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바이디! 루앙프라방의 아침시장

[여행]by 채지형
싸바이디! 루앙프라방의 아침시장

딱밧행렬을 기다리는 이들

라오스의 오래된 도시 루앙프라방에서는 이른 새벽에 하루를 시작한다. 동이 트기도 전, 다섯시 쯤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딱밧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딱밧은 승려들이 시주받는 것을 말하는데, 삶과 나눔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라오스 여러 지역에서 딱밧을 만날 수 있지만, 많은 여행자들은 딱밧 행렬을 보기 위해 루앙프라방을 찾는다. 루앙프라방이 사원이 많고 불심이 가득한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라오스에 도착한 다음 날 새벽, 힘차게 울리는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그리고 어스름한 길을 따라 시사방봉 거리(Thanon Sisavangvong)로 나갔다. 오렌지색 법복을 입은 긴 행렬이 다가왔다. 준비한 쌀밥을 한 주먹 뭉쳐, 스님들의 공양그릇에 조심스레 담았다. 특별한 뭔가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딱밧 의식을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이 가슴이 마구 뛰었다.

싸바이디! 루앙프라방의 아침시장

(1) 불심이 가득한 루앙프라방 (2) 경건한 마음으로 쌀을 시주하는 모습 (3) 새벽을 가르는 딱밧행렬

불심가득한 나라 라오스에서 딱밧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기본적으로 스님들에게 공양을 하는 뜻이 있지만, 스님들에게 밥을 바치는 이들에겐 욕심을 버리고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수행자들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낮추게 하는 뜻을 갖는다. 사람들은 스님들을 위해 따뜻한 밥을 짓고, 새벽에 사원에서 나온 스님들은 그 밥을 받아 거리의 헐벗은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딱밧 행렬의 스님들은 열 살도 안 돼 보이는 어린 스님부터 인자한 얼굴의 노스님까지 나이도 표정도 다양했다. 세상이 환해지기 전이지만, 이미 세상은 보시하는 이들의 마음과 스님들의 가슴속 나눔의 빛으로 반짝였다.

딱밧 의식 덕분에 알게 된 아침시장

싸바이디! 루앙프라방의 아침시장

아침시장의 활기찬 모습들

스님들의 행렬이 모두 사라지고 세상에 내려온 빛이 서서히 진해졌다. 약간은 몽롱한 기분으로 거리를 걷고 있었다. 부족한 잠을 청하러 숙소로 들어갈까 하는 찰라, 어디에선가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긴 저울처럼 생긴 바구니에 뭔가를 담아 스르르 사라지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마술피리에 홀려 한 길로 따라가는 동화 속 아이들처럼 부지런히 한 방향을 향해 가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들을 따라갔다. 그랬더니 좁은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장이 서 있는 게 아닌가. 루앙프라방에 아침 시장이 있다더니 바로 이곳이었다.

 

시장 입구에 서니, 심장 박동 수가 두 배쯤 빨라졌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시장에 들어섰다. 사람들은 길거리에 비닐을 깔고 오늘 팔 것들을 잘 보이도록 늘어놓고 있었다. 이제 갓 스물 돼 보이는 고운 아가씨는 부지런히 채소를 다듬고 있고, 그 옆에선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꽃으로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닭들은 자기들도 장을 보러 온 것처럼 골목 한가운데를 활보하고 있었다.

초록색 채소는 ‘반짝’, 살아있는 개구리는 ‘펄떡’

싸바이디! 루앙프라방의 아침시장

(1) 색이 대조적인 고추 (2) 침이 고이게 만드는 천연꿀 (3) 아침시장에서 파는 생선 (4) 분홍색 달걀

아침 시장의 초록은 내가 알던 초록이 아니었다. 어찌나 다양한 초록색 채소가 숨 쉬고 있던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산림이 울창한 라오스의 자연환경 덕분에 자연적으로 자란 식물과 채소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란다. 살아 있는 개구리도 좌판에 나와 있었다. 듣도 보도 못한 물고기들과 수많은 종류의 버섯, 보기만 해도 침이 괴는 꿀, 반짝반짝 빛나는 각종 과일까지…. 한 옥타브쯤 올라간 마음은 좀처럼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흥정하는 것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물고기 한 마리 더 넣어 달라’는 손님과 ‘안 된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주인의 옥신각신하는 모습. 하지만 역시나 손님 이기는 주인은 없다. 막판에는 둘 다 호탕하게 웃으며 돈과 물고기 한 보따리를 주고받았다.

코코넛 가루를 넣은 고소한 길거리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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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아침시장 군것질 삼매경 (3) 시장 한켠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밥.찰밥이라 우리 입맛에 잘 맞다

시끌시끌한 소리가 길을 알려주더니, 이번에는 어디에선가 흘러나오는 고소한 냄새가 방향을 일러줬다. 냄새를 따라가 보니, 즉석 튀김과 코코넛 가루를 섞은 귀여운 길거리 음식이 나타났다. 시장구경하다 출출할 때는 역시, 군것질. 장보러 나온 루앙프라방 주부들과 달달한 눈빛을 나누며 바삭한 길거리 음식을 맛보았다.

 

아침시장에 야채와 채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라면 신제품 시식코너도 있었다. 의외이기는 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했다. 큰 소리로 “싸바이디(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니, 흔쾌히 라면 한 젓가락을 일회용 컵에 담아 줬다. 우리의 인기라면에 비해서 크기는 3분의 1 정도였지만, 진한 맛은 나름의 풍미가 있었다. 준비해온 라오스 말 한마디도 연습해볼 겸 엄지를 올리며 “쎕(맛있다)”이라고 하니, 고운 라오스 아가씨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왠지 그 웃음에 화답을 해야 할 것 같아, 선물용으로 세 개를 가방에 넣었다.

 

아침시장을 돌아보니, 우리 시장에서 보던 것과 비슷한 재료들도 있었다. 라오스 사람들에게 없으면 안 되는 소스 중 하나인 ‘째우 봉’과 튀긴 파래 맛이 나는 ‘카이피엔’이 그것이다. 째우 봉은 고추장과 비슷한 것으로, 밥에 비벼먹으면 맛있는 소스. 카이피엔은 메콩 강에서 직접 건진 김에 깨를 뿌려놓은 음식으로 우리나라 남쪽 지방에서 볼 수 있는 ‘부각’과 비슷했다. 우리와 다른 채소에 신기해하고, 비슷한 식재료에 즐거워하다보니, 어디로 도망갔는지 모르게 시간이 훌쩍 흘러있었다.

싸바이디! 루앙프라방의 아침시장

북적이는 아침 시장에서 아직 꿀잠을 자고 있는 강아지

싸바이디! 루앙프라방의 아침시장

장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고 있는 루앙프라방 여인

2015.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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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답은 길 위에 있다고 믿는 여행가. '지구별 워커홀릭' 등 다수의 여행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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