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문화예술의 중심에 선 예술의전당

[컬처]by 예술의전당

세계 최정상 클래식 음악 아티스트들이 모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한화와 함께하는 <2019 교향악축제>

지난 9월, 2019/20 클래식 음악 시즌을 시작한 런던 사우스뱅크센터의 시즌 소개서에는 사우스뱅크센터 대표 일레인 베델(Elaine Bedell) 명의의 안내문이 함께 실렸다. 2019년, 클래식 음악을 다루는 전 세계 아트센터가 각자의 비전과 현재를 살피는 데 유용한 과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우리의 상징과 같은 로열 페스티벌홀, 새 단장한 퀸 엘리자베스홀과 퍼셀룸의 세 공간에 세계 최정상 클래식 음악 아티스트를 소개하면서 사우스뱅크센터가 런던 클래식 음악의 중심에 있는 점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번 시즌도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를 초청하고, 신작 의뢰와 함께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을 선보이면서 또다른 흥분되는 시간이 되리라 약속한다. 사우스뱅크센터에 상주하는 네 악단(런던필하모닉오케스트라, 필하모니아오케스트라, 계몽시대오케스트라, 런던신포니에타)이 여느 때처럼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와 즐거움을 제공할 눈에 띄는 시리즈를 준비했다.”

 

‘사우스뱅크센터’를 ‘예술의전당’으로 바꾸고, 문장과 현실을 대비해보자.

 

“‘콘서트홀과 IBK챔버홀, 리사이틀홀에’ 세계 최정상의 클래식 음악 아티스트를 소개하면서 ‘예술의전당이 서울 클래식 음악’의 중심에 있는 점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번 시즌도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를 초청하고, 신작 의뢰와 함께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을 선보이면서 또 다른 흥분되는 시간이 되리라 약속한다. ‘예술의전당에 상주하는 악단(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이 여느 때처럼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와 즐거움을 제공할 눈에 띄는 시리즈를 준비했다.”

 

‘세계 최정상의 클래식 음악 아티스트 소개’와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 초청’은 예술의전당, 중국 베이징 국가대극원(이하 NCPA), 대만 타이중 국가가극원처럼 국가대표급 동아시아 아트센터가 불가피하게 요청받는 기관 임무 중 하나다. 중화권에서는 여전히 관(官) 주도로 유럽·미주의 우량 단체와 연주가를 기획물로 소개한다. 현지 관객을 계몽 대상으로 놓고, 관에서 재외 예술가와 오케스트라를 한 단계 높은 등급에 두면서 선진 체험을 권장하는 형태다.

 

예술의전당도 2000년대 중반까지 해외 저명 악단을 직접 초청했다. 유명 악단의 아시아 투어를 판매하는 IMG, 재팬아트 등 투어 매니지먼트사 입장에서 예술의전당은 언론사 문화사업부, 공연 기획사와 더불어 한국 공연을 논하는 주요 거래처였다. 같은 해외 악단이라도 예술의전당이 초청하면 민간이 주최하는 것에 비해 티켓 가격을 저렴하게 책정할 여력이 있지만, 민간 입장에서는 예술의전당이 잡은 기준에 티켓 가격을 맞추다 보면 차라리 해외 악단 초청을 포기하는 게 손해를 피하는 상황이 됐다.

 

2010년대를 앞두고, 예술의전당은 한정된 예산을 국내 예술인에 더 투자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2008년 11월, 상트페테르부르크필하모닉오케스트라 공연을 끝으로 해외 악단 초청은 사실상 예술의전당 기획 라인업에서 빠지면서 ‘세계 최정상 악단 소개 임무’는 민간에 넘어갔다. 2017년 <교향악축제>에 얍 판 즈베덴의 홍콩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참여했지만, 과거 제작 형태와 달랐다.

 

2010년대 들어 해외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을 꾸준히 수입하는 일부 기획사에 ‘예술의전당 협력사’의 지위가 부여됐고, 국제 업무의 특수성을 고려해 우선 대관을 허용하면서 예술의전당은 통상의 ‘장(場)’으로서 명맥을 이어간다. 이런 배경에서 LA필하모닉오케스트라(3월), 런던필하모닉오케스트라(3월), 부다페스트페스티벌 오케스트라(6월), 드레스덴필하모닉오케스트라(7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9월), 빈필하모닉오케스트라(11월), 트론헤임오케스트라(11월),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11월)가 예술의전당을 다녀갔다.

콘서트 오페라 <토스카> (4월)

해외 오케스트라 초청 영역과 달리 예술의전당은 ‘해외 솔리스트 소개 임무’에서 철수하지 않았다. 2017년엔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과 리즈 린드스트롬이 예술의전당이 주최하는 독창회와 콘서트 오페라로 국내 팬과 만났다. 민간 기획사가 선뜻 손내밀 수 없는 성악 관련 국제 교류 분야에 예술의전당의 공공적 임무가 보인다. 2019년에는 콘서트 오페라 <토스카>에서 2020년 바르셀로나 리세우오페라극장과 뉴욕 메트로폴리탄오케스트라에 캐스팅된 소프라노 제니퍼 라울리를 예술의전당의 안목으로 서울에서 먼저 만났다. 장기 체류가 가능한 성악가의 스케줄을 고려한 다면, 앞으로 예술의전당의 솔리스트 초청 시 마스터클래스나 강연을 곁들이는 중국 NCPA의 사례를 눈여겨볼 만하다.

미래 세대를 위한 아트센터의 브랜드 가치

(좌) 피아니스트 백건우 (중) 지휘자 이병욱 (우) 지휘자 정명훈 ⒸMatthias Creutziger

(좌)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 ⒸCaroline de Bon (우) 피아니스트 조성진 ⒸHolger Hage

(좌)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KYUTAI SHIM (우)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

2019년 민간에서는 한동안 초청을 주저한 연주가를 대거 예술의전당에 불러 모았다. 마르첼로 알바레스(2월), 라파우 블레하츠(3월), 제임스 에네스 4중주단(4월), 루돌프 부흐빈더(5월), 조르디 사발(6월), 스티븐 허프(8월), 피터 비스펠베이(9월)가 예술의전당 콘서 트홀 무대를 밟았다. 전통적으로 막강한 티켓 파워를 자랑한 안네 소피 무터(11월), 백건우(12월), 사라 장(12월)과 함께, 조성진은 마티아스 괴르네와의 리트 공연(9월)으로 흥행 불패의 신화를 이었다. 예술의전당은 신진 연주가와 연주 단체를 소개하는 ‘아티스트 라운지’를 매월 마지막 수요일에 제작했고, <교향악축제>(4월), <대학오케스트라축제>(10~11월)를 운영했다. <대학오케스트라축제>의 경우 대부분 교수진이 지휘와 협연을 맡고, 제자들로 구성된 악단으로 꾸려졌다. 공연의 질과 유료 관객의 수효, 판매 추이가 리뷰로 동반된다면 행사가 오래도록 지속될지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사우스뱅크센터 베델 사장이 거론한 아트센터의 중대 임무 중 하나는 바로 ‘신작 의뢰’다. 그러나 오늘날 음악을 유통하는 계기를 누가 만들 것인가에 대한 ‘주체’의 논의에서 예술의전당은 소극적 행보를 보였다. 개관 초기, 기획 자문을 맡은 임헌정 주도로 <교향악축제>에 국내 작곡가의 신작을 연주하는 사례가 있었지만 전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2019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국내 주요 악단 정기 연주회에 신작이 위촉되고 초연된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서울시립교향단 <아르스 노바>를 통해 신작 생산을 추동한 진은숙은 한국보다 사우스뱅크센터 및 상주악단과 인연이 깊다. 사우스뱅크센터는 1990년대부터 거점 악단인 런던신포니에타, 런던필하모닉오케스트라, 필하모니아오케스트라와의 협업으로 진은숙의 신곡을 올렸고, 2015년 자신들의 의뢰와 소속 대영 국립청소년악단 연주로 ‘마네킨’을 초연했다. 아트센터가 상주 악단과 연계해 젊은 작곡가에 투자하지 않으면 미래 세대가 즐길 음악은 더 빈곤해질 수 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일 때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현재 ‘예술의전당 상주 악단’은 2000년 지정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뿐이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국제 교류 사업, 국내기관 초청 이외의 핵심 공연은 대부분 예술의전당에서 소화한다. 2019년에는 기본적으로 오페라하우스(국립오페라단과 국립발레단 정기공연의 반주), 콘서트홀(<11시 콘서트>, <토요콘서트>, <교향악축제>), IBK챔버홀(실내악 시리즈)에서 다양한 공연을 수행했다. 예술의전당이 제작한 오페라 <투란도트>와 예술의전당 <회원음악회> 역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담당했다.

지휘자 정치용

그러나 콘서트홀에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 정치용의 음악 세계를 즐길 기회는 공식적으로 2019년 1·2·5월 단 세 번의 정기연주회뿐이다. <넥스트 스테이지>, <말러 시리즈 ‘부활’> 기획공연이 콘서트홀에서 열렸지만, <클래식 히어로>는 롯데콘서트홀에서도 열릴 만큼 상주 악단의 기획과 예술의전당 제작 양태는 개별적으로 움직인다. 상주 악단 기획을 기관의 자산으로 삼아 아트센터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사우스뱅크센터의 거버넌스를 돌아볼 만하다.

 

2010년대 초·중반 인기를 끈 <필름 콘서트>의 열풍이 올해 예술의전당에서는 잦아든 대신, 즐거움을 제공하고자 하는 시도는 계속됐다. <게임 속 오케스트라>, <슈퍼히어로와 함께하는 어린이날 콘서트>, <핑크퐁 클래식 나라> 공연은 어린이에게 아트센터의 문을 더 활짝 연다는 의미가 담겼다. 오페라하우스도 7~8월 자유소극장에서 어린이 가족 페스티벌을 열었다. 공연 소외 계층인 보육 여성을 위해 마티네 시간대에 타깃층을 1~2세, 3~5세, 7~12세 자녀로 세분화해 아동부터 성인까지 모든 관객을 포용하는 위그모어홀 체임버토츠(Chamber Tots) 시리즈를 참고할 만하다.

2019년 아시아의 오페라극장을 돌아보며

국립오페라단 <헨젤과 그레텔> (12월) ⓒ국립오페라단

오래전부터 논의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과 국립 예술단체의 위상 설계를 미룬 결과는 2019년 오페라극장 스케줄에도 반영됐다. 2019년 1/4분기에는 뮤지컬 <라이온 킹 인터내셔널 투어>(1~3월)가 오페라극장 공연의 전부였고, 뮤지컬 <영웅>은 여름 한 달간 오페라극장에 올랐다. 앞으로 오페라극장 연간 스케줄의 약 3분의 1을 뮤지컬이 담당하는 현실에 대해 기관은 어떤 이득을 얻고, 현재 운영에 불만을 표명한 측은 어떤 디테일한 대안을 제시해야 할지 2019년 데이터를 기준으로 성과를 내는 토론을 지향해야 한다.

국립오페라단 <1945> (9월) ⓒ국립오페라단

국립오페라단은 오페라극장에서 <윌리엄텔>(5월), <바그너 갈라>(6월),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7월), 오페라 <1945>(9월), <호프만의 이야기>(10월), <헨젤과 그레텔>(12월)을, CJ 토월극장에서 <마술피리>(3월)를 올렸다.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5월)에는 글로리아·호남·노블아트 오페라단이 참가했고, 오페라뱅크(8월, 자유소극장), 한러(4월, CJ 토월극장), 솔(11월, 오페라극장), 라벨라(11월, 오페라극장) 오페라단이 민간 오페라 제작 단위에서 전막을 올렸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 행 이후 민간의 오페라 제작 상황은 뚜렷하게 위축됐다.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8월)

예술의전당은 전막 오페라 <투란도트>(8월)를 CJ 토월극장에서 제작했다. 예술의전당은 2000년대 오페라극장 규격에서 해외 오페라단과 활발히 공동 제작에 나섰지만 지금은 국제시장 대열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그사이 2020년 올림픽을 준비하는 도쿄와 2022년 동계올 림픽을 준비하는 베이징은 해외 대형 오페라극장과 역내 오페라하우스 사이의 협업 체계를 강화하는 중이다. 동아시아 최고의 오페라하우스인 도쿄 신국립극장은 내년까지 <2019-20 일본-도쿄 세계여름오페라축제>를 시행하면서 도쿄 문화회관과 협업을 발표했다. 우리로 치면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이 공동 제작에 나서 <투란도트>(2019)와 <뉘른베르크의 명가수>(2020 예정)를 상연하는 식이다.

국립발레단 <지젤> (6월) ⓒBAKi

중국 NCPA는 지난 10년간 오페라 전막을 자체 제작한 역량으로 시즌 레퍼토리를 운영하면서 2022년 동계올림픽에 맞춰 서유럽오페라극장과 공동 제작을 도모한다. NCPA는 동시에 동북 지방부터 상하이까지 넓은 지역에 분포한 오페라하우스와 다양한 형태의 협업을 추진한다. 국립발레단은 <잠자는 숲속의 미녀>(4월), <마타 하리>(6월), <지젤>(6월), <백조의 호수>(9월), <호이 랑>(10월), <호두까기인형>(12월 예정)을 오페라극장에서 상연했다. 유니버설발레단은 <춘향>(10월), <심청>(10월)을 오페라극장에 올렸고, 해외 발레단으로는 유일하게 모나코 몬테카를로발레단이 6월 예술의전당을 찾았다. 국내 양대발레단이 각각 청년 안무가 양성과 한국 소재 발레를 정련하는 데 자원을 투입한다. <대한민국발레축제>(6월) 역시 젊은 무용인들에게 창작 기회를 제공했다. 국립무용단은 당초 예정 작품인 <색동> 대신 <묵향>(6월)으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섰다.

국립현대무용단 <스윙> (8월) ⓒ황승택

국립현대무용단은 <쌍쌍>(7월), <스윙>(8월), <검은 돌: 모래의 기억>(11월, 이상 CJ 토월극장)과 <스웨덴 커넥션>(3월), <스텝업>(6월), <루돌프>(12월, 이상 자유소극장)를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했다. 안성수 예술감독이 재임하는 동안 단체에서 이미 상연한 작품을 지 방 공연장에서 소화하면서 예술의전당에서는 신작을 발표하는 방식이다. <서울세계무용축제>는 울티마 베스의 작품을 CJ 토월극장에서 소개했다

 

글 한정호 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9년 12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9.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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