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토닌 라이더, '놀닥TV' 정상무 원장 [인터뷰]
내과 전문의이자 할리데이비슨 오너, 정상무 원장. 아드레날린 대신 세로토닌을 좇는 라이딩을 말하며, 장거리 투어와 자기 절제, 안전 장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사 라이더’의 바이크 철학.
스릴이 아닌 행복을 좇고자 정상무 원장은 모터사이클에 오른다.
정상무 |
본인의 모터사이클을 소개해 달라
2017년에 출고된 할리데이비슨 로드글라이드 스페셜이다. 입문하고 첫 바이크로 할리데이비슨 슈퍼로우를 1년 정도 탔고, 이후 지금의 기종으로 바꿨다. 8년 세월을 함께한 소중한 친구이자 애마다. 평소 취미를 즐기면서 쉽게 싫증을 느끼는 편인데, 이 바이크를 만난 이후로는 기종 변경 욕심이 생기지 않는다. 세월이 지나도 불만이 없을 만큼 만족도가 높다.
어떤 스타일의 라이딩을 즐기나?
장거리 여행을 좋아한다. 지금 타는 할리데이비슨 로드글라이드도 여기에 특화됐다. 필요한 물품을 챙겨 며칠간 홀로 여행하기에 이만한 모터사이클이 없다. 차체 무게가 400kg이 넘을 정도로 무겁고 배기량도 1750cc로 크지만, 그만큼 장거리 주행에도 안정감을 유지한다. 내 여행 스타일에는 가장 적합하다.
모터사이클 취미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바이크에 입문한다는 지인의 소식을 듣고 시작했다. 개원하고 병원 운영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 바쁘지만 반복되는 일상에서 권태가 찾아왔다. 삶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어쩐지 알 수 없는 갈증이 밀려 왔다. 그러다 의료인 선배 지인이 바이크를 타려고 한다는 말에 강한 갈망을 느꼈다. 지금도 그 순간이 또렷이 기억날 만큼 당시 감정은 강렬했다. 바로 2종소형면허에 도전했고, 2016년 여름 라이딩의 세계에 첫발을 들였다.
바이크의 매력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단순히 이동수단을 넘어 여행의 파트너가 된다는 점이다. 보통의 탈것은 이동수단으로서 역할이 핵심이다. 그런데 모터사이클은 두 바퀴로, 나는 두 다리로 함께 여행하는 친구이자 동료다. 이 모터사이클과 함께 전국을 누볐다. 주행 거리가 8만km이니 얼마나 많은 순간을 이 녀석과 함께했겠나.
모터사이클이 시동이 꺼진 채 서 있으면 마치 나를 유혹하는 듯하다. 어서 시동을 걸고 같이 여행을 떠나자고 말이다. 함께 여행을 다니다 보면 정말로 믿음직하다. 온전히 나만의 자유를 만끽하도록 나를 보필하는 느낌이랄까. 단순히 여행지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로 가는 여정 자체가 여행이라는 것을 알려 준 고마운 친구다.
라이딩을 즐기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침 일찍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라이딩 여행을 막 시작하려는 순간이다. 그때는 흔히 ‘행복 호르몬’이라 부르는 세로토닌이 흘러 넘치는 것 같다.
모터사이클을 타면 출발 직전의 긴장과 안전에 대한 걱정이 가장 먼저 든다. 하지만 모터사이클의 시동을 거는 순간 감정이 극적으로 바뀐다. 탁 트인 자연의 도로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경험하는 엔진 고동감과 배기음이 온전히 나를 위한 자유를 선사하는 기분이다.
걱정이나 근심, 우울감 등의 감정이 우리를 지배할 때 흔히 ‘바람 좀 쐰다’고 하지 않나. 모터사이클은 이를 완벽히 충족하는 취미다.
대부분 의학 전문가들이 바이크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을 고려하면, 의사 라이더라는 점이 꽤 흥미롭다. 의사로서 바이크 취미를 어떻게 생각하나?
모터사이클을 즐기는 것은 의사라는 직업과 무관하다. 모터사이클은 그 자체로 위험한 일이라 규정할 수 없다. 이는 인생에서 선택과 책임의 문제다.
위험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삶에서 겪을 모든 위험을 회피하려 한다면, 안전한 삶은 살겠지만, 동시에 인생이 지루할 것이다. 반대로 재미만을 추구하는 인생을 산다면 지루할 틈은 없겠지만 그만큼 큰 손실도 각오해야 한다.
의사는 보수적인 직업이다. 검증된 이론, 과학적 근거를 중심으로 교과서적 판단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진료실에서의 입장이다. 진료실을 벗어나면 내 삶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자유를 중시하고 고정관념을 거부하는 나만의 삶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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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사이기 이전에 남자다.
진료실에서 벗어난 나는
인생을 즐기고 싶은 한 사람일 뿐이다.
의사와 모터사이클이란 불문율 같은
관계의 고정관념을 거부하고
온전히 나만의 자유를 누리고 싶다.
흔히 모터사이클을 탄다고 하면 가족이 크게 우려한다. 가족의 반대는 없었나?
없었다. 아내가 지지해 준 덕분에 지금까지 즐길 수 있다. 오히려 모터사이클 구매를 앞두고 고민할 때, 아내가 내 성향을 고려해 기종을 추천해 주기도 했다.
대부분 남자가 아내의 반대로 모터사이클을 포기하곤 한다. 가족을 설득하는 팁 같은 건 없는 것 같다.(웃음) 최대한 설득하고, 타더라도 안전에 유의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안전한 라이딩을 위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나?
핵심은 자기 통제다. 단 한순간이라도 자기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분노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순간이 있다면 모터사이클은 타지 않기를 권한다. 사고는 정말 단 한순간에 벌어진다.
한편으론 속도를 즐기는 일부 라이더가 일반 도로에서 생각보다 과속한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아무리 성능이 좋고 안전에 유의한다 해도 속도라는 물리적 한계 앞에서는 대부분 소용없다. 조금만 속도를 낮춰도 사고 위험은 크게 줄어든다. 개인적으로는 평균 80~100km를 유지하려 한다. 이 정도 속도로 달릴 때 진동으로 인한 몸의 피로도도 적고, 온몸으로 바람을 느끼기도 적당하다.
또 안전을 위한 라이딩 장비는 빠지지 않고 모두 갖추는 것이 좋다. 물론 나도 할리데이비슨 오너인 만큼 패션이 중요하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안정 장비가 최우선이다. 그러나 인증받은 헬멧과 타이트하게 조인 턱끈, 보호 패드가 든 라이딩 기어, 장갑, 발목 보호 신발 등은 기본이며, 야간 라이딩 시 형광 조끼는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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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사이클 취미를 지속하려면
자기 절제력이 필수다.
모터사이클로 아드레날린이 아닌
세로토닌을 좇는 라이더가
되길 바란다.
본인만의 라이딩 철학이 있다면?
좋아하는 것을 오래 즐기려면 자기 페이스를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꼭 라이딩이 아니어도 삶의 모든 영역이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여행의 핵심은 도착 시간이 아니라 여정이다. 항상 먼저 양보하고, 신호를 중시하고,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스스로 충분히 안전에 유의해 심적으로 편안한 상태가 된 후에 자연 풍경과 바람, 모터사이클의 진동을 함께 느끼며 유유자적 로드를 즐기기를 바란다.
할리데이비슨 오너로서 솔로 투어와 그룹 투어 둘 다 경험했을 텐데, 둘 중 어느 쪽을 선호하나?
주로 솔로 투어를 선호한다. 장거리 여행에서는 쉬고 싶을 때, 먹고 싶을 때, 둘러보고 싶을 때 혼자 움직이는 것이 훨씬 자유롭다. 물론 동호회나 지인들과 즐기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다.
솔로 투어는 가장 자유로운 형태의 라이딩이다. 환경이나 속도, 시간 등 어떤 조건에도 구애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굳이 따지자면 쉬는 시간에 담소 나눌 친구가 없다는 것을 단점으로 꼽겠다.
그룹 투어는 통제된 환경이라는 점에서 보다 안전하고, 취미를 공유하는 이들과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장점이다. 다만 장소와 속도 등을 내 취향대로 정할 수 없는 데다 일정을 서로 맞춰야 한다는 것이 단점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라이딩 에피소드는?
비 오는 밤, 초행길에서 모터사이클이 고장 난 적이 있다. 아마도 웬만한 라이더는 한 번쯤 경험해 봤을 일이다. 추석 때 제주도 곶자왈에서 시동이 꺼지고 모터사이클 자체가 먹통이 되었다. 해는 지고 추석 당일이라 서비스 센터도 연락을 받지 않아 막막했다. 여기저기 동호회에 수소문한 끝에 다행히 수리점을 안내받고 한밤중에 배터리를 교체했다. 할리데이비슨 동호회 네트워크가 없었다면 홀로 이런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바이크에 입문하려는 독자에게 조언하자면?
모터사이클을 정말로 좋아하는지 먼저 자문해 보길 바란다. 모터사이클은 다른 취미에 비해 비용, 시간, 안전 등 불리한 측면이 많다. 큰마음 먹고 모터사이클을 마련했는데 취향에 맞지 않으면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
먼저 기기를 대여하거나 지인의 도움으로 간단히 모터사이클을 체험해 보길 바란다. 모터사이클에 대한 진지한 열정, 그리고 모터사이클을 탔을 때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면 건강한 취미로 잘 맞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자기 절제력을 갖춰야 모터사이클 취미를 지속할 수 있다. 모터사이클로 아드레날린을 좇는 라이더인지, 세로토닌을 좇는 라이더인지 스스로 고민해 보길 바란다. 가능하면 세로토닌형 라이더가 되길 바란다.
정지환 에디터 stop@mcircle.biz
김동오 포토그래퍼 denmagazine@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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