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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보이콧할 가치도 안 보이는 영화

by알려줌

<뮬란> (Mulan, 2020)


영화 <뮬란>(1998년 장편 애니메이션, 2020년 실사)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처 : 영화 <뮬란>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코로나19'의 여파로 한 차례 개봉이 연기된 끝에 공개된 <뮬란>은, 영화 외적으로 큰 논란에 휩싸였던 작품이었다. 대표적인 논란은 유역비와 견자단의 홍콩 관련 발언일 터. "나는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라며, 시위대를 향해 "부끄러운 줄 알아라"라는 유역비의 '웨이보' 발언은 전 세계적으로 큰 비난을 받았다.


또한, 지난 9월 4일, 미국에선 디즈니 플러스의 '프리미엄 추가 결제'를 통해서 관람할 수 있게 됐는데, 공개 이후 영화 엔드 크레딧에 '신장 위구르 자치구 공안'에게 감사하다는 말이 담겨, 이 역시 논란이 됐다.


로케이션 촬영 협조에 대한 감사 표시는 영화 제작자들이 남기는 관행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정치적 올바름을 여러모로 강조하던 디즈니가, 소수 민족에 대한 인권 탄압이 이뤄지는 공간에서 촬영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 것.

미국 의회 의원들은 초당적으로, 밥 샤펙 디즈니 CEO에게 <뮬란>의 제작 과정 중 공안 혹은 당국과 어떠한 연관성이 있었는지를 설명하라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이런 논란 때문인지, 중국은 자국 개봉을 앞두고 현지 언론 매체에 <뮬란>에 관한 어떠한 보도도 하지 않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이런 외적 논란이 있는 <뮬란>은 작품 내적으로도 안타까운 결과물이 나오고 말았다. 잠깐 과거 이야기를 하자면, 디즈니는 꾸준히 '디즈니 르네상스'를 열어준 1990년대 작품들을 실사화했다.


현재 30~40대가 된 당시의 관객들이 자녀의 손을 잡고 다시 극장에 올 것이라고 분석한 것. <정글북>(2016년)으로 테스트를 마친 디즈니는 <미녀와 야수>(2017년), <알라딘>(2019년), <라이온 킹>(2019년) 등을 꾸준히 만들었다. 그사이 변화한 시기에 맞춰, 각 작품 속 캐릭터나 스토리에 '정치적 올바름'을 녹여내 새로움을 주고자 했다.

<뮬란>도 그런 새로움을 주려고 몇몇 변화를 넣었으나, 이상하게도 22년 전에 나온 장편 애니메이션보다 더 퇴화한 느낌을 받았다. 여전히 <뮬란>엔 동양의 정신문화를 고양하는 관점인 '오리엔탈리즘'이 가득 차 있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감독과 작가진을 투입하며, 흑인이 처한 상황을 잘 묘사했던 <블랙 팬서>(2018년)와 달리, 이 작품은 중국계, 아니 아시아계 감독이나 작가진이 단 한 명도 포함되어있지 않다. '오리엔탈리즘'이 잘 보이는 대목은 '기(氣)'에 대한 몰이해. 작품에서 '뮬란'은 <스타워즈> 시리즈의 '제다이' 마냥, 매우 뛰어난 '포스'를 지닌 인물로 설정된다.


원작 애니메이션 <뮬란>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은 이유는 주인공의 '성장 서사' 때문이었다. 당시 사회상에서 여성의 한계를 스스로 타파하는 과정에서, 전쟁에 소용돌이에 휘말린 '뮬란'은 오합지졸 부대에서 부대원과 함께 성장해나가고, 영웅이 된다.


전사가 되는 과정에서 '뮬란'은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차이'를 훌쩍 넘어서는 용기와 지혜를 통해 위기를 벗어난다. (그 대표적인 장면이 눈사태를 통해 적군을 쓸어버리는 대목. 이 장면은 영화로도 옮겨졌지만, 그 눈사태를 일으키는 원인은 그야말로 극과 극이었고, 실사 영화는 상대의 어리석음을 더욱 강조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런데 실사 영화에서 '뮬란'은 '기'가 타고난 소녀로, 이미 그 신체적 능력이 여러 남성을 압도하고도 남을 상황처럼 보이는 전사로 나온다. 하지만 시대적 벽에 부딪혀, 자신의 그 '기'를 스스로 움츠리는 것으로 각색된다.


그러다 보니 오합지졸인 부대의 훈련 중 '뮬란'이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은 너무나 지루하게 흘러간다.(심지어 그 내용도 원작 애니메이션보다 더 길다) 심지어 '뮬란'의 아버지도 이상하게 각색됐다. '왈가닥' 성격이 있는 '뮬란'을 있는 모습 그대로 봐줬던 아버지는, "(여성인)네 자리를 알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고 뱉는 가부장 캐릭터로 퇴보됐다.


'오리엔탈리즘' 문제는 프로덕션 디자인에서도 드러난다. 대표적인 예로, 영화는 12세기 무렵부터 등장한 중국의 공동주택 '토루'를 '뮬란'이 사는 곳으로 설정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토루'는 외부의 공격에 공동으로 대응하고자 만든 폐쇄 주택으로, 주로 중국 남방 산간지역에 지어졌다.


그러나 <뮬란>은 중국 남방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 않으며, 배경 시기 자체가 12세기도 훌쩍 이전이라는 점, 결정적으로 '전쟁 영웅'으로 등장하는 '뮬란'의 아버지가 원작 애니메이션만 하더라도 마구간이 있는 큰 집에 살았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충분한 '몰이해 포인트'로 볼 수 있다.

게다가 '기'를 강조하면서 나오는 중국 무협 영화 특유의 '과장된 액션'들은, '황제'로 등장한 이연걸의 <동방불패>(1992년)나, 주윤발, 양자경 주연의 <와호장룡>(2000년) 등과 비교하더라도, 호쾌하거나, 역동적이지도 않으며, 헛웃음만 준다. 'PG-13' 등급을 사수하고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검술 장면은 '애들 칼싸움'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여기에 쓸데없는 슬로우 모션을 남발하고, 1990년대 TV 음악 프로그램처럼 카메라만 한 바퀴 돌리는 수법을 반복한다. 이 정도면 중국 무협 영화를 한 편이라도 봤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오리엔탈리즘' 문제를 잠시 접어두고, <뮬란>의 실사 영화에선 캐릭터의 매력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실사화 과정을 거치면서, <뮬란>은 뮤지컬 요소를 배제했다. 뮤지컬에서 노래는 단순히 좋은 음악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캐릭터의 감정을 관객에게 나눠주는 소통의 장으로도 활용된다.

뮤지컬 요소가 사라지면, 그 소통의 장을 다른 요소로라도 만들어줘야 극이 산다. 하지만 '뮬란'의 노래가 사라져버리니, 이 캐릭터에게 남는 감정이 "무술을 잘한다" 정도 밖에는 없다.


배제한 것은 노래만이 아니었다. 캐릭터도 사라졌다. "'직장 내 위계적 성추행'을 의식했다"며, 러브라인으로 발전하는 '샹 장군'을 제거해버리면서, 영화는 다른 '사내 구성원'으로 어떻게든 그 '러브라인'을 이어보려 했다.


또한, "중국에선 용이 상징적인 동물인데 희화화됐다"면서 '무슈'를 제거해버리고, '불사조'를 대신 넣었으나, 이 작품의 '불사조'는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2002년)에 나오는 불사조 '퍽스'보다 더 쓸모없는 캐릭터처럼 보였다.

'빌런'은 어떨까? '기'가 센 주인공을 위해서인지, 메인 빌런은 두 명으로 설정됐는데, 하나는 '산유'를 변화한 '보리 칸'(제이슨 스콧 리)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산유'를 도와줬던 매를 변화한 마녀 '시아니앙'(공리)였다.


'보리 칸'은 원작 애니메이션의 캐릭터성을 잘 가져간 편이고, '시아니앙'은 '뮬란'과 대척점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유사한 역경을 공유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잘 살렸다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헬라'(케이트 블란쳇)만큼이나 훌륭한 여성 빌런 캐릭터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야말로 '마녀사냥'을 당하는 여성 캐릭터로 소비되고 만다.


이처럼 서양인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동양 판타지가 된 실사 영화, <뮬란>은 2020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두 가지 큰 상징점을 남긴 작품인지도 모르겠다. 하나는 할리우드 수입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 방법을, 다른 하나는 "다양성"이라는 좋은 감투만을 쓰고 안이한 서사의 팝콘 영화를 만들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2020/09/17 CGV 목동

글 : 양미르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