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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
아마 이 작품이 아닐까?

by알려줌

<남매의 여름밤> (Moving On, 2019)


영화 <남매의 여름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처 : 영화 <남매의 여름밤> ⓒ 그린나래미디어(주)

지난해 독립영화계엔 큰 경사가 있었다. 김보라 감독의 <벌새>가 3대 한국영화상인 청룡영화상 각본상, 백상예술대상 감독상, 대종상 영화제 신인감독상에서 상을 받은 것. 흔히 독립영화보다는 상업영화의 성취에 더 좋은 평가를 주는 것을 떠올려 볼 때,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벌새>는 제69회 베를린영화제 제너레이션 14플러스 부문 대상을 받는 등 세계적으로 다양한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고, 최근 미국 공개를 앞두고는 로튼 토마토 '프래쉬 인증'(100%)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증받았다. 약 1년 후에 개봉한 <남매의 여름밤> 역시 <벌새>의 뒤를 이을 한국 독립영화 수작이다.


'수작'이라는 말이 나온 출발점은 지난해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KTH상, 넷팩상(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 시민평론가상 등을 받으면서부터. 이후,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선택상을 받은 <벌새>는, 지난 1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흑백판(관객상)과 김용훈 감독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심사위원상)이 소개된 제49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밝은미래상을 받았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자이자, 현시대 아시아의 대표적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을 연상케 한다. 그는 동시대 일본 사회의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보여준 바 있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작품을 보며 많은 위안을 얻었다고 밝힌 윤단비 감독은 자신의 첫 작품 주제를 가족으로 선택했다. 자신이 이 이야기를 해야만, 다음 분기점으로 넘어갈 수 있고, 자신에게 친구가 되어준 영화들과 같은 결로 친구가 될 수 있는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영화는 중학교 소녀 '옥주'(최정운)와 남동생 '동주'(박승준)가 아버지 '병기'(양흥주)와 함께 여름이 시작될 무렵, 할아버지 '영묵'(김상동)의 집으로 향하면서 시작된다. 사업에 어려움을 겪은 '병기'가 아버지의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한 것. '병기'는 '다마스'로 용달 일과 동시에 신발을 팔며, 생계를 이어가고자 한다.

갑자기 살던 집을 뒤로한 후, 할아버지의 집으로 이사한 '옥주'는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다. '옥주'는 가장 마음에 드는 2층 방을 자신의 방으로 꾸미는 동시에, 할아버지와 가까워진다. 내색하지 않지만, '옥주'에게는 이혼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도 있고, 남자친구와의 문제도 있으며, 외모에 대한 고민도 있다.


그사이 '동주'는 할아버지의 집이 신기하다. 할아버지와 함께 텃밭을 가꾸기도 하고, 밖으로 잠자리채를 들고 놀러 가기도 한다. 가족을 위해 재롱까지 부리면서, 적막한 분위기를 바꾸기도 한다. 물론, 철없는 행동을 할 때, '옥주'는 '동주'와 종종 티격태격 싸우기도 한다.


한편, 남편과 이혼을 결심한 고모 '미정'(박현영)이 아버지의 집에 찾아오게 된다. 오빠 '병기'의 어려움을 알기에, 아버지의 편향된 지원에도 큰 내색을 하지 않았던 '미정'은 자신의 어려움을 오빠에게 털어놓기도 한다.


작품은 3대에 걸친 가족 구성원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 사이에 있었던 치부를 드러낸다. 모든 가족에게 흠결이 하나라도 없는 경우는 없을 터. 영화는 그 치부 속에서 사는 가족의 보편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결국엔 그 가족이 서로 사랑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작품은 '영묵'이 조금씩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차분히 담아낸다. '영묵'이 점점 자신의 몸을 완벽히 제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바라보던 '병기'와 '미정'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걱정한다. 아버지를 요양 시설에 보내는 것에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고민하는 '병기', 남은 집의 매매를 놓고 돈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라는 '미정'의 고민도 있을 터.


아이들도 나름의 걱정이 존재한다. 할아버지와의 상의도 없이 집을 판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옥주'와 엄마가 준 선물을 뺏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동생 '동주'의 처지가 그 예. 이런 충돌 속에서, 영화는 '영묵'의 죽음으로 그 갈등을 최고조 상태에서 한층 가라앉힌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옥주'의 시점에서 '영묵'의 죽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영묵'의 부고 소식을 '옥주'의 고모가 전해주는 것. 잠결에 전화를 받은 '옥주'의 표정이 조금씩 변화하는 대목은,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연기 포인트였다.


이를 위해서 윤단비 감독은 따로 박현영 배우에게 '부고'를 알리는 '전화 대사'를 만들어 전했고, 촬영 순간마다 그 대사를 전해줬다고. 그리고 배우들의 즉흥 연기와 자연스러움을 담아내는 것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한편, 영화는 세 번의 '미련' 노래가 등장한다. 신중현이 작사, 작곡한 노래로, 첫 번째 등장 장면은 오프닝이다. '병기'네 가족이 탄 '다마스'가 할아버지 집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롱테이크 대목으로, 이 대목에선 임아영이 부른 '미련'이 나온다.

두 번째 등장 장면은 '옥주'가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는 대목(김추자가 부른 버전), 세 번째 등장 장면은 '영묵'과 '옥주'가 음악을 듣는 대목(장현이 부른 버전)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옥주'가 할아버지와 감정적인 교감을 느끼기 위해서 삽입된 것. 그저 음악을 곁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그 감정의 공기가 온전히 전해지는 그야말로 영화 같은 장면이었다.


<남매의 여름밤>은 이런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가족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에디터 역시, 문득 영화를 보면서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를 갑작스레 보고 싶었다. 이는 단순히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려는, 억지에 가까운 신파로 점철된(심지어 이 작품엔 '미련'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많은 음악이 등장하지 않는다. 슬픈 선율의 음악 따위는 등장하지 않는다), 근래의 한국상업영화에선 볼 수 없는 감정이었다.

아직은 '옥주'가 할아버지의 부재로 인해서, 밥도 제대로 못 먹겠지만, 분명 그 시간을 '함께 나눴던 추억'이라 여길 날이 오리라고. 그렇게 해서 한 뼘 더욱 성장할 날이 오리라고.


영화관을 빠져나오며, 문득 할아버지가 좋아하셨던 임권택 감독의 <축제>(1996년)가 떠올려졌다. 제17회 청룡영화상에서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을 받은 <축제>는 그 시절 장례를 담아내면서, 동시에 산 자들의 앙금 같은 감정이 해소된다는 내용을 담아낸 작품이었다.


시대가 흘러,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화한 지금, <남매의 여름밤>은 마치 21세기의 <축제> 같았다. 그래서 이 시대의 가족상을 잘 그린, <남매의 여름밤>을 올해 현재까지 나온 최고의 한국영화가 아니겠느냐고 감히 주장해본다.


2020/08/20 메가박스 목동

글 : 양미르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