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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11월을 바라보는 네 개의 창

by예술의전당

<빈필하모닉오케스트라 & 크리스티안 틸레만> 11.1(금) 콘서트홀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 11.10(일) 콘서트홀

<안드라스 쉬프 & 카펠라안드레아바르카오케스트라> 11.12(화) 콘서트홀

<장한나 & 트론헤임심포니오케스트라> 11.13(수) 콘서트홀


음악을 사랑하는 많은 애호가에게 가을은 가장 행복한 계절이다. 음악계에선 여름을 ‘비수기’라 일컬을 정도이다 보니 제대로 된 공연을 보기 위해서는 가을이 오기까지 몇 달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날씨가 덥고 태풍도 많던 지난한 여름을 지나고 다가온, 이번 가을 우리 가슴을 뜨겁게 해 줄 네 편의 공연을 알아본다.

빈필하모닉오케스트라 & 크리스티안 틸레만

뮌헨 언론은 ‘까다롭고 지나치게 독일 정신을 강조하며’ 한때 카라얀의 부지휘자로도 활동한 베를린 출신 틸레만이 정말 뮌헨에 적합한 지휘자인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틸레만은 푸르트벵글러와 크나페르츠부슈 음반을 들으며 성장했고, 특히 브루크너와 바그너의 음악을 사랑했다. 그가 지휘하는 바그너 음악은 이미 바이로이트와 빈에서 큰 찬사를 받았다. – <세계의 오케스트라> 중, 헤르베르트 하프너

빈필하모닉오케스트라 ⓒDieter Nagl

11월 1일, 2019년 하반기에 계획되어 있는 가장 기대되는 공연 중 하나인 빈필하모닉오케스트라(이하 빈필하모닉)의 공연이 무대의 막을 올린다. 내한 공연 레퍼토리가 브루크너의 교향곡 8번임이 알려졌을 때 빈필하모닉을 사랑하는 관객과 수많은 관현악 애호가의 마음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현재 클래식 음악계를 이끌어 나가는 지휘자 중 브루크너를 가장 잘 다루는 지휘자, 브루크너의 교향곡 8번을 초연한 오케스트라의 공연이다.


오케스트라 순위를 매기는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지 모르지 않지만, 빈필하모닉은 이러한 새삼스러운 수식어를 지금까지 달고 다니는 유구한 전통에 빛나는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다. 특히 화려하고 세련된 연주법을 구사하며 시대가 요구하는 사운드에 맞춰 변모해 온 베를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음악감독에 따라 또는 시대에 따라 매력을 달리해 온 것과 반대로 단원을 중심으로 한 민주적 방식으로 운영되는 빈필하모닉은 언제나 ‘전통’과 ‘사운드’에 중심을 두고 있는 보수적인 오케스트라다. 그래서 오케스트라의 골수팬이 대부분 첫 손에 꼽는 것이 바로 빈필하모닉인 것이다.

크리스티안 틸레만(Christian Thielemann) ⓒDieter Nagl

현재 세계 음악계를 호령하고 있는 틸레만은 사실 음악적 스펙트럼이 대단히 좁은 지휘자다. 물론 카를로스 클라이버나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같은 지휘자도 지극히 제한적인 레퍼토리로 최고의 음악을 들려준 대표적인 지휘자이지만 틸레만은 이들과 비교해도 레퍼토리가 매우 협소한, 독일-오스트리아 음악 전통에 완전히 경도된 지휘자라고 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서 깊은 전통을 지닌 악단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2012년부터 함께하고 있는 그는 앞서 인용한 헤르베르트 하프너의 표현대로 브루크너와 바그너를 현세대에서 가장 잘 다루는 지휘자이다. 이러한 그가 이끄는 빈필하모닉과의 브루크너 교향곡, 그것도 작품 가운데 가장 장대한 규모를 자랑해 무대에 잘 오르지 않는 8번 교향곡이다. 이런 이유로 이번 공연은 반드시 봐야 할 귀한 공연이다.

야니크 네제-세갱 & 조성진 그리고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

과연 소리만으로 어떤 오케스트라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둘러싼 논쟁은 오케스트라가 세상에 존재하는 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중략) 한편 ‘제멋대로인 필라델피안’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필라델피아 사운드’를 내세우곤 한다. 이 말은 너무 격정적이고 화려하다는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기도 하고, 때로는 표현력이 뛰어나며 리듬감이 넘치고 멋지게 연주한다는 경탄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 <세계의 오케스트라> 중, 헤르베르트 하프너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 ⒸJessicaGriffin

오늘날 우리 세대에게 필라델피아란 저절로 크림치즈가 연상되는 단어지만, 몇 세대 전에는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의 ‘필라델피아 사운드’가 필라델피아를 대표했다. 실체가 아닌 소리가 도시를 상징한다는 것이 상상되는가? 그러나 스토코프스키가 확립한 굳건한 개성과 전통 위에 유진 오먼디가 포디움에 오르는 순간은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 사상 가장 성공적인 파트너십으로 손꼽히는 전설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유진 오먼디는 외향적 요소보다는 더욱 내밀한 오케스트라의 소리에 집중하고 바이올리니스트 출신답게 스트링 섹션의 유려하게 발산하는 화사한 소리의 집산을 통해 구름같이 풍부하고 부드러운 필라델피아 사운드를 완전히 정립했다. 수많은 명연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문화대혁명 이전 굳게 닫혀 있던 중국의 문을 열어젖힌 것도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였다. 스토코프스키와 오먼디 두 지휘자가 재임한 동안 그 어떤 오케스트라도 넘볼 수 없는 빛나는 아우라를 발산했고, 많은 클래식 음악 애호가는 오랫동안 그 혜택을 받았다.


필라델피아 사운드를 수식하는 단어 ‘화려함’, ‘밝음’, ‘격정’, ‘리듬감’, ‘유연함’은 오케스트라를 수식하는 최고의 찬사이다. 명실공히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는 당대에 가장 으뜸으로 손꼽을 수 있는 오케스트라였다. 엄밀히 말하면 이후의 무티 시대에서 직전의 뒤투아 시대는 오케스트라의 인기가 하강곡선을 그리던 시기다. 다만 2012년 음악감독에 부임한 야니크 네제-세갱 시대를 맞아 요즘 다시 상승 기류를 타고 있다. 네제-세갱 특유의 큰 스케일과 날렵하고 공격적인 시각이 어우러져 선보이는 연주마다 평단의 찬사를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

야니크 네제-세갱(Yannick Nezet Seguin) ⒸJanRegan, 조성진(Seong-Jin Cho) ⒸHolger Hage

2013년 발매된 음반 「봄의 제전」은 오케스트라가 도달한 최고의 기능미와 더불어 네제-세갱의 분석적 혜안이 잘 조합된 탁월한 연주다. 동반된 스토코프스키의 바흐 편곡집은 필라델피아 사운드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느껴진다. 더불어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 없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한다. 잘 연주되지 않는 마이너한 레퍼토리이지만 조성진만의 특별한 색채로 채울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이 젊은 네제-세갱이 일으키는 뉴 필라델피아 사운드와 어우러져 환상적인 연주가 될 전망이다. 이번 11월 10일 우리는 진일보한 필라델피아 사운드, 오래전 판타지아를 노래하던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를 기다려도 좋을 것 같다.

안드라스 쉬프 & 카펠라안드레아바르카오케스트라

2008년에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를 만난 이후 많은 연주회를 찾아보고 들었다. 쉬프의 베토벤은 투명하다. 베토벤의 음악 언어를 논리적으로 과하지 않게 정제한 해석이 정말 매력적이다. 베토벤이 악보에 써 넣은 페달을 완벽하게 지킬 뿐 아니라 대위법에 숨어 있는 멜로디까지 전달하는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선욱 피아니스트, 중앙일보 ‘19.8.26 인터뷰 중

안드라스 쉬프(Andras Schiff) ⒸPriska Ketterer, Luzern

안드라스 쉬프가 2004년부터 취리히톤할레관현악단에서 녹음한 ECM의 베토벤 소나타 전집은 소리와 방식에 관한 가장 탁월한 앨범이다. 소나타별 성격에 따라 뵈젠도르퍼와 스타인웨이를 골라 연주했으며, 지금까지의 관행에서 벗어난 원전에 대한 올바른 접근이 돋보이는 대가의 천착이 만들어낸 최상의 성과다.


사실 쉬프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은 베르나르트 하이팅크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가 함께 1996년에 이미 앨범을 녹음했는데, 쉬프가 독자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가 아닌 만큼 베토벤에 대한 연주관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대단히 훌륭한 연주이지만 ECM에서의 전집 녹음 이후 더욱 변화된 베토벤 음악관을 보여주는 쉬프를 만나 보려면 이번 공연을 반드시 봐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카펠라안드레아바르카오케스트라 ⒸAngelo Nicoletti

안탈 도라티가 뿔뿔이 흩어진 헝가리 예술가를 규합해 만든 필하모니아훙가리카(Philharmonia Hungarica), 이반 피셔와 졸탄 코치슈가 창단한 부다페스트페스티벌오케스트라, 그리고 오늘 소개할 카펠라안드레아바르카오케스트라(이하 카펠라안드레아바르카)는 모두 탁월한 헝가리 예술가의 영향력 아래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만든 단체다. 쉬프가 1999년에 창단한 카펠라안드레아바르카는 그가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주간에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을 연주하기 위해 아내인 바이올리니스트 유우코 시오카와 더불어 다른 오케스트라에 소속되지 않은 최정상 단원을 선별해 창단한 단체로, 이번 공연을 위해 함께 내한해 베토벤 협주곡 2·3·4번을 연주한다. 쉬프가 미세한 음표와 악상 기호 하나까지 분석해 촘촘한 점을 큰 그림으로 만들어내는 순간을 보고 싶다면 이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장한나 & 임동혁과 트론헤임심포니오케스트라

자신감 넘치고, 영민하며, 직관적인 지휘자. 장한나는 믿을 수 없이 날렵한 존재의 표상이다. 그녀의 지휘는 재빠르고 민첩하며 비트를 정확히 강타한다. – 리버풀 에코

트론헤임심포니오케스트라

11월 13일, 장한나가 이끄는 노르웨이의 트론헤임심포니오케스트라(이하 트론헤임심포니)가 우리나라를 처음 찾아온다. 트론헤임심포니는 1909년에 창단된 노르웨이의 유서 깊은 오케스트라로, 사실 이번 공연이 첫 한국 방문인 만큼 국내 인지도가 높지는 않다. 그러나 노르웨이 레이블인 SIMAX를 기반으로 ERATO, CPO, NAXOS를 통해 그리그를 비롯해 자국이 배출한 걸출한 음악가를 지속적으로 대중에 알린 명문 오케스트라다. 이들이 연주한 스벤센, 할보르센 같은 작곡가의 오케스트라 작품을 들어 보면 노르웨이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얼마나 멋진 유산을 남겨 놓았는지 깨닫게 된다.


최근 이들은 9대 예술감독인 올레 크리스티안 루드(1987~1995)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노르웨이 출신 지휘자를 기용하던 보수적 전통에서 탈피해 다양한 음악감독을 선정함으로써 더 넓은 음악적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데, 10대 예술감독에 선임된 다니엘 하딩(1997~2000) 이래 지금껏 활발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장한나(Han-Na Chang), 임동혁(Don Hyek Lim) ⒸSangwook Lee

1990년대 국내 음악계를 강타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천재 음악가 장한나가 2009년경 지휘자 활동을 천명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을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려를 표했다. 특히 장한나처럼 젊은 나이에 한 분야에서 완성된 경지를 보여준 예술가가 완전히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다는 것은 자신이 지금껏 이룩한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리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들어 여성 지휘자의 영역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지만 특히 장한나가 결단했을 당시에는 모든 것이 요원하게 보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과거 장한나가 출범한 앱솔루트 클래식 음악 시리즈를 대부분 관람할 기회를 얻었고, 그러한 경험을 토대로 분명 지휘계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지휘자가 되리라 확신한 경험이 있다. 장한나의 주변에서 예술적 조언을 아끼지 않은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 마이스키, 그녀를 각별히 아낀 시노폴리, 마젤 같은 지휘자의 영향력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거대한 예술적 욕구를 발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지휘자로서 장한나는 아직 젊은 나이이지만 대가다운 지휘를 구사한다. 널찍한 스케일, 폭발하는 듯한 고출력의 포르티시모, 유려한 아다지오에서 남김없이 담아내는 정보력 등 예전에 내가 관람한 차이콥스키 5번은 마치 번스타인이 노년에 남긴 연주가 연상될 정도로 뛰어난 연주를 들려준 기억이 있는데, 이번 내한 프로그램인 6번 ‘비창’에서 트론헤임심포니와 어떤 상성을 들려줄지 매우 큰 기대가 된다. 트론헤임심포니의 본령인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 1번 역시 매우 기대되는 레퍼토리다.


협연하는 임동혁은 장한나와 동시대에 활동한 연주자로 신동에서 점차 대가로서의 풍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장한나와 공통분모를 지녔다. 활동 시기는 겹치지만 함께 연주한 적 없는 두 연주자가 드디어 지휘자와 협연자로 만났다. 쇼팽 스페셜리스트인 임동혁이 북구의 쇼팽이라고 불리는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에서 어떤 서정미를 발산할지 벌써부터 궁금한 무대가 아닐 수 없다.


글 노태헌 음악칼럼니스트 사진 WCN코리아·빈체로·마스트미디어·크레디아인터내셔널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9년 11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