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와 반 고흐, 오르세미술관 30주년을 축하하다

[컬처]by 예술의전당

10.29(토) - 2017.3.5(일) 한가람미술관 1, 2전시실

밀레와 반 고흐, 오르세미술관 30주

필자가 미술전문지 기자 2년 차였을 때니, 2000년 가을로 기억된다. 덕수궁미술관에서 오르세미술관의 작품을 들여오는 대규모 전시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마 이것이 이른바 국내에서 열린 본격적인 ‘블록버스터 전시’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이미 도판으로는 많이 알려졌지만, 오르세미술관이 소장한 인상주의 작품들이 이렇게 대규모로 우리의 눈앞에서 소개된 적은 없었다. 개인적으로 애정을 가지고 이 전시에 관한 특집 지면을 꾸미면서, 그리고 작품을 직접 보면서 느낀 설렘은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 있다. 이후 다양한 대형 전시에 어떤 유명한 작품이 찾아왔는가 하는 질적 평가 외에도 관객 동원 수까지 체크하면서 이른바 ‘블록버스터 전시’의 형태를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그 원점에는 오르세미술관 전시가 있었다.

 

<오르세미술관-인상파와 근대미술> 이후 국내에서는 세 번의 오르세미술관 전시가 더 열렸다. <만종과 거장들의 영혼>, <고흐의 별밤과 화가들의 꿈>, <인상주의, 그 빛을 넘어>로, 오르세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의 다양한 라인업과 다른 주제를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밀레의 <이삭줍기>,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 세잔의 <생트 빅투아르 산>, 모네의 <양산을 쓴 여인>을 덕수궁미술관, 예술의전당,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볼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르누아르, 드가, 고갱, 고흐 등 인상주의 스타들의 작품이 한국을 찾았다. 이렇게 오르세미술관 전시는 16여 년간 꾸준히 열리면서 하나의 프렌차이즈화 된 전시로 거의 자리 잡은 느낌이다. 그리고 다섯 번째 오르세미술관 전시가 10월 29일부터 내년 3월 5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1986년 오르세 기차역을 개조해 새로운 인상주의 작품들의 보금자리로 문을 연 오르세미술관의 30주년 기념 특별전이라는 타이틀로 그 의미를 더했다.

100여 년, 천신만고를 견딘 역사의 공간

오르세미술관은 원래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건축가 빅토르 라루가 설계해 지은 기차역이었다. 1, 2차 세계대전 등 20세기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철거 위기까지 겪은 오르세역은 당시 파리 중앙시장이던 레알 건물이 보존 운동의 실패로 철거되면서 그 반작용으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에 분산되었던 19세기 후반 예술작품을 모으는 미술관 후보로 급부상하게 된다. 센 강과 루브르박물관 옆이라는 입지도 좋았다. 1978년 오르세미술관 건립 준비위원회가 꾸려져 1848년부터 1914년까지의 작품을 오르세미술관이 담당하기로 했다. 이후 오르세미술관은 기차역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미술관으로 리노베이션해 1986년에 개관했다. 명실상부한 인상주의 미술작품의 보고寶庫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생김새만 보았을 때 꽤 오랜 연혁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오르세미술관이 ‘생각보다는 짧은’ 개관 30주년을 맞이 한 것은 이런 역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의 경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 1986년 개관함으로써 같은 기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오래된 역사驛舍를 문화공간으로 바꾸었다는 점에서 문화역서울 284와 연결되는 느낌이다.

 

<이삭줍기, 밀레의 꿈 고흐의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한가람미술관 1층 전시장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오르세미술관 개관 30주년 특별전이라는 것 외에도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이어지는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의 의미도 지닌다. 이번 전시는 ‘낭만주의와 고전주의’, ‘아카데미즘과 사실주의’, ‘인상주의와 자연주의’, ‘상징주의와 절충주의’, ‘20세기 예술의 원천’ 등 총 다섯 개의 소주제로 구성되었다. 이 흐름을 보면 오르세미술관 전시의 ‘초심’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든다. 총망라했다는 느낌이랄까. 첫 전시였던 <오르세미술관-인상파와 근대미술>에서 선보인 밀레의 <이삭줍기>가 다시 한국을 찾는 점도 그렇고, 오르세미술관 작품들이 보여주는 19세기 서양미술의 흐름을 총체적으로 정리한 것도 그렇다. 인상주의나 근대미술의 세부 흐름을 보여주었던 최근의 전시와는 달리 오르세미술관이 소장하는 주요 작품들이 라인업에 포함되고, 오르세미술관이 다루는 시대를 전반적으로 다룸으로써 개관 30주년의 특별한 의미가 더욱 강조되었다.

 

이렇게 주요 작품이 포함되고 전반적인 흐름을 드러내는 전시를 만들 수 있는 이유는 또 있다. 일반적으로 블록버스터 전시의 미덕이라고 하면, 관객의 입장에서 외국 유명 작품의 실물을 큰 비용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 볼 수 있다는 점이라 할 것이다. 즉 외국의 익숙한 미술품들을 비싼 항공권 가격과 여러 날이 걸리는 시간을 절약하면서 직접 대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최 측에서는 이러한 전시를 통해 수익률을 증대할 수 있는 윈윈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최근 학생들의 방학 기간에 입지가 좋은 미술관에서 주로 블록버스터 전시가 열리는 이유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블록버스터 전시를 보면 주제에 맞는 주요 작품 서너 점과 다수의 B급(여기서 B급은 인지도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작품의 절대가치와는 다르다) 작품들, 그 외의 자료와 드로잉들로 구성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오르세미술관 전시의 경우 시간이 흐르면서 내용이나 라인업 면에서 다른 블록버스터 전시와는 차별화된 믿음직스러운 행보를 보여주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이렇다. 자국의 주요 문화재를 대여하는 데에는 양국 간의 신뢰도가 중요하다. 그런데 신뢰라는 것이 하루 이틀에 쌓이지는 않는 법. 기획사가 2000년부터 지금까지 전시를 통해 인연을 쌓으며 구축한 신뢰가 이번 전시와 같은 질적 수준과 충실함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나 싶다.

밀레와 반 고흐를 비롯한 19세기 서양미술사의 대표 미술가 총망라

19세기를 관통하는 서양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다양한 작품 중 72점의 회화와 59점의 데생 등 총 131점이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는다. ‘낭만주의와 고전주의’ 섹션에서는 외젠 들라크루아와 알렉상드르 카바넬, 윌리엄 부게로를 만날 수 있고, ‘아카데미즘과 사실주의’에서는 장 프랑수아 밀레와 귀스타브 쿠르베의 작품이 소개된다. ‘인상주의와 자연주의’에서는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카미유 피사로, 폴 세잔을, ‘상징주의와 절충주의’에서는 구스타브 모로, 피에르 퓌비 드 샤반, 오딜로 르동의 작품을 볼 수 있다. ‘20세기 예술의 원천’에는 빈센트 반 고흐, 펠릭스 발로통 등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총출동했다.

밀레와 반 고흐, 오르세미술관 30주

르누아르 '피아노 치는 소녀들' ©RMN-Grand Palais / Musée d'Orsay - GNC media, 2016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장 프랑수아 밀레의 <이삭줍기>와 빈센트 반 고흐의 <낮잠>,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을 꼽을 수 있다. 특히 <만종>과 더불어 밀레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이삭줍기>는 가난하고 힘든 현실 속에서의 노동을 성스러운 침묵과 평화로 승화시키며 고전적인 성화를 연상하게 하는 작품으로, 사실주의 작품의 백미라 할 수 있다. 2000년 전시 당시에도 큰 주목을 끌었던 만큼, 16년 만에 찾아온 이 작품에 대한 관객의 관심과 반가움 또한 클 것으로 예상된다.

밀레와 반 고흐, 오르세미술관 30주

밀레 '이삭줍기' ©RMN-Grand Palais / Musée d'Orsay - GNC media, 2016

반 고흐의 <낮잠>은 밀레의 작품 <한낮>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1889년과 1890년 사이에 제작된 이 작품은 고흐가 생 레미의 한 정신병원에 있을 때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푸른색, 보라색, 노란색, 주황색 등의 색상과 두꺼운 붓 터치의 마티에르는 밀레의 평화로운 분위기와는 또 다른 평안함과 강렬함을 동시에 드러낸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의 한국 방문이 가장 기대된다. 그 밖에도 위에 언급한 작가들은 명성을 차치하더라도 모두 서양미술사에서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카바넬, 부게로, 피사로, 시슬리, 르동, 발로통 등의 작품은 이들 미술사 속의 정경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밀레와 반 고흐, 오르세미술관 30주

반 고흐 '낮잠' ©RMN-Grand Palais / Musée d'Orsay - GNC media, 2016

국내는 바야흐로 미술의 계절이다. 서울과 광주, 부산이 비엔날레의 열기로 들끓고, 수많은 전시들이 전국에서 미술의 스펙트럼을 다양하게 만든다. 때마침 열리는 ‘미술주간’ 행사는 이러한 미술의 계절을 화려하게 물들이고 있다.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이삭줍기, 밀레의 꿈 고흐의 열정> 또한 이 계절을 물들이는 또 다른 빛깔이다. 그리고 이 전시의 존재감과 내용의 충실함은 그 빛깔을 충만하게 느끼는 데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다.

 

글 류동현 (미술 저널리스트)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6년 10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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