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비즈 ]

백발의 낭만닥터는
오늘도 동심을 살려냈다

by서울신문

공학박사들이 만든 장난감 병원 ‘키니스’

서울신문

키니스 장난감 병원의 한 할아버지 박사님이 반응이 없던 강아지장난감을 수술하고 있다. 수술을 무사히 마친 강아지인형은 ‘왕왕’거리며 꼬리를 흔들었다.

“살릴 수 있을까요?”


“일단 한번 뜯어보지 뭐.”


세월이 느껴지는 두툼한 손은 연장을 들어 장난감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은 두꺼운 돋보기 안경 너머로 유심히 장난감을 살펴보곤 다시 몇 번 연장을 들더니 그야말로 ‘뚝딱’. 20여분 만에 수술을 마쳤다.

서울신문

장난감 부품들은 크기가 작아 성인이 조립하기 쉽지 않다. 돋보기와 쪽집게는 필수 도구다.

이곳은 인천 주안 지하상가에 있는 ‘키니스(kinis) 장난감 병원’이다. 2011년 공대 교수 출신 김종일(73) 이사장이 은퇴 후 마음이 맞는 후배와 비영리단체로 시작해 지금은 모두 8명의 박사가 재능 기부를 하고 있다. ‘키니스’란 어린이를 의미하는 ‘키즈’(kids)와 노인을 뜻하는 ‘실버’(silver)를 조합해 만들었다. 이름처럼 이곳에 근무하는 의료진은 정년 퇴임한 60~70대 노인들이다.

서울신문

병원 이용자들이 장난감택배와 함께 보낸 편지들. 장난감들의 사연과 감사의 내용이 적혀 있다. 종종 주전부리를 보내기도 한다.

키니스 장난감 병원은 대부분 인터넷 카페를 통해 장난감 진료를 접수하고 장난감을 치료한 뒤 택배로 돌려보내지만, 평일 오후에는 방문 진료도 받는다. 고장 난 장난감을 기부받아 수리한 것들은 저소득층 가정이나 소외계층에게 기증한다. 날마다 스무 개가 넘는 택배 상자에 장난감들이 가득 차 들어오니 지금껏 이 병원을 거쳐간 것들은 10만여 개가 훌쩍 넘는다.


이날 아이의 장난감을 방문 수리한 박유빈(33) 씨는 “아기들 장난감은 고장이 잘 나지만 막상 고칠 곳이 마땅찮은데, 이런 곳이 있어서 아주 좋다”며 “아이가 더 크면 아나바다 본부도 이용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김종일(오른쪽) 이사장이 아나바다 본부를 찾은 어린이에게 장난감을 선물하고 있다.

서울신문

진찰신청서 대장에는 어떤 문제점으로 입원하게 됐는지, 어떻게 수리를 진행했는지 꼼꼼하게 기록한다.

아나바다 본부는 지난해 7월 장난감 병원 바로 앞 작은 공간에 문을 열었다. 기증받아 수리한 장난감을 일부 전시해놓고 센터를 찾은 사람들이 본인의 장난감과 교환해 돌아가며 쓸 수 있도록 했다.

서울신문

장난감들로부터 나온 건전지들. 대부분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아 모았다가 버린다. 건전지는 폐기에 어려움이 있기에 이왕이면 장난감을 보낼 때 새 건전지를 넣어주기를 당부했다.

김 이사장은 키니스 장난감 병원이 전국 곳곳에 세워지길 바란다. 장난감 대여소는 많지만 수리소는 찾기 어려워 서울 부산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택배가 밀려 온다. 박사들은 다른 지역의 요청을 받고 1년에 12차례 이상은 출장수리도 간다.


“관심 있는 자원봉사자와 지자체의 연락이 온다면 우리는 언제든 부품과 비결을 전수할 생각이 있어요. 노인에게 일거리도 주고 자원을 보호하며 선행도 할 수 있는 이런 공간이 인천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 있다면 모두에게 좋은 일 아닐까요?”


글 사진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