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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덴마크 디자인전

사람과 환경을 위한
지속 가능한 디자인

by예술의전당

9.10(토) - 11.20(일) 한가람디자인미술관 1, 2전시실

사람과 환경을 위한 지속 가능한 디자

폴 헤닝센 'PH 콘트라스트 램프' 1958-1962, 루이스 폴센 제작 Photo: Michael Whiteway

19세기 초, 북유럽에 전반적으로 유행하던 가내수공업의 영향을 받아 덴마크의 가구 산업도 개혁을 해나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2차 세계대전 이후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산업화될 수 있었다. 그들은 인근 지역끼리 노동력을 공유하며 함께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팔기 시작했고, 그 시기에 발전한 공업화와 맞물려 수공업 제품을 대량 생산하기도 했다. 이때는 덴마크 디자인의 특징이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로, 수공업과 산업화가 서로 융합하여 제품의 제작이 개인에서 그룹으로 옮겨가면서 새로운 기업들이 등장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언더그레이즈 기법*을 개발하여 정교하고 수준 높은 세라믹 기술로 정평이 난 로열 코펜하겐이 있다.

 

1775년에 설립한 로열 코펜하겐은 디자이너들이 처음으로 산업계에 입문하게 된 시발점으로써, 덴마크 산업사회에 가장 먼저 발을 들인 회사가 된다. 로열 코펜하겐은 당시 유행하던 신고전주의의 영향을 받아 고전주의의 패턴을 간소화하고 합리적인 아름다움을 지향하면서 기능성과 조형미를 갖춘 제품들을 제작했다. 이는 덴마크 디자인의 특징으로 새롭게 수립되며 ‘기능주의’라는 어휘가 디자인의 신조어로 등장하는 계기가 된다.

덴마크 디자인 역사에 이름을 남긴 거장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카레 클린트(1888~1954)는 신고전주의를 실현하며, 전통적 재료와 옛 스타일을 강조한 장인들의 고전적인 양식이 기능성이 중시되는 현대 가구에서도 조화를 이뤄 디자인적으로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르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아 신체 구조와 신체 치수의 조건에 맞는 인체 측정 시스템과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도구나 물건과의 상관관계를 연구하고 자료화하여 오늘날 덴마크 가구의 기초를 정립하였다. 이러한 혁신은 덴마크 디자인과 디자이너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쳤으며 덴마크 가구의 시초가 되었다. 그의 영향을 받은 디자이너로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한스 베그너와 보르게 모겐센이 있다.

 

게오르그 옌센(1866~1935) 역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덴마크에 영향을 끼친 C.C 패터스(1822~1899) 밑에서 도자조각을 배운 까닭에 그의 초반 작업은 주로 신고전주의 양식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알루미나 도자기를 위하여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하였고, 후에 코펜하겐의 빙 & 그뢴달 도예 공장의 디자이너가 되었다. 1904년 옌센은 은세공 공방을 설립하고 아트 앤 크래프트 운동 스타일의 귀금속과 은세공 작품들을 디자인하기 시작하였다. 옌센의 가장 유명한 작업으로는 (1904~1905년경)과 (1918년경) 시리즈가 있다. 그의 디자인은 식기류에서 귀금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업에 응용되었고, 점차 발전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이제 게오르그 옌센이라는 이름은 단지 한 명의 인물과 그의 회사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20세기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전형을 아우르게 된 것이다.

 

20세기에는 ‘기능이 모든 디자인의 기초이자 목적이다’라는 철학을 가진 엄격한 기능주의의 바우하우스가 유럽 전역에 영향을 끼쳤고, 덴마크에서도 역시 바우하우스의 사상이 작용하였다. 하지만 다른 북유럽 국가에 비해 영향력이 약했으며, 철저한 산업화로 다소 냉소적으로 비치던 바우하우스는 덴마크 문화와 융화되어 자연 소재를 이용한 부드러운 분위기로 변화하였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덴마크 디자이너들이 일시적인 혁신보다 지속적인 발전에 중점을 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핀 율(1913~1989)이 그 대표적인 예다. 핀 율은 덴마크 가구 디자인에서의 새로운 시도를 통해 카레 클린트가 쌓아 올린 기존 가구의 전통 권력을 깨며 차원이 다른 독창적인 조형미를 나타냈다. 그는 왕립미술학교 건축학과에서 수학하던 중 자신을 위한 가구를 디자인 하면서 가구 디자인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율은 오히려 가구 디자이너로서의 경력이 없었기 때문에 기존의 개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예술적 영감에 따라 자유롭게 창작했다. 그로 인해 초창기에는 비판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덴마크 디자인 개척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그는 뉴욕 유엔 본부에 있는 상공회의소 디자인을 통해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의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또한 폴 헤닝센(1894~1967)은 신문사의 저널리스트로, 아트저널지에서 논평가로 지내며 윤리적인 전통 사회에 대해 비판하고, 예술의 표현에서 재료, 형태와 기술의 자유로운미의식을 지향하며 덴마크 디자인의 점진적인 발전에 대한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는 그의 작품 활동으로까지 이어져 혁신적인 조명을 탄생시켰으며 당시에 유행하던 전기조명의 단점을 보완하여 새로운 산업시장을 개척해나갔다. 그를 덴마크 조명 디자인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의 대표적인 디자인으로는 72개의 갓으로 빛의 황홀함을 만들어냄으로써 모던 디자인의 아이콘이 된 ‘아티초크Artichoke’가 있다. ‘아티초크’는 공기의 흐름에 따라 흔들리는 모양이 마치 태양 아래 나뭇잎이 살랑거리는 것 같다는 예술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원자재 공급 부족으로 엄격한 배급 계획을 필요로 했다. 그 결과 가구와 의류에 실용 계획이 우선적으로 도입되었다. 일반 가정에서 구매할 수 있는 가구와 실내 인테리어 제품의 디자인이 실용화, 소규모화되어 효율성을 강조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디자이너들은 생산가격을 절감하고 기술을 단순화하는 실용주의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중 대표적인 디자이너 아르네 야콥센(1902~1971)은 프리츠 한센 가구회사(1872년 설립)와 협력하여 생산한 개미의자를 통해 덴마크에서 ‘산업적’으로 생산된 최초의 의자를 개발하였다. 개미의자는 얇은 합판과 금속을 결합해 가볍고 저렴한 현대적인 가구로 덴마크 가구산업의 패러다임까지 바꿔놓았다. 이 의자는 지금까지도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으로 높게 평가받고 있다. 개미의자의 성공을 바탕으로 1950년대 말 야콥센은 코펜하겐 시내에 있는 로열호텔을 디자인하며 백조의자, 에그의자 등 걸작 의자들을 내놓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사람과 환경을 위한 지속 가능한 디자

요한 로데 '주전자' 1920, 게오르그 옌센 제작

아르네 야콥센의 뒤를 잇는 베르너 팬톤(1926~1998)은 야콥센의 건축 사무실에서 일하며 가구 디자인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팬톤은 기존의 덴마크 디자인이 선호하던 수공예 방식에서 벗어나 신소재로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그는 새로운 형태, 색감, 재료, 그리고 스타일을 통해 가구뿐만 아니라 조명, 텍스타일, 카펫, 전시물 설치 등 가구 디자인부터 인테리어 분야까지 가구와 공간을 함께 생각하여 작업했다. 그는 실험과 놀이에 완전히 심취해 끊임없이 혁신을 시도하면서 팬톤만의 차별성을 둔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의 디자인 중 제일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1960년에 선보인 인체공학적인 팬톤체어가 있다. 팬톤체어는 플라스틱 수지로 성형틀에 찍어낸 다리 없는 의자로 유명하다. 그 후 허먼 밀러라는 미국 회사가 각고의 노력 끝에 1968년 제품 제작 및 판매에 성공했고, 이 의자는 세계 최초의 플라스틱 모듈의자가 되었다. 이외에도 하트의자(1959)와콘의자(1958)가 팬톤의 디자인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1950년대 오가닉 디자인과 1960년대 팝아트를 잇는 매개체 구실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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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너 팬톤 '하트 콘 체어' 1958, 비트라 제작 Photo: Michael Whiteway

디자인의 개념으로 바라본 가구

1951년 밀라노 트리엔날레와 미국과 캐나다에서 주최한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전시회(1954~1957)에서 한스 베그너와 카이 보예센(1886~1958) 등이 작품을 선보이며 덴마크 가구 디자인은 본격적으로 국제적 유행을 타는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특히 한스 베그너의 가구는 기능과 인체 구조에 대한 이해를 잘 적용해 안락함을 갖춘 가구로 일상생활에 유용하게 쓰였다. 베그너는 의자가 인체를 둘러싸고 있는 가구의 한 부분이라고 이해함과 동시에 조형미까지 심오하게 연구하여 디자인했다. 이러한 그의 철학을 가장 잘 나타낸 의자는 라운드체어로, 1950년 「미국인테리어잡지American magazine interiors」에 가장 아름다운 의자로 소개되며 화제를 모았다. 또 1960년 미국 대선 당시 민주당의 케네디 후보와 공화당의 닉슨 후보의 CBS TV 토론에서 케네디 후보가 이 의자를 사용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라운드체어는 앉았을 때 편안하고 견고할 뿐만 아니라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으로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The Chair’라는 완벽한 대명사로 불렸다.

 

그 후 디자인계에도 표현의 자유가 강조되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시대에 반하여 새롭고 다양한 실험에 도전한 나나 디첼(1923~2005)은 1990년대, 본인의 제2의 전성기로서 덴마크 디자인을 주도한 가구 아티스트이다. 1950년 그녀는 가구에 예술적인 실험뿐만 아니라 섬유유리, 스펀지 고무와 같은 새로운 소재를 이용하여 혁신적인 제품을 창조하였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의 상업적 흐름은 덴마크에서 큰 성공을 거두진 못하였다. 이후 그녀는 1989년 프레데리시아 가구회사(1911년 설립)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두 사람을 위한 벤치’를 제작해 큰 성공을 거두었고 상호 파트너로 발전했다. 새로운 CNC 기술을 이용한 ‘Trinidad Chair’(1993)는 프레데리시아의 역사적 전환점을 만들어준 제품이다. 그녀는 가구의 조형성뿐 아니라 기능성도 중시 하였다.

사람과 환경을 위한 지속 가능한 디자

나나 디첼 '트리니다드' 1993, 프레데리시아 가구 제작 Photo: Designmuseum Danmark / Pernile Klemp

이번 전시는 20세기 초 덴마크 디자인의 정수를 감상할 좋은 기회이자 앞서 언급한 덴마크 디자이너들의 디자인 철학을 다시 한 번 현대의 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들은 덴마크만의 아름다움을 구축하기 위하여 전통과 새로움을 적절히 유지하며 균형을 이루고자 오랫동안 노력해왔다. 그 결과 자신들만의 디자인 스타일을 창조해 현재는 유럽을 대표하는 디자인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덴마크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유행에 민감한 우리나라 디자인의 한계점을 돌아보고 시공간을 초월하여 혁신적 디자인을 탄생시킬 방안을 찾아볼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 언더그레이즈 기법: 초벌구이 후 그림을 그리고 유약을 발라 고온으로 재벌구이 하는 기법.

 

글 백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목조형가구학과 부교수)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6년 9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