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충족, 돈 미충족" 트로피 50만원에 판 가수 이랑의 반전

[컬처]by 중앙일보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 '늑대가 나타났다'

"잘 먹고 잘 살아보겠습니다" 이랑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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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을 수상한 가수 이랑. 이랑은 수상소감에서 "이 앨범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제가 남들보다 용기있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제가 잘하는 게 있다면 그냥 말을 할 줄 아는 것 뿐"이라며 "어릴때부터 가만히 좀 있으라는 말을 많이 들으면서 자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냥 말을 할 줄 아는, 겁 많고 자주 아픈 한 사람일 뿐"이라고 밝혔다. 사진 유어썸머

지난 1일 오후 열린 2022 한국대중음악상(한대음)이 뽑은 '올해의 음반'은 가수 이랑(36)의 '늑대가 나타났다'였다. 함께 후보에 오른 아이유, 악뮤, 김현철, 천용성을 제치고 "사회를 이루는 것은 사람들이며, 그들 각자는 타자를 죽음으로부터 끌어내는 힘을 미약하게나마 가지고 있다. 그것을 환기시키며 그럼으로써 죽음에 저항하는 음반"이라는 평을 받으며 트로피의 주인공이 됐다.


이랑은 2012년 데뷔한 11년차 인디 뮤지션이다. 가난과 죽음, 우울, 일상을 소재로 한 노래가 많고, 약자와 소수자, 혐오, 차별 등을 다룬 사회적 메시지도 음악에 많이 담는다. 지난 2017년엔 '내밀한 일상의 노랫말이 날카로운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준다'는 평과 함께 같은 시상식에서 '최고의 포크 노래' 상을 받았고, 지난 1월엔 서울가요대상에서 '올해의 발견' 상을 받기도 했다.

인디 이랑, '올해의 음반' 상…"잘 먹고 잘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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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 3집 '늑대가 나타났다'는 2022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됐다. 사진 유어썸머

수상 다음 날인 지난 2일 화상으로 만난 이랑은 "2017년 수상소감으로 했던 '잘 먹고 잘살자'가 이루기 어려운 말이지만 좋았다고 생각해서 한 번 더 말했더니, 축하 인사로 '잘 먹고 잘살자'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선우정아님이 가장 먼저 축하를 해줬는데, '아름다운 소감이었어요, 감사해요'라고 말씀하시더라"고 말했다.


지난 2월 9일 후보 발표 당시부터 이랑은 화제가 됐다. 올해의 음반, 올해의 노래, 올해의 음악인 등 종합 4부문 중 신인상을 제외한 3부문 후보에 올랐고, 최우수 포크 음반과 최우수 포크 노래(2곡) 후보로도 선정돼 총 6번 이름을 올리며 '최다 후보 지명' 기록을 썼다. 이랑은"'후보 최다 노미네이트'도 깜짝 놀랐고, 이런 영광을 줘놓고 상을 하나도 안 주진 않겠지' 생각은 했다"면서도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보니 음악성으로 평가하는 시상식에서 앨범, 노래보다는 '이슈'나 '주제'를 고려한 올해의 음악인을 받을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2011년 졸업했다.

"'트로피 퍼포먼스' 이후 모두에게 밉보였다 생각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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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최우수 포크 노래' 상을 받은 이랑은 "명예는 충족됐는데 돈이 충족되지 않았다"며 트로피를 50만원에 파는 퍼포먼스를 선보여 화제가 됐다. 이랑은 "이 퍼포먼스 이후 '예의없다'는 비난도 많이 받았고, 다시는 큰 무대에 서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KMA 유튜브 캡쳐

이랑은 2017년 한대음 시상식에서 화제와 논란을 불렀다. 2집 타이틀곡 '신의 놀이'로 '최우수 포크 노래' 상을 받는 자리에서 "명예는 충족됐는데 돈이 충족되지 않는다"며 트로피를 50만원에 파는 퍼포먼스를 벌여서다.


이번 시상식에선 ”제가 잘하는 게 있다면 말을 할 줄 아는 것뿐"이라며 "어릴 때부터 가만히 좀 있으라는 말을 많이 들으면서 자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냥 말을 할 줄 아는, 겁 많고 자주 아픈 한 사람일 뿐입니다"라고 조용한 수상소감을 밝혔다. 이랑은 "올해 시상식에선 일부러 특별한 퍼포먼스를 안 했다"며 "스피치 순간마다 사회적인 메시지로 읽히는 강력한 말들을 해오다 보니 공격도 많이 받고, 지금은 취약해진 상태라서 그대로를 말했다"고 말했다.


이랑은 2017년 퍼포먼스 이후 '명예로운 자리에서 예의 없다'는 비난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는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밉보였다, 한대음도 기껏 상 줬더니 트로피 팔고 돈 달라고 하는 내가 미워서 앞으로 불러주지 않을 것 같다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며 "그런데 후보로 뽑아주고 상도 주셔서 놀라운 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2017년 시상식 퍼포먼스의 이유였던 '돈'은 여전히 충족되지 않은 상태다. 데뷔 10년, 3집 앨범 가수인 데다 인디 씬에선 스타인 그지만 한 달 음원 수익은 20만원 남짓이라고 했다.

"끊임없이 질문하는 어른이 됐더니 '예의 없다' 시끄럽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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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 '최고의 포크 노래'를 수상한 이랑. 사진 유어썸머

2012년 1집으로 데뷔한 이후 2집으로 '올해의 포크 노래 상'을 수상한 2017년, 3집으로 '올해의 음반'에 오른 2022년까지 이랑은 쉼 없이 일했고 음악은 꾸준히 조금씩 달라졌다. 그는 "2012년은 '이제 막 성인이 된 나', 2017년은 '사회인이 된 나'였다면 2022년은 '이렇게 무서운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하는 나"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3집에는 '혁명'과 '응원'이라는 메시지가 함께 담겨있다. '올해의 포크 노래' 후보에 오른 '늑대가 나타났다'는 "혁명을 나타내기 위해 녹음실에서 발 구르고 소리 지르며 희열이 컸던 곡"이고, '환란의 세대'는 "정말 죽고 싶은 마음으로 '살자'고 말하는 에너지가 큰 노래라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릴 때부터 정확하게 설명해주지 않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며 커왔다"며 "어릴 때는 다들 질문이 많지 않나, 나는 어른이 돼도 질문하는 에너지가 떨어지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끊임없이 질문하는 어른이 됐더니 '예의 없다, 시끄럽다'는 말을 들으며 살고 있다"는 그는 음악 외에도 글, 다양한 활동으로 '다양성'을 꾸준히 말해왔다. 지난 1월 고척돔에서 열린 서울가요대상(서가대) 시상식에선 함께 출연한 합창단이 수어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쳤고, 정의당 심상정 의원의 후원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서가대 무대 준비 과정에서 어려움이 예상됐고, 농인 사회에서 비판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미 농인 접근성이 떨어지는 콘텐트가 많은 세상에서 알고도 안 하는 게 싫었다"며 "어차피 서가대는 평생 한 번뿐일 무대라고 생각해서, 저와 제 주변인에게 중요한 '차별금지법' 이슈를 남기고 온 데에 의의를 뒀다"고 설명했다.

우울증도 '뇌에 힘주고' 버틴 일 중독 아티스트, "처음 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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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일중독에 가깝게 쉬지 않고 일을 하고, 메모광, 계획광이라는 이랑은 인터뷰 중 자신의 수첩을 펴 보여줬다. '한대음 시상식 스피치&의상'이 적혀있는 3월 1일 메모의 일부. 사진 이랑

한 달에 하루 이틀 쉬고 일하는, '일 중독'에 가까웠던 이랑은 지난해 연말 언니가 세상을 떠나고, 올해 2월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황장애가 찾아와 데뷔 이후 가장 많이 쉬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시상식에서도 "잘 먹고 잘…살아보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고, "심장이 자주 두근거리고, '자극적인 도시생활에서 너무 애를 쓰고 있었나' 싶다"는 그는 "그간 우울증이 있어도 '뇌에 힘 빡 주고' 버텼는데, 지금은 몸과 정신이 모두 파업을 한 것 같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단은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정원영 밴드의 가수 정원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보내주는 음악들이 꽤 응원이 된다고 했다. "한대음 수상 소식을 전하러 통화한 게 처음 인연인데, 그 이후 SNS로 제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 알고는 걱정이 되는지 매일 음악을 보내주신다"고 했다. '오늘은 춤을 춰보세요'라며 마돈나 음악을 보내거나, 이랑이 '오늘은 청소를 할 거예요'라고 말하면 청소할 때 어울리는 음악을 보내준다고 했다. 그는 "2월 초 정말 아무것도 못 하고 누워있기만 했을 때, 정원영님이 보내주시는 음악을 플레이리스트로 만들어두는 게 제가 하는 유일한 일이었다"고 덧붙였다.


이랑은 "힘들고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항상 머릿속으로 '연결'을 생각한다"며 "나는 다른 사람들과 연결돼있고, 이걸 끊으면 또 다른 사람들이 무너지고 살아갈 힘이 빠진다는 생각을 하며 버틴다"고 말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2022.03.0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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