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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꿈꾸는 이성, 사고하는 감성

by예술의전당

<마티아스 괴르네, 조성진 그리고 슈베르트> 9.18(수) 콘서트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9.29(일) 콘서트홀


2019년 가을을 여는 두 개의 연주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낭만의 시작점에 서 있던 작곡가와 낭만의 절정에서 고전을 외치던 작곡가.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와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슈베르트를, 지휘자 정명훈과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함께 브람스를 연주한다.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는 피셔 디스카우의 제자로 독일 리트(Lied, 독일 예술가곡)의 정통을 계승하고 있으며, 강렬함에 내재된 부드러운 음색으로 사랑받고 있다. 1990년대부터 리트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등장해 이후 오페라 가수로 무대영역을 확장, 두 무대를 동시에 섭렵하고 있는 이 시대의 히어로다. 조성진의 피아노와 함께 슈베르트의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무대는 우리가 괴르네를 한층 더 가까이에서 깊게 알아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 국내에서도 각광받는 슈베르트 연구의 대가인 이안 보스트리지의 해석이 사색적이며 슈베르트를 향한 끝없는 탐구라면, 괴르네는 슈베르트의 진심에 자신이 갖고 있는 진솔함을 덧입히는 방식이다.

노래하는 피아노, 예술가곡을 완성하다

베토벤이 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에 ‘아리에타(Arietta, 작은 노래)’를 명시한 것은 ‘노래하는 것’이 낭만주의 피아노 음악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일깨웠다는 점에서 서양음악사에서 큰 의미가 있다. 또한 성악작품에서 피아노가 차지하는 비중을 정착·확대하는 시발점이 된 작곡가가 바로 슈베르트다. 피아노가 이전까지의 성악곡에서 단순히 화성과 리듬으로 노래를 받쳐주는 역할을 했다면, 예술가곡에서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회화적인 효과를 보여주는 능동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노래와 동등한 위치에서 시와 노래가 다하지 못한 부분, 즉 프롤로그(Prologue, 전주)나 인터메조(Intermezzo, 간주)와 에필로그(Epilogue, 후주)를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마티아스 괴르네 Matthias Goerne ⓒCaroline de Bon

2016년, 괴르네가 1958년 베르나르 쿠타스가 설립한 음반사 아르모니아 문디 레이블(Harmonia Mundi)로 출시한 슈베르트 가곡 160여 곡의 주옥같은 레퍼토리에서 호흡을 맞춘 피아니스트들의 이름만 열거해도 웬만한 연말 시상식을 방불케 한다. 그는 이 음반에서 에센바흐(Christoph Eschenbach), 도이치(Helmut Deutsch), 레온스카야(Elisabeth Leonskaja) 외에 여러 연주자와 함께하면서 한층 더 두터운 예술적 성과를 거뒀다는 평을 받고 있다.

조성진 Seong-Jin Cho ⓒHarald Hoffmann / DG

괴르네의 이번 한국공연 파트너는 조성진이다. 한국 공연에 앞서 유럽 투어로 만난 괴르네와 조성진. 이 공연에서 유럽의 언론들은 괴르네에게는 “몇 번을 들어도 경탄할 수밖에 없다”(Opera Today)는 평을, 조성진에게는 “괴르네의 강렬함과 성숙한 통찰력에 뒤지지 않는 연주”(Music OMH)라는 평을 남겼다.


언어의 미학과 인성(人聲)의 호흡을 통해 얻는 음악적 사고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음률이 섞인 언어, 딕션의 맺고 끊는 것에서 오는 기악적이지 않은 호흡은 때때로 기악곡의 프레이징에서 자연스러움과 인간다움을 발생시킬 때도 있다. 뤼베크, 콜린, 슈폰, 마이어호퍼, 쇼버, 괴테, 슐츠 등 독일 문호들의 시에 슈베르트의 음상(音像)을 커버한 작품들을 얼마만큼 깊이 해석해 낼지를 눈여겨봐도 좋겠다.

낭만사조의 두 돌연변이

슈베르트가 가곡사에 남긴 업적은 실로 그 가치가 크다. 그의 리트는 철학적이고도 아름다운 가사와 선율이 결합된 시와 노래, 악기가 혼연일체되는 예술가곡(어원과 장르의 비중, 성격상 사실 자제해야 할 단어다)의 시초가 됐다. 이후 슈만, 브람스, 볼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의 가곡은 슈베르트로부터 물려받은 지분이 크다.


슈베르트가 서양 낭만주의 음악의 시작점에 있었다면, 낭만의 정점에 서 있던 남자는 브람스이며, 브람스의 교향곡으로 들어가는 관문에 빠질 수 없는 인물 중 하나는 베토벤이다. 몇 세기를 지나오면서 누군들 안 그러겠냐만, 슈베르트와 브람스의 베토벤 사랑은 각별하기로 유명하다. 슈베르트는 서른한 살 마지막까지 존경하던 베토벤의 이름을 외쳤다. 그는 자신의 바람대로 그토록 존경하던 베토벤이 묻힌 빈 벨링크 공동묘지에 안장된다.


브람스의 교향곡 스토리도 웬만한 소설과 영화는 저리 가라 할 정도다. 브람스에게 베토벤은 거대한 빛인 동시에 오를 수 없는 거대한 산과도 같았다. 1번 교향곡이 첫 스케치에서 완성되기까지는 2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그마저도 베토벤을 너무나 의식해 그만의 캐릭터가 베토벤에 숨어든 것 아니냐는 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당대의 명지휘자이자 평론가인 한스 폰 뷜로(Hans von Bülow)의 “우리는 드디어 10번 교향곡을 얻었다”는 말로 브람스는 음악인생에 복선을 그리게 된다. 베토벤의 재래再來로, 바그너와 리스트에 대항하는 신고전주의로, 전통과 계승의 최전선에서 분투하며 자신을 연마하고 담금질한다. 단 네 작품의 이 완벽한 교향곡(슈만의 교향곡이 네 작품인 것과도 연관되는 부분), 바흐-베토벤-브람스로 이어지는 독일 음악의 ‘GREAT 3B’는 독일음악은 물론 서양음악사 전반에 위대한 연보를 형성하게 된다.

슈베르트에 기대어 브람스를 듣다

1548년 궁정악단으로 시작돼 471년을 쉼 없이 달려온 세계 오케스트라의 산 역사,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는 정명훈의 지휘와 김선욱의 피아노 협연으로 4년 만의 내한공연을 갖는다.


2012년부터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 그 정통성을 이어가고 있는 마에스트로 정명훈은 본인의 주요 레퍼토리 중 하나인 브람스, 그중에서도 교향곡 4번(작품번호 98)을 선보인다. 또 협연에는 음악에 대한 진중한 접근으로 무르익은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피아노 협주곡 1번(작품번호 15)을 연주한다.

정명훈 Myungwhun Chung ⒸMatthias Creutziger

흔하지만 결코 흔할 수 없는 레퍼토리, 정명훈의 브람스를 들을 때마다 그것이 새롭고 깊어지는 이유는 해석과 연주가 갖는 이상향에 기초할 것이다. 이성은 꿈꾸고 감성은 사고하는 조화 속에 깃든 열정이 듣는 이의 시간을 품격 있게 함과 동시에, 악보에 기입되지 않은 새로운 의미 하나하나를 찾아 나가는 연주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음악의 흐름은 넉넉하고, 그 속에서 인생을 관조하는 적적함 같은 것이 아련히 피어난다.

김선욱 Sunwook Kim ⒸMarco Borggreve

베토벤·슈만·브람스의 협주곡으로 꾸준한 자가발전을 이루고 있는 김선욱은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하는데, 김선욱이 국내 무대에서 이 곡을 연주하는 것은 2006년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 직후인 2007년과 10년이 지난 2017년 드레스덴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의 협연, 그리고 이번 무대까지 단 세 번뿐이다. 김선욱은 과거 브람스에 대해 “하나의 음표도 낭비하지 않고 완전한 음악을 설계한 완벽주의자”라고 표현한 바 있다.


2017년 드레스덴필하모닉오케스트라(지휘 미하일 잔데를링)와 협연하며 두 번째 악장에서 극강의 피아니시시모로 감싸진 따뜻한 사운드를 선사했던 그가 이번에는 어떤 또 다른 해석으로 브람스를 마주하게 만들지 궁금하다.


세상에서 가장 우둔한 음악듣기가 ‘계절에 빗대어 감상하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할 얘기다. 계절이 돌아오는 대륙에 사는 것도 축복, 그 계절에 듣고 싶은 음악이 있다는 것도 축복, 그리고 순간을 빛내 줄 음악가가 있다는 것도 축복이다. 꿈꾸는 이성, 사고하는 감성. 자, 슈베르트와 브람스를 마중 나갈 시간이다.


글 김은중 음악칼럼니스트 사진 크레디아, 빈체로


예술의 전당 :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9년 9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