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컬처 ]

자연에 대한 눈부신 찬사
인상주의, 삶의 휴식과 행복을 주다

by예술의전당

<모네에서 세잔까지 :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걸작>展

1.17(금)-4.19(일) 한가람미술관

 

인상주의는 국적과 세대를 불문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미술 사조로 꼽힌다. 그전까지의 미술은 숭고한 종교, 묵직한 역사가 주제이거나 교훈적인 내용에 집착했지만 인상주의 화가들은 자연에 대한 눈부신 찬사, 매일 봄직한 일상에 대한 사랑스러운 예찬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배경지식이 없으면 완벽히 이해하기 어려운 과거의 전통적 그림과 달리 인상파 그림에 담긴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생활, 산과 들을 그린 풍경화는 보이는 대로 느껴도 그 행복을 만끽하기에 충분했다.

폴 고갱(1848–1903), <우파우파(불의 춤)>, 1891, 캔버스에 유채, 72.6 x 92.3 cm ©The Israel Museum, Jerusalem by Avshalom Avital

세계 최정상급 박물관 중 하나인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The Israel Museum, Jerusalem) 컬렉션에서 엄선한 인상주의 명화 106점을 선보이는 <모네에서 세잔까지 :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걸작>展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인상주의 미술의 창시자라 불리는 클로드 모네가 눈이 멀어가면서까지 그리고 또 그린 <수련> 연작 중 그가 시력을 잃기 직전에 완성한 <수련 연못> (1907)이 한국에 온다. 이뿐 아니라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폴 고갱, 폴 세잔 등 인상주의를 넘어 후기 인상주의 대표 작가들까지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디지털 시대를 표방하며 인터랙티브형 미디어아트 전시가 주를 이루는 요즘인지라 거장의 손맛이 붓질과 물감 자국을 따라 전해지는 ‘진짜 명품’ 전시가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모욕의 이름 ‘인상주의’, 영광이 되다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삶을 바꿔놓기 시작한 19세기 중반 유럽, 특히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낡은 옛집이 헐리고 최신 기법을 도입한 현대건축이 들어서고, 정비된 도로를 따라 기차역과 교회, 오페라극장, 카페, 공원 등이 펼쳐졌다. 소비와 여가라는 새로운 도시 문화가 탄생했고, 화가들은 볼거리 많은 이곳에서 새로운 ‘그릴 거리’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사람의 눈으로 포착하지 못하는 찰나를 잡아내는 카메라의 발명은 대중을 놀라게 했고, 화가들을 고민하게 했다.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던 인상주의 화가들은 인간이 결코 능가할 수 없는 카메라의 형태 묘사 능력 대신 사진이 표현하지 못하는 색채에 주목하게 됐다. 사과는 빨강, 하늘은 파랑 식으로 색이 정해져 있다는 편견에 맞서 화가들은 야외로 직접 나가 시시각각 빛에 의해 변화하는 색을 관찰하고 탐구했다. 이때부터 ‘화가는 무엇을 그리는가’가 아니라 ‘화가는 어떻게 보는가’가 중요해졌다. 현대미술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그때만 해도 프랑스에서 화가들이 작품을 발표할 공식 전시회가 많지 않았다. ‘살롱전’이 가장 권위 있는 행사였다. 살롱전 심사위원들은 당시 부자들의 입맛에 맞고 유행을 따른 곱고 예쁜 그림을 선호했고, 교훈적인 그림을 추켜세웠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시도를 추구하는 신진 작가들이 설 자리가 없었다. 살롱전에서 거부당한 화가와 조각가, 판화가 30여 명이 ‘무명협동협회’를 결성했다.

 

참여 작가는 클로드 모네와 폴 세잔, 에드가 드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외젠 부댕, 카미유 피사로 등 ‘무명’이었다는 사실이 무안하고 무색한 근대 거장들이다. 1874년 4월 15일, 무명협동협회가 사진작가 나다르의 스튜디오를 빌려 첫 전시회를 열었다. 정작 그림을 본 관객들은 뚜렷한 윤곽도 보이지 않고 색점만 느슨하게 찍은 그림이라고, 물감 부스러기를 늘어뜨려놓은 것 같은 미완의 그림이라며 불평했다. 비평가 루이 르루아는 모네의 유화 <인상: 해돋이(Impression : Sunrise)>를 보고 신문에 기고한 평론을 통해 “본질은 찾아볼 수 없고 표면적인 인상만 그린 것에 불과하다”라고 혹평했다. 지금은 다이아몬드처럼 찬란해진 ‘인상주의’의 이름이 돌팔매 같은 모욕적인 비판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럼에도 인상주의의 첫 전시회에는 3,000여 명이 다녀갔고, 이후로도 여덟 번이나 열린 전시는 늘 화제를 일으켰다. 전시를 거듭하면서 화가들은 기존 화가들이 그리던 완결성과 인위적인 구도를 거부한 채 색채와 붓 터치, 혁신적인 구성과 주제 선택에 집중했다. 인상주의는 프랑스 미술사에서 처음으로 이뤄진 단체 미술운동으로 19세기 회화 혁명의 새 길을 개척했다.

모네 최후의 걸작, 한국에 오다

클로드 모네(1840–1926), <수련 연못>, 1907, 캔버스에 유채, 101.5 x 72 cm ©The Israel Museum Jerusalem

모네는 인상파의 시작이자 절정이라 불리는 화가다. 모네의 대표작으로 <인상 : 해돋이>, <루앙 성당>, <건초 더미> 등이 있지만 그가 말년에 몰입해 무려 250여 점이나 그린 지베르니의 자택 정원 풍경, 그중에서도 <수련> 연작은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모네가 인상주의 전시에 꾸준히 참가하던 때만 해도 그는 파리의 대로나 기차역 같은 근대도시의 삶을 그렸으나 1883년을 전후로 자연이 그의 주된 관심사가 됐다. 파리에서 80km쯤 떨어진 지베르니에 연못과 정원이 딸린 집을 마련하고는 꽃과 나무 가꾸기에 시간과 노력을 쏟았던 모네는, 마침내 가장 매혹적인 그림 주제가 자신의 뒷마당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평생을 두고 계절, 날씨, 시간대에 따라 끝없이 변화하는 빛과 색의 변주를 그린 모네는 환갑이 되던 해 백내장을 앓았다. 그의 탁월한 시각적 포착 능력을 두고 동료화가 세잔이 “모네에게는 눈밖에 없다”라고 했을 정도였건만, 그의 눈은 점점 멀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양쪽 눈이 같은 색을 서로 다르게 인식했음에도 모네는 그림을 멈추지 않았다. 광선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물의 풍경은 그가 워낙 좋아하는 주제이기도 했다. 모네는 연못 주변으로 여러 개의 이젤을 세워두고 하루에도 몇 번씩 변화하는 색채를 관찰하고 화폭에 담았다. 눈이 나빠질수록 모네는 연못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갔고, 위에서 내려다보며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보니 수면 자체가 화면이 됐다. 나중에는 연못과 그 주변 자연을 그렸다기보다는 색채 추상에 가까운 그림이 됐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그림은 시각적 자극 자체만으로 감동을 안겨주는 경지에 올랐다.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에 오는 모네의 1907년 작 <수련 연못>은 연못이자 반사된 하늘이며, 무한한 공간감으로 확장되는 하나의 작은 우주를 연상시킨다.

수경과 풍경, 도시와 인물을 모두 아우르다

전시는 총 네 개 섹션으로 구성된다. 그 첫 번째는 인상주의 미술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수경(水景, Waterscape)과 반사’다. 인상파는 영원불멸의 존재가 아닌 일시적 순간을 포착하려 했고, 변화하는 자연 앞에 선 그들의 인상과 감각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들은 어떤 장면에 특정한 색이 정해져 있다는 기존 사고방식을 거부하고 명암대비도 포기한 채 색과 깊이에 대한 인식 그 자체와 싸웠다.

폴 세잔(1839–1906), <강가의 시골 저택>, 1890, 캔버스에 유채, 81 x 65 cm © The Israel Museum, Jerusalem by Pierre Alain Ferrazzini

인상파 작가들은 자신들이 야외에서 직접 눈으로 본 것 같은 경험을 물에 대한 반사와 빛의 재생으로 보는 이에게 전하고자 했다. 부댕이 <항구로 들어오는 호위함(Frigates Approaching the Port)>(1894)에서 보여주는 바다 물결과 드높은 하늘, 알프레드 시슬레가 <생 마 메스의 루앙 강에 있는 바지선(Barges on the Loing at Saint-Mammè)>(1885) 곁에 그려 넣은 물의 풍경, 세잔이 <강가의 시골 저택(Country House by a River)>(1890)에서 잔잔한 호수에 투영한 마을 풍경 등이 그랬다.

알프레드 시슬레(1839–1899), <생 마메스의 루앙 강에 있는 바지선>, 1885, 캔버스에 유채, 45.7 x 65.5 cm ©The Israel Museum, Jerusalem by Avshalom Avital

두 번째 섹션은 ‘자연과 풍경화’다. 답답한 화실에 갇혀 그려야만 했던 화가들을 바깥으로 나갈 수 있게 만든 건 1840년에 물감을 담아 휴대할 수 있도록 발명된 금속 튜브다.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게 된 화가들에게 평화로운 자연은 정치적 갈등과 도시의 대혼란으로부터 벗어난 이상향 같았다. 강변에 앉은 모네가, 지는 해를 보러 나온 피사로가, 저 멀리 산을 마주한 세잔이 시골 풍경을 그렸다.

 

동시에 인상파는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의 모습과 삶의 조건, 여가생활에 대한 관심의 끈도 놓지 않았다. 세 번째 섹션 ‘도시 풍경’에서 그 흔적들이 펼쳐진다. 중산층이 사는 집과 그들이 기분 전환을 위해 찾는 극장, 댄스홀, 카페와 경마장이 인상파 그림의 주제가 됐다. 전시의 마지막은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예술가들이 주목한 사람들의 태도와 몸짓, 인상에 관한 ‘초상화와 인물’이다. 화가들의 붓질은 돈 많은 부르주아뿐 아니라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도 어루만졌다. 서커스를 하는 광대와 매춘부도 그림 속 주인공이 됐고, 무대 위 무용수와 연습실에서 만난 발레리나가 두루 화폭에 담겼다. 특히 “티치아노와 루벤스의 그림을 보며 그림자를 연구하라”고 했던 르누아르의 작품 속 인물은 초상화를 넘어 생의 환희와 삶의 지혜를 응축하고 있다.

 

명작 106점을 내어준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문화 기관 중 하나다. 그런 만큼 1965년에 설립돼 연간 800만 명이 방문하는 명소다. 선사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성서와 고고학 유물, 유대인 유물, 세계 각국의 예술 작품은 물론 희귀 원고와 고대 유리 작품 등을 소장하고 있다.

 

글 조상인 서울경제신문 문화레저부 기자, 사진 컬처앤아이리더스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20년 1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