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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우리에게는 약간 불편한 관계가 필요하다

byㅍㅍㅅㅅ

“직원들의 사기를 위해 앞으로는 여직원을 뽑지 않겠다.”
“앞으로는 남직원이 여직원에게 아예 말을 걸지 않게 될 것, 직장 내 인간관계가 삭막해질 것이 우려된다.”
“실수 좀 했다고 해서 남자 인생을 파탄 내다니, 돈을 노린 복수극이다.”
“예민한 여자들은 역시 사회생활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팽배….”

최근 미투 운동에 따른 부정적 여론의 예를 든 것이 아니다. 1994년, 우리 사회에 처음 ‘성희롱이 문제가 된다’는 판결이 나왔을 때 당시 시민들의 반응을 정리한 것이다. 한국 최초로 법적 제기된 성희롱 사건인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1993년 서울대 신 모 교수는 우 조교에게 의도적으로 몸을 밀착하는 등 수차례 성희롱을 했다. 우 조교가 이를 거부하자 신 교수는 애초 약속했던 재임용 추천을 거부했고, 우 조교는 면직되었다. 대자보를 써 교수의 이런 행태를 비판한 그는, 변호사를 만나 상담하던 중 자신이 당한 내용이 전형적인 직장 내 성희롱이며 외국에서는 이미 법적인 규제책이 있음을 알게 된다.

 

성희롱(sexual harassment)이라는 용어는 미국에서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던 1970년대에 처음 사용되었다. 직장에서 남성 상사가 여성 부하 직원에게 성적인 말과 행동을 하고 이를 거부하면 고용 관련 불이익을 주는 사건들이 늘어났고 이를 법적으로 규정할 필요를 느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사건 이전까지 ‘성희롱’이라는 용어조차 없어 이 같은 미국의 사례와 용어를 참고해야 했다.

“앞으로 여성은 취업에 더 불리해질 것”
“한국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

이런 여론 사이에서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은 6년간 지난한 법정 싸움을 거쳐야 했다. 1998년 결국 대법원은 이것이 직장 내 성희롱임을 인정했다. 이 판결은 1999년 남녀고용평등법과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에 성희롱 금지를 명시하는 데 혁혁히 기여한다.

 

이는 당시 한국 사회에 커다란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앞으로는 말도 조심해서 해야겠다(아니 당연한 거 아닙니까…)’ ‘무서워서 여직원에게는 무슨 말을 못 하겠다’ 같은 푸념이 쏟아져 나왔다. 우 조교의 손을 들어주었던 1심 재판부는 국민 정서와 맞지 않는 판결이라며 항의하는 전화로 인해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우리에게는 약간 불편한 관계가 필요하

일러스트: 키미앤일이

최근 미투 운동과 관련한 반응들을 보면, 이 같은 24년 전의 풍경이 겹쳐 보인다. 신 교수 성희롱 사건과 관련해, ‘상대방 의사에 반해 성적 언어나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불쾌감과 굴욕감을 주는 행위’를 성적 범죄로 인정하고 있는 서구의 판례와, 분명히 그와는 거리가 먼 우리의 관심과 인식 사이의 어딘가에 낙점을 해야 한다’며 훈계했던 모 언론사는 지금, 미투 운동 관련해 여성과 단둘이 있는 것을 피하는 ‘펜스룰’이 합리적인 여론인 듯 보도한다.

 

말 한번 잘못했다가 문제 되면 골치 아프니 일에서 아예 여자를 배제하자는 말이 힘을 얻는 이 상황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친근감의 표시와 성희롱의 차이를 구별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동안 상식적인 수준의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말일 것이며, 또는 그 차이를 몰랐어도 사회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말처럼 들린다.

 

정상적인 관계 맺음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쉽게 말하면 눈치가 있는 이들이다. 국어사전에서 ‘눈치’의 뜻은 “남의 마음을 그때그때 상황으로 미루어 알아내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눈치란 상대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나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상대가 어떤 기분을 느낄지 예측하는 감정 센서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이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눈치를 본다. 그렇기에 이 능력은 불편한 환경일 때, 사회적으로 약자일 때 발달하기 마련이다. 연애를 시작하거나 새로운 조직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은 열심히 눈치를 본다. 회사에서 과장보다는 사원이, 군대에서는 상병보다는 이병이 눈치를 훨씬 많이 보는 건 그래서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감정을 헤아려 배려하고, 실수했다면 사과하고 반성하면서 사람은 성장한다. 눈치를 보게 되면 내 행동으로 미루어 상대의 기분을 짐작하는 센서의 능력치가 커진다. 상대방 표정이나 말투의 작은 변화에도 ‘이 사람은 이걸 좋아하는구나’ ‘이 사람은 이걸 싫어하겠구나’를 빠르게 읽어 낸다. 이 능력은 자주 사용하면 발달하고, 쓰지 않으면 자동으로 퇴화된다. 의미 있는 행위지만 고도의 감정적 에너지를 써야 하기 때문에 힘들고 번거로운 일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약간 불편한 관계가 필요하

조선일보의 펜스룰 기사와 삽화

때문에 권력관계에서 갑일수록, 편한 환경일수록 눈치를 보지 않는 이들이 늘어난다. 다른 사람들이 이미 자신의 눈치를 살펴서 맞춰준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기가 편안한 관계에 익숙해지면 맥락을 읽는 감각이 퇴화된다. 그러면 ‘자기에게 맞춰주는’ 권력관계가 작동하지 않는 것에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어딜 가서든 자길 대접해달라며 ‘내가 누군지 알아?’를 외치는 사람들의 행태는 바로 이런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편한 관계에서만 있었다는 건 그만큼 다른 사람들이 참아주거나 자신이 갑일 수 있는 곳만 찾아다녔다는 뜻이다. ‘이제 여직원(아랫사람) 눈치까지 봐야 하냐?’라는 질문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고 답해주자. 그간 사람들이 누렸던 편안함 뒤에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권위주의와 갑질, 약자의 희생을 당연시 하는 분위기가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이런저런 신경을 쓰는 것이 불편하니까 배제시키자’는 태도의 ‘펜스룰’이 합리적인 양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그간 신경을 안 쓴 것이 문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상사는 후배의 눈치를 보고, 병장은 이등병 눈치를 볼 때 이 사회의 고질적 갑질이 줄어들 것이다. 소수가 편하고 여러 사람이 심각하게 불편한 것보다는 다 함께 조금씩 불편한 편이 훨씬 좋다.

필자 정문정

20대 미디어 ‘대학내일’에서 콘텐츠 디렉터로 일합니다. 20대, 여성, 인간관계, 심리학이 주된 관심사입니다. 잘하는 것은 관상 보기, 못 하는 것은 살 빼기입니다. 책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