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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우아하고 단호하게
거절하는 연습

byㅍㅍㅅㅅ

남편은 착하게 생겼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처럼 착하게 생겨 나쁜 점은 부탁을 너무 자주 받는다는 것이다. 졸업한 지 한참 지났는데도 매년 새로운 학생회 대표가 전화해 홈페이지를 봐달라고 한다. 기획안이나 제안서를 봐달라는 연락도 부지기수다.

 

글과 전혀 무관한 일을 하는데도 써놓은 글을 그에게 봐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봤다. 부탁받은 일을 하느라 정작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뒤늦게 시작하기도 하고, 밤을 새워 일하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어찌나 거절을 잘 못 하는지 내가 “혹시 나랑 결혼해 줄 수 있어?”한 부탁에도 고개를 끄덕이고야 말았다.

우아하고 단호하게 거절하는 연습

illust 키미앤일이

이처럼 부탁을 자주 받는 사람들은 ‘착한 사람’ ‘역시 너밖에 없어’라는 말을 듣는 걸 포기하고 싶지 않고, 상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자신을 혹사시키면서까지 에너지를 쓰곤 한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중요도에 따른 시간과 에너지의 분배다. 이것이 잘 되지 않으면 사랑하는 사람은 정작 서운하게 하고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마음을 쓰느라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무례한 사람의 부탁이라면 아예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이 좋지만 가끔은 애매한 경우가 있다. 지금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면서도 부탁을 들어주기에는 어렵다는 판단이 든다면 최대한 감정을 상하지 않고 거절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부탁을 잘 거절하려면 우선은 반갑게 연락을 받아야 한다. 이를 통해 최대한 당신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지만 상황적으로 어렵다는 메시지를 넌지시 전달하는 것이다. 연락이 오면 처음부터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지 말고 우선은 환대하면서 말하는 내용과 일정을 사려 깊게 듣고, ‘좋은 기회를 줘서 고마워’ ‘그렇게 중요한 일에 나를 떠올려줘서 고마워’라고 감사 인사를 전하자. 그래야 거절당하는 사람도 상처받지 않는다.

 

그 후에는 바로 가능한지 여부를 말하지 말고, ‘언제까지 내가 확답을 주면 돼?’ 하고 물어보는 것이 좋다. 만약 언제까지 가능 여부를 알려 줘야 하는지 질문했을 때, 급한 일이라 오늘내일 중으로 답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한다면 이 부탁에서 당신은 우선순위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부탁을 했지만 거절당해 돌고 돌아 당신에게 왔을 확률이 높으니 덜 미안해하면서 요즘은 바쁜 일이 있어 어렵다고 바로 거절해도 된다.

 

그토록 급한 일이라면 부탁하는 사람도 무리한 부탁임을 알고 있고, 안 될 가능성을 높게 생각하고 있기에 거절당하더라도 크게 섭섭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처럼 시간이 촉박한 경우에는, 시간을 끈 후 최종적으로 거절의 의사를 밝혔을 때 상황이 더욱 곤란해지는 경우가 많다. 상대는 “네가 해주는 줄 알고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안 된다고 하면 어떻게 해?”하면서 죄책감을 유도해 거절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가곤 한다.

 

확답하는데 시간적 여유가 좀 있다면 우선은 스케줄을 보고 다시 연락하겠다고 한 후 전화를 끊는다. 하루 이틀 정도 생각을 해본 뒤 역시나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면, 다시 연락해 최대한 부탁을 들어주려 했지만 ‘최근에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와 같은 이유로 어렵겠다고 말한다. 구차해 보일 수 있으니 너무 자세히 변명할 필요는 없다.

 

이 이야기를 먼저 한 뒤, 만약 비용이나 일정 등 협상의 여지가 있는 일이라면 뒤이어 의견을 제시해보자. 그렇다면 상대는 최대한 당신이 제시하는 조건을 들어주려 할 것이다. 만약 도저히 일정이 맞지 않는다면 주변에 그 일을 할 만한 다른 사람을 추천해주는 것도 좋다.

 

상대에게 미움받는 것이 두려워서, 안된다고 하면 상대가 나를 떠나갈까 봐 무리한 부탁을 자꾸 들어주는 식으로 관계 설정이 되면 부작용이 심각해진다. 그런 관계의 기울어진 추를 파악한 상대는 계속해서 무리한 부탁임을 알면서도 제안하게 되고, 부탁을 받는 사람은 일그러진 인정욕구와 피해의식이 겹쳐 자꾸만 의기소침해지고 예민해진다.

우아하고 단호하게 거절하는 연습

부탁받은 일을 해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마음이 기껍고 편안한 상태여야 한다. 예의 바르게 부탁을 거절했는데도 자꾸 하소연하며 나를 비난하는 사람은 옆에 두지 않는 것이 좋다.

 

하나 더, 좋은 사람 소리를 듣고 싶으면서도 거절도 잘하고 싶다면 그건 욕심일 뿐이다. 둘 중 하나는 어느 정도 포기하라고 말하고 싶다. 나에게 상대의 부탁을 거절할 자유가 있듯이, 거절당한 상대가 나에게 실망할 자유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면 그 모든 사람에게 휘둘리게 된다.

필자 정문정

20대 미디어 ‘대학내일’에서 콘텐츠 디렉터로 일합니다. 20대, 여성, 인간관계, 심리학이 주된 관심사입니다. 잘하는 것은 관상 보기, 못 하는 것은 살 빼기입니다. 책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