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물건 수집가, 뽈랄라백화점 천대준 대표

장난감·만화책 같은 ‘사소한 물건’을 30년간 기록하고 보존해온 뽈랄라백화점 천대준 대표. 그는 “하찮은 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하찮은 건 없다. 그의 수집품도, 그의 수집 철학도.

스스로를 ‘1세대 수집가’라고 말한다

수집 경력은 30년 정도 됐다. 우리나라 옛날 장난감이나 책 같은 것을 수집했다. 나보다 위 세대 수집가는 이런 사소한 물건은 쳐다보지 않고, 귀한 것만 모았다. 도자기나 옛 그림 같은 것 말이다. 하찮은 물건을 수집한 건 내가 1세대라고 보면 된다.


이 외에도 책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물건을 만들기도 한다. 취미 생활 관련 책을 열 권 정도 준비하고 있고, 최근에는 ‘땡춘’이라는 굿즈 제품 브랜드도 만들었다.

수집가이면서 동시에 타인이 수집할 물건도 만드는 셈이다

수집은 지금 정리 단계다. 수집한 것을 분류하고 사진 찍는 작업을 한다. 내가 쓰는 책은 대부분 도감이다. 수집품을 정리하는 것도 도감에 싣기 위한 작업이다.

처음 수집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부모로부터 이어받은 타고난 성향이다. 아버지도 어디서 맨날 이상한 것을 집어 오셨다. 어려서부터 이것저것 물건을 찾고 수집하는 게 재밌었다. 탐험하는 느낌이랄까. 계속해서 수집하던 어느 날, 갑작스레 목표가 생겼다. 시대적으로 중요한 물건을 발굴해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는 하찮은 것을 하찮게 생각하는 문화가 팽배하다. 왕이나 귀족, 부자들이 사용하던 물건만 귀한 줄 알고, 서민들이 쓰던 물건은 하찮게 생각한다. 1960~1970년대에는 사회의 요구로부터 먼 것을 하찮게 여겼다. 장난감은 당시 부모들의 공공의 적이었고, 만화책도 마찬가지였다. 공부하는 데 방해된다고 못 갖고 놀게 하고, 내다 버리고, 불태우기까지 했다. 즐거움을 위한 작은 물건들이 남아 있기 힘든 여건이었다. 그런 것을 모아둬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시대를 경험한 이들의 추억을 모으는 건가?

추억이라고 표현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흔히 ‘추억팔이’라며 누군가 겪어온 역사를 가볍게 여기지 않나. 뭔가 타인을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말 같아서 추억이란 표현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개개인마다 물건에 스민 사연이 있을 거다. 아버지 몰래 갖고 놀다가 한 대 맞았다든가, 사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침만 흘렸다든가. 추억이라기보단 개인의 역사와 유물, 기록으로 보는 게 맞다.

유물이라고 하니 뭔가 귀중한 물건이 된 것 같다

박물관에서 임금이 입었던 옷을 봐야 ‘임금이 이런 걸 입었구나’ 생각하듯, 자료가 남아 있어야 그 시대를 기억할 수 있다. 이런 레트로 물건들을 정리해 놓으면 동시대를 살아온 개인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포인트가 되겠다 싶었다.


중요한 건 이런 물건들이 세대를 바꿔가면서 계속 전달되는 거다. 40~50년 된 물건이 계속 사람의 손길을 거쳐 후세에 전달된다. 시대가 바뀌면서 이야기가 쌓이는 거다. 이는 나름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수집가를 넘어, 고고학자 같은 느낌이다

유럽은 일찍이 수집 문화가 발달했다. 장난감 페어 같은 곳을 가면 할아버지 수집가들이 나와 본인이 모아온 수집품을 사고판다. 몇십 년 전부터 사소한 물건의 가치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수집 역사가 짧은 편이다. 먹고사는 데 급급한 시대였던 탓이다. 그 때문에 1980년대에는 개인들의 취향이나 문화가 없었다. 당시 취미라고 하면 기껏해야 독서, 우표 수집, 여행 정도였다. 199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야 비로소 수집 문화가 슬슬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이

나름대로 자극을 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남이 뭐라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소중히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을,

자기 취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나라도 개개인의 취향을 존중하자는 분위기다. 문화가 나아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나?

지금은 개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문화가 확산되어 수집 문화도 많이 발달한 편이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시작 단계다. 우리나라 수집 문화 규모가 일본에 비하면 1000분의 1 수준이라고 한다. 인구가 많은 이유도 있겠지만, 수집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다르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수집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연예인에 관심이 많다. 타인의 모습이 왜 중요한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지. 우리나라 문화는 주류에 속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개인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개인의 자유가 중요한 요즘 젊은 친구들이 비주류 문화에서 더 사고를 치고 다녀야 한다. 주류에만 속하려 하지 말고.(웃음)

‘뽈랄라백화점’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달라

온갖 잡동사니를 파는 가게다. 빈티지 레트로 상품부터 시작해 피겨, 캐릭터 굿즈, 책, LP판까지 다양하다. 시중에서 보기 힘든 희귀한 제품 위주로 판매한다. 이 자리에서만 16년 정도 했다.

젊음과 개성으로 대표되는 ‘홍대’라는 지역에, 옛날 물건이 가득한 공간이 있다는 것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홍대에서만 40여 년을 살았다. 홍대 터줏대감인 셈이다.(웃음) 오래 지내면서 익숙하다 보니 홍대에 터를 잡게 됐다. 홍대는 내가 젊은 시절부터 좋아한 지역이다. 자신의 취향껏 자유롭게 치장하고 다녀도 눈치 주는 사람이 없었다. 여러모로 다양성이 존중받는 곳이다.

‘뽈랄라박물관’으로 시작해 ‘뽈랄라백화점’으로 바꿨다

처음엔 뽈랄라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개인 박물관을 열었다. 개인적으로 수집한 물건을 분류해 놓고 입장료를 받았다. 7~8년 정도 운영했는데, 막상 입장료를 받으니 사람들이 들어오질 않더라. 그래서 ‘뽈랄라백화점’으로 이름을 바꾸고 진열한 사소한 수집품을 팔기 시작했다.

수집해 온 물건을 파는 셈이다. 서운하진 않나?

팔아도 될 것 같은 것만 판다. 여분이 있는 물건. 귀중한 물건은 별도의 개인 창고에 보관한다.

수집품들은 어떤 경로로 수집하나?

30년 전에는 전국의 문방구, 서점 등을 돌면서 수집품을 모았다. 그러다 점차 그런 가게가 다 없어진 후로는 수집가들끼리 교환하거나 매입했다.


이제 귀한 물건은 잘 안 나온다. 다른 수집가들이 보관하고 있거나, 구매하더라도 굉장히 비싸다. 지금은 마음을 비운 상태다. 갖고 있는 물건을 사진 찍고 정리해 책에 기록하자는 생각이다.

기억에 남거나, 애착이 가는 수집품이 있다면?

자아가 생길 무렵, 초등학교 3~4학년 이후에 접한 프라모델이 기억에 남는다. 프라모델은 박스 자체도 이쁘지 않나. 미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다 보니 프라모델에 관심이 많았다. 프라모델에 관한 책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어릴 적 본 TV 만화 영화 <마징가 제트> 관련 물건에도 애착이 간다. <마징가 제트>는 매주 TV에서 방영했다. <태권브이>는 극장에서나 볼 수 있었다. 당시 대부분 아이가 영화관에 갈 형편이 못됐다. 그러나 TV에서 방영하는 건 어떻게든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내 또래 사람들은 <태권브이>보단 <마징가 제트>에 더 애착이 갈 거다. 1년에 한두 번 보는 것과 매주 보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지 않나.

보람을 느낄 때도 있나?

뽈랄라백화점은 가족 단위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가족이 홍대에 오면 갈 곳이 많지 않다. 우리 가게는 공짜로 와서 구경할 수 있으니, 부모들이 얼마나 좋나. 물건을 사든 말든 눈치 주지 않는다. 편하게 놀다 가라고 말한다. 애들은 애들대로 재밌고, 부모도 부모 나름 즐거워하는 걸 보면 기분이 좋다. 외국인 단골 손님도 몇 있는데, 한국에 올 때마다 방문해 즐겁게 구경하곤 한다.

여전히 이 공간이 즐거운가?

그렇다. 나쁠 게 뭐가 있나. 이곳은 내가 좋아하는 물건으로 가득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도 함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물건을 사지 않아도, 즐겁게 구경하고 추억을 쌓아간다면 그 자체로 나에겐 행복한 일이다.



정지환 에디터 stop@mcircle.biz 

송승훈 포토그래퍼 denmagazine@mcircle.biz

추천기사

  1. 빛나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오기까지, 원석위스키디스틸러리
  2. 코리안 위스키의 이단아, 크래프트브로스
  3. 중환자 의료의 표준을 세우다, 양정훈 교수
2025.11.01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멋진 남성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Find Joy in Your Life"
채널명
덴 매거진
소개글
멋진 남성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Find Joy in Your Life"
    이런 분야는 어때요?
    오늘의 인기
    TOP10
    ESTaid footer image

    © ESTaid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