청년 뷔페는 「코네상스데자르 매거진(Connaissance des Arts Magazine)」에서 프랑스인이 제일 좋아하는 작가 1위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레지옹 도뇌르(Legion d'Honneur) 문화훈장을 두 번이나 받은 20세기 프랑스의 최고이자 마지막 구상회화작가다.

 

베르나르 뷔페의 뮤즈이자 아내였던 아나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림은 뷔페가 타인과 소통하는 단 하나의 언어이자 유일한 방법이었다. 다른 방법은 고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의 삶과 그의 모든 것에서 나오는 환희에 정복됐다.”

베르나르 뷔페의 <음악 광대들, 가수>(1991), 캔버스에 유채, 230 x 430 cm, 파리 시립근대미술관 소장

1997년 파킨슨병을 진단받고서도 작품 활동을 하던 뷔페는 1999년 “삶에 지쳤다”라는 말을 남기며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시대별로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폭넓은 자신만의 작품 스타일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는 파리 시립근대미술관, 러시아 에르미타주박물관과 푸시킨박물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의 회고전에서 선보였던 작품을 비롯해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4~5m에 이르는 대형 작품을 포함한 총 92점의 유화 작품들과 한 편의 영화 같은 그의 삶을 소개하는 영상 및 사진 자료들로 구성돼 있다.

 

1994년 한 인터뷰에서 뷔페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요?”라고 묻자 그는 “모르겠어요… 아마도 광대일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인간이 가진 이중성의 대표적인 상징인 광대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의 답변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번 전시는 혼란스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과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예술적인 초상화로 승화시킨 뷔페의 작품을 바라보며 우리들의 초상은 어떠한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 돌아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글 윤혜정 한솔BBK 큐레이터 사진 한솔BBK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9년 7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