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컬처 ]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 죽여버리자: ‘메이헴’

byㅍㅍㅅㅅ

※ 이 글은 영화 <메이햄>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

‘Mayhem’대혼란, 아수라장을 의미하는 영어단어이다. 조 린치 감독의 B급 영화 <메이헴>은 제목 그대로의 아수라장을 담아낸다.

 

영화는 변호사인 데릭 조(스티븐 연)의 내레이션과 함께 시작한다. 사람들의 분노, 성욕, 우울 등의 본능을 극대화시키는 바이러스가 세상에 퍼지고,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 한 회사원이 직장 상사를 펜으로 찔러 죽이는 사태가 발생한다. 데릭 조는 이 사건이 단순한 살인이 아닌 바이러스에 의해 벌어진 사건임으로 상사를 살해한 회사원은 무죄라는 판결을 이끌어내며 고속 승진하는 탄탄대로에 올라탄다.

 

가족과 통화할 시간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며 더 높은 자리로 승진하기 위해 살아가던 데릭은 회사의 잘못으로 터진 사건을 막기 위해 갑작스레 해고당한다. 그리고 데릭이 해고당하던 날 회사 건물에 바이러스가 퍼지고, 바이러스가 정화되기 위해 필요한 8시간 동안 건물이 봉쇄된다. 이미 회사 건물에 퍼진 바이러스에 사람들이 감염되고, 건물은 아수라장이 된다.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

사실 공개된 포스터와 시놉시스를 보고선 좀비 영화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관객들이 <메이헴>이 좀비 영화인 줄 알고 상영관을 찾았을 것이다. 심지어 스티븐 연은 <워킹데드>의 글렌이니까! 때문에 해고당한 데렉이 좀비가 된 직장 상사들을 마음껏 썰고 패면서 건물을 빠져나오는 작품이 아닐까 지레짐작했었다.

 

직접 관람한 영화는 생각한 것과는 정반대의 영화였다. <메이헴>은 좀비를 피해 건물을 탈출하는 이야기가 아닌, 바이러스에 걸렸다는 사실을 이용해 자신을 해고한 직장상사들을 죽이러 건물 지하에서부터 최상층까지 치고 올라가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회사는 자신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데릭을 희생자로 내세우지만, 데릭은 자신이 승진할 수 있는 이유였던 (동시에 회사가 성장하는 계기였던) 바이러스 무죄 판결을 이용해 자신을 내친 회사를 자신의 두 손으로 박살 낸다.

 

좀비처럼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 단지 본능적인 분노가 극대화되는 바이러스라는 설정은 데릭이 마음껏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한다. 건물의 지하에서 망치, 몽키스패너, 네일건 등을 잔뜩 챙겨서 마치 게임 속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듯 한 층 한 층 올라 기어코 자신의 보스를 죽이고 마는 <메이헴>의 이야기는 직장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모든 회사원이 통쾌해할 만한 쾌감을 제공한다.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

이러한 좋은 설정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역량 부족으로 인해 아쉬움이 남는 부분들 역시 존재한다. 데릭의 내레이션으로 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 등을 전달하는 초반부는 조금 늘어지고, 86분의 러닝타임의 절반에 가까운 40분 정도를 그저 설정을 깔아 두는데 할애한다는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몇몇 장면에서의 튀는 편집, 가령 데릭은 아직 어떤 정보를 접하지 못했을 타이밍인데 이미 상황을 다 파악하고 있다든가 하는 장면들은 굉장히 거슬린다. 통쾌한 폭력의 향연이 이어지지만, 젠더적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지 못한 캐릭터들은 조금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부분을 농담으로 소비하는 장면이 있다는 점에서, 젠더적 스테레오 타입에 대한 고민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로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농담을 집어넣었다는 점은 아쉽다. 물론 영화가 담는 미소지니가 이러한 장르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수준에 머물기는 한다. 전체적으로 조 린치 감독의 연출력 부족으로 인한 캐릭터의 깊이 부족, 인서트가 숏이 부족한 편집,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에만 치중한 촬영과 편집 등은 <메이헴>의 설정과 이야기가 지닌 통쾌함을 반감시킨다.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

그럼에도 <메이헴>은 통쾌하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장르영화 작품 중 가장 관객 반응이 좋았던 작품을 꼽자면 <메이헴>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회사의 최상층에 도달하려는 데릭의 여정은 국적을 넘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회사생활의 스트레스, 회사 속에서의 정치와 끝없이 쏟아지는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모두를 뒤엎는 쾌감을 제공한다.

 

<워킹데드>의 글렌이 스트레스의 시달리는 회사원이 된 것만 같은 모습의 스티븐 연은 이번 영화의 쾌감을 담아내는 좋은 그릇이 된다. 스티븐 연의 팬이라면 절대 놓쳐선 안 될 연기와 매력이 담겨있다. 그와 함께 팀을 이루는 멜라니를 연기한 사마라 위빙의 매력 또한 <메이헴>을 즐겁게 만들어준다.

필자 동구리 (블로그, 페이스북)

영화 보는 영알못. 영화 블로그에 이런저런 감상들을 써보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