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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우리 시대의 자화상,
영화를 통해 보다

by예술의전당

<영화 포스터로 보는 한국영화 100년>展

7.27(토)-9.1(일) 서울서예박물관

 

올해는 한국영화가 시작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한국영화 100년을 기념해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영화 포스터로 보는 한국영화 100년> 특별전을 연다.

1919~1945 한국영화의 시작, 일제강점기 민족의 절규

<풍운아>(1926, 나운규 감독)

한국영화는 1919년 단성사에서 최초로 상연된 활동사진 연쇄극 <의리적 구토(仇討)>를 시작점으로 삼는다. 그 내용은 부유한 집 아 들인 송산이 재산을 탐내는 계모와 잘 지내다가 끝내 정의의 칼을 드는 스토리라고 한다.

 

구토가 ‘원수를 갚는다’라는 의미인 것을 고려한다면 원수에게 당한 사람들의 울분을 풀어주는 이야기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좀 더 내용이 있는 영화는 1926년에 춘사 나운규가 원작·감독·주연을 맡은 <아리랑>이다. <아리랑>은 민족 영화의 기원이자 무성영화 시대의 대표작이다.

1945~1959 광복과 이념갈등, 6·25전쟁

1950년 민족의 비극 6·25전쟁 중에도 영화제작은 멈추지 않았다. 한국 최초의 전쟁영화 <삼천만의 꽃다발>(1951, 신경균 감독)이 피난처인 부산에서 만들어졌고, 6·25전쟁 직후 지리산 빨치산 토벌을 소재로 다룬 <피아골>(1955, 이강천 감독)은 개봉 후 이념과 인간성의 갈등을 표현한 우수작으로 평가받았다.

1960~1969 한국영화의 성장과 검열의 수난기

<오발탄>(1961, 유현목 감독)

시대가 인물을 만드는가, 인물이 시대를 만드는가는 많은 논란이 있지만 1960년대 한국영화는 이 시대 한국영화의 성장을 견인한 거장들의 활약으로 두드러진다. 독특한 시선과 예술영화로 평가받는 걸작 <하녀>(1960, 김기영 감독),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최고 작품으로 꼽히는 <오발탄>(1961, 유현목 감독), 그리고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신상옥 감독) 등이 이때 등장한다.

 

가난한 시절에도 서민의 삶을 다룬 걸작 <마부>(1961, 강대진 감독)는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44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이만희 감독은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만추>(1966) 등의 걸작과 1975년에 <삼포 가는 길>을 유작으로 남겼다. 충무로는 활기찼고 신성일·엄앵란 콤비는 청춘영화 <맨발의 청춘> (1964, 김기덕 감독), <아네모네 마담>(1968, 김기덕 감독) 등에서 크게 활약했다.

1970~1989 산업화와 청년문화의 등장

<별들의 고향>(1974, 이장호 감독)

고도성장의 비탈에 세워진 집창촌의 그늘에서 경아와 영자의 비 가(悲歌)가 펼쳐지기도 했다. <별들의 고향>(1974, 이장호 감독), <영 자의 전성시대>(1975, 김호선 감독) 등이 그것이다.

 

1970년대 말에는 시대를 거부하는 몸짓을 담은 청년 문화가 출발해 청바지와 통기타를 유행시켰고, 기존 관습에 저항하는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1975)을 비롯해 배창호 감독의 <꼬방동네 사람들>(1982), <고래사냥>(1984), <깊고 푸른 방>(1984) 등이 만들어졌다.

 

민족 의식도 높아지면서 민족 정서가 가득한 영화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특히 임권택 감독은 <만다라>(1981)에서 전통적 서정을 부활시켰고 <씨받이>(1986)로 강수연을 월드스타로 등극시키더니 <서편제>(1993)에서는 흥행에서도 정점을 찍었다.

 

한편 이 무렵 사회체제에 저항하는 생존을 향한 절규가 민주주의를 외치기 시작했다. <구로아리랑>(1989),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1995) 등이 그 발자취들이다. 새로운 내일을 향한 함성은 이후 독립영화의 제작과 젊은 영화운동으로 이어진다.

1990년~현재 한국영화 산업의 변화, 거대자본의 유입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박광수 감독)

1990년대는 소재와 형식의 다양함 속에 새로운 인재들이 등장하고 독립제작사들이 활기를 띠었다. 특히 개방화 풍조에서 자란 젊은 세대의 밝은 웃음과 깔끔한 형식은 흥행의 성공을 자극하면서 소비자의 취향이 투영된 기획영화의 새로운 물결을 일으켰다. 그 시작은 신인 김의석 감독의 <결혼 이야기>(1992)였다.

<기생충>(2019, 봉준호 감독)

2000년대에는 <실미도>(2003, 강우석 감독)와 <태극기 휘날리며> (2004, 강제규 감독) 등 18편의 영화가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하며 ‘천만 관객 시대’를 열어젖혔다. 그리고 2019년 제72회 칸영화제에서 드디어 한국영화 <기생충>(봉준호 감독)이 칸영화제 최고 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영화는 우리의 얼굴이지만, 한 시대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이 전시는 한 편 한 편 영화에 대한 감상을 넘어 우리가 살아온 근대사에 대한 성찰을 파노라마와 같은 감동으로 전해줄 것이다.

 

글 채홍기 예술의전당 서예부장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9년 8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