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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첫 에세이집 『심장이 뛴다는 말』 펴내

정의석 “죽음을 지켜보는 일,
나에게는 일상이다”

by예스24 채널예스

정의석 “죽음을 지켜보는 일, 나에게

인터뷰 중간 중간 마주앉은 그의 전화벨이 울렸다. 짧은 통화가 이어졌고, 의미를 짐작할 수도 없는 생경한 단어들이 연이어 들려왔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수화기 너머의 누군가가 애타게 그를 찾고 있다는 것을. 지금 또 다른 누군가는 생과 사의 경계에 서 있다는 것을. 자신에게 있어 죽음은 “더없이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현실’”이라 했던 그의 고백이 피부로 와 닿았다. 그는 ‘심장이 뛴다는 말’을 가장 사랑하는 흉부외과 의사였다. 

급한 대로 검지 끝으로 심장에 난 구멍을 막았다. 심장 근육의 움직임이 그대로 느껴졌다. (중략) 처음에 검지 끝으로 막을 수 있었던 구멍은 점점 벌어졌다. 내 엄지손가락을 심장 안으로 밀어넣고 손바닥으로 압박을 가해도 샐 만큼 커져버렸다. 나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숨을 크게 쉴 수도 없었다. 내 손이 흔들리면 그에 따라 피가 철퍽철퍽 심장 밖으로 튀어나왔다. (『심장이 뛴다는 말』 12~13쪽)

『심장이 뛴다는 말』에서 저자 정의석은 오래된 일기를 펼쳐 보인다. 흉부외과 의사인 그가 전공의 시절부터 10년 넘게 기록해 온 것이다. “시간이 지난 뒤에 무엇이 문제였는지 그리고 그때 내가 어떻게 했는지 객관화해서 돌아보고 생각할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고 싶어서” 결심한 일이었다. 이 내밀한 고백이 저자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의미가 있는 것은 삶에 대한 성찰과 의지, 인간으로서의 짙은 고뇌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 자신의 생명을 의탁한다. 그 역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들을 위해 사활을 건다. 그들의 만남은 또 다른 삶의 시작이 되기도 하고, 기약 없는 이별이 되기도 한다. 그 기로에 서서 저자는 묻는다. “그와 나는 어떤 관계일까?” 떨칠 수 없는 긴장감은 늘 곁을 맴돈다. “만에 하나 내가 판단을 잘못해 다른 사람의 일생을 망쳐버린다면?” 이어서 그는 고백한다. “내가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려워지곤 했다”

 

결국 『심장이 뛴다는 말』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맨 얼굴이다. 의사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저자가 느끼는 불안과 쓸쓸함이 낯설지 않다. 그것은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묻게 하고, 동시에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그렇다면 생의 마지막에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저자가 만난 환자들은 저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흔들림 없는 생의 의지를 보여주는 이가 있는가 하면 ‘편하게 떠날 자유’를 말하며 서서히 삶을 정리하는 이도 있었다. 당신과 나는 어느 쪽일까. 『심장이 뛴다는 말』이 우리에게 묻는다. 

정의석 “죽음을 지켜보는 일, 나에게

죽음을 지켜보는 일, 저에게는 일상이에요

책에 실린 일기를 보면, 가장 오래된 기록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더라고요. 

아마 그때는 레지던트 2년차였을 거예요. 책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그 전부터 일기는 써왔고요. 매일 쓴 건 아니지만 생각날 때마다 끄적거리면서 남긴 거예요. 중환자실에 갈 때면 매일 써야겠다고 의도적으로 생각하기는 했어요. 그래서 책에도 중환자실에서 쓴 일기가 많죠. 그때 폴더명을 난중일기로 써놨었어요(웃음). 

 

집필하시면서 일기를 다시 읽어보셨을 텐데요. 느낌이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는 조금 나아졌다는 생각도 하고, 한편으로는 예전하고 똑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진찰하고, 우울해지기도 하고, 똑같죠. 달라진 건 이제 제가 집도를 한다는 건데, 제가 수술을 엄청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이런 책을 쓸 만큼 훌륭한 흉부외과 의사는 아니에요. 그냥 제가 느낀 걸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에요. 흉부외과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느낀 것과 제 일상을 쓴 거죠. 이 책은 의사로서 쓴 건 아닌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 흉부외과 의사가 굉장히 적으니까, 그렇게 드문 일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쓴 거죠. 

 

환자들과의 이야기도 실려 있는 만큼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으셨겠죠. 

맞아요. 그래서 어떤 환자 분들께는 동의를 얻기도 했고요. 책을 전해드리기도 했어요. 정말 쓰고 싶었지만 환자 분들의 프라이버시가 있으니까 싣지 않은 이야기들도 있어요. 

 

일기라는 건 개인적인 기록이잖아요. 과연 이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의미가 있을지, 고민하지는 않으셨나요?

죽음을 지켜보는 일이 흔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저는 일상이거든요. 생로병사에서 생로병까지는 현실인데, 사는 상상의 세계예요. 죽음을 보는 일도 거의 없고 실제로 경험하는 건 평생에 한 번뿐이니까, 공고한 상징으로 만들어내는 거죠. 그런데 저에게 있어서 죽음은 조금 더 리얼하고, 조금 더 비참하고, 조금 더 괴로운, 그렇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 부분을 다른 분들과 같이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죽음은 피상적인 게 아니고 더 현실적인 거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심장이 뛴다는 말』을 읽으면서, 환자와 의사의 인연이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이 환자와 나는 무슨 관계일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만나게 되는 이유는 굉장히 다양한데, 사실 수술 결과가 안 좋은 경우도 있죠. 심장 수술이라는 게 100명을 수술하면 100명이 다 사는 수술이 아니거든요. 환자 분께서 돌아가실 때도 있고, 그럴 때 환자와 저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죠. 아마 저뿐만 아니라 어떤 의사든 가지고 있는 생각일 거예요. 환자와 의사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라뽀(rapport)’라는 말을 쓰는데요. 그런 신뢰 관계가 유지되지 않으면 진료를 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저를 포함해서 모든 의사들이 환자에게 신뢰를 주려고 노력하는 거고, 환자들도 신뢰할 수 있는 의사를 선택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너무 가까워지면 안 된다고 되어 있기도 해요. 

 

책에서 말씀하신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가까운 사이가 된 환자를 수술할 때 “가족을 수술하는 느낌이 들어 부담스럽다고” 고백하기도 하셨죠. 

그 분은 지금 뵈어도 가족 같아서,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항상 조심하고요. 조금 멀어지려고 애쓰죠.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의사와 환자 사이의 적당한 거리란 어느 정도일까요?

정답은 없는데,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친밀한 관계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그게 어렵죠. 저는 병원 안에서만 환자들과 관계를 이어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는데요. 물론 그렇지 않은 의사들도 있어요. 

의사가 환자를 살린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자신에 의해서 타인의 생과 사가 결정된다고 생각하면 부담감을 떨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보통 ‘환자를 살렸다’고 많이 표현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요. 의사는 가이드와 같은 것 같아요. 여행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쉬운 길로 가게 해주는 게 가이드의 역할이잖아요. 수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현재 나와 있는 약이나 기술, 수술 방법 등을 활용해서 살 수 있는 길로 가이드해주는 것이 의사의 역할인 것 같고요. 살린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때로는 운명이나 초월자의 존재를 믿고 싶을 때도 있지 않으세요? 어떤 환자가 살고 죽는 건 의사의 능력 밖에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비슷한데 조금 다르죠. 저는 무신론자에 가깝거든요. 신의 존재에 대해서 관심이 별로 없어요. 물론 힘들 때는 절대자가 있어서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분들은 바쁘니까 일일이 도와주실 수 없겠죠(웃음). 그러니까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요. 사람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러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되죠. 그냥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사람인 거예요. 물론 환자 상태가 좋지 않으면 괴롭죠.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나, 하고 복기해 보면서 고민해요. 모든 의사들이 그럴 거예요. 

 

“모든 환자를 살리려고 하지 마. 네가 살리는 게 아냐. 환자가 사는 것이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그 말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제가 정말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항상 그런 말을 하세요. 그 분은 환자를 살리려고 엄청 노력하시거든요. 살 수 있는 사람을 못 살게 하면 안 된다는 사명감이 있는 거예요. 10명의 환자 중에서 살 사람은 3명뿐이라고 생각하고 수술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수술하는 거죠. 그런 말씀을 들어도 ‘그래도 뭔가 해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이 돼요. 이번에는 안 될 줄 알고 했지만, 다음에는 미리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준비를 많이 할수록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더 많아지는 거고요. 그 편이 조금 더 효과적이고, 살 사람도 늘어나는 거죠. 

 

‘임계점’이라는 제목의 글이 생각나네요. 모든 객관적 지표들이 ‘이 환자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말한다 해도,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으시겠죠. 

그런 순간은 아무리 반복 되도 익숙해지지 않죠. 그렇게 훈련이 되는 게 싫을 때도 있고요. 며칠 전에 환자에게 에크모(ECMO. 심정지 환자에게 쓰는 기계로, 몸 밖에서 환자의 혈액에 산소를 공급한 후 체내로 다시 넣어준다)를 시도하고 있었는데, 다른 환자가 왔어요. 에크모를 넣은 환자는 생존 확률보다 돌아가실 확률이 많았고, 새로 온 환자는 수술하면 살 수 있었어요. 수술을 안 하면 오늘 내일 돌아가실 것 같았고요. 그런데 병원에 수술할 사람이 저밖에 없었거든요. 그럴 때는 선택을 해야죠. 저는 계속 에크모를 시행했고 나중에 온 환자는 다른 선생님이 봐주셨는데, 제가 수술하는 동안 돌아가셨어요. 두 환자를 비교해 봤을 때는 에크모 시술을 받으신 분이 임계점을 넘었더라고요. 만약 다른 환자가 오지 않았다면 임계점을 넘지 않았다고 생각했겠죠. 제가 항상 이야기하고 싶은 건, 대부분의 흉부외과 의사들이 자기 환자에 대한 애착과 집착이 무척 강하다는 거예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겠다고 생각하죠. 

 

다시는 수술실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셨던 적은 없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일상이니까요. 저는 수술이 좋아요. 그 과정이 흥미로워요. 아침에 수술실에 들어가면 1시, 2시 정도가 돼야 끝나거든요. 아주 심각한 상황일 때는 저녁 12시가 넘어서 끝날 때도 있어요. 이번 주말에도 8시간 반 동안 수술을 했어요. 그 일이 정말 좋지 않으면 여덟 시간씩 서서 계속할 수는 없어요. 싫으면 못하죠. 대부분의 외과 의사들이 그런 생각을 해요. 좋지 않으면 그만두죠.

 

“어떤 의사도, 환자의 생명을 보장하지 못한다. 보장한단 말을 서슴없이 하는 의사가 있다면 그는 사기꾼일 것이다”라고 단언하셨어요. 

환자를 만나면 손을 꼭 잡으면서 ‘제가 살려드리겠습니다, 제가 보장하죠’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겠죠. 그런데 저는 환자에게 절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어떻게 제가 하는 일을 보장해요, 저는 보장 못해요. 대신 위험성을 과장하지도 않아요. 요즘에는 심장 수술을 할 때 위험도를 알아볼 수 있는 툴이 있어요. 사망에 이를 가능성이 계산되거든요. 저는 있는 그대로 환자 앞에서 보여주고 이야기해요. 아주 예전에는 그런 툴이 없었기 때문에 (위험성을)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렇게는 안 하실 거예요. 대부분의 의사들이 과장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알려주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보호자들 중에 ‘(수술 성공을) 보장하면 수술 할게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제가 생각할 때는 객관적인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 의사나, 보장해주지 않으면 수술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보호자나,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정의석 “죽음을 지켜보는 일, 나에게

편한 죽음이라는 건 없어요

사람의 본 모습은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 여실히 드러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환자들을 봐 오셨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두려워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정말 저 분은 훌륭하다’라고 느끼게 되는 분들도 만나게 돼요. ‘나는 나중에 저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얼마 전에는 어떤 목사님께서 수술을 받으셨는데, 그 분은 정말 성직자 같으시더라고요. 퇴원하고 2주 만에 본인 교회에 가셔서 새벽 예배를 보셨대요. 본인이 아파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가야 된다는 거예요. 참 훌륭하신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더 초조해하는 분들도 많거든요. 죽음 앞에서 사람의 맨 얼굴이 드러난다는 데에 동감해요. 책에서도 이야기했던 비행기 조종사 분을 보면서도 ‘저렇게 훌륭한 사람도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아마 끝까지 재활 훈련을 받으셔서 다시 비행하고 계실 텐데요. 그 분만 그런 게 아니라, 굉장히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분들이 계세요. 어쩌면 그 정도로 건강이 나빠지면 삶의 의지들이 또 생기나 봐요. 우리가 모르는 능력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겨우 55세밖에 안 된 어머니를 편히 돌아가시게 하고 싶다고 말했던 보호자도 있었죠. 결국 참지 못하고 화를 내고 말았다고 하셨어요. 

제가 느끼기에는 어차피 편하게 죽는 건 없어요. 그러면 고민을 해야죠. 예를 들어서 호스피스 병동에 가실 분들이라면 그 고민을 해야죠. 그렇지 않은데 나는 편하게 죽겠다고 하면 말이 안 되죠. 지금은 기술이 많이 발전했기 때문에 심장 수술이 그렇게 위험하지 않아요. 그런데 어머니를 편하게 해드리고 싶어서 수술을 안 하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 저는, 아주 못되게 이야기할 때는, 자식들이 편하지 어머니는 편하지 않으시다고 말씀 드려요. 누가 편한 건지 잘 생각해 봐야 돼요. 저는 외과 의사니까 수술하고 잘 회복하는 게 편하게 사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편한 죽음이라는 건 안 아픈 상처라는 말과 똑같은 건데, 완전히 비문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거죠. 치료보다 편한 죽음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세월이 바뀔수록 치료가 더 편할 수도 있거든요. 

 

10년 전의 일기에는 ‘도망을 가리라’ 굳은 결심을 적으셨습니다(웃음). 7년 전 일기에는 ‘흉부외과가 싫어졌다. 정말 지긋지긋하다. 그만할 때가 됐다’고 쓰셨고요(웃음). 이런 고백까지 솔직하게 들려주신 이유가 있나요? 

지금 이 일을 하고 있지 않다면 부끄러울 텐데, 저는 계속 흉부외과 의사로 있으니까요(웃음). 그리고 이후에 가치를 찾은 것 같아요. 환자들의 죽음을 지켜보는 일은 힘들지만, 그것보다 좋은 게 더 많아요. 괴로움이 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순간들이 더 많으니까, 그러니까 계속 남아있겠죠. 대부분의 직업이 그렇지 않을까요. 

 

스스로 이렇게 물으신 적도 있죠. “일주일에 적어도 몇 명의 사람은 살릴 수 있게 되었다. 돌아가시는 것을 늦추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래서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지금 같은 질문을 드린다면 어떻게 답변하시겠어요? 

그때는 엄청 우울했고 ‘내가 이런 걸 할 수 있어봤자 뭐가 바뀌겠어’라는 생각을 했던 건데요. 지금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예전에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인데요. 미국의 어떤 바닷가가 불가사리로 뒤덮인 거예요. 해변에서 불가사리는 죽어 가는데, 나름 장관이니까 관광지가 돼서 사람들이 찾아와서 보는 거죠. 그때 어떤 노회한 사업가도 바다를 보러 갔는데, 한 청년이 계속 불가사리를 바다에 던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네가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니’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청년이 불가사리를 보여주면서 ‘이 불가사리한테는 다르죠’라고 말하는 거예요. 이 이야기가 저한테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환자 개개인마다 다 의미가 있잖아요. 그런 과정이 저한테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내가 바닷가에서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불가사리를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됐구나’ 싶기도 하고요. 

 

메르스 사태 때, 환자 치료에 에크모 장비를 투입할 수 있도록 지원을 호소하기도 하셨습니다. 의료진의 시각에서 본 당시 상황은 어땠나요? 

저희 병원에 메르스 환자가 세 분 오셨었는데, 결국 에크모를 시행하지 않았어요. 당시에 좋지 않은 결과도 있었지만 그래도 병원의 모든 의료진이 정말 열심히 했어요. 결국은 제대로 된 보상이란 건 없고요. 책에도 썼지만 선배 한 분은 자신이 메르스 감염 환자와 접촉했다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몰랐을 때는 매일 집에서 아이 넷을 껴안고 잤거든요. 그래서 사실을 알았을 때 정말 손이 벌벌 떨렸다고 하더라고요. 친구 한 명은 나중에 격리가 되기도 했고요. 

 

에크모 관련 기자 간담회를 준비할 때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잖아요. 메르스와 관계된 일이라서 장소를 섭외하기도 쉽지 않았고요. 

그때 예약했던 커피숍에서 일방적으로 취소를 통보해 와서, 커피숍 주인과 싸우기도 했죠. 그런데 화를 내다보니까 그 분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겠더라고요. 누가 안 그러겠어요. 걸리면 너무 무섭잖아요. 그런데 제가 그런 상황이라면 환자와 보호자들은 어떻겠어요. (감염돼서) 정말 슬픈데 거기에 혐오까지 더해지는 거죠. 그게 슬픈 거죠. 결국엔 다 약자에 대한 혐오잖아요. 그런데 자신의 일이 되면 또 달라지겠죠. 그때 간담회는 제가 주도한 건 아니었고, 여러 병원에 있는 흉부외과 의사들이 모여서 에크모를 사용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던 거예요. 정부에도 이야기하고요. 그래서 많은 환자들에게 에크모를 시행했는데, 아마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제일 많이 했을 거예요. 결과가 나쁘지 않았고, 덕분에 몇 분의 환자들이 살 수 있었죠. 사람들이 (메르스로 인해) 패닉으로 빠지는 걸 조금 막은 측면도 있어요. 의사의 사회적인 역할도 했다고 생각하고요. 

 

『심장이 뛴다는 말』을 읽은 독자들이 어떤 시간을 가지면 좋을까요? 

이 책은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알게 된 것에 대해서 써 놓은 거예요. (죽음이라는) 피상적인 걸 물질감 있게 써 놓은 글이니까, 읽으시면 (죽음에 대해) 조금 더 고민을 하시지 않을까 싶어요. 마지막에 실린 ‘질문’이라는 제목의 글이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인 것 같은데요. 결국은 모두가 극적으로 죽게 되잖아요. 대부분의 사람이 그래요. 준비 없이 죽음을 맞게 되죠. 책에 실린 이야기는 결국 ‘나의 것이 될 타인의 삶’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읽으시면서 같이 뒤돌아보고 내다보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 하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책에 실린 저의 그림을 꼭 봐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제가 그림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지금 김중혁, 오기자, 정유미 작가님과 함께 소설집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 책에 실릴 그림도 직접 그리고 있어요. 소설도 쓰고요. 『심장이 뛴다는 말』에 실린 그림들은 제가 평소에 그리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지만, 어떤 그림은 수술 마치고 나서 밤새워 그린 것도 있고, 애착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정의석 “죽음을 지켜보는 일, 나에게
심장이 뛴다는 말

정의석 저 | 스윙밴드

 

종합병원 중환자실과 수술장에서 보낸 어느 흉부외과 의사의 치열한 10년의 시간에 관한 기록 “그대, 심장을 생각해본 적 있나요? 심장이 뛰는 동안,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심장이 멈추면, 우리의 삶도 멈추죠.” 그는 매일 심장을 봅니다. 아픈 심장을 고치는 것이 그의 일입니다. 그는 흉부외과 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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