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으로 보는 K-컬처 보편의 시대

넷플릭스 ‘케데헌’이 조회수와 빌보드 차트까지 흔들며 세계적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적 정서를 담은 이 작품은 K-컬처가 보편 문화로 자리 잡는 전환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열풍은 일찍이 예견된 한류의 미래다.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기세가 더욱 거세지는 것만 같다. 지난 6월에 공개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인기몰이가 예사롭지 않다. 공개된 지 8주가 지났는데도 넷플릭스 영화 조회수 10위권 안에 머무르는 것을 넘어 새로 공개된 신작들과 1위 경쟁을 벌이며 정상 탈환을 반복할 정도다.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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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휩쓸다

'케데헌'이 넷플릭스 공개 영화 중에서 역대 최다 조회수를 기록한 작품으로 등극할 날도 머지않았다. 8월 2주 차 기준으로 최고 기록을 보유한 작품은 2021년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레드 노티스'로, 조회수 2억3090만 회를 기록하고 있다. 1억8460만 회를 기록 중인 '케데헌'의 조회수는 공개 8주 차에도 주당 2000만 회를 상회하는 상황이라, 이런 추세라면 1위 등극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만약 '케데헌'이 넷플릭스 영화 누적 조회수 1위에 등극한다면 시리즈 누적 조회수 1위를 기록한 '오징어 게임'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셈이며, 이는 곧 한국을 배경으로 한 두 작품이 넷플릭스의 흥행을 견인한 최고의 작품이 된다는 의미다.


'케데헌'의 기록적 반향은 비단 넷플릭스 속 태풍에 불과하지 않다. 한국 시간으로 지난 8월 12일, '케데헌' OST에 수록된 주요 넘버 중 하나인 ‘골든(Golden)’이 공개 5주 만에 빌보드 메인 차트인 핫100 1위에 올랐다.


‘골든’ 이전에 K-팝으로 분류된 음악 중 핫100 1위에 오른 건 BTS가 부른 여섯 곡과 BTS 멤버 지민과 정국이 각각 부른 솔로곡을 합해 총 8곡이었다. 이는 K-팝 여성 아티스트의 곡으로는 최초의 사례이며, 가상 아이돌 그룹의 곡으로도 역시 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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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밖의 ‘잭팟’

넷플릭스는 '케데헌' 공개를 앞두고 홍보 마케팅에 그다지 집중하지 않았다. 넷플릭스가 '케데헌'이 공개된 지 한 달 가까이 흐른 뒤에야 미국 특허상표청에 '케데헌' 관련 상표권을 단독 출원했다는 사실도 이를 대변한다.


성공한 애니메이션 작품은 다양한 관련 굿즈 제작으로 이어지고 판매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케데헌'에 걸린 기대감이 상당했다면 굿즈 출시를 비롯한 다음 스텝을 미리 구상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넷플릭스는 '케데헌'에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고, 극장 개봉보다는 넷플릭스 공개를 선택한 소니픽처스 애니메이션 역시 마찬가지였다. '케데헌'을 구상하고 기획하고 끝내 완성한 한국계 캐나다인 감독 매기 강도 이 정도의 성공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케데헌'의 팬덤은 상상 이상으로 넓다. 이전엔 ‘K-팝’에 관심이 없던 이들도 '케데헌'을 보고 ‘골든’과 ‘소다 팝(Soda Pop)’을 듣는다. 애니메이션에 별 관심을 두지 않던 이들도 입소문에 힘입어 작품을 보고 SNS에 감상을 남긴다. 기대가 없었던 만큼 공개 전 홍보 프로모션조차 벌이지 않은 작품이 자발적 바이럴을 통해 밈이 되고 인지도가 상승하는 과정은 분명 놀라운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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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문화에서 글로벌 현상으로

K-팝의 인기는 분명 상당하지만 그것을 보편적 주류 문화라 보긴 어렵다. 가끔씩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랭크되는 유행이며, 젊고 열성적인 팬덤을 움직이는 특수한 현상에 가깝다. 그렇기에 '케데헌'의 주요 소비자층은 한정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세계적인 K-팝 팬덤의 지지를 받을 만한 작품이라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었지만 반대로 K-팝에 별 관심이 없는 이들의 마음은 움직이지 못할 가능성도 다분하다는 판단에 무게가 실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공개 첫날 17개국 1위를 달성한 '케데헌'은 영화 부문 전 세계 1위를 차지했고, 조회수 930만 회를 기록하며 무난한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2일 차부터 SNS 등에서 입소문이 퍼져나가며 예상보다 열광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2주 차에 이르기까지 스트리밍 조회수는 2배 이상 수직 상승했고, 그 수치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일례로 뒤늦게 '케데헌'에 빠진 해외 남성 팬이 “제목만 보고 외면하지 말고 제발 작품을 봐달라”라고 호소하는 영상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K-팝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 '케데헌'이라는 제목 자체는 진입을 망설이게 만드는 허들이었지만 막상 그 허들을 넘고 난 이후에는 그들이 K-팝 흥행의 새로운 전진기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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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언어로 세계를 연결하다

'케데헌'은 K-팝이라는 유행을 새롭게 바라보고 인식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제안이며 새로운 발견이다. '케데헌' 속 3인조 걸 그룹 헌트릭스 멤버들은 떡볶이·김밥·컵라면 같은 분식을 먹고, 국밥도 먹는다. YTN서울타워(옛 남산타워)와 성곽길을 비롯한 서울의 어제와 오늘을 아우르는 정경이 사실적으로 반영돼 있다. 


동시에 갓을 쓴 저승사자들은 사자보이스라는 5인조 보이 밴드로 변신해 자신들의 스타일을 과시한다. '케데헌'은 총체적 K-팝이자 K-컬처로 무장한 작품이다. K-팝의 특징은 물론 K-팝의 태생적 배경이 된 한국의 풍경과 정서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반영하고자 노력한 동시에, 한국의 역사적 배경과 전통문화를 아우르는 스토리 라인을 구성해 지극히 한국적인 K-컬처의 근본까지 녹여낸다.


그런 의미에서 '케데헌'은 K-팝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데 효과적인 안내서 같기도 하다. K-팝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장르? 그렇다면 특정한 댄스곡 형식을 지칭하는 걸까? 사실 K-팝은 음악만으로 규정될 수 있는 언어가 아니다. 음악은 주요한 요소에 가깝다. K-팝은 산업적으로 정의할 때보다 합리적으로 느껴지는 시스템이다.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육성한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바로 K-팝이다. 일사불란한 칼군무와 중독성 있는 훅, 뮤지컬 무대를 연상시키는 호소력 짙은 연기와 연출, 그리고 개성 있는 패션과 헤어스타일, K-뷰티로 승화된 메이크업 기술 등 비주얼 요소가 중시된다. 이런 총체적 면면이 한국 가수의 단일한 노래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한국에 대한 호감을 품게 하고, 때로는 동경하게 만든다.


전 세계 K-팝 팬들에게 '케데헌'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건 이런 이유일 테다. 한국을 알고 싶어 하고, 한국에 오고 싶어 하는 K-팝 팬들은 지극히 한국적인 면면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케데헌'을 통해 충분해 대리만족을 했을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건 '케데헌'이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실이다. 


한국계 캐나다인 감독의 의지와 열정이 반영된 결과물이지만 K-팝과 K-컬처를 위시한 K-콘텐츠가 미국에서 제작됐음에도 한국에서 제작된 작품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현실감이 상당하다. 이런 작품에 전 세계 반응이 집중되고 있다는 건 한국인으로서는 분명 반갑고도 놀라운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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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세계로, 세계에서 한국으로

만약 '케데헌'을 한국에서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우리 스스로 K-팝을 위시한 K-콘텐츠를 만들었다면? 우리 입장에서 '케데헌'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그것이 역수입된 예찬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K-팝이 얼마나 흥미로운 모티브를 제공하는 원천이 될 수 있는지, 그렇게 완성된 결과물이 얼마나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내부자 입장에서는 정작 알 수 없었고, 볼 수 없었던 관점과 시야를 제공해 주는 것과 같다.


그리고 잘 만들어진 콘텐츠는 상상 이상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이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K-팝, K-콘텐츠 등 지난 10여 년 사이 ‘K’라는 알파벳을 앞세워 한국 문화를 정의하는 것이 더 이상 무색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 사례를 떠올려보자.


보이 그룹 BTS, 영화 '기생충'과 배우 윤여정,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소설가 한강,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빌보드와 그래미상, 칸 국제영화제와 오스카상, 에미상, 노벨 문학상, 토니상 등 세계적으로 예술적 성취를 인정받고, 문화 지평을 넓혔다고 자부할 만한 사건이 이어졌다. 한국의 문화가 전 세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문화 강국의 주인으로 살아간다고 자부해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케데헌'은 그런 시대의 방증이다. ‘작호도’ 속 호랑이와 까치를 소개하는 외국 방송이 소개되고, 갓 쓰고 한복 입은 외국인들이 광화문 주변에 즐비하다. 한편에서는 한국에서 유행하는 패션과 메이크업 스타일을 습득했거나 습득하려는 젊은 외국인 관광객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불닭볶음면이 유럽 등지에서 유행하고, 미국에서는 김밥이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김치는 더 이상 한국인만 먹는 음식이 아니다. 블랙핑크 제니가 미국의 유명 토크쇼에 나와 한국 과자를 소개하자 해당 제품을 출시한 국내 제과 회사의 주가가 뛰었다. 그리고 지금은 미국에서 K-팝을 소재로 만든 오컬트 판타지 애니메이션이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끄는 상황이다. 바로 '케데헌' 말이다.


'케데헌'은 미국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영화인 만큼 세계적 흥행은 우리에게 직접적인 이익을 안겨주는 성과는 아니다. 하지만 '케데헌'이 일으킨 보이지 않는 파급 효과는 대체로 한국을 위한 것이며, 어쩌면 이미 일어났다. K-팝을 잘 모르던 이들이 K-팝을 듣기 시작했고, 한국을 잘 모르던 이들이 한국을 알게 됐으며, 누군가는 호감을 가질 것이다. 컵라면과 김밥이 먹고 싶어지거나 당장 먹어봤을 것이다. 


문화의 힘은 강하다. 해외의 어떤 K-팝 팬들은 한국어 공부에 여념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케데헌'의 흥행은 알파벳 K를 위시한 한국의 모든 것에 날개를 달아주는 뜻밖의 기회나 다름없다. 넷플릭스가 이미 속편을 비롯해 '케데헌'과 관련한 새로운 프로젝트에 착수했다는 소식도 신빙성 있게 들린다. 만약 '케데헌>의 속편이나 관련 프로젝트가 새로운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그 역시 한국을 위한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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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만 있는 것이 창의의 원천

'케데헌'의 흥행을 통해 얻어야 할 귀감은 ‘그것이 무엇을 이루고 있는가?’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단 ‘그것이 무엇에서 출발했는가?’가 더 중요할 것 같다. '케데헌'은 매기 강 감독으로부터 시작됐다. 한국에서 태어나 북미에서 자란 그는 한국 문화가 유행하는 현상에 큰 자부심을 느껴, 이를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케데헌'의 성공이 할리우드 관계자들에게 관객이 진정 원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신중하게 고민하도록 격려할 수 있길 바란다. 이 작품이 그런 결정 권한이 있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영감을 불어넣어 주면 좋겠다.” 매기 강 감독의 말은 K-콘텐츠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같다. 지극히 한국적인 문제나 문화를 적극적으로 구현하고 반영하니 세계적인 것이 돼버린 사례를 우리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니까, 봉준호 감독의 그 유명한 수상 소감 멘트처럼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케데헌'에서 얻을 수 있는 힌트란 일찌감치 우리가 시작한 방식에 모든 답이 있다는 것일지 모른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정책으로 산업의 존속 기반을 마련하고, 창작의 개성을 깎거나 대중성을 평균으로 착각하며 평범함을 양산하는 산업의 태도를 지양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K의 시대를 열어준, 여전히 유효한 비결이 아닐까.


민용준(영화평론가, 작가) denmagazine@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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