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무이한 애굽 바라기, 곽민수 소장 [인터뷰]

국내 몇 안 되는 이집트학자 곽민수 소장. ‘애굽민수’라 불리는 그가 왜 이집트만 사랑하게 됐는지, 연구와 목표를 들려준다.

고고학자이자 커뮤니케이터, 어쩌면 모든 관심이 이집트로 향하는 사람.

곽민수
· 이집트 고고학자
· 한국이집트학연구소 소장

말끔한 정장에 안경을 쓴 백발의 중년. 흔히 생각하는 고고학자의 모습이다. 기껏해야 인디아나 존스처럼 탐험가 복장을 입은 모습까지가 상상력의 한계다. 그러나 곽민수 소장은 거친 수염에 가죽 재킷, 체인 달린 청바지를 입고 인터뷰 장소에 나타났다.


한국이집트학연구소 곽민수 소장은 고대 이집트학을 전공한 고고학자로, 국내 몇 안 되는 이집트학 전문가다. 곽민수 소장이 고고학자에 대한 편견을 깬 건 옷차림만이 아니다. 


한국 이집트학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고대 이집트 문명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쉽고 재밌게 전하는, 역사 커뮤니케이터 역할까지 도맡았다. 마치 이집트를 ‘덕질’하듯, 이집트학에 열정적인 모습을 보인 덕에 ‘애굽민수’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이집트만 바라보는 남자, 곽민수 소장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이집트학연구소 소장으로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이집트 고고학을 전공한 고고학자로서, 여러 매스미디어와의 접점에서 이집트학을 알리고자 활동한다. 방송이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고, 글을 쓰고 강연도 계속한다. 그 외에도 고대 이집트 관련 전시나 학술적 목표를 갖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자문하거나 조사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전공 분야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라면 최대한 참석하는 편이다.

방송에 출연하며 대중과 밀접히 소통한다는 점에서, 흔히 생각하는 학자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다

개인적으론 아쉽게 생각한다. 학자는 연구를 해야 하는데 지금은 연구할 시간 자체가 부족하다. 할 수만 있다면 방송 활동은 하나도 안 하고 연구만 하고 싶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이 학문의 바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방법의 일환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것이다.


사람들과 만나고, 방송에 출연하는 게 적성에 잘 맞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어느 정도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기에 하는 거다. 뛰어난 학자여도 대중에게 전공 분야를 설명하는 걸 어려워하는 이들도 있지 않나. 그에 비하면 나는 비교적 수월하게 설명하는 편이고, 사람들과 대면할 때도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기 때문에 지금처럼 할 수 있는 거다. 물론 나름의 재미도 느낀다.

최근 과학 콘텐츠가 대중화되면서 과학이 친근한 학문이 됐다. 이집트학도 같은 목표를 추구하나?

그렇다. 목표이기도 하고, 노력하는 부분이다. 다른 역사학이나 고고학과 비교해도, 이집트학은 한국에 기반이 전혀 없는 학문이다. 대학에 학과, 전공 과목, 강의 자체가 없다. 아마도 앞으로도 생기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서구권 역사를 토대로 보면, 이집트학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관심을 갖고 지원해 주는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유럽에서는 귀족이나 부자들이 취미로 이집트에 관심을 갖고 직접 발굴하거나 고고학자를 후원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현대 영국에선 일반 시민들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공공 연구 재단들이 있는데, 그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이런 운영 방식이 내가 구상하는 롤 모델이다. 한국에서도 일반 시민들에게 이집트학에 대해 알리고, 꼭 당사자가 직접 연구하지 않더라도 애정과 관심을 갖고 후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

한국에서는 학문이 금전적 가치를 창출하는지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와 비교하면 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학문의 기틀을 마련하려는 셈이다

보다 민주주의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나 기업에 가서 이런저런 노력을 한다면, 어느 정도 연구비를 받을 수 있겠지만, 학문 자체의 기틀을 마련할 수는 없다. 이집트학 분야 자체가 사회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 방법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앞으로 5년 내 목표는 이집트학 연구 재단을 만드는 거다. 연구비를 조성해 나도 연구하고, 비슷한 전공을 선택한 젊은 연구자나 자리 잡지 못한 연구자들이 지원을 받아 연구할 수 있게 만들고 싶다.

한국에서 이집트학 연구자는 극소수다. 부담이나 책임감을 느끼나?

책임감이 크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고대 이집트에 대해 어떠한 이야기를 하면,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그것이 정설이 된다. 권위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대중과 소통하는 것이 나 혼자라서 그렇다. 그래서 어떤 정보에 대해 이야기할 때 더 조심스럽게, 정확하게 이야기하려 노력한다.

이집트에 빠지게 된 계기는?

네 살부터 아홉 살 무렵까지 아버지가 이집트 주재원으로 근무하셨다. 가족이 함께 카이로에서 살았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집트 유적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학교 견학은 대체로 박물관이나 유적지였고, 가족 여행도 유적이 많은 관광지로 갔다.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이집트가 좋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피라미드를 보거나 박물관에서 유물을 보는 게 너무 재밌었다. 여섯 살 무렵부터는 막연하게나마 이집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을 땐 이집트 고고학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이집트학을 공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한국에서 고고학을 공부할 수 있는 학과로 진학한 뒤 유학을 준비했다. 물론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목적지가 분명했기에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

한편으론 굉장히 막막한 꿈을 선택한 셈이다

그렇다. 실제로 이 길을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질타를 많이 받았다. 부모님도 좋아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얼마 전까지도 마땅치 않아 하셨다. 방송에 나오니까 이제 조금 봐주시는 것 같다.(웃음)


대학에 진학해서도 인정받기 어려웠다. 선배들은 하나같이 비웃었고, 교수님들은 긍정적으로 말씀하시면서도 내심 피상적인 꿈이라는 듯 말씀하셨다. 그럴 때마다 오기로라도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 마음먹었다.

여러 과정에서의 노력이 지금 같은 방식으로 이집트를 알리는 결과를 만들었다

그렇다. 국내 이집트학의 현실에 대해 냉정하게 판단하고,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오랜 계획을 세웠다. 대학교 2학년 때부터 고대 이집트 관련 홈페이지를 직접 만들어 운영했다. 당시 목표는 인터넷에 ‘이집트’를 검색했을 때 첫 페이지에 뜨는 모든 게시물이 내 글이 되도록 만드는 거였다. 그 후 블로그도 오랫동안 운영했고, SNS가 뜬 이후로는 이를 적극 활용했다.


대략 25년 넘게 데이터를 쌓아온 것 같다. 이런 노력이 쌓이다 보니, 어느 시점부터는 이집트와 관련해 자문을 구한다는 연락이 왔다. 인터넷에 이집트를 검색하면 전부 내가 쓴 글만 나오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웃음)

고대 이집트학을 연구하는 건 완전 다른 시공간을 연구하는 일이다. 끝이 없을 것 같은데, 지금까지 계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나에겐 어려운 질문이다. 왜 이집트를 그만큼 연구할 수 있느냐는 질문의 답은 ‘사랑하니까’다. 뭔가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는 데 이유가 없지 않나.


이유는 사랑하고 난 이후에 댈 수 있는 거다. 인류의 이른 시기에 속하는 문명 중 하나라는 점, 오래된 문명임에도 유적이나 문헌 기록이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다는 점, 이를 통해 인간 문명의 초창기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 등이 그 예다.

내 인생은 계획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계획보단 방향이 중요하다.

방향만 확실히 정해 놓으면 잠시 딴 길로 새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내 길을 걸어갈 수 있다.

이집트를 사랑하기에 이런 것까지 해봤다?

지금 살고 있는 방식 자체가 사랑의 근거가 아닐까 싶다.(웃음) 이집트에 수도 없이 방문하고, 어딜 가나 이집트에 대해 얘기하고, 수백 번 대답한 질문도 이집트에 관한 거라면 또 신나서 대답한다. 이제는 실제로 타인과 대화하다가도 ‘이집트에선 이런데···’라는 생각이 조건반사적으로 떠오른다.


이제는 한국에서 이집트와 관련한 무언가가 등장하면 어떻게든 내게 얘기가 들려온다. 작년 즈음인가. 이태원에 이집트 식당 ‘클레오파트라 라운지’가 문을 열었는데, 밥 먹자고 하는 사람마다 다 그곳으로 가자고 한다. 지금까지 열 번도 넘게 간 것 같다.

이집트 홍보대사가 된 느낌이다

그렇다. 이제는 조금 성취감을 느낀다. 조금이라도 이집트와 관련 있다면 제보해 주고, 비즈니스 측면에서 일이 진행될 때도 연락해 준다.


인스타그램 DM도 자주 받는다. ‘이집트에 아무 관심 없었는데 당신 때문에 계속 보게 된다’, ‘이집트에 꼭 갈 거다’라고 해주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


요즘은 이집트에 가면 한국 사람 대부분이 나를 알아본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원래 이집트에 관심 없었는데, 나로 인해 관심이 생겨 여행 왔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이집트를 알리기 위해 노력한 결과인 것 같아 뿌듯하다.

최근 대이집트 박물관이 개관했다. 갈 계획이 있는지?

이미 다녀왔다. 이 박물관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박물관 중 전시 유물이 가장 많은 곳이다. 전시 유물만 5만 점이다. 루브르 박물관이 3만5000점 보유한 걸 고려하면 유물을 다 둘러보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박물관이다. 전시 수준도 지금 시점에서 세계 최고다.


가장 중요한 컬렉션은 투탕카멘 컬렉션이다. 1922년에 도굴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됐다.도굴되지 않고 온전한 상태로 발견된 왕의 무덤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여기에서 총 5400점 정도의 유물이 출토됐다. 발굴된 뒤 100년 넘는 기간 동안 유물 전체가 공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대이집트 박물관에 특별 전시실을 만들어 5400점을 모두 전시했다.


이번에 박물관을 방문해 투탕카멘 컬렉션을 봤는데, 너무 신나게, 집중해 구경해서인지 하루이틀 지나니 몸이 엄청 피곤했다. 도파민이 최정상까지 치솟았다가 떨어진 탓인 것 같다. 그 정도로 나에겐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타임머신이 생겨 10분만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면?

대피라미드가 60% 정도 지어졌을 때, 그 현장을 가보고 싶다. 피라미드를 어떻게 만드는지 정확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이 얼마나 동원됐고, 누가 어떤 식으로 관리하는지도. 남동쪽에 피라미드 짓던 사람들이 살던 캠프 유적도 보일 거다. 10분만 있으면 피라미드와 관련된 모든 상황을 눈으로 다 둘러보고, 돌아와서 논문을 쓸 수 있을 거다. 아마 세기의 논문이 될 것이다.(웃음)

앞으로의 목표는?

지금처럼 사는 거다. 지금 내가 가진 마음가짐이 바뀌지 않고 계속 유지되는 게 중요하다. 그러다 커리어적으로 어느 순간이 되면, 대중의 시선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고 싶다. 내가 없어도 고대 이집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지속되고, 그러다가 가끔 “곽민수, 그 사람 옛날에 이집트 이야기하던 사람이었지” 하고 떠올릴 수 있게 되는 것. 그리고 나는 안 보이는 데서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해서 이집트 연구 논문을 내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는 꿈이다.

대중과 멀어지는 것이 꿈이라는 말이다

그렇다. 다만, 아주 단기간 내에 실현될 것 같지는 않다. 내가 공부만 해도 먹고살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나만이 아니라 비슷한 처지의 연구자들도 함께 말이다. 적어도 10명 정도는 먹고사는 걱정 없이 공부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정지환 에디터 stop@mcircle.biz

김덕창 포토그래퍼 studioda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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