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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납작한 세상과 납작한 상상

by예술의전당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전> 6.29(토)-9.27(금) 한가람미술관

<에릭 요한슨 사진展: IMPOSSIBLE IS POSSIBLE > 6.5(수)-9.5(일) 한가람미술관


현실을 찰나의 순간으로 보여주는 사진, 상상을 이미지로 구현한 사진 중 당신의 발걸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서로 다른 세상을 표현한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전 >과 <에릭 요한슨 사진展:IMPOSSIBLE IS POSSIBLE>이 각기 다른 매력으로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카메라로 보는 납작한 세상

짙은 어둠 속에서 작은 카누가 서서히 움직인다.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가 유유히 노를 젓는다. 커다란 나무 상자가 얹어져 있는 뱃머리에서는 다른 사내가 발광하는 물건을 손에 들고 앞을 응시한다. 야심한 시각, 구명조끼도 없이 위험천만함을 감수하면서 그가 바라보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1893년 미국 미시간주 화이트피시강에서 ‘야간 탐험’을 하는 조지 샤이러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훗날 ‘야생동물 사진의 개척자’로 불리는 그가 사용한 커다란 카메라와 휴대용 플래시건도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개발한 카메라 트랩(Camera trap)과 플래시는 그동안 암흑에 가려졌던 야생동물의 세계를 처음으로 밝혀 주기 시작했다. 샤이러스의 야생동물 사진은 1906년 「내셔널지오그래픽」 7호에 게재돼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자연 다큐멘터리의 시작점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조지 샤이러스의 사진은 이번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전>에서 만날 수 있다. 그의 사진이 보여 주는 야생동물의 세계, 그리고 그 자연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과 의지는 131년의 역사를 이어온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정신을 집약해 준다.


흥미롭게도 전시장의 다른 편에 있는 보자 이바노비치(Boza Ivanovic)의 흑백사진 <생각하는 사자>는 샤이러스의 사진과 묘한 대구를 이룬다. 200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동물원에서 촬영된 사진은 사자의 옆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플래시를 사용해 배경을 어둡게 떨어뜨렸다. 접근에 제약이 많은 동물원 안에서 이러한 이미지를 얻기까지 어떤 노력을 했을까.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더 좋은 빛을 얻기 위해, 그렇게 더 새로운 모습을 우리에게 전하기 위해 시간과 발품을 들였을 이바노비치를 상상하면 자연스럽게 샤이러스의 모습이 떠오른다. 시차를 건너뛰어 두 사람의 의지를 겹쳐 보며,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추구하는 모토를 음미해 본다. “이 별에서 살아가는 당신에게, 이 별의 모든 것들을….”

내셔널지오그래픽은 1888년 초대 회장 가디너 그린 허버(Gardiner Greene Hubbard)를 포함해 33인의 과학자·탐험가·학자들이 지리 지식의 확장 및 보급을 위해 내셔널지오그래픽협회(National Geographic Society)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그로부터 매달 발간돼 온 학회지이자 교양지인 「내셔널지오그래픽」은 매달 세계의 자연과 환경, 문화, 역사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이에 관한 단행본도 발간한다. 1910년부터 컬러사진을 게재했으며,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한 사진, 수중사진과 공중사진을 처음 게재한 잡지로도 알려져 있다.


이번 사진전은 지난 130여 년 동안 ‘이 별의 모든 것들을’ 보여 주는 창구를 자임(自任)해 온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기회다. 또 인류가 살 수 있는 유일한 행성인 지구를 우리 스스로가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구의 모든 것을 보여 주려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시도가 얼마나 맹목적인 것인지, 또 이를 통해 지구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듯한 내셔널지오그래픽의 관점이 얼마나 단선적인지 곱씹게 된다.


인터넷과 SNS 등 세상을 보여주고, 세상과 접속하는 매체가 다변화되면서 우리의 세상과 그 안의 문제들은 하나의 관점으로 온전히 수렴되지 않고, 선명하게 가시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러한 매체가 등장하기 전에 ‘세상의 창’을 자처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던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여전히 보이는 것에만 집착한다는 인상을 준다.


예를 들어 환경 문제를 다루는 섹션에서는 지구온난화와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등 다분히 사진으로 시각화될 수 있는 문제만 강조된다. 반면 사진으로 보여주기 힘든 초미세먼지나 방사능의 문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우리가 직접 볼 수 없었던 세상이 모든 곳을 시각화하는 데 기여했다면, 여기서 이런 반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 시각화 과정의 관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2018년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편집장 수잔 골드버그(Suzanne Goldenberg)는 “우리는 수십 년간 인종차별주의자였다. 우리는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 조사 결과 1970년대까지 유색인종을 향한 부정적인 편견을 담은 기사를 싣는 한편 백인이 사는 세계는 기술과 문화 등 수준이 매우 높은 곳으로, 유색인종 사회는 발달이 덜 된 곳으로 그려왔던 사실이 밝혀졌다. “부끄러운 과거와 마주하고 이를 반성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더 나아질 것을 증명하겠다”라고 덧붙인 고백의 미덕을 살리려면, 이 사진전에 다음과 같은 섹션이 추가돼야 하지 않을까.


‘내셔널지오그래픽이 보지 못했던 것, 잘못 보여준 것들.’

납작한 상상으로 찍은 사진

ⓒ김덕원

해질녘 넓은 들판에 ‘보름달 서비스(Full Moon Service)’라고 적힌 트럭 한 대가 서 있다. 초승달이 박힌 하얀 모자와 유니폼을 입은 한 여성이 트럭에 실린 달을 옮겨 나른다. 그 뒤로 같은 차림새의 다른 여성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 하늘에 보름달을 설치하고 있다.


<에릭 요한슨 사진展:IMPOSSIBLE IS POSSIBLE>의 대표 작품이다. 사진전의 제목답게 현실에서 불가능한 장면들이 전시장에 아기자기하게 펼쳐진다. 스웨덴 출신의 사진가이자 리터칭 전문가 에릭 요한슨의 작품을 국내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대중 친화적인 콘텐츠와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흥행 중이다. 정교한 포토숍 실력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와 스웨덴에서 공수해 온 오리지널 프린트는 눈을 즐겁게 한다. 여기에 작품마다 아이디어가 담긴 스케치와 제작 과정이 담긴 비하인드씬 필름, 그리고 실제 사용한 소품까지 더해져 작품을 보다 입체적으로 만날 수 있다.

ⓒ김덕원

비하인드씬 필름에서 자신의 작품에 관해 설명하는 에릭 요한슨의 어조는 경쾌하고 친절해 호감을 더한다. 이처럼 흥행 요소를 두루 갖춘 전시에서 강조되는 것은 ‘상상을 찍는 사진작가’라는 메인 카피에서 알 수 있듯이 ‘상상’이다. 전시 주최 측의 설명대로 에릭 요한슨의 작품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면, 또 현실에서 불가능한 장면을 이미지에서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상상’이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따라온다. 그 ‘상상’은 정말 특별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에릭 요한슨의 작품 이미지를 구성하는 상상이란 클리셰한 구석이 많다. 그가 만든 작품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작가들과 이미지가 많기 때문이다. 제리 율스만(Jerry N. Uelsmann)이나 로버트 파커해리슨(Robert ParkeHarrison) 같은 사진가들, 그리고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나 에셔(Maurice Cornelis Escher) 등과 같은 화가들, 또 ‘초현실주의’ 해시태그로 검색하면 무수히 나올 인스타그램 이미지들까지. 흔히 초현실주의풍으로 분류되는 이미지들이 흔히 구사하는 몇 가지 클리셰가 있다.

ⓒ김덕원

예를 들어 낮과 밤 또는 자연과 인공물, 상하좌우 등 서로 모순되거나 상반된 요소를 병치하는 것, 또 현실에서 작은 것을 이미지에서 아주 크게 묘사하는 식의 스케일 역전 등이다. 요한슨의 작품들도 이러한 패턴을 반복하거나 조합하는 식으로 구성된다. 여러 번 연출과 촬영을 거듭하고 포토숍에서 복잡한 조합을 수행하는 방식은 광고 사진에서는 매우 일반적인 프로세스이기도 하다. 때문에 요한슨의 상상력과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이 매우 특별하고 기상천외하다는 식의 평가나 의미부여는 과하다.


오히려 요한슨 작업의 미덕은 다른 데에 있다. 정교한 포토숍 실력을 바탕으로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는 클리셰들을 잘 버무렸다는 점이다. 초현실주의풍 작품의 경우 내용적인 측면에서 고도화된 상상력을 발휘하거나, 형식적인 측면에서 구분할 수 없을 만큼 고도화된 이미지 조작을 구현하면 관객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되고 이러한 상상은 허황된 망상이 되기 쉽다. 반대로 관객들이 요한슨의 이미지에 소통하고 공감하는 이유는 언젠가 한 번쯤 비슷한 상상을 해 봤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해 봤던 ‘상상’이라면 특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상상으로만 그친 것을 우리를 대신해 이미지로 구현했다는 점에서는 특별하다.

ⓒ김덕원

이러한 측면에서 요한슨의 작업 중에서 가장 특별하게 다가오는 사진은 가장 평범한 장면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나무 보트 위에서 할아버지와 낚시하고 물고기를 구워 먹는 모습이 그렇다. 당연히 나무 보트에서 불을 피울 수는 없다. 짐작건대 작가는 어릴 적 추억을 조합해 이 사진을 만들었을 것이다. 할아버지와 보트를 타고 낚시했던 추억, 그리고 뭍에 나와 잡은 물고기를 함께 구워 먹었던 추억. 어느새 어른이 돼 버린 요한슨은 유년 시절의 자신 그리고 함께 낚시를 떠났던 할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없으리라. 이럴 때 그들을 다시 만나게 해 주는 상상은 기상천외한 발상보다는 애틋한 시도에 가깝다.


글 박지수 보스토크 매거진 편집장 사진 GFNC, 씨씨오씨


예술의 전당 :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9년 9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