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미나, “남들에겐 마음가는대로 즐기라 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컬처]by 중앙일보

10일『어느 날, 마음이 불행하다고 말했다』출간

2년 간 여행하며 '마음의 병' 치유한 이야기 담아

"여행책 아니라 심리에세이로 봐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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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마음내키는 대로 살고 행복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여행작가이자 방송인 손미나(48)씨는 덤덤히 웃으며 말했다. 지난 2년간 ‘마음의 병’을 치유했다는 그는 “스스로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인 줄만 알았다. 남들에게는 마음가는 대로 살라고 했는데, 정작 나는 쉴새없이 달리기만 했을 뿐, 마음을 억압한 채 살았다는 걸 최근에서야 알게 됐다. 당황스러웠다”고 고백했다.


시작은 2018년 여름 곤혹스런 경험에서부터다. 태국 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내던 어느날 아침 자신이 매우 불행하다는 메시지가 머리 속에 가득한 채 도무지 떠나지 않았다는 것. 본인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KBS 아나운서를 거쳐 성공적인 여행작가로 자리를 잡았고, 그런 경력을 바탕으로 허핑턴포스트 한국판 편집인을 맡았다.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과 손잡고 인생학교도 열었다. 더구나 휴가를 즐기던 중이었다.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무기력감과 우을증에 덜컥 겁이 난 그녀는 누구에게든 도움을 요청해야 할 것 같았다고 한다. 그래서 휴가지 인근의 심리치료사를 찾아갔고, ‘버킷리스트’ 중 일부를 실천하며 ‘마음의 병’을 치유하자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10일 출간된 『어느 날, 마음이 불행하다고 말했다』는 그가 지난 2년간 태국-쿠바-코스타리카-도미니카공화국-이탈리아를 돌며 사람들을 만나고 ‘마음의 병’을 치유해 간 과정을 담은 에세이다. 출간되기 하루 전인 9일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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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아나운서부터 시작해 여행작가, 언론사 편집인, 대안학교 교장 등 남들이 볼 때는 부러워할만한 커리어를 쌓아왔다. 왜 불행하다고 느꼈나.


=죽음의 문턱에 다녀온 사람들이 간혹 유체이탈을 한다고 하지 않나. 태국의 코사무이에서 휴가를 잘 보내는데 갑자기 어느 날 아침 아무 이유 없이 ‘나는 행복하지 않다’는 문장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마치 제삼자의 눈으로 내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런 일이 처음이라서 놀라기도 했고 이후 극심한 우울증이 휘감았다. 육감을 믿는 편인데 ‘이거 보통 일이 아니다’라는 직감이 오더라. 그래서 휴양지 인근에 있는 심리치료사를 찾아갔다. 상담 후 결론은 정신이 마음을 지배하면서 균형감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즉 성공해야 한다, 모범을 보여야 한다 같은 강박감이 오랫동안 본능을 억제하면서 어느 날 ‘뻥’하고 폭발한 것이다.


-손미나라는 사람은 마음 가는 대로 살아간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 외부에선 나를 보며 ‘스페인’ ‘태양’ ‘인생학교’ 같은 이미지를 떠올린다. 나 역시 마냥 긍정적이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어떤 사명감이나 책임감 때문에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허핑턴포스트 한국판 편집장, 인생학교 등등 좋아서 했다고 생각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를 가만히 두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달려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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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를 접은 것도 그런 이유인가


=휴가를 가기 전 정리를 시작했고 지금은 다른 분이 운영을 맡고 있다. 내가 책임감을 갖고 했지만, 내일 죽어도 오늘 하고 싶은 일이 그거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이 활동으로 1년에 인터뷰를 200건 가까이했다. 이 정도면 됐다 싶었다. 그래서 영국으로 가서 알랭 드 보통을 만나 양해를 구했고, 서로의 길을 응원하며 마무리했다. 허핑턴포스트 한국판은 아리아나 허핑턴이 2016년에 물러나면서 나도 그만뒀다.


-허핑턴포스트 한국판과 인생학교는 성공인가 실패인가. 또 내려놓는다는 것이 아쉽진 않았나.


=둘 다 내가 만든 브랜드가 아니고 외국에서 만들어진 브랜드를 한국에 뿌리내리게 하는 과정이었다. 다른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언론사와 학교를 이끌어간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 한국 사회가 외국의 유명 브랜드에 대한 선호가 있지만 한편으론 배타적이다. 그래도 허핑턴포스트는 세계 15개 브랜치 중 가장 먼저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인생학교도 호응이 많았다. 내 역할은 이것을 사회에 알리는 ‘알람’까지라고 본다. 이제는 사업능력을 가지신 분이 맡아 이끄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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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한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는 손미나씨 [사진 인스타그램 캡쳐]

-태국에서 ‘깨달음’을 얻고 처음 간 곳이 쿠바였다.


=버킷리스트 1호가 살사춤 배우기였다. 또 대학에서 전공하기도 했고, 스페인 연수도 다녀와서 되도록 스페인어를 활용할 수 있는 나라로 가고 싶었다.


-쿠바로 가면 다 내려놓고 마음 가는 대로 살게 되나


=마음으로 즐기는 것을 자꾸 일로 만드는 병이 있다. 스페인에 연수 갔을 때도 학위를 따고, 돌아와서 책을 썼다. 이번에도 쿠바에서 춤만 추기로 하고는 자꾸만 카메라를 들고 뭔가를 촬영하더라. 나도 모르게 ‘나중에 유튜브 방송에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거다. 중간부터 마음먹고 카메라를 치워버렸다.


-쿠바에서의 오토바이 드라이브나 이탈리아에서 로마시대의 오래된 주택에서 숙박했던 일 등 흥미로운 사건이 많이 나오는데 정작 사진이 없다.


=여행 에세이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사진을 곁들이면 사람들이 또 ‘중남미 여행 다녀와서 쓴 이야기’라고 생각할까 봐서다. 하고 싶은 여행 이야기도 산더미 같았지만 철저하게 심리 에세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다. 단독 저자로 낸 책이 12권인데, 표지나 본문에서 사진을 하나도 넣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은 나중에 인스타그램이나 독자와의 대담 등을 통해 공개할 생각이다.


-심리 에세이로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


=사회혁명을 할 것도 아니면서 지나친 사명감을 갖고 모범생 콤플렉스에 빠져 살았다. 남들에게는 ‘마음이 가는 대로 인생을 즐기라’고 말하면서 정작 내 마음에 귀 기울이지 못했다는 것과 그것을 이 나이에 깨달은 것이 신기했다. 그런데 교육과정이 팍팍하고 경쟁이 치열한 한국사회에서 살다 보면 완벽주의자가 아닌데도 자신에게 치열하게 살 것을 주문하게 된다. 분명 나 같은 사람이 있을 테고 그런 분들과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다.


-덜 치열하게 사는 방법 중 노하우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하루에 1시간씩 꼭 ‘미니휴가’를 준다. 그 시간에는 무조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한다. 그냥 멍때려도 좋다. 청소 같은 단순 노동도 머리를 깨끗하게 한다. 요가 선생님들이 들으면 실망하겠지만, 밥을 잔뜩 먹어도 좋다(웃음)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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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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