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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슬기로운 채식생활] 채식주의가 ‘피타고라스 식단’으로 불렸던 이유

by리얼푸드

[리얼푸드=박준규 기자] ‘채식주의’(vegetarianism), ‘채식주의자’(vegetarian)라는 단어는 일상적으로 흔히 쓰이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베지테리언’이란 말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채식을 두고 ‘피타고라스 식단’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채식을 하는 사람이야”가 아니라 “나는 피타고라스 식을 지향해”라고 말하는 식이었죠.


뜬금없이 웬 피타고라스, 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아는 피타고라스는 중학교 시절 수학 교과서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하니까요. 바로 단순하지만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정리’로 꼽히는 피타고라스의 정리(a²+b²=c²)의 주인공이죠. 이 공식이 우리에게 끼친 충격이 컸던 탓일까 ‘피타고라스=수학자’라는 등식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에 등장하는 피타고라스.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에 등장하는 피타고라스.

하지만 피타고라스는 당대의 이름난 정치가이자 철학자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철학자로서 ‘고기를 먹지 않는 삶’을 전파했습니다. 실제로 그 자신도 고기를 일절 입에 대지 않는 식물성 재료 위주의 간소한 식단을 지켰습니다. 채식을 하나의 주의나 신념으로 외치는 채식주의자의 원조 같은 인물이죠.


이광조 한국채식영양연구소 소장이 2008년 펴낸 ‘역사 속의 채식인’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고기를 먹는 것과 물질주의는 피타고라스 학교에서는 금기였다. 도덕적인 수치로 간주되었을 뿐만 아니라 순수한 명상을 방해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들은 또한 흰색의 식물성 망토를 입었으며 동물을 사냥하거나 양털로 만든 옷도 사용하지 않았다.’


다른 책도 살펴볼까요. 캐나다의 과학저널리스트인 마르타 자라스카가 쓴 ‘고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Meathooked)에도 채식을 하던 피타고라스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인도의 향신료들. [사진=123rf]

인도의 향신료들. [사진=123rf]

‘피타고라스는 환생하는 윤회를 믿었다. 한 생에서 인간으로 태어나더라도 다음 생에는 돼지로 태어나 도축당해 베이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중략) 영혼이 진정 인간에서 동물로 환생한다면, 어떻게 고기를 먹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은 빵, 꿀, 채소 등 단순한 식단으로 살았다.’


‘환생’, ‘윤회’는 피타고라스가 채식을 선택한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불멸하지 않고 사람이나 동물의 형태로 다시 살아난다고 믿게 되면, 육식은 잔인한 일이 됩니다. 영혼을 해치는 행위, 인간이 정신을 수양하는 과정에서 해가 되는 일이 됩니다.


윤회를 말할 때 떠오르는 인물이 또 있습니다. 바로 석가모니(부처)입니다. 그 역시 인간의 영혼은 어떤 형태로든 다시 태어난다고 믿고 육식을 멀리했죠. 흥미롭게도 피타고라스와 석가모니는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면서 대중 앞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가르쳤어요. 단순히 활동하던 장소만 달랐죠.


하지만 결과는 사뭇 달랐어요. 피타고라스의 채식은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비주류 취급을 받았으나 석가모니의 채식은 유행처럼 번집니다.


당시 그리스에선 주로 축제 때 고기를 먹었는데요, 고기를 입에 대지 않는다는 건 사회 제도 자체에 대한 거부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더구나 고기는 ‘상징성’이 강했는데요 강인함, 남성성, 부유함 같은 면을 드러내려면 육식은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해석도 있습니다.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19세기 중반까지 채식이 힘을 받지 못했던 이유는 ‘맛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죠. 과거 유럽의 조리법으론, 고기 없이 채소만 가지고 입맛을 끄는 요리를 만들기 어려웠다는 겁니다.


반면 인도에선 온갖 식물성 재료만으로도 풍미가 좋고, 먹음직스런 요리들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향신료가 풍부했고 이용할 수 있는 재료들도 유럽보다 다양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고기 없는 요리도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는 분석이죠.


nya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