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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현실과 회상, 꿈과 환상으로 펼쳐지는 세 가지 사랑 이야기

by예술의전당

국립오페라단 <호프만의 이야기> 10.24(목) - 27(일) 오페라극장

 

올해는 프랑스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1819~1880) 탄생 200주년의 해다. 국립오페라단은 이를 기념해 그의 대표작 <호프만의 이야기>를 10월 24일부터 27일까지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린다. 제목 속 호‘ 프만’은 독일 낭만주의문학 초기에 독특한 판타지 장르를 개척한 E.T.A. 호프만(Ernst Hoffmann)(1776~1822)을 가리킨다. 그의 단편 세 편을 옴니버스로 묶으면서 원작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다.

 

<호프만의 이야기>는 우리 관객에게 낮선 편이지만 세계적으로 인기인 오페라다. 1951년에는 영국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발레영화 <분홍신>의 감독 마이클 포웰(Michael Powell)과 에머릭 프레스버거(Emeric Pressburger)가 영국 로열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 모이라 시 어러(Moira Shearer)를 다시 불러 스텔라와 올랭피아 역을 맡겼다. 거장 마틴 스코세지가 가장 좋아한다고 꼽은 이 영화는 저예산으로도 원작의 상상력 넘치는 기괴함을 효과적으로 재현했다.

원작자 E.T.A. 호프만과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1막 무대 디자인 ©뱅상 르메르

누구에게나 첫사랑의 흔적은 무척 아름답게, 그러나 아픈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첫사랑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모든 연애를 첫사랑처럼 반복하다가 좌절하는 사람도 있다. 호프만이 그랬다. 프로이센의 관리였다가 나폴레옹 전쟁으로 실직한 그는 음악에서 길을 찾아 작곡가와 지휘자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가 1814년 베를린의 재판관으로 임용되면서 안정된 삶을 보장받는다. 그러나 저녁이면 술독에 빠져 지내는 주당이요, 한편으로는 작가이자 음악가, 심지어 화가까지 전방위적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한다.

 

본명은 ‘에른스트 테오도르 빌헬름 호프만’인데, 그중 ‘빌헬름’을 빼고 ‘아마데우스’로 바꿔 모차르트에 대한 숭배를 담았을 정도로 음악에 열광적인 작가였다. 호프만은 그의 초상화로 짐작할 수 있듯이 외모가 볼품없었다. 그래서 여인의 진실한 사랑을 얻지 못했다. 남긴 동화 와 소설 상당수가 이루지 못한 기괴한 연애담인 것은 이 때문이리라.

 

한편 독일에서 태어났으나 학창 시절 파리로 옮긴 자크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는 유태인 혈통답게 사업 수완이 뛰어났다. 원래 첼리스트였지만 만국박람회를 보러 파리에 전 세계 부자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고 오페라보다 가볍고, 쉽고, 대중적인 ‘오페레타(Operetta)’ 를 개척했다. 심지어 자기 소유의 전용극장도 차렸다. 엄청난 다작의 오페레타로 파리의 극장가를 석권했고, 빈과 베를린·런던의 작곡가들도 오펜바흐 스타일의 오페레타를 모방하기에 바빴다.

 

오페레타는 오늘날의 뮤지컬에 해당한다. 그래서 관객들은 오페레타를 재미있게 보고, 오펜바흐가 천재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위대한 작곡가로는 인정하지 않았다. 지금도 뮤지컬의 작곡자가 누구인지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오펜바흐는 이게 안타깝고 억울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오페라를 한 편 쓰겠다고 결심한다. 그것이 <호프만의 이야기>다. 하지만 완성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 일부가 미완성인 유작으로 남았다. 초연도 오펜바흐가 죽은 이듬해인 1881년에 이루어졌다.

호프만이 회상하는 세 명의 옛사랑과 현재의 여자

(좌)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2막 무대 디자인. (우)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3막 무대 디자인 ©뱅상 르메르

판본에 따른 차이가 있지만 <호프만의 이야기>는 대체로 프롤로그와 3개의 막 그리고 에필로그로 구성돼 있다. 또는 5막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프롤로그에서는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에필로그에서는 현재로 돌아오는 ‘플래시백’ 구조로 진행된다. 현재 시점에서 호프만의 연인은 밀라노 출신의 프리마 돈나인 ‘스텔라’로, 뉘른베르크에서 <돈 조반니>에 출연 중이다. 그런데 막간에 극장 앞 술집에 모여든 젊은 관객들이 호프만에게 연애담을 이야기해 달라고 조른다.

 

그는 술에 취한 채 아득한 옛사랑의 추억을 정신 나간 사람처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1막의 자동인형 올랭피아, 2막의 폐가 약한 성악가 지망생 안토니아, 3막에서는 베네치아의 유녀(遊女) 줄리에타가 그가 회상하는 여인들이다. 참고로 현재 애인 스텔라를 제외하고 세 여인인 것은 돈 조반니의 엽색 행각 대상을 돈나 안나, 돈나 엘비라, 체를리나로 압축한 방식과 흡사하다. 호프만의 모차르트 숭배를 오페라에 반영한 셈이다.

 

올랭피아는 아름답지만 영혼이 없는 여인을 상징한다. 안토니아는 반대로 영혼이 아름답지만 몸이 너무 약한 여인이다. 줄리에타는 열정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파멸시키는 팜므 파탈이다. 물론 호프만은 그때마다 이 여인들에게 몰두하지만 악마적인 존재 때문에 매번 사랑에 실패한다. 인형의 눈을 만든 광학기술자 코펠리우스는 올랭피아를 망가뜨리고, 안토니아의 주치의였던 미라클 박사는 병약한 여인에게 노래를 강요하며, 베네치아의 포주 다페르투토는 줄리에타를 꼬드겨 거울에 비친 호프만의 모습(영혼)을 빼앗으려 한다.

 

에필로그에서는 공연을 마친 스텔라가 호프만을 찾아오지만 술에 취한 채 횡설수설하는 것에 실망해 부와 권력을 가진 상원의원 린도르프의 유혹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모든 여인의 사랑을 잃은 호프만의 곁에 끝까지 남는 것은 친구 니클라우스다. 메조소프라노가 부르는 바지 역(Travesti)인 니클라우스의 정체는 뮤즈, 즉 예술의 여신이다. 그는 탈진한 호프만에게 “그러나 네게는 예술이 남아 있다”라고 위로한다. 여운과 감동이 남는 피날레가 아닐 수 없다.

판본의 문제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의상 디자인 ⒸClara Peluffo Valentini

이 오페라는 줄리에타 막이 미완성으로 남은 탓에 안토니아 막과 줄리에타 막의 순서를 바꾼다든지, 줄리에타 막의 음악 일부를 다르게 한다든지 하는 선택이 가능해졌다. 제작자나 연주가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는 덕분에, 또 관객 입장에서도 호기심이 발동하기 때문에 미완성 부분은 이 오페라의 매력이 돼 버렸다. 참으로 독특한 결과다. 판본에 대한 주요 내용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1881년 초연 당시 에르네스트 기로가 오케스트레이션과 레치 타티보를 완성했는데, 당시에는 줄리에타 막 자체를 아예 삭제했다. 따라서 그 유명한 ‘뱃노래’도 안토니아 막에 삽입됐다. 안토니아막의 배경이 원래 뮌헨임에도 초연판에서 베네치아로 옮긴 것은 뱃노래를 억지로 삽입한 바람에 생긴 일이다. 약간의 팁을 제공하자면 이 ‘뱃노래’는 오펜바흐가 새로 작곡한 곡이 아니다. 1864년 빈에서 독일어로 초연된 <라인의 요정>이란 오페라에 썼던 것을 재활용했다. 라인강이 베네치아 운하로 치환된 셈이다.

 

한편 초연판이 불완전했기 때문에 이후에도 계속 개정이 있었고, 기로에 의한 수차례 개정판들을 비롯해 수많은 판본이 등장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줄리에타 막도 복구된다. 그러던 중 1907년부터 기로의 다섯 번째 개정판 출판사의 이름을 딴 ‘슈당 판’이 결정판으로 간주됐고, 오펜바흐의 원전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슈당판에서는 막의 순서가 올랭피아-줄리에타-안토니아로 정해졌다.

 

한편 2차 세계대전 이후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려는 작업이 활발히 진행됐고, 그에 따른 판본들이 나타난다. 그중 1978년에 프리츠 외저(Fritz Oeser)가 오펜바흐의 의도에 상당히 근접한 판을 내놓았고, 이것을 계기로 1980년대에는 마이클 케이(Michael Kaye)에 의해 원전에 보다 근접한 판본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케이는 오펜바흐가 다른 작품에 남긴 방식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스케치들을 토대로 기로의 영향을 최대한 줄이고, 오펜바흐의 색깔을 최대한 살린 판본을 만들었다. 외저와 케이의 판본에서는 올랭피아-안토니아-줄리에타의 순서로 돼 있고, 이것이 오펜바흐의 원래 의도라고 본다. 이번 국립오페라단 공연에서는 외저 판본을 기본으로 하되 슈당 판본이 부분적으로 가미될 예정이다. 줄리에타 막의 음악이 상당히 다른 케이 판본에 비하면 오페라 팬에게는 상대적으로 익숙하게 다가올 것이다. 제작진과 출연진도 화려하다. 역시 프랑스 오페라인 2018년 국립오페라단 <마농>으로 호평을 받은 세계적 명성의 뱅상 부사르(Vincent Boussard)가 연출을 맡았다. 의상과 무대 디자인을 맡았던 클라라 펠루포(Clara Peluffo)와 뱅상 르메르(Vincent Lemaire)도 다시 참여한다. <마농>은 물론 올봄 <윌리엄 텔>에서 실력을 보여준 세바스티안 랑-레싱(Sebastian Lang-Lessing)이 지휘를 맡는다.

 

호프만의 모든 여인과 모든 악마를 각각 한 명의 소프라노와 한 명의 베이스가 노래하는 것은 바람직한 상징인 동시에 무척 어려운 난제인데, 국립오페라단도 이에 도전했다. 소프라노 크리스티나 파사로이우(Cristina Pasaroiu)와 윤상아가 호프만의 모든 여인으로, 베이스 심인성과 양준모가 다양한 모습의 악마로 나서는 것이다. 타이틀 롤인 호프만 역으로는 세계적 극장에서 활동 중인 테너 장 프랑수아 보라스(Jean-François Borras), 매력적인 음색과 가창력을 자랑하는 국윤종을 만날 수 있다.

 

글 유형종 칼럼니스트 사진 국립오페라단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9년 10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