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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파리의 백조'에서…
이젠 에투알 향해 날다

by조선일보

박세은… 세계 정상급 파리오페라발레단 '백조의 호수'서 주역으로 열연

 

조선일보

발레리나 박세은(30)은 파리에서 지휘자 정명훈 다음으로 유명한 한국인일 것이다. 350년 역사의 세계 정상 파리오페라발레단 제1무용수이자 지난달 이 발레단 대표작 '백조의 호수' 주역 오데트로 나섰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전설적 무용가 누레예프가 1984년 파리오페라발레단을 위해 안무한 '백조의 호수'는 관객들이 앞다퉈 찾는 인기작. 발레단은 지난 2월과 3월 '백조의 호수'를 2700석 바스티유 오페라극장에 20차례나 올렸다. 박세은은 3월 5일과 8일, 11일 세 번 오데트로 출연했다.


지난달 15일 파리오페라발레단이 있는 가르니에 극장 앞 카페서 박세은을 만났다. "세 번째 공연은 제 무용 인생 최고 기량을 보여준 오데트였어요. 너무 완벽해서 나 자신이 대견스러울 정도였으니까요." 이런 말은 쉽게 하진 않는다. 그만큼 만족스러운 무대였다는 뜻일 것이다. 동료들도 박세은에게 '최고의 오데트'였다며 인사를 건넸다. 박세은은 원래 '백조의 호수'에 '3인무' 솔리스트로 예정돼 있었다. "개막 2주 전 발레단에서 연락이 왔어요. 꿈 같은 일이 벌어진 거죠."


2011년 입단한 박세은은 2017년 제1무용수(프르미에르 당쇠르)가 됐고 작년 무용계 최고 권위의 브누아 드 라 당스상(賞)까지 받았지만 올 시즌 오데트는 넘볼 수 없었다. 최고 무용수인 에투알만 오데트를 맡는데 10명이나 돼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한 명이 부상으로 공연할 수 없게 되자 기회가 왔다. 2015년에도 오데트로 데뷔한 적 있다. 그때도 에투알 부상 덕분이었다. "모스크바 공연 갔다가 오데트 발탁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왔어요. 1~3막은 외우는데 4막은 어떻게 추는 줄도 몰랐거든요. 그렇게 연습해 세 번 무대에 올랐죠." 파리발레단 사상 첫 동양계 오데트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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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은은 지난달 파리 바스티유 극장에서 파리오페라발레단 대표작 ‘백조의 호수’ 주역 오데트로 세 차례 나섰다. 350년 역사의 파리발레단에서 비(非)서구인이 오데트를 맡은 건 박세은이 사실상 처음이다. /Julien Benhamou/OnP

박세은은 지난달 오데트로 최후의 땀 한 방울까지 쏟은 공연 다음 날에도 3인무를 췄다. 주변에선 "너 미친 거 아니냐"라고 했지만 박세은은 달랐다. "원래 맡은 배역이 3인무거든요. 전날 주인공 했다고 빼먹을 수도 없고…." 인터뷰 하루 전인 14일 박세은이 3인무로 나선 '백조의 호수'를 봤다. 1막 왕자 생일 축하연에서 펼치는 3인무는 '백조의 호수' 주요 대목 중 하나. 박세은은 여유 있는 도약과 화려한 회전으로 단연 눈길을 끌었다.


박세은의 길은 한국 발레리나로선 아무도 못 가본 길이다. 파리발레단 첫 한국인 발레리나이자 군무부터 시작해서 솔리스트인 쉬제, 제1무용수까지 올라온 것도 처음이다. 그가 '지젤'이나 '라 바야데르' '잠자는 숲속의 미녀' 주역을 추면 그대로 한국 발레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래서 에투알 승급을 간절히 소망한다. 에투알은 시험이 없다. 누가 은퇴해서 빈자리가 나야 하고, 발레단에 대한 기여를 종합해서 평가한다. "전 고전발레가 훨씬 편하고 기량을 보여주기도 좋거든요. 다음 시즌 '지젤'을 올리는데, 너무 하고 싶은 배역이에요. 그러려면 에투알이 돼야 하는 거죠."


파리발레단 에투알(남 6, 여 10명)은 프랑스인 일색에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출신이 끼어 있다. 박세은이 에투알이 되면 콧대 높은 프랑스의 첫 비서구인 최고무용수가 된다. 외국인이 5%밖에 안 되는 파리발레단에 윤서후, 강호현 같은 후배들이 들어와 그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 '박세은 키드'인 셈이다. 이번 공연에도 군무진(24명)으로 출연했다.


박세은이 발레단이 있는 가르니에 극장을 보여주겠다며 나섰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무대인 그 극장이다. 누레예프 이름을 딴 연습실부터 무대 바로 뒤 최종 리허설룸과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지붕 아래 연습실까지 계단을 오르내리며 돌았다. 토슈즈에 온몸을 싣고 수없이 점프와 회전을 되풀이했을 박세은의 시간이 느껴졌다.


파리=김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