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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김성현의 클래식 스캔들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은
누구였을까

by예술의전당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은 누구였을까

Ludwig van Beethoven 루트비히 판 베토벤 / 베토벤이 '불멸의 연인'을 생각하며 작성했던 편지

“나의 천사이자 전부이며 나의 분신이여.
그대에게 잠시 내 마음을 전하려 하오.
내일이 되어야 내 숙소가 확실하게 정해질 것 같구려.
왜 이런 깊은 슬픔이 있어야 하는지. 우리가 완전히 하나가 된다면,
나도 그대도 이처럼 고통을 겪지 않을 텐데.”

‘운명이 문을 두드린다’는 문구로 유명한 교향곡 5번의 1악장 첫 주제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이 숨을 거둔다. 배우 게리 올드먼이 베토벤 역할을 맡았던 영화 <불멸의 연인Immortal Beloved>(1995)은 이처럼 작곡가의 타계 장면에서 출발한다. 베토벤의 비서이자 전기 작가였던 안톤 신들러(1795~1864)는 작곡가가 사후에 남긴 편지 더미에서 불멸의 연인을 생각하며 썼던 편지를 찾아낸다. 이 편지는 1812년 7월 6~7일 보헤미아의 온천 휴양지인 테플리츠에서 작성됐지만, 정확한 수신인의 이름은 명기되어 있지 않다.

줄리에타 귀차르디 백작 부인

영화에서 신들러는 온통 수수께끼로 가득한 이 편지를 들고 불멸의 연인의 존재를 찾아 나선다. 음악감독을 맡았던 지휘자 게오르그 솔티와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베토벤의 음악이 전편에 흐르는 가운데, 영화는 신들러가 베토벤이 연모했던 여인을 추적하는 여정을 보여준다. 젊은 시절 베토벤의 제자였던 줄리에타 귀차르디 백작 부인, 베토벤의 동생 카스파르 카를의 부인 요한나, 작곡가의 후원자였던 마리 폰 에르되디 백작 부인을 차례로 만나는 것이다.

 

실제로 베토벤은 1801년 줄리에타의 피아노 스승이 된 직후,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지난 2년간 내 삶이 얼마나 공허하고 슬픈 것이었는지 상상도 못 할 걸세. 나빠진 귀가 마치 유령처럼 어디서나 나를 괴롭히니, 사람들을 기피할 수밖에. 나의 변화는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나를 사랑하고 나도 사랑하는 여성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야. 그러니 2년이 지난 뒤에야 나는 행복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맛보고 있고, 처음으로 결혼이 행복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있어. 불행하게도 그녀는 나와 신분이 달라. 또 지금 나는 결혼을 할 수가 없지.” 이듬해 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을 줄리에타에게 헌정했다. 베토벤이 타계한 뒤인 1840년 신들러는 “줄리에타야말로 불멸의 연인에게 보내려던 편지의 수신인”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영화는 불멸의 연인이 숙박부에 남긴 서명의 필적을 바탕으로 막장 드라마를 연상시킬만큼 대담한 결론으로 치닫는다. 베토벤의 연인은 제수인 요한나였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심지어 영화는 카스파르와 요한나 사이에서 태어난 카를이 실은 베토벤의 조카가 아니라 아들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동생 카스파르가 1815년 먼저 세상을 떠난 뒤, 베토벤은 카를의 법적 후견인 자격을 놓고 요한나와 5년간 소송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베토벤은 요한나를 ‘악녀’나 ‘밤의 여왕’이라고 부르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영화는 현실적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은 막다른 골목까지 마구잡이로 달려간 감이 없지 않다. 결국 영화는 음악이 더욱 인상적이었던 범작凡作이라는 평가에 머물고 말았다. 하지만 영화는 지금도 여전히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과연 악성樂聖 베토벤에게는 숨겨진 연인이 있었을까. 그랬다면 작곡가가 연모했던 여인은 누구였을까.

 

베토벤이 불멸의 연인을 생각하면서 썼던 편지는 신들러가 숨진 뒤 베를린 국립도서관에서 구입해서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다. 베토벤이 연필로 작성한 10쪽 분량의 이 편지에는 작성 연도와 장소가 적혀 있지 않다. 편지를 발송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수신인이 반송한 것인지도 명확하게 구분하기 힘들다.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은 누구였을까

영화 '불멸의 연인' 포스터

요제피네 폰 브룬스비크

이 미스터리의 연인은 베토벤 연구가들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독일의 음악학자 발터 리츨러(1878~1965)는 1936년 초판이 발행된 「베토벤」(신인선·나주리 옮김, 음악세계, 2007)에서 헝가리 백작 가문 출신의 요제피네 폰 브룬스비크(1779~1821)를 불멸의 연인으로 추정했다. 요제피네는 네 살 연상의 언니 테레제와 함께 1799년 당시 빈에서 전도유망한 피아니스트로 떠오르고 있던 베토벤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베토벤은 요제피네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요제피네는 집안의 강요에 따라 무려 27세 연상의 요제프 다임 백작과 결혼했다.

 

1804년 다임 백작이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 뒤에도 베토벤은 구애를 계속했다. 지금도 15통 이상의 연서가 남아 있다. 이 편지에서 베토벤은 ‘단 하나의 연인’이나 ‘영원한 헌신과 믿음’이라는 말로 애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요제피네는 또다시 집안의 압력으로 베토벤과의 결혼을 단념했고 다른 귀족과 재혼과 결별을 거듭하다가 1821년 42세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음악학자들은 그해 베토벤이 작곡한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두 곡인 31번과 32번을 요제피네를 위한 장송곡으로 보기도 한다.

 

1954년 요제피네의 언니 테레제의 일기가 뒤늦게 출간되면서 요제피네는 불멸의 연인의 유력한 후보로 부상했다. 테레제는 1846년 일기에서 이렇게 썼다. “베토벤! 정말 꿈과 같지 않은가. 우리 집안의 절친한 친구였던, 그 멋진 사람. 다임의 미망인이었던 내 여동생 요제피네는 왜 그를 남편으로 맞이하지 않았던 걸까? 성스러운 모성애로 자신의 행복을 포기했던 요제피네, 베토벤과 결혼했더라면 더 행복했었을 텐데.” 베토벤의 편지와 언니 테레제의 일기까지 모든 정황 증거는 요제피네가 불멸의 연인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안토니 브렌타노

하지만 이 다수설에 강력한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 미국의 음악학자 메이너드 솔로몬이었다. 슈베르트의 동성애설을 비롯해 대담하고 파격적인 주장을 펼치는 것으로 소문난 솔로몬은 요제피네가 불멸의 연인이라는 기존 통설에 대해서도 제동을 걸고 나섰다. 당시 프랑크푸르트의 부유한 상인의 아내이자 예술 후원자였던 안토니 브렌타노(1780~1869)야말로 베토벤의 숨겨진 연인이라는 주장이었다. 병든 아버지를 간호하기 위해 남편과 함께 빈으로 이주한 브렌타노는 1810년 빈에서 베토벤을 만났다. 괴테와 그림 형제 등과 교우했던 예술 후원자이자, 빈민 구제 사업에도 발 벗고 나섰던 박애주의자이기도 했다.

 

솔로몬은 1972년 논문 「베토벤이 미지의 여인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새로운 조명」을 통해 기존 학설에 이의를 제기한데 이어, 1977년 자신의 주장을 요약한 전기 「루트비히 판 베토벤」(김병화 옮김, 한길사, 2006)을 펴냈다. 안토니 브렌타노라는 주장보다 더욱 대담한 건 결론에 이르는 추론 과정이었다. 불멸의 연인으로 거론되는 후보자들의 구체적인 이동 경로와 베토벤의 편지 구절, 프라하 현지 신문 등을 일일이 비교하는 방식을 통해서 다른 후보자들을 명단에서 지워나가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추리 소설이나 사건 보고서를 뺨치는 솔로몬의 논리 전개를 보고 있으면 사실 여부를 떠나서 그 자체로 무척 흥미진진하고 박진감이 넘쳤다. 안토니 브렌타노라는 ‘수정주의적 접근’은 요제피네라는 ‘전통주의적 학설’에 대한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불멸의 연인으로 떠올랐던 후보자들의 이동 경로와 당시 편지를 비교 검토하는 연구 방식은 급기야 솔로몬 자신의 발목을 잡기에 이르렀다. 베토벤이 테플리츠에서 편지를 작성한 1812년 7월 7일은 화요일이었다. 당시 안토니 브렌타노는 온천지 카를스바트에 머물고 있었다. 테플리츠에서 카를스바트까지 우편 마차는 하루정도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었지만, 베토벤은 “토요일 이전까지는 아마도 내 첫 편지를 받지 못할 거예요”라고 썼다. 아무리 늦어도 금요일이면 충분히 편지가 당도할 거리에 있었던 안토니 브렌타노는 ‘불멸의 연인’일 수 없다는 반론이 나온 것이었다. 당시 오스트리아 황제는 프란첸스바트에 머물고 있었다. 요제피네의 남편이 황제의 최측근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오히려 요제피네에게 보내려고 했던 편지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1세기 들어서 솔로몬의 반론은 힘을 잃고, 요제피네의 다수설이 다시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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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줄리에타 귀차르디 백작 부인 (중간)요제피네 폰 브룬스비크 (우)안토니 브렌타노

베토벤도 피 끓는 청년, 살아 숨 쉬는 인간이었다

요제피네와 브렌타노가 불멸의 연인의 유력한 후보로 압축된 가운데, 엎치락뒤치락 혼전을 벌이는 상황이다. 불멸의 연인의 정체를 쉽사리 파악하기 힘든 건, 좀처럼 갈피를 잡기 힘든 베토벤의 연애스타일 때문이기도 했다. 작곡가의 전기 작가인 알렉산더 세이어는 베토벤의 변덕스러운 연애 심리에 대해 “전력투구하지만 일시적인 열정, 그 대상인 여성이 더 좋아하는 연인과 결혼할 때까지 지속되는 열정은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끝날 운명인 또 다른 열정으로 인해 잊힌다”고 분석했다.

 

작곡가의 시시콜콜한 연애담에까지 굳이 관심을 가져야 할까 싶기도 하지만, 이 논쟁은 19세기의 낭만적 예술관을 교정하는 데 톡톡히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다. 청력을 잃은 가운데 절대고독 속에서 불멸의 걸작을 쏟아냈던 악성樂聖이나 독일 관현악의 위대한 완성자라는 통념 때문에 우리는 그가 젊은 시절 빈에서 떠오르던 스타연주자였고,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여성과 교제했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베토벤 역시 처음엔 피가 들끓는 청년이었던 것이다. 불멸의 연인에 대한 논쟁은 무엇보다 베토벤을 살아 숨 쉬는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글 김성현

연재 필자 소개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졸업.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인 사이먼 래틀과 피아니스트 겸 명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의 전기를 번역했다. 그외에도 「클래식 수첩」 「오늘의 클래식」 「365일 유럽 클래식 기행」 「시네마 클래식」 등을 썼다.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7년 3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