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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쌀밥아, 그동안 오해해서 미안해"

by세계일보

어느덧 이번 가을 수확한 햅쌀이 나오는 시기다. 도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햅쌀로 지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에 김치 한 조각을 올려 먹는 모습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군침이 도는 장면이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당연하게 여기질 정도로 쌀밥은 우리의 주식이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식습관 변화로 인해 빵이나 면류 등 밥을 대체하는 식품이 많아지면서 쌀 소비는 크게 줄었다. 우리나라 1인당 하루 평균 쌀 소비량은 2016년 기준 169.6g으로 10년 전인 2006년(216g)에 비해서는 46.4g이나 줄었다.


설상가상으로 쌀밥의 주성분인 탄수화물이 비만이나 당뇨 등 만성질환을 유발한다는 점 때문에 점점 식탁에서 외면받고 있다. 정말 쌀밥은 만성질환의 주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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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밥이 만성질환 주범이라고?


‘쌀밥 유해론’을 촉발한 것은 몇몇 연구 결과였다.


2012년 미국 하버드대 의대 채닝 연구소와 브리검 여성병원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백미의 섭취량 증가는 제2형 당뇨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특히 백미 섭취량이 많지 않은 호주인과 미국인보다 섭취량이 많은 중국인과 일본인에게서 제2형 당뇨 발병률이 더 높게 나타났다. 또 아시아인들의 경우 기본적으로 백미를 섭취하기 때문에 빵과 같은 밀가루 음식, 음료수, 설탕과 같은 다른 탄수화물 공급원을 추가로 섭취한다면 서양인들보다 제2형 당뇨 발병 위험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었다.


국내 연구진의 연구 중에서도 남성은 탄수화물을 가장 많이 섭취하는 그룹이 가장 적게 섭취하는 그룹보다 대사증후군 유병률이 증가했고, 여성은 정제된 곡류 섭취량이 가장 많은 그룹이 가장 적은 그룹보다 대사증후군 유병률이 증가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29일 농촌진흥청과 한국영양학회에 따르면 이들 두 연구의 공통점은 백미를 지나치게 많이 섭취했을 경우 유해하다고 결론을 냈다. 앞선 연구 결과에서는 중국인의 평균 백미 섭취량은 하루 625g으로 설정했는데 실제 중국인의 하루 평균 쌀 소비량은 180.5g(2012년 중국통계연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 후술한 연구 결과의 경우 탄수화물을 가장 많이 섭취하는 남성 그룹의 탄수화물 에너지 섭취비율이 78.7%였는데, 이는 한국인 탄수화물 에너지 적정비율(55∼65%)보다 과도하다는 것이 농진청과 학회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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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진청 관계자는 “이러한 연구들의 결과를 잘못 해석하면 쌀밥이 건강에 좋지 않은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면서도 “정확하게 결과를 해석한다면 두 연구 모두 절대적인 에너지 섭취량이 많았고 권장량 이상의 쌀밥을 섭취했을 때 당뇨나 대사증후군의 위험을 지적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탄수화물 섭취량과 사망의 상관성을 조사한 연구 결과 역시 하루 권장량의 쌀밥 섭취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와 미네소타대 등이 올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탄수화물 섭취가 적은 그룹(하루 전체 섭취 칼로리의 40% 미만)과 많은 그룹(하루 전체 섭취 칼로리의 70% 이상) 모두에서 사망률이 증가했다. 그러나 탄수화물의 에너지 섭취비율이 50∼55%인 권장량 그룹은 사망률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예로 연구팀은 탄수화물 섭취량이 30% 미만인 50세 참가자의 경우 탄수화물을 50∼55%로 적정 섭취하는 참가자에 비해 평균수명이 약 4년 정도 짧을 것으로 예상했다.


◆쌀밥, 오히려 다이어트 효과 있다.


쌀밥이 중심인 한식이 비만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이미 우리나라 전통 한식 연구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한식은 쌀밥에 국, 생선, 나물, 김치 등이 어우러진 식사로 식이섬유가 풍부하면서도 지방함량이 낮고 불포화지방이 높은 식사로 균형 있는 영양소 섭취를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쌀밥의 전분은 복합당질로 체내에서 서서히 소화 흡수되기 때문에 밥과 반찬을 번갈아 먹게 되면 혈당 상승을 느리게 하고 포만감을 느끼게 만든다. 이로 인해 식사 섭취량을 줄여 에너지 과잉섭취를 막을 수 있으며, 일반적인 빵 중심의 식사처럼 에너지 섭취량이 많지 않아 비만을 예방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다른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도출됐다. 2015년 미국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쌀 소비와 건강의 상관관계에 따른 연구를 보면 쌀 소비가 식단의 질을 높이고, 오히려 비만 위험을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에 따르면 백미, 현미, 쌀가루의 소비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엽산, 철분, 칼륨, 비타민B, 마그네슘 등과 같은 주요 영양소를 더 많이 섭취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허리둘레와 삼두근 체지방 등이 유의적으로 더 낮았다.


이외에도 현재 전 세계적으로 쌀의 비만 예방 효과 뿐만 아니라 쌀이 가진 다양한 기능성 가치를 증명하고 활용하기 위한 많은 연구가 수행되고 있다.


◆쌀밥, 적당히 먹어야 건강에 도움


한국영양학회의 한국인 영양소 섭취 기준(사진)을 보면 밥, 국수, 떡, 빵 등 곡류군 1회 분량의 열량은 300㎉이다. 밥 1공기(210g), 국수 생면(210g), 식빵 2쪽, 떡국용 떡 1컵(130g) 등이 해당된다.


쌀밥이 포함된 곡류군의 경우 성인 남성은(하루 섭취 열량 2400㎉ 기준) 하루 4회, 여성은(하루 섭취 열량 1900㎉ 기준) 하루 3회를 섭취하면서 고기·생선·달걀·콩류, 채소류, 과일류, 우유·유제품류도 함께 섭취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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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진청 관계자는 “한국인 영양섭취기준에서 권장되는 수준 이상으로 지나치게 백미 또는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쌀밥 중심의 식사는 만성질환의 유발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쌀밥 섭취와 함께 다양한 채소와 육류 반찬, 유제품 등 다양한 식품을 매일 매일 적당하게 섭취함으로 대사증후군이나 만성질환 등의 위험을 감소시키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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