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남성의 유럽 한 달 살이, ‘딴짓쟁이’ 이기진 교수 인터뷰

[라이프]by 덴 매거진
물리학자, 작가, 화가, 영화배우, 요리사. 모든 타이틀을 뒤로한 채 그는 딴짓을 택했다.

프랑스 다락방에서 한 달을 생활한 그의 이야기.

ⓒ이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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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이기진

서강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방학 때마다 파리를 찾는다. 왜 파리인가?

내 다락방이 거기 있으니까.(웃음) 서울에 있으면 거기가 가고 싶고 거기 좀 있다 보면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게 많아 돌아오고 싶고 그렇다. 파리를 단골처럼 드나드는 이유는 뻔하지 않은가. 추억이 있고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또 호텔에선 거의 묵지 않는 이유도 그곳엔 뭔가 쌓이는 게 없기 때문이다. 날마다 깨끗이 청소된다. 쌓을 수 없고 남겨두고 올 수도 없다. 호텔은 매번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다.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려면 컴퓨터도 스캐너도 필요하고 연필과 미술 도구도 필요하다. 언제 가더라도 내 물건이 있고 축적된 이야기가 있으니 좋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다른 곳에 살아보고 싶다는 건 가능하면 여러 곳을 체험하고 싶다는 뜻 아닌가? 익숙한 곳만 찾아다니는 건 별로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텐데?

여기저기 다녀보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내 경우엔 한 동네를 천천히 잘 알아가는 게 더 좋다. 이웃과 사귀고 카페 주인과 친구가 되면 서로 초대도 하고 어울리게 되고, 그러다 문화를 배우게 된다. 식당을 가든 동네마켓을 가든 일부러 인사를 많이 한다. 차 한잔하는 사이가 되고 식사 초대도 하는 사이가 되는, 그 변화가 즐겁다. 관광객이 아니지 않은가. 본전 뽑겠다고 먼 유명 관광지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동네에 아는 친구가 많아지니까 그림도 팔 수 있고 좋지 않은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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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 콘셉트는 뭐였나?

갈 때마다 특별한 테마를 잡진 않는다. 소설책 몇 권 들고 가는 게 전부다. 서울에선 책 읽기에 몰입하기 어렵고 끝까지 못 읽는 경우도 많다. 파리는 완전 내 공간이자 내 시간이다. 그곳에 가면 책에 푹 빠질 수 있어 가기 전부터 설렌다.

원하던 만큼 책을 즐겼나? 어떤 책들인가?

이번엔 일본 소설류가 많았다. 점심 먹고 나서, 밤에 맥주 한잔하고 나서, 어떨 땐 밤을 새워 읽기도 한다. 같은 책을 두 번, 세 번 읽는 사치스러운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에쿠니 가오리’를 여러 권, 여러 번 만났다. 휴대폰을 손에 들고 있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 인터넷으로부터 절연돼야 하는데, 특히 심각한 게 뉴스다. 우린 뉴스의 홍수에 너무 많이 노출돼 있다. 사실 나랑 별 상관도 없는 것들인데 습관적으로 말이다.

관광객처럼 먹진 않을 테고, 매끼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나? 바게트만 먹다 오는 건가?

그렇진 않다. 원하면 김치찌개 같은 것도 먹을 수 있다. 예전과 달리 K-푸드 식당이 많이 들어섰다. 한국 식료품을 사기도 편하다. 프랑스식 집밥도 해 먹는다. 프랑스 하면 바게트를 먼저 떠올리는데, 그건 우리의 밥 같은 기본 메뉴이고, 다양한 요리가 있다. 파리지앵이 즐겨 먹는 건 홍합요리, 스테이크 요리다. 어떤 요리든 해물을 많이 쓴다. 수요일과 일요일에 동네에 장이 선다. 오전에 나가 신선한 올리브 등 로컬 식채소와 생선, 시골 빵, 과일을 사와 쟁여 둔다.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은?

시장 구경하는 재미에 자꾸 나가다 보면 집에 음식이 쌓인다. 솔직히 게으름 피우다 보면 이것저것 다 해 먹지 못하고, 결국은 주로 파스타를 해먹는다. 가장 간단히 만들 수 있고, 단백질 보충에도 좋으니까. 일주일에 한 번은 ‘타르타르’(프랑스식 소고기 육회)를 먹는다. 칭기즈칸이 전파했다는 음식이다. 달걀노른자와 케첩, 머스터드가 들어가는데, 오묘하게 맛있다. 식사 시간도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어 꼭 세 끼를 고집하지 않는다. 아침은 커피와 빵, 치즈로 간단히 해결한다. 점심때 친구 만나서 거하게 먹고 디저트까지 먹으면 저녁밥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하루에 한 끼 먹는다 해도 맞다. 현지인들도 대개 그렇게 하는 것 같다. 우리와 달리 점심시간이 길고 여유로운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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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는 탄수화물 덩어리 아닌가? 단백질 보충이라니?

주로 쓰는 듀럼밀 성분을 보면 탄수화물과 단백질이 23~24%로 비슷하다. 듀럼밀의 탄수화물은 몸에서 천천히 분해되고 느리게 흡수돼 칼로리가 완전 연소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파스타를 ‘슬로푸드’라고 한다. 체내에 여분의 지방이 축적되지 않아 다이어트 중인 사람이 탄수화물이 당길 때 먹기 좋은 메뉴다. 달걀을 많이 넣어 반죽하니 단백질 덩어리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알리오올리오에 치즈를 넉넉히 뿌려 먹으면 맛도 영양도 만점이다.(웃음) 서울에서도 파스타를 많이 해 뒀다 꺼내 나눠 먹는다. 점심 약속 없는 날이면 학교 갈 때 도시락으로 싸 가기도 한다.

파리와 파스타 이야기를 하니 조금 느끼하다. 서촌에서 노포를 골라 다니며 순대국, 뼈해장국을 즐기지 않았나?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하지만 한국 노포 음식이 제일 좋다. 서촌에 이사 온 뒤로 동네 노포 드나드는 재미가 쏠쏠하다. 학교에선 교수들과 자주 가는 단골 추어탕집도 있다.

‘우리 땅에서 혼밥’과 ‘남의 땅에서 혼밥’은 느낌이 다를 것 같은데?

젊을 때부터 혼밥 할 때가 많았다. 그땐 좋아서 혼자 먹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이었는데, 이젠 혼밥이 익숙하고 편하다는 걸 알게 됐다. 한국에선 여전히 눈치 보이는 면이 있는데, 낯선 여행지에서의 혼밥은 더 재미있고 매력적이다. 여럿이 어울려 식사하는 것도 좋지만 늘 그렇기만 하면 식사의 의미가 획일화된다. 만날 사람들 틈에 끼어 사는 게 피곤할 때가 있다. 늘 똑같은 소리나 하고 있는 상대와 내게 질리는 수가 있다. 혼밥은 꼭, 적절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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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살기’ 여행은 부부나 가족 단위도 많다. 솔로 여행은 외롭지 않나?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내내 혼자만 지낼 수는 없다. 나도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다. 주말이면 놀러 갈 친구 집을 골라 며칠 묵기도 한다. 너무 오래 있으면 불편하니까 2~3일 있다 돌아오곤 했다. 혼자 즐기는 시간이 더 좋긴 한데, 문제는 밤이다. 저녁이 되면 고적하다. 동네 술집 가서 맥주 한잔하고 알딸딸한 기분이 들면 집에 들어와 음악 듣다가 잔다. 너무 단조롭고 적적하지 않으려면 동네 친구가 필요하다. 단골 카페나 식당을 만들면 좋다. 이웃과도 안면을 트고 지낸다. 하지만 시작은 혼자인 게 좋다. 한 달 살기 여행은 철저히 혼자만의 여행이면 더 좋을 것 같다. 새 친구는 가서 만들면 되고, 필요할 때 만나고 헤어지면 되지만 가족은 떼어낼 수가 없지 않은가.(웃음)

주기적으로 가니 현지인 친구도 많겠다. 파리지앵 친구가 많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나?

파리 사람들은 그리 친절한 편이 아니다. 대충 지나치면 친해지기 힘들다. 가능하다면 단골을 만들고 웨이터나 주인장과 안면을 트면 좋다. 알고 나면 훨씬 친근하게 다가온다. 현지인 친구든 한국 친구든 잠깐씩 밖에서 만나기도 하고, 집으로 초대받기도 한다.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 친구의 초대가 기다려질 때도 있는가 하면 어떤 때 약속이 너무 많으면 기 빨리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빨리 도망가서 혼자 있고 싶은 거다.(웃음)

파리도 K-푸드 열풍이라고 들었다

눈에 띄는 변화는 식당 수다. K-푸드 레스토랑이라 불리는 한국 식당이 파리 시내에 200곳이 넘는다고 들었다. 이제 현지인들도 한국 음식에 익숙하다. 간장 맛, 고추장 맛을 안다. 물론 우리 노포에서 느낄 수 있는 전통적인 깊은 맛은 아니다. 퓨전이라고 보면 된다.

파리의 다락방 모습이 궁금하다

다락방이니 당연히 작다. 침대와 책상이 겨우 들어가고 소파는 상상할 수 없는 좁은 방이다. 취사는 할 수 있다. 물도 나오고 인덕션도 쓸 수 있으니 최소한의 생필 시설은 갖춘 집이다. 밤에 전기료가 싸니까 심야전기를 써서 온수를 데운다. 요즘 가정엔 먹지도 않을 것을 쌓아 놓느라 냉장고가 쓸데없이 크다. 난 아주 작은 냉장고를 쓴다. 작은 용량에 넘치지 않게 식재료를 채운다. 냉장고 옆에 작은 창이 있다. 창밖을 보며 멍때릴 때마다 ‘아, 파리구나. 내가 여기 또 와 있구나~’ 하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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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생긴 일을 요약해 보면, 책 읽기, 그림 그리기, 와인과 맥주 마시기, 산책하기 그리고 멍때리기다. 또 있나?

주문이 많아서 그림 나눠주고 파는 일도 나름 바쁘다. 일주일에 두 번 장 서는 날은 꼭 챙긴다. 몽파르나스 중심에서 좀 벗어난 곳에 예술가가 많이 살았다는 동네가 있다. 거기로 산책을 자주 갔다. 에펠탑도 산책거리로 큰 무리는 아니다. 걷다가 눈에 띄는 화구를 구입하고 돌아온다. 눈이 즐거우니까 3시간 넘도록 걸어도 피곤하지 않다. 아침에 배낭을 메고 나가 물 흐르듯 걷고 나를 위한 미술 도구를 챙기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쉬다가 집으로 돌아올 땐 가슴 설레고 뿌듯하다. 방에 돌아가 작업을 할 상상을 하면 미리 벅차곤 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엔 앤티크 벼룩시장이 열린다. 프랑스 3대 벼룩시장 중 하나인 ‘방브 벼룩시장’이다. 방브 기차역에 있는데 주말 아침이면 어김없이 일찍 일어나 산책 겸 걸어 나간다. 보통 8시 반쯤 나와서 샌드위치를 하나 딱 사서 가면서 먹는다. 방브역에 도착해 카페에서 커피 한잔하거나 칼바도스를 한잔 마신다. 낮술도 아니고 아침술이다.(웃음) 따로 마셔도 되지만 커피에 타서 마시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앉아 있다 보면 일본 친구, 프랑스 친구, 한국 친구들이 다 모인다. 따로 만나진 않고 이 마켓에서만 주말마다 만나는 친구들이다. 누구라도 얼굴이 안 보이면 궁금한 사이지만, 서로에 대해 아는 건 없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 하는 사람인지 모르고 전화번호도 모르니 평소엔 연락할 일도 없는 그런 관계…, 재미있지 않나.

첫 3일은 아무것도 안 했다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널브러져 쉬었다. 첫 외출은 평소 좋아하는 자코메티를 만나러 가는 거였다. 근처에 있는 자코메티 미술관에 가면 뭔가 영감을 크게 얻는 것 같다. 그림을 더 열심히 그려야겠다는 의욕이 솟아오른다. 자코메티 재단에서 만든 미술관이고, 3개월마다 컬렉션을 바꾼다. 아르데코 건물에 3층까지 작품이 있어 들어설 때부터 설렌다. 미술관에 가면 늘 반성하게 된다. 작업을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약속이 자꾸 생기고 시간은 화살처럼 지나가고 그러다 한 주, 한 달이 빠르게 흘러간다. 거장의 작품을 봐야 자극이라도 받고 오는 것 같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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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마자 반성부터 했으니 엄청 많이 그렸겠다

하고 싶은 만큼 충분히 그렸다. 사실 여기서는 연속적으로 작업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역할이 있으니 할 일도 많고 챙겨야 할 관계도 많으니 갖가지 단절이 생긴다. 장편 스토리를 쓰듯 끊김 없이 죽 이어가는 작업, 내 안의 고독으로 파고드는 작업이 필요한데, 그건 파리가 훨씬 편하다. 많이 그리고 많이 팔았다. 자화상 그려달라는 친구가 많다. 손주 사진을 가져와 그려달라는 이웃도 있다. 100달러 정도씩 받고 그려준다. 동네 화가로 소문난 지 좀 됐다. 한 달 넘게 그러다 보면 약간 지치기도 한다. 한국 가서 순댓국에 소주 한잔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이 된다. 그러면 적당히 끊고 돌아오는 거다.(웃음)

단기 관광이 아닌 한 달 살기 여행이라면,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할까? 이기진의 팁은?

남들에게 보여주고 자랑하려는 여행이 아니면 좋겠다. 자기 마음을 온전히 자기 안에 두고 절실해야 한다. 고독을 찾으러 가는 여행이랄까. 그래서 난 부부도 가족도 아닌 혼자 살다 오는 여행을 권한다. 인터넷도 인스타그램에도 연연하지 말고 뉴스도 보지 말자. 해보고 싶은 걸 계획해 놓고 차근차근, 그러나 무조건 해보는 거다. ‘여긴 꼭 가봐야 해’라는 곳이 있게 마련인데, 그걸 다 찾아다니려면 한 달 살기의 리듬이 무너진다. 강행군하려 하지 말고 하루나 이틀에 한 곳 정도만 다녀오면 적당할 것 같다. 여의치 않으면 아예 포기하고 머무는 동네를 산책하며 쉬는 걸 권한다. 가이드북에 나온 유명 빵집을 모두 순례하겠다는 계획 같은 건 어리석다. 동네 빵집에 매일 가서 갓 구운 빵과 커피를 마시고 친구를 사귀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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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살기 비용은 어느 정도 들었나?

내 경우엔 집이 있지만, 숙소를 얻어야 한다면 에어비앤비가 적절할 것 같다. 호텔은 하루에 200~300유로 수준이다. 반면 에어비앤비는 100유로 수준일 거다. 숙소를 옮겨가며 이 도시, 저 도시를 다니는 건 반대다. 짐 싸다 볼일 다 본다. 한 달 살기는 머무는 동네의 속살을 보고 토박이들의 일상에 들어가 보는 체험이다. 진득하게 느슨하게 지내다 오는 게 맞다. 한 달 살기를 원한다면 대개 슬로 라이프가 필요한 사람들 아니겠나. 비행기값은 뻔하고, 숙소는 에어비앤비로 정하면 가격이 합리적이다. 나처럼 혼자 지낸다면 먹는 데 들이는 돈이 1일 30유로 정도. 외식하는 것까지 감안하면 월 100만원 정도면 되는 듯했다. 릴랙스와 힐링의 의미가 강하지 관광객처럼 몸 쓰고 돈 쓰는 건 아니니까 비용은 그리 많이 들지 않는다. 샹젤리제 근처는 방값이 엄청 비싸다. 14구, 15구 정도가 합리적이고 시내로 올수록 비싼 점에 주의한다. 생드니는 피하는 게 좋다. 파리의 대표적 우범지대다. 요즘엔 총소리도 빈번하다고 한다. 가장 안전한 곳은 13구, 14구, 15구랑 에펠탑 근처다.

이번 한 달 살기엔 이탈리아 토스카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2주 가까이 토스카나 시골 마을 농가에서 지냈다. 산꼭대기 외딴집인데 350년 된 고택이다. 이탈리아 귀족 집안의 성이었다고 들었다. 넓은 올리브 농장도 딸려 있었다. 농장 주변을 산책하는 게 주로 한 일이었다. 아랫동네에 내려가야 카페도 있고 빵집도 있었다. 하루 걸러 한 번씩 친구들과 쇼핑하고 술 마시고 놀다가 느지막이 올라가곤 했다. 그곳에 있는 동안은 파리 같은 도시도 복잡하게 느껴진다. 탈출이 필요한.(웃음) 남들 다 가는 두오모 성당도 가보지 않았다. 굳이 피곤하게 다녀올 이유가 없었다. 내 쉼이 더 소중해서.

여행지에서 만난 친구들과 무슨 대화를 나누나? 여행자의 대화법을 일러준다면?

프랑스 친구들, 벨기에 친구들도 만났다. 밤늦게까지 얘기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허물이 없다. 하지만 나는 뭐 하는 사람이고 여기에 어떻게 오게 됐다는 정도만 먼저 얘기할 뿐 그 이상의 사적인 얘기는 하지 않는다. 프라이버시를 건드리는 얘기는 삼가는 게 좋다. 음식 이야기, 여행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미술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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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토스카나는 ‘비교 체험 극과 극’ 같다

파리는 내가 그림을 그리게 만드는 예술 도시라면, 토스카나는 자연을 만끽하며 쉬고 걷고 술 마시는 그런 곳. 몽롱하게 취한 날이 꽤 있었지만 트레킹도 열심히 했다. 한번 나서면 10~20km씩 걸었다.

다음 방학 땐 파리 외에 머물다 오고 싶은 곳이 또 있을까? 지중해 쪽 니스나 망통은 어떤가?

그런 럭셔리한 동네보다는 이탈리아 남부 시골 마을 같은 곳에 더 끌린다. 오래전 자주 가본 포르투갈이나 스페인 마을도 다시 가보고 싶다. 가볼 만한 곳, 가보고 싶은 곳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다 꼽기 시작하면 죽기 전에 다 다닐 수 있겠나 싶을 정도겠지. 그래서 난 익숙한 곳을 다시 찾는 걸 더 좋아한다. 자기 자산이 녹아 있는 곳이라 스토리가 생기는 곳. 포르투갈이 나랑 뭔 상관이 있겠는가. 내가 주인공인 스토리가 있는 곳이 더 중요하다.


이상문(여성조선 선임기자) denmagazine@mcircle.biz

정지환 에디터 stop@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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