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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발레 '춘향' & '심청'

태생부터 남다른
한국 창작 발레의 품격

by예술의전당

발레 <춘향> 10.4(금) - 6(일) & 발레 <심청 > 10.11(금) - 13(일) 오페라극장

 

유니버설발레단이 창단 35주년 기념으로 창작 발레 시리즈 두 편을 연이어 무대에 올린다. 10월 4일에서부터 6일까지는 발레 <춘향>이, 11일에서부터 13일까지는 발레 <심청>이 무대에 오른다. 현시점 창작 발레의 최대치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유니버설발레단(UBC)의 대표작 <춘향>과 <심청>은 태생부터 남달랐다. ‘창작 발레 초연이니까….’라며 접어줄 필요가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창작 발레는 대부분 ‘한국적인 소재’를 녹여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그러다 보니 억지스러운 이야기나 동작을 짓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하지만 발레 <춘향>과 <심청>은 우리 고전을 세련되게 재해석한 뒤 매끈하게 다듬은 발레가 세계에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나가고 있다. 눈은 부시고, 귀는 황홀하며, 마음은 어릿어릿하다. 한류에는 K-팝뿐만 아니라 K-발레도 있었다. 기획부터 세계무대를 염두에 두고 제작해 창작 발레의 콤플렉스를 과감하게 날려 버린 작품들이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시대에 맞게 수정 작업을 해 왔다.

몸으로 쓰는 멜로, <춘향>

유니버설발레단 <춘향> ⒸKyoungjin Kim

유니버설발레단의 두 번째 창작 발레인 <춘향>은 2007년 초연했다. 초대 연출은 배정혜 국립무용단 전 예술감독이 맡았다. 고전문학 「춘향」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입고, 차이콥스키의 숨겨진 명곡으로 치장했다. 새로운 신고전주의 발레의 탄생이다. 유니버설 발레단 유벙헌 예술감독은 차이콥스키의 만프레드 교향곡 ‘템페스트’, 교향곡 1번, 조곡 1번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을 작품의 주요한 순간에 삽입했다.

ⓒUniversal Ballet

이 곡들은 해당 장면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섬세하고 강렬한 드라마를 만들어 냈다. 특히 춘향과 몽룡의 설렘과 긴장(초야)-애틋한 슬픔(이별)-격정적 환희(해후)로 이어지는 세 장면의 2인무는 몸으로 쓰는 멜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이라이트는 1·2막 마지막이다. 춘향과 몽룡의 2인무가 드라마틱하게 병치된다. 1막의 마지막 2인무는 두 사람이 합방하는 장면으로, 원작의 노골적인 성 묘사를 우아하면서도 다양한 몸놀림으로 품격 있게 승화했다. 서로의 몸에 기대는 다양한 동작은 에로티시즘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야하다기보다 아름답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앞선다. 2막의 마지막 2인무는 춘향이 변학도에게 고초를 당한 뒤 두 사람이 재회하는 장면으로, 춘향과 몽룡의 애틋함이 절절한 동작에 배어 나온다.

 

이번 <춘향>은 그 제목 때문에 여성 무용수들의 발레 동작이 도드라질 것처럼 여겨진다. 물론 천과 부채 등을 이용한 여성 무용수들의 춤이 돋보이고, 화려한 테크닉의 기생무가 보기(寶器)다. 하지만 과거시험이나 암행어사가 출두하는 장면 등에서 강렬함을 뽐내는 남성 무용수들의 군무는 극중 음양의 균형을 맞춘다. 장원급제와 어사출두 장면에서는 극강의 카리스마를 볼 수 있다. 2014년에는 창단 30주년을 맞아 무대 미술가 임일진, 패션 디자이너 이정우가 무대와 의상을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춘향>이 발레계에 영향을 미친 공로 중 하나는 한복이 발레에 참 잘 어울리는 옷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만든 점이다. 춘향이 초반에 입고 나오는 개나리꽃 색에 진달래 색을 점찍은 듯 청초한 한복은 눈을 현혹한다. 초연부터 의상을 맡은 이정우 디자이너는 “발레가 ‘신체 라인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한복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전한다.

 

<춘향>은 세계 각지에서 공연을 했는데, 해당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는 유연함도 돋보였다. 2015년 오만 무스카트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한 전례가 대표적이다. ‘반드시 어깨를 가려 주세요’, ‘19세 미만 관람 불가 장면은 안 됩니다’, ‘음주를 상징하는 어떠한 소품도 금물입니다’ 등은 당시 오만 정부가 유니버설발레단이 <춘향>을 공연할 때 중동의 문화적 특수성을 고려해 달라며 정중히 수정을 요청한 부분이다.

 

이에 따라 당시 무스카트로열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른 <춘향>은 중동 버전으로 바뀌었다. 본래 기생들은 어깨를 완전히 드러내거나 민소매 의상을 입었다. 하지만 이 공연에서는 소매가 긴 저고리를 입었다. 이슬람 율법상 노출이 심한 의상은 금물이기 때문이다. 춘향과 몽룡의 사랑이 농염하게 펼쳐지는 2인무에서 몽룡이 춘향의 옷을 벗기는 장면을 위해서 서울 공연에는 없던 긴 장막을 설치했다. 마지막으로 변학도가 기생들과의 놀이에서 술병을 들고 등장하는 장면도 수정됐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일절 술을 마실 수 없으므로 술병이나 취한 듯한 연기도 선보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난 뒤 객석에서는 박수갈채가 끊이지 않았다.

 

<춘향>은 2018년 콜롬비아 보고타에 위치한 훌리오마리오산토도 밍고마요르극장에도 초청돼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들었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2018년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올해를 빛낸 안무가상’, 2019년 이데일리 문화대상 무용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효 사상이 발레로, <심청>

유니버설발레단 <심청> ⒸKyoungjin Kim

유니버설발레단의 또 다른 대표작 <심청>의 역사는 더 거슬러 올라간다. 1986년 초연한 이후 ‘발레의 성지’라 불리는 프랑스 파리와 러시아 모스크바를 비롯해 세계 15개국 40여개 도시에서 K-발레를 알렸다. 특히 2001년에는 워싱턴 케네디센터와 뉴욕 링컨센터 등 미국 3대 오페라극장에 입성했다. 서양에서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효(孝) 사상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에 화려한 무대 세트, 다채로운 의상, 수준 높은 기술을 담아내며 주목받은 결과 ‘발레의 성공적인 역수출’ 전례를 만들었다는 평을 받았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2017년 제3회 예술의전당 예술대상에서 ‘대상’과 ‘최우수상’을 동시에 석권하는 쾌거도 거뒀다. 안무는 유니버설 발레단 초대 예술감독 애드리언 델라스(Adrienne Dellas)가 맡았고, 대본은 ‘한국 문화예술계의 영원한 르네상스맨’으로 불린 문화예술 평론가 고(故) 박용구가 썼다. 음악에는 케빈 바버 피카드(Kevin Barber Pickard)가 참여했다. 이후 약 30년 동안 안무·연출·무대·의상을 지속적으로 보완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창작 발레로 자리매김해 왔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인당수에서 선원들의 역동적인 군무와 영 상으로 투사되는 깊은 바닷속 심청, 바다 요정과 왕궁 궁녀들의 우아한 군무, 그리고 달빛 아래 펼쳐지는 ‘문라이트 파드되’가 명장면으로 꼽힌다.

한국 창작 발레의 답

ⓒUniversal Ballet

차이콥스키의 숨겨진 명곡으로 구성된 <춘향>과 피카드가 작곡한 <심청>, 두 작품 모두 풀 사이즈 오케스트라 편성을 요구한다. 특히 이번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를 위해 모스크바 볼쇼이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를 두루 거친 미하일 그로노브스키(Mikhail Granovsky)가 지휘를 맡는다. 또 이번 공연에는 유니버설발레단이 자랑하는 주역 무용수들이 총출동한다. <춘향>에서는 수석무용수 홍향기와 이동탁이 호흡을 맞추고, <심청>에는 강미선과 홍향기, 김유진이 나선다.

 

마린스키발레단에서 초청한 특별 게스트도 만나볼 수 있다. 2010년 <지젤>과 2012년 <백조의 호수>로 내한한 바 있는 ‘러시아 발레의 황태자’ 블라디미르 쉬클리야로프(Vladimir Shklyarov)다. 그는 2018년 유니버설발레단 스페셜 갈라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발코니 파드 되’를 선보였다. 이번에는 <춘향>의 몽룡 역으로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강미선과 호흡을 맞춘다.

 

해외의 내로라하는 무용수도 이처럼 <춘향>에 기꺼이 출연한다. <춘향>과 <심청>은 유니버설발레단 월드투어의 메인 레퍼토리로서 한국의 발레, 나아가 한국의 정서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다. 연인과 가족이 펼쳐 나가는 아름다운 드라마에서 ‘효(孝)’ ‘애(愛)’ ‘인(仁)’ ‘예(禮)’ 등의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자리다. 단순히 공연을 선보인 것이 아니라 예로부터 쌓아 온 우리 문화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세계에 던져온 것이다. 특히 국제적으로는 관객에게 ‘세련된 전통미’를 선사해 왔다.

 

진정한 ‘뉴트로(New-tro)’란 이런 게 아닐까.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인 뉴트로는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을 가리킨다. 뉴트로가 최근 유행하는 문화로 부상한 요즘, 발레계에서는 그렇게 명명하지 않았을 뿐이지, <춘향>과 <심청>을 중심으로 이 문화 를 직접 즐겨 오고 있었다.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도 두 발레 작품으로 배워 왔다.

 

유니버설발레단은 1990년대 후반부터 해외에서 공연하며 ‘발레 한류’를 이끈 탄탄함으로 세계적 명성을 쌓아 왔다. 외국인 무용수들의 활발한 입단으로, 말 그대로 ‘국제적 발레단’이 됐다. 문 단장은 1998년 미국에 갔을 때 “한국에 발레가 있어요?”라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고 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춘향>과 <심청>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글 이재훈 뉴시스 기자 사진 유니버설발레단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9년 10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