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어때] 세계지질공원 청송의 겨울

[여행]by 연합뉴스

바위산이 웅장한 주왕산과 꽁꽁 언 주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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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 용추협곡 [사진/조보희 기자]

(청송=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청송은 군 전체가 유네스코(UNESCO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가 지정한 세계 지질공원이다.


청송은 사계절 아름답지 않은 때가 없지만 웅장한 암산과 특이한 지질구조의 매력은 산하가 옷을 벗는 겨울에 더 잘 드러난다.

바위산의 매력, 겨울 주왕산

당진영덕고속도로를 달리다 청송IC로 빠져나와 주왕산으로 향하다 보면 어느 순간 우뚝 솟은 큰 바위산이 앞을 가로막을 듯, 한 눈 가득히 들어온다.


청송에서만 볼 수 있는 응회암 바위다. 장대한 암봉이 연봉으로 늘어선 청송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신호 같다.


청송은 군 전체가 통째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지질공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청송과 함께 제주도, 한탄강 일대, 무등산권이 세계지질공원으로 등록돼 있다.


섬이나 특정 지형이 아닌 하나의 행정 구역이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예는 국내에서 청송이 유일하다.


그만큼 청송에는 아름다운 풍광, 신기한 지질과 지형이 많다. 청송에서 지질명소로 분류되는 곳은 24곳이다.


만안자암 단애 등 퇴적층 명소가 3곳, 주왕산 기암 단애 등 화산지형 명소가 10곳, 주산지 등 수리 명소가 3곳, 신성리 공룡발자국 등 고생물 명소가 1곳, 백석탄 포트홀 등 지형 명소가 7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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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버들이 얼음 속에 뿌리를 박고 있는 주산지 [사진/조보희 기자]

이런 다채로운 지질이 형성된 시대 역시 선캠브리아기, 쥐라기, 백악기, 신생대 3기 등으로 다양하다.


지질 구조들에 분포하는 암석 종류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화산활동이 만들어낸 응회암, 유문암, 현무암 등 화성암이 있고 석회암, 사암, 셰일 등 퇴적암이 분포했는가 하면, 화강편마암, 흑운모편마암 등 변성암도 볼 수 있다.


이 암석들이 모두 형성되는 데 걸린 시간은 30억 년. 상상하기 어려운 억겁의 시간이다.


생소한 지질 용어를 늘어놓는 것은 지질 구조가 다양한 만큼이나 그것들이 형성한 지형들이 여느 곳에서 볼 수 없는 장관임을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청송의 멋진 풍광 중 으뜸은 주왕산일 것이다. 1972년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고 설악산, 월출산과 함께 3대 암산으로 불리는 주왕산은 영남 제1 명승지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눈을 사로잡는 암봉과 수려한 계곡이 절경을 이루는 주왕산에는 청송 지질명소 24개 중 9개가 있다.


이곳에는 기이하고 웅장한 바위가 많다. 그중에서도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듯한 응회암 절벽인 기암 단애는 주왕산국립공원 입구에서부터 탐방객을 압도한다.


주왕산 일대에서는 9번 이상의 화산 폭발이 있었다. 뜨거운 화산재가 쌓이고, 끈적끈적하게 엉겨 붙으면서 굳어진 암석이 응결응회암이다. 응결응회암이 급격히 냉각될 때 수축이 일어나면서 세로로 틈이 생겼고, 이 틈이 침식돼 절경을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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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사와 기암 단애 [사진/조보희 기자]

기암은 멀리서는 하나의 큰 바윗덩어리같이 보이지만 틈으로 갈라져 있어 실제로는 7개 바위로 나뉜다. 기암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1개의 바위로도 보이고, 몇 개의 바위로 나뉘어 관찰되기도 한다.


주왕산 계곡을 흐르는 주방천을 따라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아들바위, 연화굴, 급수대, 시루봉, 학소대 등 깎아지른 듯한 바위와 절벽이 하나씩 나타난다.


주왕산 절경은 예부터 숱한 예찬과 사랑을 받았다. 신록과 녹음이 울창한 봄·여름을 비롯해 단풍으로 곱게 물든 가을의 주왕산은 경상북도 깊은 내륙으로 외국인들까지 끌어들일 정도로 아름답다.


그러나 주왕산의 우람한 바위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나무가 잎을 다 떨군 겨울이 제격이다.


고즈넉한 풍광을 소재로 삼는 동양화에 자주 등장하는 산들은 여름 산이 아니라 겨울 산인 경우가 많다. 무성했던 나뭇잎이 사라진 겨울 산은 산의 골격과 바위의 모양을 여름 산보다 더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멀리서도 산의 속살을 보고 느낄 수 있다.


수직으로 내려꽂힌 신비의 돌기둥인 급수대, 경사 90도의 가파른 절벽인 학소대, 곧 무너질 듯 아찔한 시루봉 등 신령스러운 절벽과 바위산들은 겨울 주왕산의 주인이었다.


웅장한 바위들은 주왕산 입구에 있는 사찰인 대전사의 품격을 드높이는 존재이기도 하다. 대전사는 일주문도, 담도 없지만, 기암을 거대한 석탑인 양 품고 있다.


크지 않지만 중앙의 보광전 건물 전체가 보물로 지정된 유서 깊은 절이다. 보광전 내부 천장과 벽에는 1600년대 그려진 불화가 아름답다. 보존 상태가 우수해 17세기 조선 중후기 불화 연구의 귀중한 자료다.


속세와 천상을 가르는 듯한 용추협곡에 자리 잡은 용추폭포와 더 위쪽 용연폭포는 꽁꽁 얼어있었다. 용추폭포는 3단 폭포, 용연폭포는 2단 폭포다.


얼음 밑으로 차고 맑은 물이 세찬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옥처럼 희고 푸르스름한 얼음 빛은 이곳의 물이 얼마나 맑을지 짐작하게 했다.


용연폭포는 주왕산 폭포 중 가장 크다. 두 줄기의 낙수 현상으로 쌍용추폭포로도 불린다. 물의 침식작용으로 생긴 하식동이 양쪽 단애 면에 각각 3개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 폭포는 땅을 침식해 그 위치가 뒤로 밀려난다. 이때 하식동의 위치도 같이 뒤로 후퇴한다. 살아 있는 폭포, 움직이는 하식동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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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폭포 [사진/조보희 기자]

주왕산에서 일반 관광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탐방로는 공원 입구에서 용추폭포까지 왕복 5.8㎞ 구간이다. 2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이 길은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무장애길이다.


입구에서 용연폭포까지 왕복하는 데는 3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두 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걷기에 편안해 노약자도 갈 수 있다. 꾸밈없이 정직한 겨울 산과 바위를 느끼고 싶다면 누구라도 주왕산에서 목적을 이룰 수 있다.


달기약수탕, 만안자암단애, 백석탄 포트홀, 솔기온천 등도 놓치고 싶지 않은 명소들이다. 우리나라 3대 약수로 불리는 달기약수는 130년을 이어오는 탄산 약수다.


달기약수탕 근처에는 닭·오리 백숙을 주로 하는 달기약수촌이 형성돼 있다. 태행산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달기약수촌이, 북쪽에는 신촌약수촌이 있다.


두 곳의 약수는 같은 물줄기에서 솟아난다. 이 약수는 톡톡 튀는 맛을 주는 탄산을 비롯해 다양한 물질이 녹아 있어 위장병, 부인병, 안질 등의 질병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약수와 잘 어울리는 요리가 닭백숙이라는 데 별 이견이 없다.


만안자암 단애는 철 성분이 산소와 만나 산화하면서 붉은색을 띠게 된 절벽이다. 백석탄은 자갈, 모래, 진흙 등의 퇴적물이 단단하게 굳은 퇴적암이다.


백석탄 암석에 발달한 항아리 모양의 오목한 구멍을 포트홀이라고 한다. 포트홀은 물의 에너지에 의해 생긴 원통형의 구멍이다.


석영이 섞여 있어 햇볕 아래서 반짝이는 빛을 발하는 백석탄은 꽁꽁 언 얼음과 그 밑을 흐르는 물속에서 태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듯 신비스러웠다.


주왕산온천관광호텔이 운영하는 솔기온천은 알칼리성 중탄산나트륨 온천이다. 지하 710m 아래의 암반에서 용출되는 천연 온천수를 사용한다.


온천의 나라 일본에서 온천 애호가들이 일부러 찾아올 만큼 수질이 뛰어나다. 아무런 옷을 걸치지 않아서 더 멋진 주왕산에 오른 뒤 뜨끈한 온천에서 몸을 푼다면 그보다 더한 겨울의 참맛이 있을까 싶다.

얼어붙은 주산지와 얼음골

주왕산 못지않게 이름난 명승지가 주산지다. 1721년에 만들어진 작은 농업용 저수지인 주산지는 왕버들 50여 그루가 물속에 뿌리를 박고 자생해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바닥이 하나의 큰 바위 그릇처럼 생겨 수백 년 동안 물이 한 번도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 저수지에는 당초 200∼300그루의 왕버들이 살았으나 수령이 오래되면서 많은 나무가 죽었다. 왕버들은 물을 좋아하지만 물속에서는 숨을 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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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얼음바위로 변한 얼음골 인공폭포 [사진/조보희 기자]

주산지 왕버들은 물속에서 호흡하기 위해 호흡 근육을 발달시켰다고 한다. 남은 왕버들이 많지 않지만, 왕버들이 주산지에서 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새로운 왕버들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윽한 운무 속에 몸을 반쯤 물에 담근 왕버들의 신비를 겨울에는 구경할 수 없다. 그렇지만 하얗게 언 얼음 속에 뿌리를 박은 나무 역시 신기할 따름이다.


한겨울 주산지는 꽁꽁 얼어 있었다. 두꺼운 얼음은 따뜻한 햇볕을 받아 팽창하려는지 '뿌지직' '꽈∼광' 등 깨지고 부딪히는 요란한 굉음을 곳곳에서 냈다.


청송 얼음골은 말 그대로 얼음으로 변해 있었다. 인공폭포는 거대한 얼음바위를 형성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국내외 아이스클라이밍대회를 열었으나 요즘은 선수 안전을 위해 국제기준에 맞춘 인공빙벽을 따로 설치해 운영한다. 올해는 감염병 사태로 대회가 취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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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대운도 [사진/조보희 기자]

◇ 야송미술관과 송소고택


청송에는 특이한 자연뿐 아니라 높은 문화 수준과 품격을 보여주는 곳들이 있다. 대표적 한국화가인 야송 이원좌 화백의 작품을 소장, 전시하고 있는 군립청송야송미술관과 송소고택이다.


2019년 작고한 이 화백이 기증한 자신의 작품과, 그가 소장했던 다른 작가 작품을 주로 전시하는 야송미술관에는 한국 최대의 동양화인 청량대운도가 전시돼 있다.


봉화 청량산을 그린 청량대운도는 길이 46m, 높이 6.7m의 실경산수화다. 청량산은 김생, 최치원, 원효, 의상, 공민왕, 이황, 김홍도, 정선 등 선현들이 거닐거나 작품으로 옮겼던 명산이다.


야송은 한국화가 얼마나 웅장해질 수 있는가를 증명하기 위해 건강 악화를 무릅쓰고 이 거대한 그림에 매달렸다. 한국화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된 청량대운도 앞에 서면 야송의 분신이자 예술혼의 결정체임을 느낄 수 있다.


야송은 언젠가는 한국 예술의 가치를 세계가 인식할 것이라는 확신 아래 이 미술관을 동양화 전문 미술관으로 운영하라는 유지를 남겼다.


주왕운수도, 야송산수관 등 그의 다른 주요 작품도 이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2005년 개관한 야송미술관은 경상북도 최초의 공립미술관이다. 지방에 미술관이 별로 없던 시절, 청송에서만 볼 수 있는 그림을 전시하기 위해 이 미술관을 연 청송군의 안목을 높이 사고 싶다.


청송군은 청량대운도 한 작품만을 전시하기 위해 거대한 전시관을 별도로 지었다. 청량대운도는 그 크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전시할 수 없다. 그림을 보려면 청송에 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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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소고택 [사진 조보희 기자]

송소고택은 10개 건물, 99칸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조선 시대 상류층 가옥이다. 격식을 갖춘 건물들이 단아하다. 아름다운 흙 돌담은 고택과 잘 어울린다.


민속적 가치가 높아 경북도 민속문화재에서 국가 민속문화재로 승격됐다. 안채, 큰 사랑방, 작은 사랑채 등의 온돌방에서 고택 체험을 할 수 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2021.02.0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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