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한판=3900원’ 헐값 시대는 끝났다

[자동차]by 한겨레

[평택 양계농장 르포]

생산비 뛰고 AI 겹쳐 계란값 고공 행진

“다시 AI 계절… 계란값 상승은 진행형”

4700원→7900원→7200원.


대형마트의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상·하반기까지 달걀 한판의 평균 소비자가격의 변화다. 지난해 9~10월만 해도 3990원에 밥상에 올랐던 달걀이 그해 말 조류인플루엔자(AI) 살처분 파동 이후 두배가량 오른 뒤 1년 가까이 7천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가 밥상 물가를 지키겠다며 세금을 투입해 달걀 수입에 나섰지만, 기존 가격 회복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계란 한판에 3990원이란 가격표를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정부 보조금이나 달걀 파동 등 외부 변수가 아니면 이전 가격으로의 복귀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계업계도 높아진 생산비 등을 고려했을 때 같은 의견을 내놓으며 한판에 3900원은 ‘미친 가격’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4일 경기 평택시의 성재농장에서 직원들이 계란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높아진 생산비에 AI 충격 덮쳐

지난 4일 방문한 경기 평택시 청북읍의 한 계란 생산 농장에선 대체공휴일에도 계란 분류 작업이 한창이었다. 계사에서 닭들이 알을 낳으면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옆 공장으로 옮겨지고, 세척돼 무게별로 분류되는 과정 전반이 자동화돼 있었다. 하얀 방역복을 입은 직원들은 육안으로 파손품을 분류하거나 최종 포장하는 작업을 했다.


이렇게 생산된 특란(60~68g) 한알 공급가격은 9월25일 기준 159원. 대한양계협회가 주기별로 발표하는 시세표에 맞춰 한판에 4770원에 출고되고 있었다. 여기에 유통 마진 등이 더해져 소비자들은 6000원대 중반~7000원대 중반에 계란 한판을 구매할 수 있다. 정부가 판매 보조금을 주거나 마트가 행사를 위해 마진을 줄이면 간혹 5900원에도 계란 한판을 살 수 있다. 온갖 혜택이 붙어도 작년 이맘때 4000원대 가격보다는 2000원가량 높아 소비자가 체감하는 계란값 상승폭은 크다.


농장 대표 황승준씨는 “특란 1알에 150원대 가격이 농장을 유지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고 했다. 한판에 4500원대 가격이 형성돼야 빚지지 않고 농장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파르게 상승한 중추(6~12주령 산란계) 구입비와 전기료, 농장 운영비 등을 고려한 가격이다. 황씨를 포함해 10명 직원 인건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국제곡물가 상승으로 전년 대비 12% 정도 사료값이 올라 산란계 10만마리 기준으로 매일 560만원이 나간다.


2019년만해도 특란 1알의 출고가는 지금의 절반 수준인 80원대(한판 2400원)를 오르내렸다. 2017년 말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줄어든 수요에 더해 양계 농장들의 자동화로 공급량이 늘면서 제살깎아먹기식 출혈경쟁이 이어진 게 원인이다. 대한양계협회가 공개한 계란 시세표를 보면 최근 3년 중 지난 2019년 3월에 특란 1알 가격이 77원까지 하락한 뒤 같은해 11월 110원까지 회복했다가 2020년에는 120원대를 유지했다. 이 시기에 계란은 마트의 끼워팔기 행사 상품으로 전락하면서 계란은 싼 식품이란 인식이 자리 잡았다.


황씨는 “최소 130원은 받아야 하는 특란을 100원 아래로 공급하면서 2년 넘게 빚만 쌓아가며 농장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계란 한판에 3990원이란 비정상적인 가격은 규모의 경제 효과가 없는 작은 농장들을 도산으로 내몰았다.

한겨레

저공 행진이던 계란값은 지난해 11월 국내에 조류인플루엔자가 확산한 뒤 크게 뛰었다. 조류인플루엔자 발생 전인 지난해 8월 특란 1알당 공급가격은 130원이었지만 올해 1월 170원대로 뛰었고, 4월엔 190으로 급등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지난 4월 발표한 농산물 거래 동향표를 보면 올해 4월 특란 1판 소매가는 7400원대였다. 이런 가격 상승은 지난해 11월 말 농장 첫 감염 발생 후 올해 상반기까지 사육하던 산란계수 7385만마리 중 1675만마리(23%)를 살처분한 게 주요 원인이었다. 산란계가 줄어 달걀 공급량 자체가 큰 폭으로 줄어 가격이 뛰었다는 얘기다. 또 코로나19 발생 후 ‘집밥 수요’가 늘어난 것도 계란값 상승을 부추겼다. 실제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가구당 평균 달걀 구매량은 137.7개로 전년 동기 대비 6.7% 증가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국내 하루 평균 계란 소비량을 4500만개 정도로 추산한다.

산란계 확충 지연에 가격 고공행진 지속

황씨의 농장도 조류인플루엔자에 직격탄을 맞았다. 황씨 농장과 직선거리로 2.8km 떨어진 화성시의 한 농장에서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돼 선제적 살처분 통보를 받았다. 자치구도 다르고 도로상 거리로도 5km이상 떨어져 있어 전부 살처분은 피하게 해달라고 방역기관 등에 호소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지난해 12월25일 크리스마스에 황씨는 키우던 산란계 15만마리 전부를 살처분했다.


황씨의 공장은 그뒤로 4개월 동안 멈춰 있었다. 살처분 농가가 많아진 탓에 기존 중추 가격이 3600원에서 두배 이상인 7500원으로 급등해 정부가 준 살처분 보상금으로 이전 산란계 수를 확보하는게 불가능했다. 양계 농가에선 빠른 계란 생산을 위해 중추 가격 상승 비용 중 일정액을 정부가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한겨레>에 “살처분 보상금이 이미 지급돼 중복지원 문제가 있고 다른 산업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했다”고 말했다.


병아리를 키워 6개월이 지나야 계란을 생산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할때 농장들의 중추 구입 지연은 계란값 하락을 지연시킨 요인이었다. 보상금 지급 방식도 21주령 산란계 기준 약 1만3500원 정액을 지급하던 것에서 가축구입비 및 사료·연료비 등 영수증을 제출해 직접 증빙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2018년 전 기준과 비교해 보상금 총액이 20% 이상 줄었다는 양계 업계 쪽 설명이다.


대신 정부는 계란 생산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계란 수입 카드를 꺼내 들었다. 1월말부터 수입된 계란은 운송료·작업비를 포함해 한 판당 약 1만2000원대에 수입돼 3000~4450원대 정가로 공매 입찰돼 판매됐다. 1500억원 세금을 들여 3억8538만개 계란을 수입해 476억원에 되팔았다. 가격 안정을 위해 재정이 1000억원 정도의 손실을 감내했다는 뜻이다.


계란 수입 정책은 계란 값을 되돌리는 데는 힘이 부쳤다. 계란 수입량이 하루 국내 계란 소비량 9일분에도 못 미치는 수준인 탓이다. 양계 업계가 계란 수입에 쓴 세금 일부만 피해농장에 지원했다면 좀 더 빠른 시기에 계란 생산량을 회복했을 것이란 주장을 내놓는 까닭이다. 다만 농식품부 관계자는 “신속한 계란 수입으로 계란값 추가 상승을 억제한 효과는 있다”고 반박했다.


한겨레

4일 경기 평택시의 성재농장 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텔레비전을 통해 계란 생산 공정을 관리하고 있다.

다시 철새가 돌아온다

황씨는 살처분 4개월만인 올해 4월 중추 5만마리, 5월에 추가로 5만마리를 들여와 농장을 재가동했다. 아직 5만수 규모의 농장 한 개는 비어있다. 살처분 피해와 이전 빚들이 쌓여 내년 상반기 안에 빈 공장에 닭들을 채울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황씨는 “매 순간 농장을 접겠다고 생각하지만 기존 시설을 처분하기도 막막해 버티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양계업자들은 “계란값 상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장 10월 이후 철새가 날아올 때면 양계 농장들은 또다시 조류인플루엔자 위험에 노출된다. 몇 개월 전 계란값 파동을 겪은 탓에 계란 생산에 조금만 차질이 생겨도 가격 변동 폭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동진 대한양계협회 홍보국장은 “조류인플루엔자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보상금 지급이나 피해 농가 지원 문제가 계속 반복된다”며 “살처분을 피해가거나 버틸 수 있는 대형 농장들을 제외하고 피해를 본 작은 규모 농장들은 경영 상황이 심각하게 허약해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 국장은 “지난 2년간 기형적인 계란값은 농장 경영인들이 피해를 감수한 결과”라며 “정부는 계란값이 올랐을 때 가격을 낮춰달라고 생산자만 압박할 게 아니라 반복되는 위기에도 버틸 수 있는 관리 시스템 전반을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옥기원 기자 ok@hani.co.kr

고무줄 방역 규정이 계란값 급등 불렀다?


달걀값이 크게 뛴 배경엔 크게 강화한 정부의 살처분 규정도 자리잡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 확산 방지라는 방역 기준에 따른 조처이지만 가격 급등에 불을 당긴 건 사실이란 뜻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달 30일 ‘겨울철 가축전염병 특별방역대책’을 통해 조류인플루엔자 발생 시 살처분 범위를 발생 초기 농장 반경 500m 전축종으로 축소하되 필요에 따라 3km 내 동일축종(감염된 축종 대상)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기존에 발생 농가 3km 이내 전축종을 예방적으로 살처분한다는 기준보다 훨씬 완화한 대책이다. 지난해 11월 말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한 뒤 살처분된 가금은 약 1700만수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중 발생농장에서 살처분된 가금은 약 380만수고 나머지는 모두 예방 목적으로 처분됐다.


정부의 살처분 규정은 500m 이내 전축종이였다가 고감염성 조류인플루엔자 확산 뒤인 2019년 말 3km 이내로 확대 강화됐다. 규정상 직선거리로 계산되는데 중간에 산 같은 장애물이 있어 병원균을 보유한 야생동물 이동이 어려운 지형에서도 일괄적으로 적용돼 과도한 규정이란 비판이 일었다. 이런 강화된 규정은 작년 말 조류인플루엔자 확산 뒤 산란계 대규모 살처분으로 이어졌고, 계란값 상승에 불을 지폈다.


이후 농식품부는 지난 2월 중순께 한시적으로 예방적 살처분 범위를 기존 3km 내 전축종에서 반경 1km 내 동일 축종으로 조정했다. 이번에 발표한 방역예방대책은 지난 2월 규정보다 거리가 500m 더 줄어들고, 예외적으로 3km로 확대할시 동일축종만 처분 대상에 포함돼 한층 완화한 것이다. 대한양계협회 관계자는 “업계에서 계속 요구한 내용이었는데 늦게라도 적용돼 다행”이라며 “이런 규정이 조금 빨리 적용됐다면 무모한 산란계 살처분과 계란값 인상을 방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식품부 방역정책국은 ‘감염 위험 분석'을 통한 단계적 완화 조처라고 설명했다. 방역정책국 관계자는 “감염원인 철새들의 이동범위가 넓어 (살처분) 범위를 3km로 적용했는데, 그동안 연구사례와 2월에 범위를 축소·적용한 경험들도 축적돼 유연하게 규정을 정비한 것”이라며 “조류인플루엔자 감염 상황이 심각해진다면 모니터링을 통해 범위가 다시 확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2021.10.1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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