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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위대한 사랑의 승리를 노래한 푸치니 최후의 오페라

by예술의전당

황홀한 관현악의 선율과 찬란한 아리아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난다. 희망을 찾아 떠난 한 남자의 여정은 가혹한 수수께끼를 이겨내고 결국엔 영원한 사랑으로 승화된다. 〈투란도트〉는 자코모 푸치니가 남긴 최고의 명작이다.


오페라 〈투란도트〉는 전설의 시대 중국이 배경이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우화 작가 카를로 고치가 이야기를 썼고, 후일 프리드리히 실러가 근대 희곡 스타일로 다시 만든 것을 오페라의 원작으로 삼았다. 남자를 혐오하는 중국의 공주 투란도트는 세계 각국에서 몰려오는 구혼자들을 모두 물리치는데, 그 방법이 독특하다. 공주는 세가지 수수께끼를 낸다. 모두 맞히면 공주와 결혼할 수 있지만, 하나라도 틀리면 곧바로 참수형이다.


이때 타타르의 왕자 칼라프가 자신의 이름을 숨긴 채 그에게 구혼장을 내민다. 왕자는 우여곡절 끝에 난해한 수수께끼 모두를 풀어내지만 그래도 공주는 계속해서 그의 구애를 거부한다. 왕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이번엔 내가 문제를 하나 내겠습니다. 내일 아침까지 내 이름을 알아내면 공주 당신의 승리, 그렇지 않으면 내가 사랑으로 당신의 마음을 녹여낼 것입니다”

찬연하게 빛나는 푸치니의 음악

〈투란도트〉는 푸치니에게는 여러모로 낯선 소재였다. 그동안은 청순가련형의 여주인공을 앞세워 달콤한 로맨티시즘으로 가득 찬 오페라를 만들었던 그였다. 〈라보엠〉의 미미, 〈토스카〉의 토스카와 〈나비부인〉의 초초상 등은 모두 다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 전형적인 푸치니 형의 여주인공이다.


그러나 투란도트 공주는 출발부터 다르다. 남자에게 애정을 느끼지 못하고, 심지어 남자를 혐오하거나 멸시한다. 그는 이탈리아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진 머나먼 땅 중국의 공주다. 이 색다른 테마를 푸치니는 보다 현대적인 음악어법으로 풀어가기로 마음먹는다. 바그너의 반음계와 불협화음, 리히르트 슈트라우스의 현란한 관현악, 드뷔시의 섬세하고 신비한 인상주의 음악의 요소를 모두 다 쓸어 담았다.


마침 내용 자체도 비극과 희극이 뒤섞여 있다. 영웅적인 구애자인 칼라프 왕자와 차가운 매력의 투란도트 공주, 그리고 두 사람을 말없이 지켜보며 속을 태우는 여자노예 류는 전형적인 낭만 오페라의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그들 주위를 핑·팡·퐁이라는 희극적 이름의 중국대신들이 감싼다. 조성의 모호함이 던져주는 신비감은 곧 동양세계를 다룬 이 오페라를 보다 실감나게 만들었고, 뒤뚱거리듯이 불완전한 리듬으로 단숨에 중국 음악의 분위기를 표현해 낸 것도 분명 푸치니만의 천재적인 능력이다.


5성부로 폭넓게 구성된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섬세한 감정선을 표현하고, 무대 위와 뒤쪽에 각각 배치된 트럼펫·트럼본·색소폰 등은 현란한 입체음향으로 관객들의 귀를 즐겁게 한다. 팀파니·트라이앵글·북·심벌즈·공·첼레스타·탐탐·글로켄슈필 등 총동원된 타악기들이 이국적 신비감이 넘치는 음악을 들려주고, 동양적인 5음계 등도 절묘하게 사용돼 모호한 신비감이 넘치는 아름다운 소리로 관객들을 깊은 매혹의 세계로 이끈다.


3막의 도입부에서 동터 오는 북경의 신비로운 새벽하늘을 묘사하는 음악은 특히나 푸치니 음악세계의 절정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음악을 통한 인물묘사도 대단히 뛰어나다. 칼라프는 현악기, 투란도트는 목관과 현, 류는 목관과 현 솔로, 핑·팡·퐁 세 대신들은 피콜로와 첼레스타, 황제는 트럼펫을 위시한 금관 등이 테마악기로 배치돼 관객들은 들리는 음악만으로도 각 인물들의 개성과 상호관계를 뚜렷하게 파악할 수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황홀한 아리아의 향연

1926년 오페라 <투란도트> 초연 당시 포스터

주인공들이 노래하는 아름다운 아리아의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1막 피날레에서 여자노예 류는 공주의 수수께끼에 도전하겠다는 칼라프 왕자를 간곡히 만류한다. 그가 특유의 서정적인 목소리로 노래하는 '들어 주세요, 주인님(Signore, Ascolta)'은 눈물을 자아낼 정도로 아름답다.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도 프레디 머큐리가 그토록 흠모하던 소프라노 몽셰라 카바예의 노래로 이 아리아가 흘렀다. 왕자에 대한 류의 애절한 외사랑을 칼라프는 담담하지만 유창한 아리아로 답하니 그것이 바로 '울지 마라, 류(Non Piangere, Liu)'다.


투란도트 공주는 2막이 돼서야 등장한다. 그녀는 거대한 스케일의 목소리와 뼛속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강렬한 카리스마가 요구되는 드라마틱 소프라노다. 워낙에 귀한 목소리이고, 또 소화하기 힘든 배역이다. 투란도트가 칼라프 앞에 서서 자신의 사연을 노래하는 장대한 아리아가 '먼 옛날 이 궁전에서(In questa reggia)'다. 찌르듯이 치솟는 최고음의 격정과 폐부를 관통하는 듯한 격렬한 노래가 순식간에 관객들을 압도하는 감동을 자아낸다. 이어서 등장하는 공주와 왕자 간의 수수께끼 장면은 이 오페라 최고의 스펙터클이다. 수차례 작품을 관람해 이미 결과를 아는 사람들까지 손에 땀을 쥐며 지켜보게 할 정도로 푸치니 음악의 매력이 넘쳐흐르는 대목이다.


3막에 이르면 그 유명한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가 등장한다. 새벽 동이 터 오를 즈음 칼라프 왕자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며 부르는 아리아다. 명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불렀던 이 곡은 한때 영국 대중음악 차트의 최상위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다. 특히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테너의 찬란한 고음과 함께 터져 나오는 승리선언인 '빈체로(Vincero)'는 모든 이의 가슴을 뜨겁게 달궈 놓는다. 그것은 이탈리아 말로 '나는 승리할 것이다!'라는 뜻이다.


한편 류가 투란도트 공주의 모진 고문에도 끝내 왕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자결하는 장면에서 불리는 두 개의 아리아도 반드시 기억돼야 한다. 그가 유언처럼 노래하는 '사랑은 강하도다(Tanto Amore, Segreto)'와 '얼음 같은 공주님의 마음도(Tu Che Di Gel Sei Cinta)'는 소프라노라면 누구나 탐낼 만큼 처연한 서정미와 비장한 슬픔으로 가득찬 최고의 아리아들이다.

영원히 기억될 '네버 엔딩 스토리'

1926년 오페라 <투란도트> 초연 당시 대본

동양의 전설을 소재로 한 색다른 줄거리의 오페라는 푸치니를 극심한 스트레스에 휩싸이게 했다. 특히 그를 힘들게 만든 것은 오페라의 마지막 장면이다. 지금껏 푸치니는 해피엔딩으로 오페라를 끝내 본 적이 없었다. 대개가 여주인공의 죽음으로 끝나는 비장한 결말이었다. 따라서 '찬란한 사랑의 승리'로 마무리되는 〈투란도트〉의 엔딩은 푸치니를 극심한 창작의 고통으로 몰아갔다. 그 때문이었을까 결국 그는 작품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객지 벨기에 브뤼셀에서 세상을 떠나고 만다. 마지막 2중창과 피날레 장면은 푸치니의 절친한 후배였던 프랑코 알파노가 뒤이어 완성시켰다. 이후 루치아노 베리오 등 다른 작곡가들이 서로 다른 스타일의 완성본을 내놓았지만, 아직도 알파노 버전이 표준적인 엔딩으로 전 세계 가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푸치니 최후의 오페라 〈투란도트〉는 1926년 4월 25일 밀라노 라스칼라 가극장에서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역사적인 초연을 하게 된다. 그는 작곡가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푸치니가 작곡한 3막 '류의 죽음'까지만 지휘한 뒤 음악을 멈췄다. 그러고는 관객석 쪽으로 돌아서 “푸치니가 작곡한 것은 여기까지입니다”라고 이야기한 뒤 무대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투란도트 공주가 지배하는 가혹하고 비인간적인 '사랑 없는 세계'는 도전과 희생, 눈물과 열정에 의해 인간적 감정이 살아 숨 쉬는 세계로 조금씩 변모해 나간다. 이 극단적인 두 세계를 횡단하는 키워드는 '희망(La Speranza)'이다. 공주의 수수께끼에서도, 왕자의 답가에서도 희망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오는 8월 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질 가족오페라 〈투란도트〉공연을 통해 우리도 이 아름다운 세계로 여행을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푸치니가 만들어 낸 전례 없이 우아한 관현악과 찬란하게 울려 퍼지는 아리아들 사이로, 우리 모두를 고원한 감동의 세계로 이끌 그곳으로 가장 황홀한 음악여행을 떠나보는 것이다.


글 황지원 오페라평론가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9년 8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