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이름은 '알라딘'이면 안됐다

[컬처]by 알려줌

<알라딘> (Aladdin, 2019)

▲ 영화 <알라딘> 사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영화 <알라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90년대 디즈니 르네상스 시기의 중심에 있었던 애니메이션 <알라딘>(1992년)은 지금 보더라도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작품이다. 아카데미 음악상과 주제가상을 받은 작품답게 알란 멘켄 음악감독의 주옥같은 노래나 스코어는 현재까지도 관객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며, 그 기억 덕분에 이번 실사화의 관심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알란 멘켄 음악감독이 다시 한번 음악 작업에 참여했기 때문에, 실사 영화를 통해 관객은 원작 애니메이션의 향수에 제대로 취할 수 있었다.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2010년) 이후 오랜만에 '디즈니'가 건드린 중동 지역 영화는 시간이 흐른 만큼 '당연하게도' 변화했다. 최대한 중동 지역 출신 혹은 혈통의 배우들을 캐스팅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 결과는 고스란히 이집트 태생 캐나다인 배우 메나 마수드의 '알라딘'과 구자라트계 인도인 출신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은 영국 배우 나오미 스콧의 '자스민' 캐스팅으로 이뤄졌다. 백인 배우인 로빈 윌리엄스가 목소리를 맡았던 '지니'의 목소리도, 흑인 배우인 윌 스미스가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주요 출연진은 유색 인종으로 구성됐다.

 

<알라딘>에 출연한 백인 배우는, '기능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앵무새 그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게 해 원작의 캐릭터 서사를 죽여버린 '이아고' 목소리의 알란 터딕과 스칸디나비아(원작 애니메이션에서는 다른 아라비아 왕국의 왕자가 등장한다) 쪽에서 온 것 같은 철딱서니 없어 보이는 '안데르스 왕자' 역의 빌리 매그너슨 정도였다. 이처럼 기존 캐릭터들이 가진 성격 변화도 이뤄졌는데, 대표적으로 '술탄'(네이비드 네가반)은 원작 애니메이션에서는 '자파'(마르완 켄자리)에게 완전히 밀리는 캐릭터로 나오지만, 어느 정도 실사에서는 나름의 권위가 있었던 캐릭터로 수정됐다.

<알라딘>은 원작 애니메이션보다 30여 분이 늘어났다. 그 늘어난 시간을 영리하게 활용했는지는 감상하는 관객에 따라 다를 것인데, 이 영화를 만든 가이 리치 감독 특유의 연출 스타일은 호불호를 남겼다. <스내치>(2000년)를 통해서 빠르고 독창적인 편집법을 보여준 가이 리치 감독은, 2002년 마돈나와 결혼한 후 연출한 <스웹트 어웨이>(2002년)를 통해 순식간에 무너져버리고 만다. 로튼 토마토 지수 5%(관객 지수도 28%로 팝콘이 엎어졌다)에 드러나듯이, 비평가와 관객으로부터 참혹한 평을 들어야 했다.

 

한동안 블록버스터 작품 연출과는 거리가 멀어진 그는, 200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셜록 홈즈> 시리즈를 통해 부활의 날갯짓을 필 수 있었다. 이후 <맨 프롬 UNCLE>(2015년), <킹 아서: 제왕의 검>(2017년) 등 블록버스터 영화를 연출한 가이 리치 감독은 그의 시그니처가 된 기교 섞인 편집을 고스란히 보여줬는데, 이 연출 방법은 "스케일이 커서 좋다"와 "번잡하기만 하다"라는 의견으로 양분되어 관객의 머리에 남아있게 됐다.

이번 영화는 그가 연출한 사실상 첫 뮤지컬 영화인데, 그렇기 때문에 상당 부분은 주로 가이 리치 감독의 영화나 <숲속으로>(2014년), <메리 포핀스 리턴즈>(2018년) 등 디즈니 뮤지컬 영화의 '세컨드 유닛' 촬영감독을 맡은 앨런 스튜어트 촬영감독의 힘을 빌려야 했다. '세컨드 유닛'은 주로 주연 배우들이 연기하지 않는 장면이나 액션이나 스턴트 장면 등 감독이 직접 연출에 참여하는 '메인 유닛'과는 다른 분야로, 덕분에 대규모 군중이 나오는 넘버 'Prince Ali'는 가이 리치 영화답지 않게 뮤지컬 실황 중계에서나 볼 수 있는 와이드 앵글을 대폭 사용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행히 예고편 공개 후 논란이 많았던 '지니'를 연기한 윌 스미스는 자신의 몫을 충분히 선보였다. 로빈 윌리엄스처럼 극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 조연이었는데, 1990년대 출연했던 영화들에서 볼 수 있었던 힙합 감성으로 중무장한 윌 스미스는 오랜만에 관객에게 기억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다만, 경험이 적은 신예 메나 마수드가 맡은 '알라딘'의 무게감은 작품 전체를 주름잡기엔 부족했다.

그렇기 때문에 <알라딘>은 단연 '자스민'의 활용도를 늘린 작품이라고 평할 수 있다. 이는 디즈니뿐 아니라 할리우드 전체에 부는 바람인데, 하필이면 여기에서 이번 실사 영화화의 문제가 드러난다. 원작처럼 '자스민'은 진취적인 여성으로 등장하고, 전작보다 더 나아가 '술탄'의 지위에 오르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개봉 전 인도네시아의 욕야카르타 특별주의 술탄이 딸을 후계자로 지명한 것에 대한 '반대 운동'이 일고 있을 정도로, '술타나'(여성 술탄을 일컫는 말)의 탄생은 '이슬람의 특성상' 이뤄지기 힘든 일이다. 한국사에서 신라시대 3명의 여왕만이 남아 있는 것처럼, 약 10여 명의 '술타나'가 전체 중동 지역에 존재했다.

 

영화에서도 '자스민'의 아버지는 "자신은 백성을 사랑하는 '술탄'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하는 딸에게 "우리 왕국에 여자 술탄은 없었다"라면서 잘라 말하며, '유리천장'처럼 한계를 보여준다. 그런 '자스민'이 '유리천장'을 뚫는 장면으로 영화는 마무리 된다. 다만, 이상하게 작품은 원작 애니메이션에 충실해서인지 '알라딘'과 '자스민'의 러브 라인 구성 만큼이나, '자스민'이 왜 왕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구성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 단순히 궁 안에 있었다는 이유로 경제 관념을 모르는 상태에서 훔친 빵을 아이에게 준다던가, 양탄자를 타고 본 세상에서 백성들이 어떻게 여흥을 보내는지를 관찰하는 정도에 그친다면, 이는 나라를 이끄는 자격을 주기엔 부족함이 있는 것이었다.

물론, '술탄'이 외교 문제는 모르겠지만, '백성을 위한 좋은 왕'이었는지에 대한 묘사가 크게 없기 때문에 '자스민' 역시 그런 묘사가 불필요할 순 있겠다. 다만, 애초에 이 영화에 '자스민'을 부각할 것이었다면, 더 많은 각색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알라딘>이라는 이름보다 <자스민>이라는 이름으로 각색되어 만들어졌어야 했을 작품이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1959년)에 나오는 '마녀'로 이야기를 풀어간 <말레피센트>(2014년)처럼, '알라딘'보다 '자스민'이 '술타나'에 오르는 과정을 좀 더 다이나믹하게 그려내는 것에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덕분에 영화 <알라딘>은 원작 애니메이션의 향수에 그저 기대어서, '기억의 램프' 안에 갇혀 27년 만에 나온 후, 자신이 하고 싶었던 온전한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 30분의 추가 시간만 더해진 영화가 되고 말았다. 이는 스타일리쉬 속에 큰 계획은 담지 않은 가이 리치 감독의 연출도 한몫을 했다. 그저 '자스민'이 '알라딘'에게 먼저 다가가 키스를 하는 장면을 통해 "여성도 먼저 사랑 고백을 할 수 있어" 정도의 메시지를 주고는, 인도 영화 스타일의 '맛살라' 군무를 보여주는 엔드크레딧을 통해 단순히 영화를 끝내기에 급급한 느낌이 들어서 안타까웠다.

한편, <알라딘>에서는 의도적으로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을 노리는 새로운 오리지널 넘버 'Speechless'를 발표했다. 노래의 의미는 현재의 '미투 운동'과 더불어서 나온 흐름이기 때문에 영화와 따로 떼어놓고 들으면 참 좋았다. 하지만 '리프라이즈'로 나온 '자스민'의 상상 장면에 나오는 넘버는 극 전개와 따로 논 느낌을 받아서 아쉬웠다. <겨울왕국>(2013년)의 'Let It Go'처럼 극의 전개와 연결이 되는 넘버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랬는데, 물론 이는 '자스민' 캐릭터나 이를 연기한 나오미 스콧에 대한 지적은 절대 아니다. 5년 후에 우리가 나오미 스콧을 어떤 재능이 있는 배우라고 부르게 될지, 궁금해졌다.

 

2019/05/24 메가박스 목동 MX

 

글 : 양미르 에디터

2019.06.1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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