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만든 '지브리' 그림에감동이 없는 이유 ② [인터뷰]
AI 시대에도 대체 불가능한 인간의 영역은 존재합니다. 창작자 이종범이 말하는 ‘감동이 살아남는 이야기’의 조건을 들어봤습니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에 대해 스토리텔러 이종범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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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웹툰 [닥터 프로스트] 작가
•스토리텔링 교육자
•유튜브 [이종범의 스토리캠프] 운영
1부에 이어..
좋은 이야기에 사람들이 감동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독자에게 이야기 안에 초대되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단순히 서사를 따라가는 걸 넘어서 이야기를 통해 창작자와 소통했다는 감정을 갖게 된다.
좋은 이야기에는 언제나 창작자의 시선과 태도가 묻어 있다. 예를 들어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보면 미야자키 하야오가 어린 소녀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를 알게 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2)을 보면, 어린아이가 어떻게 성장한다고 믿는지 전해진다.
그 시선이 내가 딸을 키우며 느낀 감정과 맞닿는 순간, 우리는 서로의 삶을 나눈 듯한 감정을 갖게 된다. 감동은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AI가 그려낸 ‘지브리풍’ 그림을 본다고 그런 감정을 느끼지는 않는다. 이는 단순히 그림체일 뿐이기 때문이다. 진짜 감동은 ‘왜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가’라는 창작자의 의도가 담겨 있을 때 발생한다.
대중이 AI 창작물에 민감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체 가능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대체될까 봐 두려워한다. 연애에서도, 취업에서도, 입시에서도 그렇다. 반대로 ‘나는 대체될 수 없다’는 믿음이 강한 사람은 안정적이다.
AI가 창작자의 의도까지 구현하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가정하면, 나는 그것을 단순히 ‘AI가 만든 작품’이라고 보지 않고 ‘새로운 작가의 데뷔’라고 볼 것이다. 그게 AI든 사람이든, 어차피 지금도 수많은 새로운 작가가 나타나고, 누군가는 대체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내가 대체될 수 없는 이유’다.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왜 좋아하는지, 내가 왜 대체 불가능한지, 그것을 명확히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창작자의 지문과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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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도 창작자의 입장이다. 현재 시점에서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대화 상대로 활용하고 있다. 이야기를 잘 쓰는 사람들은 절대 혼자 글을 쓰지 않는다. 물론 처음에 의도와 테마를 정리하는 과정에선 고독한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그 외에는 대부분 오랜 시간 주변 사람들과 술 마시며, 밥 먹으며 계속 해당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다른 사람들이 겪는 삶의 모습을 통해 이야기를 확장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듯 AI와 대화한다. 내가 던진 주제에 AI가 대답하면, 그 반응에 다시 논박하거나 되묻는다. AI의 의견이 궁금해서라기보다는 내 생각을 정리하고 확장하기 위한 도구로 쓰는 것이다.
AI 시대에도 스토리텔링이 여전히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스토리텔링은 점점 ‘무기화’되어 간다고 생각한다. AI 시대에 들어서면서 ‘결과물’이 난무한다. 이제 대중은 더 이상 결과물만을 좋아하지 않고, 그 결과물을 누가 만들었는지를 중시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림 자체보다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작품'이라는 브랜드를 사랑하는 것이 그 예다.
그런 의미로 이제는 얼굴이 나오는 채널, 누가 말하는지를 알 수 있는 콘텐츠가 더 강력해질 거다. 유튜버 ‘침착맨’처럼 어떤 얘기를 하든 그 사람이 말하면 좋아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결국 콘텐츠 자체보다 ‘스토리텔러’가 콘텐츠가 된다. ‘전달자’가 상품이 된다는 점에서 인플루언서 시장과도 일정 부분 맞물린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운영하는 채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는 ‘설명회’다. 작품에 대해 내가 직접 설명하고 비유하고, 내 말투와 목소리로 전달하는 그 자체가 콘텐츠가 된 거다. 요약만 필요하면 AI에게 시키면 되지만, 사람들은 내가 말하는 이야기 자체를 즐긴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스토리텔러는 대체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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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 종사자들도 ‘대체 가능성’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오랜 시간 수련을 통해 전문성을 갖추는 직군조차 신입 단계에서 수행하던 업무는
이제 AI가 더 잘할 수 있게 됐다.
중요한 건 '내가 왜 대체되지 않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도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이 중요한가?
관계자가 아니기에 정확히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전문직 종사자들도 ‘대체 가능성’을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신입 단계에서 수행하는 업무는 이제 AI가 더 잘할 수 있고, 자료 탐색 같은 영역은 이미 AI가 인간을 뛰어넘는 부분도 있다.
현 시대에 어떤 방식으로 전문성을 유지할 것인지를 고민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예과, 본과를 거쳐야만 의사가 되는 방식이 과연 유효한지, 신입 법조인이 오랜 시간 판례를 외워야만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구조가 여전히 맞는지 등. 학습 단계부터 AI를 도구로 적극 활용하면서 어떻게 인간만의 전문성을 구축할지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결국 중요한 건 '내가 왜 대체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다. 어떤 의사는 의학 기술이 뛰어나야 대체되지 않겠지만, 또 어떤 의사는 매달 동네 주민과 바둑을 두며 그들과 신뢰를 쌓는 존재로서 대체 불가능한 위치에 있을 수 있지 않나. 어떤 관계, 어떤 맥락,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느냐가 그 사람을 대체 불가능하게 만든다. 내가 어떤 이야기의 전달자인가를 자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AI 시대에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을 위해 조언을 하자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AI와 놀아보는 것이다. AI와의 상호작용 시간 자체가 다가올 시대를 대비하는 무기가 될 것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AI 앱을 통해 점심 메뉴부터 물어보는 것이다. 취향에 맞으며 대화하는 과정을 겪으면 된다. 그러다 보면 AI가 웬만한 친구보다 더 살갑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AI는 절대 짜증을 내지 않고, 마음에 드는 메뉴가 나올 때까지 계속 새로운 제안을 해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AI와 한 걸음 더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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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환 에디터 stop@mcircle.biz
송승훈 포토그래퍼 denmagazine@mcircle.biz