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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집게손가락’은 왜 남혐의 상징이 됐나

by이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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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코리아 사옥. (뉴시스)

게임업계가 또다시 잡음을 빚고 있습니다. 다름 아닌 ‘검지’ 때문인데요. 홍보 영상 속 캐릭터의 손 모양을 두고 일각에서 남성 혐오 논란을 제기한 겁니다.


문제의 장면은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뿌리가 만든 넥슨 메이플스토리의 엔젤릭버스터 리마스터 애니메이션 홍보 영상에서 나왔습니다. 영상에 등장하는 한 캐릭터가 남성 혐오 표현으로 의심되는 손동작을 취했다는 건데요. 엄지와 검지를 모은 손동작은 한국 남성의 특정 신체 부위를 비하하는 의미로 쓰인다는 게 논란을 제기한 이들의 주장입니다.


이런 손동작으로 논란이 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앞서 GS25 등의 광고 홍보물에 이 같은 손동작이 포함되면서 네티즌들 사이 갑론을박이 이어졌고, 기업 측에서 공식적으로 사과한 적도 있습니다. 2년 전 논란이 다시 떠오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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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무신사, 카카오뱅크)

유통·금융업계 이어 정부기관까지 논란 휘말려…“당황스럽고 억울”

엄지와 검지를 모은 손 모양이 남성 혐오의 상징이 된 건 남성 혐오 커뮤니티 메갈리아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 사이트는 2017년 폐쇄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21년 편의점 GS25의 캠핑 행사 포스터를 시작으로 유통업계는 물론 금융업계, 공공기관까지 이 손동작과 관련된 논란에 휘말렸는데요. 당시 GS25가 공개한 캠핑 행사 포스터에는 소시지를 집으려는 손 삽화가 포함돼 있었는데,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 동작이 남성 혐오 표현이라는 주장이 제기됐죠.


여기에 포스터 속 문구 ‘Emotional Camping Must-have Item(감성캠핑 필수 아이템)’에서 영문 끝부분만 따면 ‘al, g, e, m’으로 megal(메갈)을 거꾸로 쓴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오며 논란이 확산했습니다. GS25는 수정된 포스터를 공개했지만, 잡음은 이어졌죠. 포스터 하단에 포함된 ‘달과 별’ 모양이 서울대 내 여성주의 학회 ‘관악 여성주의학회’의 마크와 유사하다는 의혹이 나온 겁니다.


결국 조윤성 당시 GS리테일 사장이 직접 사과하면서 논란을 일단락했죠.


그러나 GS25가 그해 유일한 ‘손가락 논란’은 아니었습니다. 카카오뱅크가 공개한 포스터 속 캐릭터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검지를 쓴 장면, BBQ의 소떡소떡 메뉴 이미지, 교촌치킨이 과거 게재했던 치킨을 들고 있는 사진, 랭킹닷컴이 판매한 닭가슴살 소시지 속 포장지에 그려진 손동작에 대해서도 남혐 표현 주장이 나왔습니다. 무신사와 현대카드가 진행한 이벤트 포스터, 신한은행의 군인적금 광고 이미지, 평택시의 홍보 게시물 속 캐릭터들의 손 모양도 지적받으며 논란이 확산했죠.


당시 무신사 측은 “‘손이 사용된 작은 상품 화보’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구도”라며 “작업에 참여했던 무신사 임직원들은 모두 당황스럽고 억울한 심정”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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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외신도 조명한 손가락 논란…“새로운 매카시즘”

주요 외신들도 한국의 이 같은 모습을 조명했습니다. 미국 CNN은 2021년 10월 ‘왜 한국 기업은 손동작에 불안해하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집게손가락을 둘러싼 논란을 전했습니다. CNN에 따르면 그해 5월부터 10월까지 한국에서 20개가 넘는 기업과 공공기관이 논란의 소지가 있는 이미지나 영상 등을 삭제했다고 합니다. 최소 12개 기업과 기관이 남성 고객을 달래기 위해 사과문을 냈죠.


CNN은 이런 논란을 ‘젠더 전쟁’(gender war)이라고 부르면서 “이 전쟁이 최근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 원인으로는 젊은 남성 사이 팽배한 안티 페미니즘을 꼽았습니다.


CNN은 “한국 사회는 성평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젊은 남성은 관련 정부 정책에서 소외된다고 느낀다”면서 “이들은 정부나 민간 기업이 의도적으로 페미니스트 의제를 추진하려고 음모를 꾸민다고 보고, 이를 반성하도록 몰아붙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여성에 비해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정서가 확산하면서, 페미니즘 전반에 대한 공격이 이뤄진다는 겁니다.


박주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CNN에 “이 같은 논란은 1950년대 미국에서 공산주의자를 색출하겠다고 벌인 매카시즘과 같다”며 “기업을 향한 이런 공격은 유리천장 문제나 가사노동 분담 등 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성 불평등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영국 BBC는 이러한 논란 대부분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촉발된다고 분석했는데요. BBC는 “젊은 남성들이 중심이 된 이 온라인 커뮤니티가 보이는 분노의 근원은 주로 여성들의 성공이 남성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졌다는 믿음에서 나온다”면서 “일부 남성들은 여성들 때문에 자신들이 불공정하게 피해를 봤다고 주장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하지만 현실은 한국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63%에 불과하며, 선진국 중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라며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은 선진국 대열의 국가 중 여성들이 일하기 최악의 환경인 국가로 꼽혔다”고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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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밤 경남 진주시 하대동의 한 편의점에서 20대 남성이 아르바이트 중이던 여성을 무차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범행 당시 편의점 내부 CCTV 화면 일부. (연합뉴스)

기업·기관 대응, 문제 없나…무비판적 의견 수용 지적도

전문가들은 혐오 표현을 ‘기분 나쁨’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GS25 포스터가 의도적으로 남성 혐오 표현을 담고 있었다고 주장하기 위해선 ‘기분이 나쁘다’나 ‘의혹이 있다’가 아닌, “실제로 그 표현에 의해 불안과 위협을 느끼는, 자신이 배제됐다고 인식하게 되는 구체적인 맥락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또 이 같은 논란에 휘말린 기업의 사과 등 공식적인 대응이 폭력에 일종의 ‘합리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7월 게임회사 프로젝트 문은 일부 남성 이용자들의 항의를 수용해 한 여성 직원과의 계약을 종료했는데요. 입사 전 불법촬영 규탄 시위 관련 게시물 등을 리트윗했다는 게 계약 종료의 배경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 논란에도 일각에서는 ‘관련 직원을 해고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살인을 예고하는 협박 글이 게재되기도 했습니다. 28일 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따르면 이날 오전 2시께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넥슨코리아 본사 앞에서 예정된 여성단체 기자회견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시위를 하면 죽이겠다”는 글이 흉기 사진과 함께 올라왔습니다. 해당 글은 현재 삭제된 상태입니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우리 부서만 해도 이력서 올라오면 여대는 다 걸러버린다”며 “내가 실무자라 서류평가를 하는데, 여자라고 무조건 떨어뜨리진 않지만 여대 나왔으면 그냥 자소서 안 읽고 불합격 처리한다”는 글이 올라왔는데요. 작성자는 “이번 넥슨 사태를 보니 게임회사도 이제 여자 좀 거르는 팀이 생겨날 것 같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블라인드는 회사 이메일로 인증 절차를 거쳐야 가입할 수 있는데, 해당 글을 작성한 계정은 모 부동산신탁 소속으로 표기됐죠.


작성자는 “난리 치면 칠수록 기업에선 여자들 극성맞다고 더 안 뽑아줄 것”, “글 지우지 않을 테니 신고하고 결과 좀 알려달라” 등 당당한 태도를 보였지만, 해당 글은 현재 삭제된 상태입니다.


남녀고용평등법상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하거나 채용할 때 남녀를 차별해선 안 되며, 직무 수행에 필요하지 않은 용모 등 신체적 조건을 요구해서도 안 됩니다. 이를 위반하면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죠.


게임업계의 대처 방식이 결국 산업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창작자의 자기 검열을 부르고, 게임 이용자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28일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열린 ‘게임문화 속 페미니즘 혐오몰이 규탄’ 긴급 기자회견에서 이두찬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활동가는 이번 넥슨의 공식적 대응을 “혐오몰이 동조”라고 지적하면서 “블리자드를 비롯한 해외 게임사에선 성역할 고정을 깨는 캐릭터가 계속 등장하고 있다. 이는 세계적 추세다. 2019년 모바일인덱스 분석에 따르면 모바일게임 성비는 남성 50.3%, 여성 49.7%로 큰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여성 노동자 및 이용자의 성장에 따라 특정 성별의 취향만을 맞추는 것은 시장 생존을 장담키 어려운 상황”이라며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남성만이 게임을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고 지금의 행태를 만들었다”고 꼬집었습니다.


[이투데이/장유진 기자 ( yxxj@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