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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간명하고 와닿는 삶,
그들을 위한 여정

by예술의전당

배우 양희경·윤유선 인터뷰

연극 <여자만세2> 12.24(화)-2020.2.2(일) 자유소극장

Ⓒ안호성

나폴레옹은 “여자 둘을 화해시키는 것보다 유럽을 통합하는 게 쉽다”라고 했다.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 혹은 남성에게 귀속된 존재로 여기던 시절, 여성을 비하하기 위해 나온 말이다. 하지만 이런 선입견은 아직 사라지지 않아서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로 여성들을 공격한다. 정말 여자끼리만 있으면 그럴까?


여성만 모여 산다는 그리스 신화 속 ‘아마조네스(Amazones)’에서는 여자들끼리 서로 도우며 강한 여전사로 성장한다. 중국 윈난성 루구호 주변에서 살아가는 모쒀인은 신神과 가장이 모두 여성인 모계사회다. 모쒀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지성, 파티, 연애. 이 여성들은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지만, 안정적인 가정도 꾸린다. 여자끼리 있어도, 여자가 가정을 이끌어도 세상은 아름다울 수 있다.

여성은 물론 모든 어른을 위한 공연

배우 양희경 Ⓒ안호성

배우 윤유선 Ⓒ안호성

2019년 12월 말 예술의전당에서 막이 오르는 연극 <여자만세2> 역시 여성들이 무대를 장악해 아름다운 연극이다. ‘멀티맨’으로 등장하는 남성 배우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배역이 여성이고, 모두가 주인공이다. ‘최서희’는 남편과 사별한 이후, 대학교 근처의 집을 하숙집으로 운영해 생계를 꾸린다. 그는 한복을 고집하고 교양을 강조하는 고지식한 시어머니 ‘홍마님’과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주연배우로 활동하는 딸 ‘홍미남’과 살고 있다. 최서희가 하숙을 그만두려는데, 나이 지긋한 ‘이여자’가 찾아와 제발 하숙을 하게 해달라고 한다. 극은 한 집에서 벌어지는 여성 네 명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국민성 작가의 극본을 장경섭 연출가가 연출한 <여자만세2>는 2018년 대학로에서 먼저 선보였다.


이번 공연이 대학로에서의 공연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양희경, 성병숙, 윤유선 등 새로운 배우들이 주연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양희경과 성병숙은 이여자를, 윤유선은 최서희를 맡아 연기한다. 공연 전 만난 양희경과 윤유선은 “우리는 언제 처음 만났는지 기억조차 안 날 정도로 오래된 사이다. 30년 가까이 된 것 같다”라고 했다. 극 중에서 이여자와 최서희가 서로를 살뜰하게 챙기는 것처럼 두 사람은 막역하다. 서로를 언니 동생처럼 대하면서 여행도 함께 다닐 정도다.


양희경은 “<여자만세2>의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좀 밋밋하다고 생각했다”며 “최근 끝난 연극 <안녕, 말판씨>는 슬픔도 기쁨도 강한 편이었는데, 그에 비하면 감정도 세지 않다”라고 했다. 그는 이번 작품이 마치 “단막극 같았다”라며 그럼에도 이런 작품이 필요한 이유를 역설했다.


“단막극 같은 공연을 무대에 올려야 할 이유가 뭘까요? TV나 극장에서는 어른들이 볼 게 없어요. 요즘엔 예전처럼 가족 드라마를 거의 찾아볼 수 없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무대로 끌어오는 것도, 어른들을 위한 공연을 하는 것도 바로 우리가 할 일이거든요.”


윤유선은 “언니 말대로 기승전결이 두드러지지 않고, 감정이 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지난번 공연에서 인기를 끌었다는 것은 잔잔한 감동과 재미가 있다는 얘기다. 남녀노소 누구나 볼 수 있는 작품이다”라고 했다. “아무래도 여자들이 많이 공감하겠죠? 제가 볼땐 아가씨부터 할머니까지 자기에게 맞는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을 거예요. 집집마다 이여자나 홍마님 같은 여자가 한 명씩은 있잖아요.”


윤유선이 맡은 최서희는 요즘 시대엔 찾아보기 어려운 며느리다. 자기 재산을 날린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까다로운 성미까지 다 맞춘다. 양희경이 연기할 이여자도 만만치 않다. 노래 부르기를 즐기는 능청맞은 할머니처럼 보이지만, 어릴 때 집에 두고 나온 딸을 뒤늦게 찾아가 자신이 어머니라고 밝히지도 못하고 주위를 맴돈다. 양희경은 “배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역할이라서 좋다. 배우들이 많이 즐기고 가지고 놀 수 있다”라고 했다.


“30대 손녀, 40대 시누이, 50대 딸, 그리고 노년에 접어든 어머니. 다 제가 겪은 세월이에요. ‘저 나이 땐 저랬지’ 하며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제가 맡은 배역뿐 아니라 모든 배역이 골고루 공감이 가요.” 최서희의 딸 홍미남은 <카르멘>의 주연을 맡다가 자신보다 한참 어린 아이돌에게 배역을 뺏길 처지에 놓인다. 극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리지만, 실제 양희경·윤유선과 ‘배우’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양희경은 배우 경력만 38년이 됐고, 윤유선은 일곱 살 때 아역배우로 연기를 시작했다. “홍미남에 공감하나”라는 질문에 두 사람은 입을 모아 “요즘 배우들은 너무 힘들 것 같다. 가엾다”며 답을 대신했다.


“저는 운이 좋았죠. 요즘이었으면 아마 배우 못했을지 몰라요. 배우를 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가 많아서 경쟁이 너무 치열하잖아요.”(윤유선) “제가 배우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오디션 같은 게 없었어요.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감독이나 연출이 이런저런 역할을 계속 맡겼으니, 어찌 보면 좋은 시절이었죠. 요즘엔 앞으로 나아가려고 오디션 보고, 떨어지면 또다시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을까요.”(양희경)

단단하고 의미 있는 생을 위하여

연극 <여자만세2> 등장인물(왼쪽부터 배우 성병숙·윤유선·서송희·김용선 Ⓒ윤헌태)

연극 <여자만세2> 등장인물(왼쪽부터 배우 양희경·최지연·정아미·여우린 Ⓒ윤헌태)

오랜 시간 연기할 수 있는 비결이 ‘운’이라고 했지만, 이들은 모래알 같은 시간을 쌓아 차돌처럼 단단한 지금의 자리를 만들었다. 양희경은 <늙은 창녀의 노래> 같은 연극, <넌센스> 등 뮤지컬뿐 아니라 <목욕탕집 남자들>, <하얀거탑>, <누나>, <넝쿨째 굴러온 당신>, <이별이 떠났다> 등 다 적지도 못할 만큼 많은 드라마를 했다. 올해만 해도 <자기 앞의 생>, <안녕, 말판씨> 등의 연극 무대에 오르면서 KBS 드라마 <꽃길만 걸어요>에 출연 중이다. 평생 참여한 작품 수만 100편이 훌쩍 넘는 윤유선 역시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연극 <달걀의 모든 얼굴>과 <그와 그녀의 목요일>의 주연을 맡았고, 2019년에만 세 편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양희경이 “이제 연극이니 영화니 TV니, 이런 거 따지는 거 촌스럽지 않아요? 경계를 다 없애고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해야 해요”라고하자, 윤유선은 “연극이 더 힘들 때도 있지만, TV와 달리 객석에서 반응이 바로 오는 데다가, 자기 분량만 찍고 가는 게 아니라 함께 연습하고 무대에 서니 정을 안 주려야 안 줄 수가 없다”라고 했다.


“연극을 3년 정도 쉬다가 <쥐덫>이란 작품으로 다시 무대에 섰어요. 어려운 역할이었는데, 기어서라도 무대에 오르겠다는 심정으로 했죠. 유선아, 내가 언제가 너한테 그랬지? ‘내가 연극을 또 하겠다고하면 좀 때려줘’라고. 그런데 또 이렇게 무대에 서네요, 하하.”(양희경) “어머, 저도 마찬가지예요. 연극할 때마다 힘들다고 했거든요. 이번에 <여자만세2>에 출연한다는 얘기를 들은 아이가 그러더군요. ‘엄마 연극 또 해? 정말 좋긴 좋은가 보다’라고요.”(윤유선)


지난해 대학로에서 <여자만세2>를 공연할 때, 객석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열린결말에 가깝지만,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진다는 평이 많았다. 그렇다면 <여자만세2>의 제목은 무척 통쾌하지 않은가. 양희경은 “아직 여자가 만세인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되레 ‘여자만세’라고 외치는 것이다. 제목에서 여자의 삶이 간명하고도 쉽게 와닿는다”라고 했다. ‘여자만세’를 외칠 필요가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가 여자들에게 제안하는 것은 “30분만이라도 나만의 시간을 갖자”는 것.


“가정을 지키기 위해 엄마가 총대를 메는 경우가 많다 보니 심신이 피폐해지기도 하고, 자괴감이 들기도 해요. 그러니까 엄마도 퇴근을 해야 하고, 매일매일 자기를 위한 시간을 가져야 해요. 전업주부도 당연히 그래야 하고요. 세상에서 제일 힘들면서도 티 안 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요. 20~30대부터 자기만의 시간 속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50~60대가 되어서 나름 경지에 오른사람이 될 수 있을 거예요.”(양희경)


“저는 여성들이 자기감정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조건 감정을 폭발시키라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게 표현해야 한다는 거죠. 저는 요즘 남성과 여성이 서로 양분해 싸우는 게 썩 맘에 들지 않아요. 각자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서로를 인정해주면서 균형을 찾아갔으면 해요. 또 엄마가 조금 힘들거나 희생해도 가족이 그것에 대해 충분히 감사하고 인정해준다면 엄마로서의 시간이 의미 없지 않을 거예요.”(윤유선)


“맞아요. 여자 만세가 곧 가족 만세!”(양희경)


글 변희원 조선일보 기자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9년 12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