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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보기, 쓰기, 읽기의 서스펜스

by예술의전당

스페인을 대표하는 현대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 그 세계 안에 살고 있는 우리에 대해 매우 철학적이면서도 지극히 연극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만큼 마요르가에게 지적 사유와 연극 보기는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연출가 손원정

2006년 초연한 <맨 끝줄 소년>에서 마요르가는 글쓰기라는 소재를 매개로 보는 것과 보이는 것, 가짜와 진짜, 예술과 현실의 본질을 검은 유머를 통해 캐묻는다.


한 소년이 있다. 말수도 적고, 친구도 적은 그는 항상 교실 맨 끝에 앉는다. 아무도 보지 않는 그곳에 앉아 그는 모든 것을 바라본다. 그는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는 반면, 윤리나 철학에는 관심이 없다. 개념이 아름다운 만큼 그에게 현실은 지루하고 의미 없다. 그런 그가 문학 수업을 통해 글쓰기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다. 이전까지 교실 끝에서, 공원 벤치에서 무심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만 하던 소년은 이제 그가 본 풍경을 글쓰기 재료로 삼는다. 그렇게 그는 본 것을 쓴다.


그는 쓰기 위해 봐야만 한다. 수학 과외를 핑계로 친구에게 접근해 친구 집에 들어간다. 그러고는 살펴본다, 평범한 가족의 모습을.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가족의 은밀한 진짜 모습을. 그러고는 다시, 쓴다. 그가 보고 쓴 것은 진짜인가, 아니면 그의 눈과 글을 통해 다시 만들어진 가짜인가?

허구와 실재 사이, 누구도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소년

한 중년 남자가 있다. 20년간 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친 그는 학생들의 한결같은 무식함과 한심하기 그지없는 작문 실력에 지쳐 있다. 아름다운 작가들의 세계에서 살 거라는 젊은 날의 희망과 달리, 그의 현실은 보잘것없다. 그러던 중 작문 숙제 한 장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이제껏 보지 못한 필력이다. 교실 맨 끝줄에 앉는 소년의 것이다.

클라우디오役 전박찬

남자는 소년의 글에 점점 매혹된다. 소년의 글을 탐닉하고, 글에 담긴 한 가족의 삶에 심취하며, 글쓰기 지도에 열을 올린다. 어떻게 하면 독자를 설득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이야기를 보다 그럴듯하게 쓸 수 있는지 소년에게 가르치려고 애쓴다. 소년과의 글쓰기 수업을 통해 남자는 다시 문학의 삶을 사는 희열을 느낀다. 문학은 허구이다. 허구는 안전하다. 따라서 윤리는 이 세계에서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남자를 더욱 소년의 글쓰기에 빠져들게 한다. 남자는 아내와 함께 소년의 글을 읽는다. 남의 삶에 은밀히 개입해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가족의 모습을 들춰내는 소년의 글은 남자의 아내를 경악하게 한다. 소년의 글 속에는 지극히 평범한 가족인 중년 남자, 중년 여자 그리고 고등학생 아들의 더없이 평범한 행동에 대한 냉소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문학교사 헤르만役 박윤희

남자의 아내는 소년의 시선이 불편하다. 그가 보기에 소년의 글은 위험하다. 그의 눈에 그것은 단순한 글이 아니다. 소년의 글은 실제로 한 가족을 위협할 수 있는 매우 무서운 도구이며, 그것은 글의 대상인 가족 개개인뿐 아니라 글을 쓰는 소년조차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를 멈출 수 없다. 소년이 쓴 글 속에는 다른 듯 닮아 있는 자신의 세계가 보이기 때문이다.

2017년 연극 <맨 끝줄 소년> 공연 모습, 에스테르役 김현영

반면 남자의 눈에 소년의 글은 글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사실보다 사실처럼 쓴 글이다. 소년이 보는 것은 글쓰기 재료일 뿐이며, 글은 본 것을 토대로 써 내려간 가짜다. 그렇기 때문에 불온해 보이는 소년의 글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바로 여기에서 마요르가는 우리에게 결코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글 속 현실과 글 바깥의 현실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둘은 별개의 것인가? 글 속 현실은 글 바깥의 현실에 진정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가? 궁극적으로 현실의 존재인 우리는 허구로부터 정말 안전한가? 이런 질문은 소년의 글을 예술 일반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우리는 연극 <맨 끝줄 소년>에서 소년의 글을 통해 예술과 현실의 상호 침투적 관계를 반성하도록 강요받는다.

클라우디오役 안창현

아이러니하게도 남자와 아내의 삶은 예술과 매우 가깝다. 명작으로 가득한 남자의 서재는 그가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거대한 방주方舟다. 그에게 현실은 추하고, 진정 아름다운 것은 예술 속에 있다. 그에게 진짜 같은 이야기가 중요한 것은 결국 그것이 가짜이기 때문이다. 진짜로 착각할 법한 허구의 세계는 그에게 진짜 현실 못지않게 중요하다.


갤러리 큐레이터인 남자의 아내는 예술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예술을 팔아 자신의 현실을 지속시키려고 애쓴다. 예술이 곧 그녀의 현실이다. 그녀의 예술이 이해받지 못하면 그녀의 현실은 망가진다.


점점 글쓰기에 몰입하는 소년에게 보는 것과 쓰는 것의 경계는 매우 희미하다. 그에게 글과 현실, 즉 예술과 현실은 구별되지 않는 하나의 세계다. 그는 스승처럼 자기가 쓰는 글 속으로 도피하고 탐닉한다. 이 세계 속에서 그는 한 가정의 파괴를 예감하고, 스스로의 개입을 정당화하며, 누군가의 구원을 희망한다. 그렇게 관찰자였던 그는 자기가 만든 세계에서 주인공이 되고자 한다. 단순한 글로 출발한 글이 그의 전 세계가 되기 시작하면서 안전하던 현실은 위협받기 시작한다.

2017년 연극 <맨 끝줄 소년> 공연 모습, 후아나役 우미화

고요하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 이유

연극 <맨 끝줄 소년>에서 벌어지는 일은 별로 없다. 보고, 쓰고, 읽는 게 전부다. 소년의 눈에 비친 한 가족의 모습, 한 남자와 그의 아내가 읽는 글에 드러난 그들의 삶 역시 사소하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이 작품을 보면서 엄청난 몰입감과 함께 묘한 불편함을 느낀다. 그것은 거꾸로 단순한 보기와 쓰기와 읽기, 즉 예술 만들기와 예술 보기가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위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드러낸다.

2017년 연극 <맨 끝줄 소년> 공연 모습

예술은 그것이 허구이기 때문에, 그러나 현실을 소름 끼치게 닮은 허구이기 때문에 우리 삶에 밀착해 있는 것이다. 그 가짜의 세계가 우리의 진짜 세계 속에 침투할 수 있다는 감각이 어쩌면 <맨 끝줄 소년>의 가장 끔찍한 매력이 아닐까.


글 손원정 연출가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9년 11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