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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 지금 중국에선 절대로 만들지 못할 영화

by알려줌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 (Farewell My Concubine, 1993)

영화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 표지 및 이하 사진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 영화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패왕별희>(1993년)는 유일무이한 중화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패왕별희>가 상을 받은 1990년대는 중화권 영화의 가장 찬란했던 시기로도 표현할 수 있다. 단순한 서사 구조 형식의 영화를 넘어서, 인상적인 화면 구도나 색채를 활용해 영상 언어로의 영화를 만들었던 것. 이 시기에 빛났던 감독에겐 유사한 이력이 있다. 자국의 유구한 문화를 파괴한 것은 물론이며, 연극, 음악, 미술, 영화 등 전 분야에 걸친 문화 발전을 저해시켰던 대규모 문화 검열 사건, '문화대혁명'(1966년~1976년)을 직접 겪은 세대라는 점. 천카이거 감독은 <패왕별희>를 통해 자신이 겪은 경험을 고스란히 반영시켰다.

영화감독 아버지, 시나리오 작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 시절 '홍위병'이 된다. 중국공산당 주관 아래 조직된 '홍위병'은 마오쩌둥을 위해서 선전활동과 더불어 지식인이나 예술인 등을 공격하고 박해한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도 천카이거 감독은 '홍위병' 시절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하기까지 했었는데, 이는 반성적인 태도로 <패왕별희>에 유사하게 묘사된다. 이후 군 생활을 마친 그는 1978년 베이징 영화학교 감독과에 들어가, 훗날 <귀주 이야기>(1992년)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장이머우 감독과 함께 수학한다.


첫 연출 작품인 <황토지>(1984년)를 통해 중국 민중의 삶을 담아낸 그는(장이머우 감독이 촬영을 맡았다), 자신의 홍위병 경험을 바탕으로 한 <대열병>(1985년), <아이들의 왕>(1987년)을 통해 중국 사회주의의 현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해낸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중국의 치부를 서방 세계와 같은 외부에 보여줬다는 이유로, 중국 내 개봉 금지 및 그의 연출권을 박탈하려 했다. 하지만 각종 영화제의 수상으로 인해 최악의 상황은 모면할 수 있었다. 이후 영국·독일 측의 제작비 후원으로 만들어진 영화 <현 위의 인생>(1991년)에서는 현대 중국인의 모습을 '시각장애인 예술인'으로 비유했다.

이러한 그의 작품 세계의 '결정판'이 바로 <패왕별희>였다. <패왕별희>는 1924년 '북양정부시대'부터 시작해, 1937년 중일전쟁, 1945년 일제 패망 이후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공내전' 시기, 1949년 '중국 공산당' 집권기, 1966년 '문화대혁명' 시기, 그리고 1977년 '문화대혁명'이 끝나던 시기까지, 중국 근현대사를 따라가면서, 함께 사라져간 '경극' 주인공들의 인생 역정을 다뤄냈다. 그래서 극중극처럼 등장하는 '경극'을 보면, 그 시기마다 극장에 걸린 '국기'가 달라지는 변화를 감상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홍콩이 1993년 1월 개봉한 것과 달리, 중국 당국은 <패왕별희>의 극장 상영을 금지했다.


표면적으론 '동성애'가 들어 있고, 주인공 '데이'(장국영)가 아편을 하는 등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 지 오랜 시간이 흐르지도 않은 상황에서, '문화대혁명'의 민낯을 보여준 작품을 상영하기엔 거부감이 들었을 것. 그러나 5월 열린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고 난 후, '국가의 위상'을 드높였다는 이유로, 앞서 언급한 몇몇 장면을 가위질한 끝에 6월 중국 내 개봉을 진행하게 된다. 이후 <패왕별희>는 '오스카 레이스'를 펼치게 되고, 골든 글로브 시상식과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을 받는다. 하지만 정작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외국어영화상, 촬영상 후보에 오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오스카 레이스'를 이끈 배급사, 미라맥스의 수장이었던 '가위손' 하비 웨인스타인은 당연하게도(?) 미국과 영국 개봉 당시 10분 이상 삭제한 버전을 상영했고(IMDB에 올려진 편집 버전 상영시간과 1993년 국내 첫 개봉 당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 상영 시간이 같다), 추후 DVD를 통해서 무삭제판을 공개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한 개봉 연기 끝에 상영된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은 '디 오리지널'이라는 말이 붙여진 만큼 '171분 무삭제판'으로 공개됐다. '데이'와 '샬로'(장풍의)의 감정이 드러나는 대목이나, 경극 학교의 어린 시절 일부 에피소드 등을 디지털 리마스터링한 화면으로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


장국영은 생전 인터뷰를 통해 "감독 이름만 보고 출연을 결심했듯이, 그의 가치관과 연출법에 아낌없는 지지를 보낸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천카이거 감독 역시 '나 자신이 '데이'다. 항상 예술 속에 살고 있고, 내 안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공존하고 있다"라고 말한 장국영을 잊지 못한다고 밝혔으며, "그와 마주 보고 있을 때도,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종종 느껴질 때가 많았다. 장국영의 눈빛은 현실이 아닌 먼 과거의 어느 화려한 꿈속에서나 본 것 같았다"라며 신뢰를 보였다. 그 신뢰 덕분에 <패왕별희>는 배우의 연기를 중시하는 관객, 감독의 연출을 중시하는 관객 모두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됐다.

아카데미 촬영상 후보에 올랐듯이 영화는 다양한 앵글로 '데이'를 바라본다. 가장 인상적인 구도는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의 인민재판 장면이었다. 주인공들의 무너지는 심리를 카메라는 타오르는 불과 함께 담아내는데, '경극인들의 타오르는 초상'을 연상케 했다. 그 밖에도 아편에 손을 댄 '데이'를 어항 너머로 비추는 장면이 있는데, '데이'를 어항 속의 한 마리 물고기처럼 보여주면서, 무언가에 갇힌 주인공의 삶을 은유하기도 했다. <패왕별희>는 이런 상징적인 장면을 내러티브에 결합하면서 완성도 있는 작품이 됐다. 마치 가장 최근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기생충>처럼.


하지만 천카이거 감독은 21세기에 들어서 1980~90년대와 다른 영화를 만들어갔다. <무극>(2005년), <매란방>(2008년)은 그의 이전 작품만큼 시대 비판적인 사고를 찾기 힘들었으며, 심지어 '마오쩌둥'이 공산국가를 수립한 과정을 그린 '선전용 영화', <건국대업>(2009년)의 공동 연출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체제 비판적이었던 '제5세대 감독'들이 어떤 연유인지 기성세대가 되어가면서, '변절자'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함께 영화학교에서 공부하던 장이머우 감독이 <그레이트 월>(2016년)이라는 희대의 '괴작'을 연출할 줄을 누가 알았을까?

극장 문을 나설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할리우드를 뛰어넘을 '영화굴기'를 이루겠다"는 중국의 야심 찬 계획과 반대로, 중국 영화계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다시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그릇이 꽉 찬 영화를 다시 만들 수 있을까?

패왕별희


감독 천카이거

출연 장국영, 공리, 장풍의

개봉 1993.12.24. / 2020.05.01. 재개봉

2020/05/05 롯데시네마 영등포

글 : 양미르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