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키운다는 것

[라이프]by 예스24 채널예스

동물을 키운다면 개를 키우지 않을까 종종 생각했지만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

“유리씨는 고양이 키우게 생겼어요.”

 

한 일간지 기자를 만나 식사하던 자리였다. 기자, 선배, 그리고 나. 셋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불쑥 고양이가 툭 튀어나왔다. 순간 맞은편에 앉아있던 기자의 손을 덥석 잡을 뻔 했다. 가까스로 충동을 참고 물었다.

 

“그게 보여요?”

 

2016년 가을 어느 날부터 나는 갑자기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아니, 고양이가 나를 키우고 있다는 게 정확할 것 같다. 술에 취해 들어와 자신을 껴안으려고 하는 나를 피해 도망 다니는 걸 보면 귀찮아 하는 듯 하니. 고양이 사진을 찍으려고 휴대폰도 바꿔버렸다. 휴대폰 사진엔 내 셀카가 어느덧 사라지고, 음식과 고양이만 있다. 일하다가 종종 고양이 사진을 멍하니 보곤 한다. 사진첩에 고양이 사진이 늘어날수록 느낀다. 이렇게 사랑만을 퍼부어줄 수 있는 존재가 나에게 생겼구나. 이기적이고 나 자신만을 중요하게 여기던 나에게 큰 변화였다.

 

동물을 키운다면 개를 키우지 않을까 종종 생각했다. 나는 달리기가 유일한 취미인 사람이고, ‘개와 함께 한강을 뛴다면 행복하겠다’는 상상을 해왔었다. 그런 내게 느닷없이 고양이가 왔다. 애묘인들은 흔히들 ‘간택 당했다’라고 한다. 산책도 하지 않고, 훈련도 되지 않는 고양이가.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는 입양이었다. 어쩌면 다소 충동적이었다고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인생의 큰 결정들은 다들 알다시피 계획적이지 않다. 알러지가 있어 파양한다는 인터넷 게시물 글을 보고 안산까지 달려가 고양이를 데려온 날. 좁은 이동장에서 야옹하던 고양이의 긴 울음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생명체를 키운다는 것. 내 인생에 있어서 처음 일어난 이 일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변하게 했다. 고양이용품들을 사는 사이트에 회원가입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동물병원 의사 선생님에게 내 새끼의 건강을 물어보는 일, 고양이 집사들이 있는 카페에 가입해서 이런 저런 궁금증을 해결하는 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사료를 챙기는 일... 나 말고 고양이를 위한 일들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사람들을 만나서도 ‘내 이야기’를 가장한 고양이 자랑을 팔불출처럼 하고, 아무하고나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나에게 ‘고양이를 키우게 생겼다’는 말을 해준 기자와는 그 뒤로 계속 반려동물 이야기만 해댔다. 기자-취재원이라는 딱딱한 관계 사이에 같은 애묘인이라는 연대감이 수놓아졌다고나 할까.

 

이런 단순한 변화 외에도 고양이가 내 인생에 들어옴으로써 새로운 경험을 하고, 나의 세계는 좀 더 넓어졌다. 그동안 나는 ‘인간’에만 관심이 있었다면, 시선이 이제는 동물까지 향하게 되었다. 많은 동물들이 유기되고, 학대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어떤 행동을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끼치지 못했다. 오히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행동했던 적이 많았다. 친구들의 값비싼 밍크나 모피를 부러워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동물보호단체를 후원하게 되고, 동물실험을 하는 업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도 하나 둘씩 바뀌고 있다. 28년동안 당연히, 혹은 아무렇지도 않게 써왔던 것들이 나에게 점차 너무나 힘들고 불편하게 다가오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이 나를 불편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싫지 않다. 미처 내가 살펴보지 못했던, 알아도 편리를 위해 눈감아 왔던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준 내 고양이 하루에게 오히려 고맙다.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철없이 여전히 좋은 것을 먹고 입는다는 이유로 아무렇지도 않게 많은 생명들을 죽이고 학대하는 곳에 아낌없이 돈을 썼을 테니. 내가 조금 춥고, 조금 불편해도 내 고양이를 비롯한 많은 생명체들을 존중하고 공존하는 데에 가치를 두는 곳들에 내 돈을 쓰고 싶다. 우리나라 반려동물 시장이 곧 5조 규모가 된다고 한다. 이런 나라에서 아직도 반려동물을 유기하고 학대하는 일들이 수없이 일어난다는 것이 실로 잔혹하다. 부디 많은 이들이 노력하는 만큼 모든 생명체들이 행복해졌으면.

 

내가 손만 대도 행복해하며 골골송을 부르는 유일한 생명체, 나의 고양이. 내가 고양이에게 사랑을 준다는 느낌이 별로 안 드는 건 그보다 더 많은 사랑을 내가 받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자, 하루야.

제법 많은 것을 고양이에게 배웠다. 생명체에게 한결같이 소중한 것을. 이를테면 행복이란 따스하고 보드라우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든가. - 무라카미 하루키, 『후와 후와』 중에서

글ㆍ사진 |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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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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